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스토리] 손동환 동원화랑 대표

입력 2018-01-26 00:05:00 수정 2018-05-26 18:14:42

30여년 쌓인 안목·신용…지역 작가 든든한 사다리 역할

사진 이채근 선임기자 mincho@msnet.co.kr
사진 이채근 선임기자 mincho@msnet.co.kr

미술품 시장에 새 기록이 나왔다. 65억5천만원. 지난해 4월 K옥션 경매에서 김환기의 '고요(Tranquility) 5-IV-73 #310'이 그의 다른 작품이 세운 종전 기록(63억원)을 갈아치웠다. 지난해 12개 미술품 경매회사가 한 경매에서 1만8천623점이 낙찰돼 사상 최대 작품이 팔렸다. 낙찰총액은 1천892억원으로, 최고 활황기로 꼽힌 2007년(1천926억원)을 바짝 뒤쫓았다. 경매시장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작가와 컬렉터가 직거래하는 아트페어가 뜨면서 화랑(갤러리)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주도권마저 내준 건 아니다. 지난해 예술경영지원센터의 발표(2016년 기준)에 따르면 화랑의 시장점유율은 41.2%로 가장 높았고, 작품 거래액도 2천158억원(54.4%)으로 미술품 시장에서의 지배력은 여전하다. 말만 잘하면 그림 한 점 얻을 수 있던 시절부터 작가와 고객을 연결한 건 예나 지금이나 화랑이다. 봉산문화거리의 터줏대감 손동환 동원화랑 대표는 지역 미술계를 어떻게 볼까?

◆어느 날 그림이 찾아왔다

봉산문화거리에는 화랑(갤러리)이 20여 곳 있다. 먹향이 가득한 이 거리에 화랑이 들어선 건 1976년이다. 표구사와 골동품점이 즐비하던 골목 귀퉁이에 맥향'이목(1976년), 송아당(1980년)이 문을 열었다. 동원화랑은 1982년 2월 개관했다. 세월이 흘러 화랑은 문을 닫기도, 주인이 바뀌기도 했고, 서울로 옮겨간 곳도 있다. 그렇게 동원화랑은 창업주가 운영하는 곳 가운데 가장 오래된 화랑이 됐다.

손 대표가 처음부터 그림을 가까이했던 건 아니었다. 미술 전문 출판사에 근무하면서 알게 된 한 화가에게서 선물 받은 그림 한 점을 세들어 살던 집 벽에 걸었다. 술 한 잔에 그림 한 번. 어느 안주도 부럽지 않은 맛에 취해 시간만 나면 그림을 그리러, 사러 봉산동을 누볐다. 액자를 맞추러 화방에 가던 중 '가게 세 놓습니다'라는 전단을 봤다. 무작정 가게를 얻었다.

"운이 좋았어요. 겸재'안견이 남긴 동양화의 고절한 멋도, 구한말 격동의 흔적도, 이중섭'박수근과 같은 근현대 미술품도 모두 볼 수 있었죠. 스펙트럼이 넓어졌다고 할까요?"

1950, 60년대는 이른바 명동 백작 시대였다. 문인과 화가가 막걸릿집에서 전쟁의 상흔을 어루만지며 이야기꽃을 피운 시절이 있었다. 그림은 공짜로 받고, 액자를 돈 주고 맞추면 그만이었다. 가난한 '환쟁이'가 거리로 나온 건 1970년대였다. 그림을 사고파는 시대가 됐다. 대부분 동양화였다. 88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서양화가 섞이기 시작했다. 단층 주택이 즐비하던 거리에는 회백색 콘크리트와 유리로 덮인 초고층 건물이 늘어섰다. 구상화 일색의 그림판에 리얼리즘이 등장하며 2000년대 중후반에는 도성욱'이정웅'김상우 등의 그림값이 치솟았다. 2014년 한국 단색화가 세계미술시장을 뒤흔들면서 구상작품은 숨을 죽였다. 한 색깔로 반복한 작업은 김환기'이우환 붐을 일으켰고, 이강소의 미니멀리즘이 더해져 한국미술은 세계로 뻗어나갔다. 단색화 돌풍은 하종현'정상화'박서보 등을 거쳐 후기 단색화에 대한 기대를 드높였다. 지역 출신의 이배'남춘모'권오봉'차계남 등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화랑과 작가, 오묘한 사슬

화랑은 작가를 발굴하고 작품을 팔아서 먹고산다. 그래서 작가를 고를 땐 신중하다. 그는 예술가의 심성과 그 역경을 이길 근성, 도전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화랑과 작가가 얼마나 오래갈지도 여기에 달렸다. '그림'에 대한 안목보다는 '화가'에 대한 안목을 믿는다는 그의 말이 이해가 된다.

어느새 서리가 머리를 뒤덮었다. 더 크고, 유명한 화랑으로 가려는 작가들이 생겨났다. 이원희'도성욱'김성호'이정웅 등이 서울로 갔다. 가나아트센터, 갤러리현대 등 서울 메이저 갤러리가 막대한 자본으로 전속작가를 확보할 때에도 그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웃었다. 아깝다고 발목을 잡으면 작가의 성장도 멈춘다. 같이 잘 되려면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300만원 주고 산 그림이 3천만원이 되면 쟁여뒀던 걸 비싸게 팔 수도 있잖아요."

그동안 기획전시만 350여 회 열었으니 이름깨나 날리는 작가치고 그를 거치지 않은 이는 손에 꼽을 정도다. 작가의 성향, 작품에 숨은 뜻을 잘 알기에 작가에 대한 애정도 깊다.

'숯의 화가' 이배는 물감 살 돈이 없던 유학생 시절 값싼 숯의 동양적'원초적 매력에 주목했고, 그의 오브제는 그렇게 완성됐다. 남춘모의 비밀은 그의 고향인 경북 영양 고추밭에 있다. 농사가 한창인 산비탈 이랑에서 모티브를 따 선으로 형상화했다. 김창태는 수묵화 느낌의 달밤 강가로 손 대표의 마음을 두드렸다. 눈 내리는 밤을 포근하게 표현한 김종언의 그림에는 화가의 인고가 숨어 있다.

그에게는 작품이 만들어진 과정도 작품이다. 그래서 대작 논란으로 미술계를 달군 가수 조영남을 보는 시선에는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조영남의 그림은 팝아트이고, 그림을 잘 그릴 필요가 없어요. 개념미술의 작업방식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아쉽죠."

화랑과 작가가 꼭 돈으로만 엮인 관계는 아니다. 그는 화랑을 열 때부터 지금까지 그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간다. 동트기 전 골목 안 막걸릿집에 넘치는 흥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내가 있다면 손 대표일 확률이 높다. 수십 년 기울인 술잔과 함께 지새운 밤의 대가로 작가를 얻었다. 섞이지 않던 구상과 추상 작가들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것도, 중견작가의 수작 틈에서 신진작가의 작품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오랜 시간 쌓은 신뢰가 있어서다.

◆어떤 작품을 사야 할까

"서로 다른 작가의 그림 10점을 사세요. 그중 한 점이 나머지를 커버하고도 남을 테니까요."

미술품이 자산가의 안정적 투자처라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그림으로 재테크를 하려는 사람도 늘고 있다. 아무리 싼 그림이라도 수십∼수백만원이다. 애호가라도 쉽게 사들일 수 없다. 첫발을 어떻게 내딛는지가 중요하다. 손 대표는 '이 그림 사면 돈이 될까요?'라는 질문을 하기 전에 좋아하는 그림을 찾아 즐겨보길 권한다. 취향에 맞는 그림을 찾아 10명 정도 화가를 선택하고 기다리면 된다. 젊은 작가라면 더 좋다. 인기있는 작가는 소액으로 투자하기도 어렵고, 시류를 좇은 작품은 유행이 지나면 알 수 없는 운명이다. 사는 것마다 돈이 될 거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결국 10명 중 한두 명만 뜨면 남는 장사다.

미술품이 돈이 되는 세상이지만 작가에게는 자식 같은 존재다. 그는 "화가는 돈을 생각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지만, 컬렉터는 되팔 생각을 하니 미술시장에 한계가 생긴다"고 했다. 예술품에서 돈의 향기가 나야 바깥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현실이 한편으로는 씁쓸하다는 것.

고객은 화랑을 지탱하는 또 다른 힘이다. 미술품 거래 플랫폼이 화랑에서 경매, 아트페어로 무게중심을 옮기면서 고객을 대하기 어려워졌다. 정보에 밝은 고객은 스스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의 고객은 십수 년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다. 취향도, 기준도 뚜렷하기에 작품을 소개하기도 수월하다. 아무리 궁금해도 고객이 작가를 만날 수 있는 건 대부분 작품 소장 의사를 밝힌 뒤다. 손 대표는 "사소한 트집에 작가는 상처받고, 꼿꼿한 예술가에 고객이 실망할까 봐 서로 쉽게 소개할 수 없다"고 했다. 갤러리를 찾는 손님이 너무도 반갑지만 다가가지 않는다. 친절하게 대하고 열심히 설명하는 순간 부담을 느낀 고객은 등을 돌린다.

"좋은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건 누군가가 그림을 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예술을 돈으로 매길 수는 없다고 해도 그도 남기는 게 있어야 한다. 사정이 딱해 그림값을 깎아주고, 술김에 그림을 내어주고 나면 남는 게 없다. 갤러리는 입장료·관람료를 받지 않는다. 팸플릿을 제작하고 홍보하는 데 드는 비용은 대야 할 것 아닌가. 그래서 누군가 그림을 사가는 건 좋은 일이다. 화가는 작업할 수 있고, 화랑은 그림을 내걸 수 있으니.

미술시장에서 대구는 다른 도시보다 작가 군이 두텁다. 30여 개 되는 화랑이 다른 색을 가진 작가를 발굴해 함께 성장했다. 한국에서 10여 개 화랑이 출품하는 홍콩 바젤아트페어에도 리안'우손갤러리가 참여한다. 지역 출신 작가들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

올해 그가 가장 공들인 전시는 대구에서 공부하고 프랑스에서 활동한 권순철'이배'곽수영의 작품으로 꾸린 '세한삼우전'(가칭)이다. 생계형 화랑을 운영하면서 '미래먹거리'를 꾸준히 찾는 것도 그의 몫이다. 대학 졸업전시회를 찾아다니며 발굴한 이응견'변지현 등과 '광주요''딤채' 컬래버레이션 작업으로 이름을 알린 김지아나도 주목하고 있다.

"그간 쌓아온 안목과 신용으로 작가를 밀어올리는 사다리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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