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농사일을 마치고 동료들과 함께 마을로 돌아오는 소박한 일상을 꿈으로 삼던 시대가 있었다. 꿈 실현의 필수조건인 농사지을 땅과 일 마치고 돌아올 마을, 그 어느 것도 없는 팍팍한 시대였기에 그런 일상이 한 시대를 아우르는 꿈으로서 등장했던 것이리라. 일제강점기 조선, 특히 1920년대 조선에서 그 꿈은 참으로 강렬했다. '바라 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 이처럼 떠돌으랴'라는 시 구절이 나올 정도로 1920년대 조선에서 그 꿈은 강렬했다. 조선 땅이 일본제국의 땅이 되고 그 땅에 일본인들이 밀려들어 오면서 쫓겨나야 했던 수많은 조선인들의 삶이 바로 그즈음 본격적인 사회문제로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진건의 '고향'(1926)은 이처럼 고향에서 쫓겨난 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은 경성행 기차 속에서 '나'가 남루한 복장의 한 조선인과 동석하면서 시작된다. '나'를 통해 전달되는 조선인 '그'의 고달픈 삶의 이야기가 소설의 주 내용이다. 조선인 '그'는 열아홉 살에 고향을 떠나 서간도로 이주하여 십여 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유랑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고향을 떠난 이유는 한 가지, 일제의 경제 침탈로 농사짓던 땅을 모두 빼앗겼기 때문이다. 나와 기차에서 동석한 그때 그는 서간도에서 안동현과 신의주로 거기에서 다시 일본 규슈 탄광촌과 오사카 철광촌이라는 멀고도 긴 유랑의 세월을 끝내고 고향을 방문하고는 경성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유랑 생활 십여 년 만에 고향이라고 찾아서 돌아오기는 했지만 고향 마을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100여 호나 되던 농가는 이미 폐농이 되어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고, 젊은 날 마음을 두었던 동네 처녀는 유곽을 떠돌다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부모도, 친구도, 마음을 둔 처녀도, 집터도, 과거를 기억할 모든 것이 사라진 그곳이 더 이상 고향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망국의 현실 속에서 고향을 잃은 사람이 '그' 한 사람뿐이었을까. 고향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들조차 마음은 떠돌고 있던 시대였다. 그런 점에서 고향을 잃고 유랑하는 소설 속 그의 삶은 망국의 삶을 살아가는 조선인 일반의 삶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현진건의 '고향'이 나온 지 90년이 지났다. 현진건이 갈망한 고향은 일반적 의미의 고향을 넘어, 하나로 뭉친 독립된 조선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고향을 찾았을까. 지금 우리에게는 고향이 있을까. 평창올림픽이 곧 시작한다. 올림픽 개최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현진건의 고향 독립 조선이 남북으로 갈린 것도 모자라서 좌우로 갈려 있는 형국이다. 90년 전 조선인들이 만주와 연해주를 떠돌면서 디아스포라(diaspora)를 만들더니 이제는 남북과 좌우로 갈라지면서 고향을 나누는 형국이다. 이번 평창올림픽이 '디아스포라'를 통합의 잔치로 만들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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