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영웅이 필요한 시대

입력 2018-01-25 00:05:00 수정 2018-10-12 17:19:56

김수용 사회부장
김수용 사회부장

지난해 12월 21일 발생한 제천 '노블 휘트니스 앤 스파' 화재 사고로 29명이 숨지고 40명이 다쳤다. 경찰은 건물주와 건물관리인 등을 구속하고 출동한 소방관 6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충북소방본부와 제천소방서 상황실 등을 압수 수색했고, 제천소방서장 등 현장 지휘관들을 불러 참사 책임을 물을지 조사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소방공무원 처벌 문제를 놓고 찬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누리꾼들은 경찰 수사와 관련해 소방관들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초기 대응 부실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며 공방을 벌이고 있다.

유가족대책위원회는 지휘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대책위 측은 "소방합동조사단 조사와 경찰 수사 결과에 따라 책임이 밝혀진 자들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합동조사단 조사 결과에 은폐나 고의 누락의 정황이 있다면 조사단장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국민 안전 지키려면 제천소방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는 청원 글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화재 당시 건물 2층에 사람이 많이 있었지만, 소방 당국은 유리창을 깨지 않고 골든 타임을 놓쳤다. 철저하게 진상을 파악하고 관련자는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2일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부실한 초기 대응에 대한 책임을 물어 제천 소방관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의 청원 글 13건이 잇따라 올라왔다.

이와는 반대로 소방관 처벌을 반대하는 내용의 청원 글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7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제천 화재 관련 소방공무원 사법처리 반대' 글이 올라왔다. 23일까지 3만4천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사고 직후 소방관 잘못을 질타하는 유가족의 주장을 담은 기사에 오히려 소방관들을 응원하는 댓글이 잇따라 달리기도 했다.

앞서 수많은 재난과 사고 이후에도 책임자 처벌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고, 진상 조사가 부실했을 때 국민들은 분노했으며, 이후 비록 납득하지 못할 수준이었다고 해도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공무원에 대한 처벌 반대를 외치는 일은 지금까지 거의 없던 현상이다. 앞서 사법처리 반대 글을 올린 청원자는 "완벽하지 않은 현장 대응의 책임을 물어 처벌하는 선례는 소방공무원들에게 재직 기간에 한 번이라도 대응에 실패하면 사법처리될 수 있다는 작두 날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현상의 이유에 대해 여러 분석이 있겠지만 필자는 '우리 시대의 작은 영웅'을 말하고 싶다. 국민들의 뇌리에 각인된 소방관 이미지는 '온갖 악조건 속에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위험에 뛰어드는 고마운 이들'이다. 화마를 뚫고 누군가를 업고 안고 뛰쳐나오는 모습을 떠올린다. 재투성이 얼굴을 씻지도 못한 채 길바닥에 쓰러져 쪽잠을 자는 모습을 보며 가슴 뭉클하기도 했다. 철밥통, 복지부동이라고 공무원들을 싸잡아 비난하면서도 소방공무원은 예외였다.

그렇다고 해도 이처럼 인명 피해가 큰 사고에서 소방공무원들의 초기 대응을 둘러싼 문제들이 하나둘 제기되는 와중에 이들을 지키자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쩌면 우리는 영웅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세월호 참사를 보며, 국정 농단 사태를 보며 과연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몰라 한숨만 쉬던 국민들에게 제 목숨마저 던져가며 생면부지의 누군가를 구하는 소방관들의 모습은 진정 마지막까지 지키고픈 고귀한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거창하게 영웅이랄 것도 없다. 그저 마지막 순간까지도 믿을 수 있는 누군가가 남아주기를 바란 것이다. 물론 잘못이 있다면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책임 추궁과 처벌은 구조적 문제 해결을 전제로 이뤄져야 한다. 우리 시대 소방관들이 일그러진 영웅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 아이들에게 희생이 보답받고, 작은 영웅들이 탄생하는 시대를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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