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과 검정, 동서양의 관점은

입력 2018-02-05 00:05:00

갤러리신라 'BLACK SELECTIONS'전

김호득 작
김호득 작 '무제'
옆에서 본 퀀터 움버그의
옆에서 본 퀀터 움버그의 '무제' 작품

서양에선 부정 부재의 시각

동양에선 공간 창조의 근원

흑연 덧칠 판화작업 형상화

수묵 필치 현대적 해석 비교

레슬리 폭스크롭트, 퀀터 움버그, 리차드 세라, 곽인식, 김호득, 문범, 심문필, 제여란, 최명영 등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BLACK SELECTIONS'이란 제목으로 갤러리신라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의 화두는 '블랙'이다. 블랙은 개념미술가의 그룹에 속한 동시대 작가들이 많이 선택해 온 색이다. 애드 라인하르트는 환원주의 때문에 검은색에 매료됐다고 한다. 라인하르트의 블랙 작업은 부정 또는 부재를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공간 안에서 중첩된 검은색, 즉 어둠은 실제로 진동의 원천이 됐다.

동양적 관점에서 볼 때도 흑색(黑) 또는 검정(玄)은 공간 창조적 에너지의 근원으로 본다. 이번 전시에서는 흑색(Black)에 대한 동서양 작가들의 태도를 살펴볼 수 있다.

레슬리 폭스크롭트는 가공목재 MDF와 카드보드지 등을 소재로 전시 공간과 벽에 설치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블랙의 산업용 고무판을 이용한 조각을 선보인다. 폭스크롭트는 이런 작업을 통해 절개된 면과 정교한 패턴들을 통해 '단순함' 그 자체를 보여준다.

퀀터 움버그는 회화를 매우 특수한 관계로 바라본다. 그의 검정 화면은 알루미늄판에 흑연과 같은 안료를 무수히 입혀 제작한 방식으로 깊이 있는 무한의 절대적인 검정 안에는 우주의 한 부분을 떼어 온 것처럼 무한히 움직이는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는 통로를 엿본 것 같은 자극을 준다. 움버그는 한 화면에 한 가지 색만을 균등하게 처리해 벽에 반복 설치하는 작업을 통해 그만의 공간을 표현해낸다.

조각가이며 소묘가인 리차드 세라의 작품은 미니멀 아트와 과격한 현실 요구의 결정적인 토대를 함께 지니고 있다. 이번 전시작품은 1980년대 판화작업으로 조각 설치 작업 과정에서 느낀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이다.

대구 달성군 출신인 고 곽인식 작가는 전통적인 양화(洋畵)를 주류로 하는 일본 미술의 흐름에서 벗어나 입체, 오브제 등 공간 전체에 걸친 다양한 실험을 하여 일본 아방가르드적 미술을 했다. 그의 작품은 먹을 이용한 무수한 점을 통해 중첩과 반복에 의한 흑색과 물성을 잘 표현해주고 있으며, 한국 단색화의 단초를 제공했다.

수묵의 필치와 발묵, 파묵, 선염 등 전통적 묵법을 대범하고 독창적으로 구사해 현대적 표상으로 자신의 시각언어를 완성하고 있는 김호득 작가는 사념과 의식을 담고 있는 동양의 정신성과 상통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지필묵으로 그려진 절제된 선과 면의 겹침을 통해 생성과 화합, 그리고 충돌을 김 작가만의 기운생동으로 표현하고 있다.

문범 작가는 가장 전통적 장르인 벽면 미술작품(tablo)이 갖는 무한한 가능성과 아름다움을 신선한 방법으로 심도 있게 탐구해 오고 있다. 단색의 오일스틱을 사용한 화면은 마치 한국의 전통 수묵 풍경화를 연상시키듯이 공간적이고 몽환적이다.

심문필 작가의 작품은 일률적이고 매끈하게 펼쳐진 색(주황, 빨강, 초록, 검정)면을 가로지르는 아주 가늘거나 좁은 띠로 된 하나 혹은 여러 개의 색선으로 구성돼 있다. 각기 다른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이 선들은 단색면을 자르고 조정함으로써 색과 면의 관계에 리듬을 불어넣고 있다.

유한한 캔버스에 창조와 소멸의 무한함 과정을 주제로 작업하고 있는 제여란 작가는 순간의 에너지를 운용하며 창조의 산물과 하나가 돼 스스로 작품의 도구가 되는 과정을 만들어낸다. 작품을 보고 있으면 대자연의 힘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최명영 작가는 물질과 비물질 경계를 '중첩'과 '반복'에 의해 형성된 물감의 다층적 레이어(겹)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아무것도 아닌듯한, 보이지 않게 하는 듯한 무의미한 층위를 통해 회화의 평면성을 추구한 작품은 무엇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완전한 평면회화를 창조해낸다. 3월 20일(화)까지. 053)422-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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