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잠 깬 주민들 짐 챙겨 고속도 탈출 행렬

입력 2018-02-12 00:05:00

되살아난 지진 충격 '체감 공포' 훨씬 키웠다

11일 오전 6시 8분쯤 포항시 북구 우현동의 한 도로가 차량 정체를 빚고 있다. 부근 아파트 14층에서 사진을 찍었다는 독자(37)는
11일 오전 6시 8분쯤 포항시 북구 우현동의 한 도로가 차량 정체를 빚고 있다. 부근 아파트 14층에서 사진을 찍었다는 독자(37)는 "차들이 별로 없을 휴일 새벽에 주민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이렇게 줄지어 피난을 떠났다. 나는 두 돌이 안 된 막내 등 아이 셋을 데리고 내려갈 자신이 없어서 떠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독자 촬영 제공'연합뉴스

11일 강력한 여진이 발생하자 포항은 순식간에 전쟁터로 변했다. 새벽녘 도로는 지진 공포에서 벗어나려고 쏟아져 나온 차들로 피난길을 이뤘다. 경주'영덕 방향 7번 국도는 물론, 고속도로 톨게이트로 향하는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정체를 빚었다. 지진이 발생했던 이날 오전 5시부터 2시간 동안 고속도로로 포항을 빠져나간 차량은 1천40대(한국도로공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정미(47) 씨는 "아이와 가족을 데리고 부리나케 짐을 챙겨 나왔다. 일단 포항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저녁쯤 상황이 안정되면 다시 포항에 오려고 한다"고 했다.

이 시간대 문이 열린 편의점에는 생필품과 먹을거리를 구매하려는 시민들이 몰렸다. 또 주유소에도 장거리 운행을 대비한 차량 행렬이 끝없이 줄을 이었다. 우현동 한 편의점 직원은 "도시락, 컵라면 등이 해가 뜨기 전에 모두 동났다. '나도 대비를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구매해갔다"며 "지난해 지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고 했다.

학교 운동장이나 공원 등 옥외 대피소에는 잠옷 바람에 두꺼운 외투만 걸친 시민들이 무리를 지어 저마다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었다. 신민영(36) 씨는 "너무 추워서 집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고 싶지만, 지금은 불안해서 그럴 수가 없다"며 "해가 바뀌면서 무뎌진 지진 공포가 되살아나 너무 무섭다"고 했다.

지진 피해 임시구호소가 마련된 흥해실내체육관은 지진이 발생한 오전 5시 3분부터 집에서 도망치듯 나온 흥해읍 주민 등 300여 명으로 가득 찼다. 체육관은 물론 주차장까지 피난 행렬이 따로 없었다. 이들은 서둘러 집을 빠져나오느라 옷도 제대로 챙겨입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다. 이들 중에는 임시구호소 폐쇄 방침이 내려졌던 지난 10일 집으로 돌아가 잠을 청해보던 이재민들이 다수 섞여 있었다.

서신보(55) 씨는 "대피소에 있는 아내를 달래서 오랜만에 자는데, 지진이 와서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침대가 요동치고, 서랍장이 다 빠져나오고, 창문이 저절로 열렸다. TV도 넘어져 화면이 박살 났다. 규모 4.6 지진이라지만, 체감하기에는 11'15 지진 때보다 진도가 더 심했다"며 "여기 다시 와보니 같이 지내던 사람도 많이 보인다"고 했다.

이날의 공포는 어두운 새벽에 지진이 발생했기에 더 컸다. 어두운 새벽 영하 5.4℃의 날씨에 밖으로 나온 터라 날이 밝았던 11'15 포항 지진이 발생했을 때보다 불안감은 두 배 이상이었다. 양덕동 주민 김영지(44) 씨는 "주변이 잘 보이지 않는 캄캄함 속에서 대피해야 해 이번 지진이 준 공포는 너무 컸다.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였다"고 했다.

대구에서는 포항과 가까운 수성구, 동구에서 특히 큰 지진동이 일면서 새벽잠을 설친 주민들이 크게 놀라는 등 혼란이 컸다. 수성구 주민 김모(50) 씨는 "아파트 20층 집이 갑자기 옆으로 크게 흔들리는 것이 느껴져 온 가족이 잠을 설쳤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재난용 대피 가방을 다시 챙겨 둬야 하나 걱정했을 정도다"고 말했다.

다행히 불안했던 분위기는 오후가 다가오면서 안정을 되찾아갔다. 김홍제 한미장관맨션 지진대책 비상대책위 대표는 "새벽에 왔던 이재민들은 오후부터 하나 둘 다시 집으로 돌아가 일상을 준비하고 있으며, 일부 주민들은 임시구호소 생활을 다시 하기 위해 시에 등록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며 "모두 차분한 분위기에서 지진 공포를 극복해나가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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