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후배가 작품집을 냈다며 따끈따끈한 새 책을 보내왔다. 그는 대학 다닐 때부터 여러 문학상에 이름을 올릴 만큼 능력을 보여 왔기 때문에 좋은 작가로 자리할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시, 동시, 동화로 활동 영역을 넓히며 차근차근 문학 세계를 열어가고 있었다.
보내준 책을 들고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걸었는데 아쉽게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틀쯤 지난 뒤에 전화가 왔다. 자주 연락하지 못하여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출판기념회를 하고 싶다고 하였다. 내가 선뜻 대답을 하지 않자 그는 형식적인 자리를 내켜 하지 않는 내 마음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조촐하게 그동안 보고 싶던 선배들을 모신다고 하였다. 그래서 쾌히 승낙을 하고는 달력에 표시를 해두었다.
약속한 날은 몹시 추웠다. 아침 일찍 문자가 왔다. '잡은 날이 하필 제일 춥네요. 그래도 꼭 오실 거죠? 보고 싶습니다.'
책 내고, 출판기념회를 하는 일이 너무나 가벼워진 세상이다. 접수처에서 얼굴 도장 찍고, 밥 먹고, 후다닥 헤어지는 게 요즘 출판기념회 모습이다. 몇 년 전 우리 지역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이 퇴임을 앞두고 잡문 나부랭이로 책을 엮어 낸 적이 있었다. 지역 기업체에다 얼마나 압력을 넣었는지 거둬들인 돈이 수천만원이 넘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심지어는 그 돈으로 자녀 결혼을 시켰다는 말까지 들렸다. 선거철이 가까워지면 이름을 알리려고 출판기념회를 많이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일들을 보면서 출판기념회 하면 고개를 흔들게 되었다. 그냥 넘길 수 없는 게 그로 인해 순수하게 책 낸 기쁨을 나누려는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판기념회 초청장이 오면 먼저 어떤 성격의 자리인지를 따져 보고 갈지 말지를 결정하는 버릇이 생겼다.
초청장이 따로 없는 후배의 출판기념회 자리에 기쁘게 참석하였다. 열 사람이 모인 조촐한 자리였다. 그야말로 꼭 불러야 할 사람, 함께 기뻐할 사람, 진정으로 축하해 줄 사람만이 모인 셈이었다. 무슨 회장, 무슨 대표가 줄줄이 단상에 올라가서 영양가 없이 풀어내는 지루한 연설을 듣지 않아서 좋았다. 감동 없는 박수를 쳐대지 않아서 더욱 좋았다.
그동안 혼자서 키워낸 딸이 이번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는 후배의 말에 모두들 진심을 담아 축하하였다. 실은 그 말을 다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후배는 작품집보다 더욱 자랑스럽게 딸 자랑을 하여 우리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축사도, 격려사도 없었지만 모두 같은 마음으로 축하하고, 격려를 주고받는 시간이었다. 후배의 자랑이 전혀 밉지 않았으며, 이를 축하해 주는 우리의 이야기에도 어색함이 없었다.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고, 자리를 옮겨서 차까지 마시며 긴 시간을 함께 보냈다. 가장 추운 날씨였지만 마음은 최고로 따뜻해진 출판기념회였다.
김일광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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