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잘해주는 사람에게 잘해주기

입력 2018-02-01 00:05:00 수정 2018-10-17 13:04:52

난 스물일곱에 회사를 만들었다. 문화공연을 기획하는 회사였다. 1년을 하다가 음반회사도 만들었다.

1년간 공연기획사를 하면서 다른 연주팀 전국투어를 기획하게 됐는데 흥행 성적은 기대 이하였다. 공연팀은 공연이 망하면 그걸로 끝이지만, 연주팀은 어쨌든 홍보와 공연을 했으니 이득을 본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나도 연주팀을 만들고, 연주팀의 음반을 내기 위해 음반사도 만들었다. 1년 뒤 첫 음반이 나왔다. 좋은 성과를 냈지만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성공이었다. 이후 음반시장이 음원시장으로 급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때에 나는 급변하는 시장을 읽지 못했고, 계속적으로 여러 연주팀을 섭외해서 새로운 음반을 만들었다. 그렇게 10장 이상의 음반을 만들고 나서야, 음반시장의 어두운 현실을 알게 됐다.

회사는 급속도로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유지가 어렵다는 걸 깨닫고 정리의 수순을 밟았다. 그중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할 것이 진행된 음반들에 대해 계속 진행이냐 포기냐의 기준을 정해야 하는 문제였다. 회사의 어려움으로 이미 지칠 때로 지쳤기 때문에 그 기준을 성가시냐 성가시지 않으냐를 기준으로 삼아버렸다.

다시 말해, 연주자에게 당신의 음반을 회사 사정상 더 이상 진행 할 수 없다고 말했을 때 순순히 받아들이는 연주자의 음반은 그대로 끝내고,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끝까지 만들어 달라고 하는 연주자는 음반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자의적인 이 판단기준은 결코 현명한 방법이 아니었다. 이후 결정한 대로 일이 진행되었고, 회사는 오랫동안 회복기를 가져야만 했다. 그러는 동안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중 고마운 마음이 드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장기간 애쓰고 노력한 음반 진행을 나의 말에 순순히 포기해준 연주자들이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지만 자기보다는 회사와 나를 먼저 생각해 준 것이었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잘해준다'는 말은 당연한 것 같지만 사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더 소홀하게 된다. 오히려 일 못하고 나에게 무례하고 말 많은 사람에게 신경이 더 쓰이고, 잘해주게 된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이 있지만 지금 현실에서 이 속담은 틀린 말처럼 들린다. 공적'사적 관계에서 필연적으로 공과 사라는 부분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에 따른 공정한 상벌의 원칙이 관계 안에서의 신뢰를 만든다.

인간관계에 대한 격언 중에 '편한 사람 편하게 대해라. 쉽게 대하지 말고'라는 말이 있다. 좋은 사람을 곁에 두고 싶은가. "잘해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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