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재의 대구음악遺事<유사>♪] "땡∼"…노래자랑 출연자 "좀 더 부를란다" 방송사고

입력 2018-01-19 00:05:00

KBS방송의 '전국노래자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 NHK방송에서도 일요일 KBS와 같은 시간에 전국노래자랑을 하고 시청자 역시 환호작약. 노래자랑에 열광하는 두 나라의 닮은꼴이 재미있지만 진행 방법은 전혀 다르다. 우리 방송은 불합격이 거의 없다. 노래를 못 불러도 노인이거나 장애자면 무조건 합격이다. 심지어 '땡' 하면 다시 부르게 해서 합격시켜 주기도 해 장난이 심하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노래 대결보다 재미에 주력하는가 보다. 일본에서는 박자나 음정이 조금만 틀리면 땡하고 바로 쫓겨난다. 100세 노인이나 심한 장애자라도 노래 못 부르면 불합격이다. 합격 차임 벨이 울리면 감격한 출연자들은 펄펄 뛰며 울고 난리를 피운다. 오락인데도 너무 진지하게 한다는 느낌을 준다.

KBS 대구방송국이 태평로 공회당에 있던 시절까지만 해도 대구서도 노래자랑 방송을 따로 했었다. 안 그래도 가무음곡에 열광하는 민족인 데다 삶이 팍팍하던 시절이니 프로그램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시그널 곡은 '대지의 항구'인데 이 노래의 일절과 이절 사이 간주곡을 사용했다. 라디오에서 '빰빰빠 빠바바 빰빰빠' 하는 우렁찬 트럼펫 소리가 들리면 대구 시내가 조용해진다. 요즘 월드컵 축구 분위기와 같았다.

노래자랑의 녹음은 공회당에 있던 KG홀에서 했다. 공회당은 전쟁 통에 제구실을 못하고 '걸뱅이 극장'이라고 불리던 '육군 중앙극장'이 들어서서 겨우 유령 건물의 형태를 벗어나고 있다가 방송국이 들어서면서 명실 공히 공회당 구실을 하는 정도였다. 요즘에는 방송국 악단들이 출연자들의 노래를 사전에 편곡해서 어떤 노래라도 다 반주를 해준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방송국 악단은 단원도 몇 되지 않고 악기도 별로 없었으며 반주 능력도 모자랐다. 그들이 아는 노래는 반주를 하고 모르는 곡은 출연자 혼자 먼저 노래하라고 하고 박자만 맞추어 뒤를 따라가기도 했다. 요즘 같으면 뭇매를 맞을 짓이지만 그때는 그랬다. 자주 불리던 노래는 '효녀 심청' '사도세자' '나그네 설움' '선창' '물새 우는 강 언덕' 등이었는데 모던 보이들은 '삐빠빠 룰라' '유아 마이 선샤인' '다이아나' 등의 서양 노래를 자주 불렀다-미국 사람들은 자기네들 노래와 많이 닮은 노래가 한국에도 있다고 생각했겠지.

KG홀에서 노래자랑 녹음 겸 공개방송이 있던 어느 날 방송사고가 터졌다. 출연자는 사회자에게 남백송의 '방앗간 처녀'를 부르겠다고 했다. 반주가 시작되고 이어 '거울 같은 시냇물 새들이 노래하는…'으로 노래가 나와야 하는데 묵묵부답이다. 밴드 마스터가 땡 하고 불합격의 '종'을 울렸다. 그제야 출연자는 '거울 같은 시냇물'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아나운서는 정중하게 노래가 늦었으니 다음 기회에 또 보자며 퇴장을 권했다. 그러나 그 출연자는 막무가내. '새들이 노래하는'으로 그 노래를 이어가고 있었다. 참다못한 아나운서가 "야 내려가!"라고 하자 그 출연자가 "와. 좀 더 부르고 갈란다"라고 대답, 언쟁이 발생하고 말았다. 노래자랑보다 그들의 만담 같은 말싸움이 더 재미있었지만 그 바람에 그 주의 노래자랑은 취소되고 말았다. 어느 해 만우절 날 기독교 방송의 이교석 아나운서가 선착순으로 방송국에 오면 라디오를 준다고 농담 방송을 했다가 많은 시민들이 방송국에 모여 난리를 피웠던 일이 있었다. 그 '만우절 사고'와 이날의 '좀 더 부르자 사건'은 대구 방송 역사에 길이 남을 에피소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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