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말린 남미여행] 춤과 비키니가 어색하지 않는 나라들

입력 2018-01-25 00:05:00

영혼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악마의 목구멍'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푸에르토 이구아수 폭포들.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푸에르토 이구아수 폭포들.
비키니를 입고 디아블로로 가는 길. 비가 꽤 세게 내리고 있었다.
비키니를 입고 디아블로로 가는 길. 비가 꽤 세게 내리고 있었다.

야외 라이브 브라질 가게

오후 4시에 벌써 춤'노래

함께 어울려 엉덩이 흔들

디아블로가 내뿜는 물안개

비키니 입고 온몸으로 맞아

악어'거북이'너구리도 구경

세상 모든 것들에 반응하던 열여섯 어느 날, 남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유럽 같은 분위기에 강렬한 원색 색채가 묘하게 어우러져 있는 매력적인 장소, 이것이 남미에 대한 첫 이미지였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장면 하나하나가 머릿속 깊숙이 각인되었고 남미 대륙을 언젠가 꼭 가보겠다는 열망이 생겼다.

10년이 지난 스물여섯 1월 2일, 드디어 브라질 상파울루 공항에 첫발을 디뎠다. 두 달간의 여행메이트는 대학 동기인 예림이다. 전공은 다르지만 우연히 같은 수업을 듣다 친해졌다. "겨울방학 때 뭐하냐"는 예림이의 물음에 "남미에 가볼까 해"라고 대답했다. 예림이도 갑자기 "나도 남미에 같이 가요 언니!"라며 진심 가득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우리는 알고 지낸 지 한 달 반 만에 인천-상파울루 왕복 비행기 표를 사버렸고, 예림이는 잘 알지도 못하는 나와의 배낭여행에 뛰어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최고의 남미여행 파트너였다. 엄마는 "여자 애들 둘이 위험한 곳에 왜 그런 고생을 하러 가느냐"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셨다. 하지만 우려 섞인 엄마의 눈빛을 잠시 접어두고 결국 우린 떠났다.

◆우여곡절 끝에 찾은 브라질 숙소

인천에서 출발한 지 30시간 만에 브라질 상파울루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시내 중심가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처음 공항을 떠나는 길이라 잔뜩 긴장해서 시내버스에 올랐다. 큰 짐들과 사람들이 터질 듯이 많은 만원 버스였다. 설상가상 예림이는 겨울옷을 입고 있었고, 우린 숙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지쳐가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 계시던 아주머니가 따뜻한 미소로 무거운 우리 배낭을 챙겨주셨다. 그녀의 작은 친절에 두려움과 피곤함이 녹아내렸다. 숙소는 상파울루의 중심가인 '안항가바우 역' 근처였다. 예약해 놓은 숙소를 인터넷 없이 찾는 게 너무 어려웠다. 미친 소리 같겠지만 우린 남미여행 내내 데이터를 구매해서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종이 지도와 와이파이에만 의존하면서 다녔다. 우여곡절 끝에 숙소를 찾았고, 가족들에게는 생사만 알린 뒤 밖으로 나왔다.

시내에 빽빽이 들어선 건물들은 하나같이 엄청나게 컸다. 그 못지않게 도로도 넓어서 거대한 세상에 작은 우리만 똑 떨어져 있는 기분이었다. 상파울루는 예수회 수도사가 전도를 목적으로 촌락을 세운 것이 도시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그 후 커피 산업과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경제 개발로 세계 각국에 이주자들이 몰려와 대도시로 발전했다. 1천200만 명의 인구가 사는 남미 최대의 도시이니 내가 느끼는 규모감은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남미여행에 첫발을 디딘 '과룰류스 국제공항'과 '찌에떼 국내/국외 버스터미널' 역시 남미 최대의 규모로, 이곳은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남미를 모두 품고 있는 도시에서의 시작인 것 같아, 왠지 감회가 새로웠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리듬

다음 날 가게 될 '이구아수 폭포' 표를 구매하고 길도 익히기 위해 찌에떼 버스터미널로 갔다. 5개국 1천10개 도시 노선이 있는 이 터미널은 매표소만 135개가 된다고 한다. 넓기도 넓었지만 사람이 정말 많았다. 우리나라도 차를 타고 다른 나라로 갈 수 있게 된다면 참 좋을 텐데…. 외국여행을 하면 이런 부분들이 참 부럽다.

버스표를 구매하고 중심가인 '쎄' 역으로 와서는 계속 걸어다녔다. 신전처럼 층고가 높은 백화점들과 광장, 공원 등을 구경하고 '사오 벤토'로 넘어갔다. 미술관과 박물관, 예술 관련 상점이 많아서 다리 아픈 줄 모르고 돌아다녔다.

대부분 건물에는 크고 작은 그라피티가 그려져 있거나 포스터가 붙어 있어서 도심엔 생동감이 넘쳐흘렀다. 큰 건물에 있는 대형 그라피티는 아무래도 누군가의 허가를 받고 해야 했을 텐데, 이를 허용해준 시민들의 열린 의식이 도시를 더욱 포용력 있고 자유분방한 이미지로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도시 인구의 6분의 1이 이민자라서 더 쉽게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해가 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오후 4시부터는 숙소 방향으로 추정되는 길로 걸어갔다. 야외에 테이블을 놓고 라이브 공연을 하는 음식점 겸 술집을 발견했다. 해도 지기 전에 야외 라이브 공연을 하는 음식점이라니! 맥주 딱 한 잔만 마시고 들어가자며 자리를 잡았다. 이미 이곳 분위기는 무르익어 열댓 명이 함께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었다. 맥주가 한두 모금 들어가니 내적 흥이 살금살금 올라왔다. 예림이와 나도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알지도 못하는 노래를 흥겹게 따라 부르고 흑인 언니들 특유의 발을 빨리 굴리며 엉덩이를 흔드는 춤을 배웠다. 땀이 흐르는 것도 모른 채 신나게 춤을 췄다. 꽤 시간이 지난 후 아쉬운 작별인사와 함께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숙소로 뛰어갔다. 남미여행에 대한 무서운 이미지가 많이 사라지면서 그들 특유의 친근함과 여유를 느꼈던 여행의 첫 번째 밤이 지나고 있었다.

◆밤샘 버스를 타고 간 이구아수 폭포

다음 날 이구아수 폭포로 가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15시간 동안의 버스 여행이 기대되었다. 난 이동수단 안에서 멈춰 있는 듯한 시간이 참 좋다. 이구아수 폭포는 '포츠 두 이구아수'와 '푸에르토 이구아수'로 나뉘어 있다. 포츠 두 이구아수는 브라질 국경에 위치해 있고 멀리서 전체적으로 폭포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푸에르토 이구아수는 아르헨티나 국경에 있고 디아블로라는 거대한 폭포를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낮에 출발한 버스는 다음 날 해 뜨기 직전에 포츠 두 이구아수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원래 푸에르토 이구아수가 목적지였지만 차표가 매진되어 불가피하게 포츠 두 이구아수 터미널에서 경유하기로 했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예상 밖으로 푸에르토 이구아수행 버스는 터미널이 아닌 시내버스를 이용해서 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푸에르토 이구아수로 넘어가면서 일행은 여권검사를 받았다. 시내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다니…. 재밌는 동네다.

우린 도착하자마자 폭포로 바로 갈 생각이었지만 시간이 애매해 숙소에서 하루 자고 다음 날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숙소는 '페팃 호스텔'로 아기자기한 실내장식이 돋보이는 곳이었다. 살구 빛이 도는 핑크색 벽과 들보에 걸려 있는 해먹들이 그곳의 사랑스러움을 더해 주었다. 숙박료는 저렴한 편이였고 스태프가 굉장히 친절했다. 루까스라는 스태프는 수줍음이 많은 수다쟁이였다. 그가 만들어준 쿰쿰한 피자 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호스텔에서 만난 친구를 통해 돈가스처럼 생긴 '밀라네사'라는 음식도 맛있게 먹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파라과이 국경과 접해있는 강과 동네 구경도 했다.

버스터미널이 걸어서 10분 거리라 다음 날은 여유롭게 나왔다. 푸에르토 이구아수 왕복 버스비는 100페소(약 8천원)였다. 좀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2년이 지난 지금은 150페소로 올랐다고 한다. 꽤 오래 달려 이구아수 폭포에 도착했다. 폭포 입장 티켓은 260페소였는데 이것 역시 현재는 500페소로 값이 올랐다. 1년에 2번씩 요금이 오른다는데 이렇게 많이 올랐을 줄이야. 남미여행을 계획한다면 최대한 빨리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입구를 지나면 잘 정돈된 산책로가 나온다. 관광 루트는 크게 하이 트레일, 로우 트레일, 디아블로 이렇게 세 가지로 나뉜다. 꼬마 기차를 타면 원하는 장소로 이동할 수 있다. 보통 다른 곳을 모두 관람한 후 마지막으로 이구아수 폭포의 백미인 디아블로를 관람한다. 가는 내내 다양한 모습의 폭포가 보이는데 현실 감각이 없어질 만큼 신비롭고 아름답다. 악어, 거북이, 너구리과의 코아티 등 다양한 동물들도 구경할 수 있다. 무리 지어 다니는 코아티는 야생의 습성이 그대로 남아 있어 음식을 주면 공격적으로 달려드니 조심해야 한다. 사실 나도 한 번 당했다.

◆비키니를 꼭 챙겨가길

드디어 디아블로에 도착했고 그 어마어마한 광경을 보자마자 숨이 턱 막혔다. 악마의 목구멍이란 이름처럼 쳐다보고만 있어도 영혼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무리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어도 거대한 폭포의 수압과 규모를 담아낼 수가 없었다.

물이 떨어지는 세기 때문에 생기는 물안개로 옷이 홀딱 젖을 것 같았다. 예림이가 비키니를 입고 다시 디아블로로 가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기막힌 제안을 했다. 겉옷이 젖지 않도록 잘 감싼 후 속에 입고 있던 비키니만 입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갔다. 마침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비와 물안개를 온몸으로 맞으며 디아블로를 바라보았다. 내 몸과 이구아수 폭포가 하나가 되는 느낌이었다. 자유롭고 시원하고 짜릿했다! 그때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비키니를 입은 서양인들은 간간이 보였는데 동양인은 우리뿐이었다. 같이 사진을 찍자는 사람도 있었고 우릴 향해 원숭이 흉내를 내며 조롱하는 몸짓을 하는 외국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황홀했던 그 순간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완벽한 행복감에 젖어 있었다. 한참 동안 그곳에서 발을 뗄 수 없었다.

hmalove1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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