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캄보디아 의료봉사를 준비하는 출장을 가서 겪은 일이다. 캄보디아는 1인당 국민소득이 150만원쯤 되는 극빈국이다. 대중교통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서 가까운 거리는 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륜차로 다니고 먼 거리는 택시를 불러야 하는데, 굴러다니는 게 신기할 정도로 낡은 차들이다.
30℃가 넘는 더위 속에 긴 회의를 하고 진료 예정지들을 답사하다가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불렀다. 두 시간쯤 걸리는 거리를 25달러에 흥정하고 길을 가다가 기사 아저씨가 잠시 차를 세우고 급한 일을 해결하는 참이었다. 순간 지나가던 화물차가 리어뷰 미러를 들이받고 지나간다. 갑자기 거울이 논바닥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급히 따라붙었다. 맹렬한 추격전 끝에 가해차량을 붙잡았는데, '여기서 동남아 킥복싱을 실황으로 보겠구나' 했던 기대와는 달리 두 사람이 조곤조곤 대화를 하더니 30달러를 받는 것으로 상황이 정리되었다.
오는 길에 30달러로 수리가 되는지 물었다. 40달러는 줘야 한단다. 하루 일해서 10달러를 벌기가 힘든데 홀랑 날린 셈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데 기사 아저씨 대답이 이랬다. "보다시피 나나 저 기사나 다 가난하다. 없는 처지에 다 물어주고 나면 화물차 기사도 밥 먹고 살기 힘드니 이쯤에서 그만 하는 것이 옳다."
결국 공항에서 택시비 25달러에 10달러를 얹었다. 사고가 나긴 했어도 이 정도면 손해는 안 보실 거라고 드렸더니 아저씨 입이 귀에 걸린다. 서로 땡큐를 몇 번씩 주고받다가 왔는데 여태 그 아저씨 말씀이 여운으로 남는다. 나나 저 사람이나 힘들게 사는 처지에 어떻게 다 받겠느냐는 말씀 말이다.
캄보디아 국민소득이 1천500달러를 좀 넘는 수준인 데 비해서 우리나라 국민 소득은 3만달러에 이른다. 단순히 비교해도 스무 배가 넘는 차이다. 전 세계 국가 242개 중에서 우리 경제규모가 대충 11위쯤 되니까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고 충분히 이야기할 만하다.
그런데 우리는 저 가난한 나라 캄보디아보다 스무 배쯤 사람 살기 좋은 세상을 이루고 있는 걸까. 내가 받을 것 다 받으면 저 사람은 어떻게 살겠느냐고 상대방을 헤아리는 마음을 우리는 얼마나 간직하고 있는가. 조금도 피해를 봐서는 안 되고 한 푼도 손해를 봐서는 안 되겠다는 강퍅한 마음을 우리는 칼날처럼 갈아가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게 준비했던 캄보디아 의료봉사를 마치고 이제 대구로 가는 버스 안이다. 다섯 개 진료과목 열세 명의 스태프들과 스물한 명의 의대생, 간호대생으로 구성된 봉사단원들이 캄보디아의 시골 마을을 순회하는 일정은 녹록지 않았다. 삼복더위 못지않은 날씨 속에 흙길을 달렸다. 만성 질환을 수년 간 앓으면서도 의사를 만나보지 못한 노인부터, 일자리를 찾아 이웃 나라로 떠난 부모를 그리워하며 조손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까지 다양한 이들을 만나야 했다. 병원 봉사 동아리에서 바자회로 모아주신 성금을 아껴 현지 진료소에 승합차도 한 대 기증할 수 있었다.
작지만 보람 있는 성과와 함께 귀갓길에 오른 단원들의 얼굴을 살핀다. 피로한 기색은 감출 길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나는 얼굴이다. 극한의 경쟁사회에서는 맛보기 힘들었던 내적인 충만함이 엿보인다. 긴장을 늦추면 따라 잡히지 않을까 조급해하던 경쟁의 일상으로부터 잠시 벗어난 결과가 그러하다. 큰 손해가 아니라면, 살면서 겪는 손해와 피해에 조금 덜 예민해져도 되지 않겠는가. 극빈의 사회에서도 배려와 역지사지의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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