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강의 LIKE A MOVIE] 메이즈 러너: 데스큐어

입력 2018-01-26 00:05:00

미로<메이즈>도 탈출하는 사람<러너>도 부실한 '시리즈 완결편'

배우 이기홍
배우 이기홍

#해시태그: #민호 #좀비영화 #포스트아포칼립스

#줄거리: 인류가 멸망하기 직전의 미래, 최후의 도시를 지배하는 단체 위키드는 치명적 바이러스에 면역을 가진 아이들을 가둬놓고 잔혹한 실험을 자행한다. 그리고 '위키드' 조직에 잡힌 '민호'(이기홍)를 구하기 위해 '토마스'(딜런 오브라이언)와 러너들은 '위키드'의 본부가 있는 최후의 도시로 향한다. 그곳에서 인류의 운명이 걸린 '위키드'의 위험한 계획을 알게 된다. '토마스'와 러너들은 마지막 사투를 준비하지만, '토마스'는 친구와 인류의 운명 앞에서 딜레마에 빠지게 되고, 위키드의 손아귀로부터 탈출했던 토마스와 동료들은 실험실에 갇힌 친구들을 구하고자 모험에 나선다.

세계적인 흥행 돌풍을 일으켰던 '메이즈 러너' 시리즈의 완결편이 국내 팬들에게 가장 먼저 공개되었다. 지난 17일 개봉한 '메이즈 러너: 데스큐어'는 인류 멸망이라는 전 세계적 위기에서 생존과 신념을 향해 달리던 소년 소녀들의 성장기로 대서사를 마무리 지었다. 1편이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미로에 갇힌 아이들이 탈출하는 모습을 담은 영화였다면 2편 '스코치 트라이얼'은 미로에서 탈출해 황폐화된 도시 '스코치'에 도착한 러너들이 '위키드' 조직에 대항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과정을, 3편은 미로를 탈출했던 러너들이 민호를 구하기 위해 미로를 만든 사악한 존재 '위키드'의 본부가 있는 '최후의 도시'로 들어가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서사적으로 봤을 때 스케일을 점층적으로 키운 셈이다. 이 시리즈의 흐름을 고려하면 제작진은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메이즈 러너는 올해 개봉한 첫 번째 블록버스터 영화다. 역시 할리우드 영화는 스케일부터 남다르다. 소설의 세계관을 구현하기에는 적은 예산으로 제작의 한계가 보였던 1편에 비해, 3편은 전편보다 나은 만듦새를 보여줬다. 제작비가 올라갈수록 스크린 위에 나타나는 세계관도 거대해졌다고나 할까. 비록 그 시작은 약소했지만, 시리즈의 가능성은 6억6천만달러의 수익이 충분히 증명했다. 그러나 늘어난 부피만큼 밀도도 높아졌을까?

'메이즈 러너: 데스큐어'가 역대급 스케일을 자랑하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기차 위에서 러너들과 위키드 세력의 추격과 총격으로 마구 달린다. 이는 실제 기차를 옮겨 촬영한 것으로 제작진들이 액션 신에 공을 들였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문명의 흔적만 남은 폐허 속 유일한 생존 구역으로 설정된 '최후의 도시'도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정교한 CG를 바탕으로 탄생한 방대하고도 공허한 지구와 과학적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미래 도시 등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로서 취할 수 있는 매혹적인 요소도 고루 갖췄다. 요컨대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지만 '메이즈 러너: 데스큐어'가 볼거리 많은 영화란 걸 부인할 수 없을 테다.

'대의를 위해 갈 것인가' '친구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하는 영화의 메시지는 모든 청소년이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겪을 법한 필연적인 딜레마다. 토마스 생스터는 "배우들뿐만 아니라 감독님까지 3편까지의 여정을 통해 성장했다"며 작품을 통한 성장의 메시지를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 5년간의 여정으로 앳된 기운이 가득했던 주연 배우들은 어느새 의젓한 모습으로 성숙해져 돌아왔다. 시리즈 영화가 보통 5년 정도 이어진다고 봤을 때 배우들의 물리적인 나이가 들어감은 커다란 딜레마다. 특히 주인공이 고등학생이어야 하는 '스파이더맨' 같은 시리즈 청춘물은 더욱 그러하다. 그런 면에서 성장해온 과정을 담은 '메이즈 러너' 시리즈는 성공적인 편이라 볼 수 있다. 러너들의 리더인 토마스(딜런 오브라이언)와 우직하게 그를 돕는 민호(이기홍)와 뉴트(토마스 생스터)는 확연히 단단해졌고 자신감 충만한 존재감을 발휘했다. 딜런 오브라이언은 3편 자동차 신 촬영 도중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1년을 재활하여 촬영을 완성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영화에는 박진감 넘치는 액션 신만 있을 뿐 부상을 당한 배우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를 계기로 딜런 오브라이언은 '부상을 딛고 달린 배우'로 영화 밖에서도 안에서도 영웅 캐릭터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국내 팬들을 사로잡은 배우는 단연 민호 역의 한국계 배우 이기홍이다. 이기홍은 내한 프로모션으로 국내에 방문한 배우 3인방 중에서도 유독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내한 프로모션은 성공적이었고 곧 박스오피스 1위의 쾌거로 이어졌다. 다시 한 번 '이기홍 효과'가 입증된 것이다. 이기홍은 1986년생으로 서울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까지 살다가 미국으로 이주하여 성장했다. 유색 인종에게 좁은 문이었던 할리우드가 문을 열었고, '메이즈 러너'에서는 딜런 오브라이언과 토마스 생스터 등 쟁쟁한 할리우드 배우들과 극을 이끌어 나가는 핵심 멤버로 주연을 꿰찼다. 이런 활약으로 2014년에는 피플지가 선정한 '가장 섹시한 남자 4위'에 오르기도 했고, 국내에서 인지도와 인기만큼은 여느 할리우드 톱스타 부럽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또한 러너들의 조력자가 되어주는 브렌다 역을 맡은 로사 살라자르도 새로운 액션 스타의 탄생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눈길을 끌고 있다. 중성적인 외모로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출중한 액션 실력을 갖춘 로사 살라자르의 활약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그러나 1, 2편의 사전 지식과 원작에 대한 애정 없이 무작정 영화를 보게 된다면 이 영화는 불편할 수도 있다. 일단 이 영화의 제목이자 일종의 모티브인 메이즈(미로) VS 러너(탈출하는 사람)라는 설정은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희박해진다. 시리즈의 정체성은 애매모호해졌고 '메이즈'도 '러너'도 없는 완결편이 되었다. 토마스는 확고한 의지로 위키드에 납치된 친구를 구하러 가고 그 와중에 납치된 친구인 민호는 영화 중반부까지 내내 누워 있기만 한다. 목숨 걸고 쫓아다니는 토마스 일행을 따라가다 보면 관객은 '민호 때문에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사뭇 든다. 친구를 구하는 데 이유가 뭐 필요할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떠한 부연 설명도 없는 토마스의 의지는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목숨을 걸고 위키드에 맞서 싸우는 친구들에 비해 정작 민호는 너무도 단순하고 쉽게 탈출해버린다. 또한 갑자기 도와주러 온 세력에 의해 갈등이 급히 해소되는가 하면 개연성 없는 인물들의 행동은 몰입도를 떨어뜨렸다. 5년간 이어진 대서사 시리즈의 장대한 마무리를 기대했다면 1차원적인 용서와 화해의 마무리에 실망할 수도 있다.

미로는 인생 그 자체다. 미로는 문학적 비유로도 종종 사용되고, 신화에도 여러 편 등장한다. 그만큼 미로에는 어떤 상징성이 있다. 알 수 없는 공포 속, 안주하려는 아이들을 설득해 미로를 뚫고 나가자는 변화를 꾀하는 자, 토마스를 주축으로 미로 속 러너들은 몇 년 동안 미로를 달려왔다. '메이즈 러너: 데스큐어'가 그들의 후회 없는 막판 전력 질주로 남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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