'임꺽정' 작가 홍명희 편지 안동서 발견

입력 2018-02-20 00:05:00

1910년 경술국치 부친 자결, 풍산 김씨 자제가 유서 찾아줘…22살에 충남 금산서 4통 부쳐

소설
소설 '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의 자필 편지 4통이 안동에서 발견됐다.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소설 '임꺽정'을 쓴 월북작가 벽초(碧初) 홍명희(洪命憙'1888~1968)의 자필 편지 4통이 안동에서 발견됐다. 홍명희는 1948년 4월 월북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 수립에 기여했던 인물로 초대 부수상을 지냈다. 이런 이력 때문에 직접 붓으로 쓴 편지가 안동에서 발견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것으로 학계는 받아들이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편지는 모두 4통으로 안동시 풍산면 오미리 풍산 김씨 집안에서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한 오래된 편지류 5천100여 점 안에 섞여 있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이 편지들은 모두 22살 청년 홍명희가 1910년 8월에서 11월 사이 충남 금산에서 안동 풍산에 있는 풍산 김씨 집안으로 보냈던 것"이라며 "아버지의 상을 치른 홍명희가 풍산 김씨 집안에 고마움을 표하는 내용이 주로 담겨 있다. 편지를 받은 사람은 김지섭(金祉燮'1884~1928)이다"고 밝혔다.

김지섭은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일제 강점기 의열단원으로 활동하다가 1924년 1월 5일 일본 황궁에 폭탄을 투척한 뒤 일본 지바(千葉) 구치소에서 옥사했다. 안동의 독립운동가와 충북 괴산 출신의 월북작가 홍명희의 관계가 편지로 처음 드러난 셈이다.

첫 편지 글에서 홍명희는 '삼가 말씀 올립니다. 근래에 건강하신지요? 매우 그립습니다. 상주인 저는 특별히 보살펴 주신 은혜를 입어 관을 싣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제 장례를 치러 아픔의 눈물이 더욱 새롭습니다. (상주 홍명희 올림)'이라 썼다.

홍명희의 부친 홍범식은 금산군수로 재직하다가 1910년 8월 29일 나라가 망하자 자결했다. 홍범식은 자결 직전 당시 금산 재판소 통역 겸 서기였던 풍산 김씨 집안의 김지섭에게 상자를 주고 집이 있는 안동으로 돌아가도록 했다. 김지섭은 이후 상자를 열어보고 유서를 발견했다. 급히 홍범식에게 돌아갔지만 이미 자결한 뒤였다. 김지섭은 유서를 홍범식의 아들인 홍명희에게 전했다.

두 번째 편지에서 홍명희는 김지섭을 형으로 부르면서 상례를 치르면서 만났던 김지섭의 건강과 은혜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고 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편지에서 홍명희는 나라를 빼앗기고 아버지를 잃은 것에 대한 속상함을 담았다.

한국국학진흥원 측은 이들 편지에서 홍명희가 유학 등을 한문으로 공부한 전형적인 조선시대 선비들의 필체를 구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당시 편지에선 잘 보이지 않는 어려운 한문식 표현인 '고애자'(양친이 모두 돌아간 상주를 지칭), '죄제'(상을 당한 사람이 손윗사람에게 쓰는 편지) 등의 단어도 찾아냈다.

한국국학진흥원 김순석 박사는 "청년 홍명희의 자필 편지는 그가 나중에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이후 평등한 세상을 구현하려는 이념을 담은 소설 '임꺽정'까지 쓰게 된 배경을 추정해볼 수 있는 귀한 자료들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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