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드라마 '도깨비'에 나오는 대사다. 가슴 시린 이 말을 인공지능 컴퓨터에게 입력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 아무 반응이 없거나 아니면 무한 루프(컴퓨터프로그램이 결과 값을 얻지 못하고 끊임없이 반복 실행하는 상태)에 빠져 오작동을 일으킬 것이다. 날이 좋은 게 좋은 건지 좋지 않은 게 좋은 건지 결론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가끔 들었던 "얘야 지는 게 이기는 거란다"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컴퓨터는 '이김'과 '짐' 사이를 무한 반복하며 오가다 결국 먹통이 되고 말 것이다. 이게 컴퓨터다. 0과 1로 이루어진, 켜지거나 꺼지거나 아니면 이기거나 지거나 둘 중 하나밖에 모르는 존재다.
이처럼 태생적 한계로 인해 가끔은 참 단순할 수밖에 없는 이 기계가 요즘 인공지능, AI(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의 핫 이슈가 되었다. 물론 그 결정적 계기는 '알파고'였다. 어디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겉으로 봐선 도무지 형태조차 알 수 없는 이 새로운 기계의 등장에 사람들은 큰 관심을 보였다. 그건 적어도 그때까지는 안전해 보이던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이기도 했다. 인터넷과 언론 등은 전에 없던 이 기계를 주저 없이 '그녀' 또는 '그'라고 지칭했다. 정작 기계를 만든 당사자들은 이런 표현을 꽤나 어색해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알파고'는 그렇게 간단히 기계의 신분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격을 얻었다.
그리고 이어진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국은 '인류와 AI, 두 종족 대표 간의 격돌'이라는 어마어마한 의미가 덧붙여졌다. 알다시피 결과는 다수의 예상이나 기대와 달리 '알파고'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이때부터였던 듯하다. 조만간 닥쳐올 인공지능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의 연구진이 "우리에게 '알파고'는 매우 단순한 프로그램일 뿐, 진정한 의미의 인공지능은 아직 시작도 못했다"라고 했지만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지난 연말, 정부는 '2018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데이터, 네트워크, AI, 즉 DNA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제 'DNA'하면 유전자, 방탄소년단에 이어 하나를 더 생각해야 할 만큼 AI가 차지하는 사회적 비중도 더 커진 셈이다. 더불어 기술적으로도 AI는 4차 산업혁명의 중심에 있다. 여기에 모터와 관절이 붙으면 로봇이 되고 저전력 통신망(low power network) 등으로 TV나 냉장고 같은 사물과 연결되면 이른바 '초연결'(hyper-connection)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AI는 컴퓨터이고 여전히 컴퓨터는 컴퓨터일 뿐이다. 어느 날 갑자기 그 본질이 바뀌거나 한계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알파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일단 '알파고'는 이세돌과 바둑을 둔 게 아니다. 인간이 만든 알고리즘에 따라 자동으로 계산식을 만들고 자동으로 계산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렇듯 감정의 교류가 없는 바둑도 바둑이라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알파고'는 '이김'과 '짐' 딱 두 개밖에 모른다. '몇 집 차이' 따위에 대한 의미와 개념이 아예 없다. 원래 계산은 사람보다 컴퓨터가 더 잘한다. 컴퓨터는 실수하지 않는다. 다만 버그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실수는 페니실린을 만들었지만 컴퓨터의 버그는 어떤 가치도 만들지 못할뿐더러 인간의 도움이 없으면 '알파고'는 그 쉬운 오목도 두지 못한다.
'너와 함께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를 모르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너무 겁먹지는 말자. 곧 AI가 우리를 밀어내고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할 거라 앞당겨 걱정하지도 말자. 기계는 더 기계다운 일을 하고 인간은 더 인간다운 일을 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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