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영의 자전거로 떠나는 일본 여행] ⑥오키나와(온나∼나고)

입력 2018-02-10 00:05:00

1km 가로수길 끝에서, 태평양을 만나다

후쿠기 가로수길. 마치 제주도 용머리해안을 닮은 태평양의 해안길이다. 오키나와 관광청 제공
후쿠기 가로수길. 마치 제주도 용머리해안을 닮은 태평양의 해안길이다. 오키나와 관광청 제공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나키진성터. 오키나와 관광청 제공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나키진성터. 오키나와 관광청 제공
코우리대교에서 바라본 풍경이 아름답다.
코우리대교에서 바라본 풍경이 아름답다.
오키나와의 상징인 만좌모를 배경으로 필자와 동고동락하는 자전거와 함께 찍었다.
오키나와의 상징인 만좌모를 배경으로 필자와 동고동락하는 자전거와 함께 찍었다.

◆오키나와 자전거의 하이라이트, 온나(恩納)에서 나고시(名護市) 북부일주 80㎞

1만 명이나 넉넉히 앉을 수 있다 하여 이름 붙여진 '만좌모'(万座毛)는 오키나와를 나타내는 상징과 같은 곳이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어 수만좌모가 된다. 오키나와의 대부분 바다는 비치를 이룬다. 여성스럽고 예쁘다. 만좌모는 다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코끼리 형상이 사진의 핫플레이스이다. 언뜻 보면 제주도 주상절리에 온 듯한 친근감을 준다. 온나촌 빌리지에서 불과 2㎞ 내외다.

이른 새벽 이곳을 스타트로 오키나와 라이딩의 백미를 느낀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어느 곳이 더 좋다고 할 수도 있으나 오키나와에서 라이딩한다면 반드시 이곳은 달려 봐야만 하는 루트다. 반대쪽에서 내려오는 라이더들도 종종 마주친다. 가는 곳곳에 볼거리와 먹거리가 많아서 굳이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면 이틀에 나누어 넉넉히 라이딩하는 것이 좋다.

온나촌을 출발하여 나고 시가지까지는 약 20㎞다. 왼쪽에 바다를 두고 쉬엄쉬엄 가다 보면 바다를 달린다는 묘미를 준다. 저멀리 부세나 해중공원(ブセナ海中公園) 타워가 보인다. 약 1시간 남짓 달려서 나고시로 들어선다. 나고시의 자전거 출발점은 나고시 버스터미널 앞이다. 어디를 가던 나고시 터미널로 오면 갈림길을 맞이할 수 있다. 이곳에서 라이딩할 수 있는 갈림길은 세 가지다. 쭉 직진하여 해도곶(邊戶岬)까지 다녀오는 왕복 110㎞, 왼쪽 해안도로를 따라 북부지역을 한 바퀴 도는 해안코스 약 50㎞, 왼쪽으로 접어들다가 산속을 향해서 다소 업힐(Uphill)을 각오하고 달리는 힐코스 약 45㎞로 나뉜다.

왼쪽 해안도로로 간다. 완만한 바닷길을 천천히 가다 보면 세소코섬에 다다른다. 나고시로부터 약 20㎞ 남짓이다. 약 400m 남짓 다리를 넘으면 세소코섬에 다다른다. 세소코는 딱히 눈에 띄는 조형물이 없다. 찾는 이가 적어 오히려 좋다. 한적한 바다 옆에 자전거를 누이고 앉으니 오히려 선잠이 들려 한다. 툭툭 털고 오키나와 최대 관광지 해양박물관인 츄라우미 수족관(沖繩美ら海水族館)으로 간다. 1975년 국제해양엑스포의 시설을 개조하여 만들었다는 츄라우미 수족관은 일본 최대의 수족관이다. 750종 2만여 마리의 물고기가 살고 있다. 대형상어와 돌고래쇼는 항상 인기짱이다. 그나저나 하늘에 높이 솟아오르는 돌고래는 30살이 넘었다는데 여전히 씩씩하다.

츄라우미 수족관에서 인증 샷을 찍은 후 인근의 돈가스로 유명한 맛집에 점심 차 들렀다. SNS의 유명세 탓인가 죄다 한국사람이다. 온라인이 무섭다. 앉아 있는 사람도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도 한국인이다. 여섯 테이블의 자그마한 식당은 금세 한국어로 가득 찼다. 연세 있으신 일본인 주인은 그래도 꿋꿋하게 일본어로 서빙한다. 단출한 돈가스이지만 가격도 적절하고 맛있다. 라이딩 도중의 식사는 항상 급하다. 시간을 다투는 탓에 게눈 감추

듯 식사를 마쳤다.

후두둑 떨어지는 빗속을 마다 않고 인근에 있는 후쿠기 가로수길을 향해 달린다. 후쿠기 나무는 물푸레나무과의 열대 상록수로 알려져 있다. 언뜻 보면 동백나무와도 닮았다. 비세마을에 1천여 그루 이상 온통 심겨진 후쿠기 나무길은 천천히 걸어도, 자전거를 타도 좋다. 사진 찍는 이들로 분잡하다. 하지만, 정작 가로수길보다는 마을 끝에 위치한 곶이 좋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1㎞나 이어지는 가로수길을 빙빙 돌다가 가버리지만 자전거로 끝 닿는 데까지 나가면 탁 트인 바다 위에 펼쳐진 곶을 맞이한다. 마치 제주도 용머리해안을 닮은 바닷속 바위 길을 조심스레 걸을 수도 있다. 평화와 자유로움이다. 다시 마을 어귀로 나오면 카메라 셔트를 눌러대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나키진성터'로 향한다. 여기서 약 17㎞이다. 당연히 류큐왕조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성터다. 이곳 역시 유네스코유적지로 등재되어 있다. 류큐왕조와 인연이 닿아 있는 세 곳의 성터, 슈리성터((首里城跡), 카스렌성터(勝連城跡), 나키진성터는 전부 유네스코 유산이다. 성터의 특징답게 모두 높은 곳에 위치한다. 굳이 비유한다면 백제유적이 남아 있는 공주성이나 문경새재의 관문이 왕실 터와 어우러져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형국이다. 나키진성터로 가는 약 2㎞ 정도의 업힐은 뒷등에 땀이 잔뜩 맺히게 한다. 이제 북부지역의 또 다른 섬 '코우리섬'으로 향한다. 약 16㎞ 정도이다. 저 멀리서 딱 봐도 유명한 코우리 대교(古宇利大橋)가 눈에 들어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 2㎞에 달하는 코우리 대교를 차로 휑하고 냅다 달린다. 자전거는 다르다. 짬짬이 쉬어가며 이곳저곳 풍광을 카메라에 담는다. 자전거만의 매력이다. 엄청난 역풍 속에 코우리 비치에 이른다. 저 멀리 해양타워가 보이지만 생략하고 코우리 대교가 잘 내려다 보이는 바닷가 계단에 앉았다. 봄날이라면 분명 사람들에 치여서 이렇게 여유를 부리지도 못하리라. 다리와 바다는 조화롭게 충분히 아름답다. 사랑하는 이라도 같이 한다면 분명 여기서 물장난도 치고 바다에 발 담그고 인근의 카페서 차도 한잔하고 유명한 새우버거도 한입 베어 물었으리라. 쓸데없는 잡념을 뒤로하고 나고시를 향해 페달을 옮긴다. 여기서 또 20㎞ 정도이다.

그런데 또 정말이지 멋진 섬이 길을 따라 나타난다. 야가지섬(屋我地島)을 지나 오지마섬이다. 이곳은 빨리 페달을 밟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어진다. 오키나와 유명관광지와 견줄만하다. 작은 섬이라 자전거로 달려도 15분 남짓이면 쉽게 지날 수 있지만 아기자기함의 묘미가 숨어 있다. '오지마섬'은 작은 아름다움이다.

◆한 번쯤은 곱씹어보는 우리의 삶, 일본인의 삶

이제 북부지방 해안도로 라이딩도 서서히 마쳐간다. 시간에 쫓겨서 때론 유명지도 점만 툭툭 찍고 간다. 나고시 인근에 다다르자 시계가 벌써 오후 6시를 훌쩍 지났다. 겨울이라 어둠도 짙게 내려졌다. 나고 버스터미널로 가야 하는데 구글 안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교차로에서 일본 생활자전거를 타고 있는 중년 일본 남성에게 다가가 방향을 물었다. 그는 잠시 쭈뼛대다가 자기를 따라오라고 한다. 다음 교차로 근처서 방향만 알려주고 가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5㎞ 이상 떨어진 나고 버스터미널까지 같이 갈 심산이다. 몇 번이고 괜찮다고 했지만 고독한 표정의 그는 자꾸만 '大丈夫'(괜찮아요)라고 하며 앞선다. 가다가 뜬금없이 자기 얘기를 한다. 도쿄서 이곳 오키나와로 왔다고. 아직 츄라우미 수족관을 못 가보았다고 하였다. 어땠냐고 묻는다. 부러운 듯 나를 쳐다본다. 그 속에 진한 일본인의 고독이 묻어난다. 그렇다. 그는 외롭고 누군가와 얘기가 하고 싶은 거였다. 일본을 자전거로 다니는 내내 '부유한 국가, 소박한 국민' '고독 속에 빠져 있는 일본인'을 자주 발견한다. 우리와 비교가 된다. 우리네는 속이야 어떠하던 모든 것이 흥청망청, 화려하고, 허세에 익숙하지만 일본인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모든 것이 꾀죄죄하다 싶을 정도로 소박하였다. 최소한의 음식들, 작은 차, 작은 집, 유행을 타지 않는 옷, 정해진 틀과 규칙 속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듯 보였다. 대부분의 차들이 소형이다. 도요타가 만들어 미국 땅에 팔고 있는 대형 SUV는 찾아볼 수가 없다. 무엇이 단적으로 좋다 나쁘다 할 수는 없으나 우리도 외적인 화려함과 과시욕을 버리고 내면의 세계로 향하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5㎞나 같이 달려 나고 버스터미널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서는 그 중년 남성의 외로운 어깨가 유난히 마음을 짠하게 하였다. 이제 추억을 물씬 남긴 북부 지역 라이딩을 마치고 숙소가 있는 온나로 향해야 한다. 120번 버스에 자전거 앞뒤바퀴를 빼고 올랐다. 대중교통이라 하지만 결코 저렴하지 않다. 약 30㎞ 떨어진 숙소 인근까지 가는데 1천엔 가까운 비용을 지불하였다. 오늘은 좁은 욕탕이지만 더운물을 잔뜩 받아놓고 찜질을 할 작정이다. 내일 오키나와 센츄리런 160㎞를 대비하려면 컨디션 조절이 필수적이다.

※오키나와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나키진성터

자키미성터(座喜味城跡)

카스렌성터(勝連城跡)

나카구스쿠성터(中城城跡)

슈리성터(首里城跡)

소노한우타키이시몬(園比屋武御嶽石門)

타마우돈(玉陵)

시키나엔(識名園)

세이화우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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