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독일 회사 체험기

입력 2018-01-16 00:05:00 수정 2018-10-10 14:52:35

독일 담슈타트대학교 졸업. 독일 담슈타트대학교 석사. 독일 칼스루에(Karlsruhe)교육대학교 박사. 연구분야: 교육철학, 다문화교육, 비판적 교육이론
독일 담슈타트대학교 졸업. 독일 담슈타트대학교 석사. 독일 칼스루에(Karlsruhe)교육대학교 박사. 연구분야: 교육철학, 다문화교육, 비판적 교육이론

상사보다 늦게 출근하는 비서

직원 간 수평적 유연한 분위기

추가 근로는 휴가로 대체 사용

우리도 일·삶 균형있는 문화를

야심 차게 시작했던 새해가 어느새 보름이 훌쩍 지났다. 처리해야 할 학교 일은 계속해서 쏟아지고 잡무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이렇다 할 학문적 진척은 없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읽지도 않는 책만 주문하고 책들은 코딱지만한 방안에 어지럽게 쌓여가고 있다. 한편으론 방학이 오기를, 그래서 좀 진득이 앉아 논문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라 마지 않지만, 여러 가지 핑계를 찾아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지난 학기 마무리하기도 바빴는데, 다음 학기에 해야 할 일과 소소한 일정이 잡혀 있다. 혹자는 방학이 있고 출퇴근이 자유로운 필자를 부러워할 수 있지만 말이다.

새해 첫 주 독일 거리는 시내 중심가를 제외하고(크리스마스에 받은 선물을 교환하거나 겨울 세일 시즌으로) 매우 조용한 편이다. 관공서는 업무를 하지 않고, 독일 사람들은 가족들과 집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온갖 화려하고 세련된 세상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동안 공허함을 느낄 수 있는데, 독일 사람들은 근무 시간 외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필자는 독일 유학 시절 두 달 동안 어느 회사의 비서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때 인상 깊었던 점은, 야근은 많지 않고 대부분 독일 사람들은 8시간 근무를 하고 자기 출근시간에 맞춰 퇴근도 조절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회사 직속 상사보다 비서(필자는 회사 직원들의 출장 스케줄 작성 및 준비 등과 같은 단순 업무를 담당했고 필자 말고 다른 비서가 한 명 더 있었다)가 늦게 출근하는 경우도 많았다. 또한 주말 근무는 극히 드문 일이다. 물론 독일 사람들은 유럽에서 약속 시간을 정확히 지키고 책임감 있는 완벽주의자로 알려져 있듯이, 필자는 거리에서 비즈니스 서류 가방을 들고 피로한 모습으로 늦게 퇴근하는 독일 사람들도 종종 봤다. 그렇지만 독일에서 대부분 8시간 이상 근무하는 시간은 추가 근로 시간으로 쌓이게 되고 휴가로 대체해서 사용할 수 있다. 독일은 사생활을 중요시하는 나라로서 1년에 30일 휴가는 개인의 생활패턴과 선호도에 따라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다. 30일을 한 번에 보낼 수도 있고, 휴가 기간을 1년에 나누어서 즐기지만 해고 걱정은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 기억에 남는 또 다른 하나는, 비서와 상사, 직원들 간의 관계가 수평적이고 회사 분위기가 유연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아침을 거르고 출근한 한 비서는 아침식사로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일을 하기 시작하였고, 상사가 먼저 와서 그 비서에게 인사를 하며, 그때 그 비서는 앉아서 상사에게 아침인사와 더불어 업무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 깊었다. 앉아서 웃으면서 밝게 대답하는 비서에 거리낌 없이 대하는 상사의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필자는 한국에서 짧은 사회생활(경제활동) 동안 관리할 인기도, 유지할 인맥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참석하지 않을 만큼 대범하지 못해 대개는 참석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 다녀온 날은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너무나 피곤할 따름이었다. 만날 때마다 오가는 판에 박힌 말, 이어지는 우울한 이야기들(그 이면에는 본인의 불안함을 상대방에게 투사시키는 것을 비롯하여), 100%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유머코드가 오가는 상황 속에서 필자는 어떻게 리액션을 해야 할지 아직까지도(!) '센스'가 발달하지 못해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덩그러니 앉아서 웃고만 있는 내 모습이 한심스럽기만 하다.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지내다 보니, '사람들'과 어울리기가 쉽지 않다. 사회적 감각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차원에서 왠지 모르게 적응할 수 없는 이른바 '상호주체적이어야만 하는' 자리가 계속되고 있다. 그런 자리에서 돌아오는 날이면 언제나 나는 반사회적인가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무술년 새해에는 우리 사회 전반에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고 수평적이고 탈권위적인 문화가 형성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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