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마법의 탄환 '606'

입력 2018-01-10 00:05:00

편의점에서도 이제 적지 않은 안전상비약을 구매할 수 있다. 정부는 국민 편의를 위해 약제 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전문가 집단에서는 부작용을 우려해 반대한다. 서로의 주장이 나름 근거가 있어 관심을 갖고 합리적으로 결정되기를 지켜보는 중이다.

편의점 판매 약품 중 매출 1위는 타이레놀이다. 동봉된 사용설명서를 보면 깨알 같은 글씨로 부작용이 쭉 나열되어 있다. 알고 나면 복용하기가 망설여진다. 의사처방전이 있어야만 복용할 수 있는 약제는 부작용이 타이레놀과 비교할 바 아니다. 항암제 사용설명서는 부작용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몇십 년 동안 암 치료법은 수술로 제거하는 방법이나 화학 요법, 방사선 치료가 다였다. 이러한 치료는 정상적인 세포까지도 공격한다.

2001년 글리벡이 소개되면서 일대 전환점이 일어났다. 글리벡은 암의 원인 물질을 겨냥하고 오작동을 바로잡기 위해 분자적으로 '설계된 약'이기 때문에 건강한 정상 세포는 얌전히 남아 있게 된다. 부작용 걱정을 덜고 만성골수성백혈병 등 불치병 환자들에게 놀라움과 희망을 선사했다. 글리벡처럼 분자 단위에서 치료약을 개발하는 방식은 새로운 패러다임이었다. 글리벡 이후 전 세계의 제약 연구실에서는 타깃을 향해 돌격하는 분자 단위의 '마법의 탄환'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법의 탄환' 이론과 이름은 살발산을 개발한 독일의 의학자 파울 에를리히(1854~1915년)로부터 빌려온 것이다. 그는 디프테리아에 대한 항독소는 디프테리아에만 효과가 있을 뿐 다른 질병에는 전혀 효과가 없다는 것에 착안하여 새로운 이론을 창안했다. 특정 세균에만 반응하는 치료제를 사용하면 질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론을 세우고, 이것을 '마법의 탄환'(Magic Bullet)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그 당시 사회적 문제였던 매독 치료에 뛰어들었다. 비소를 함유하는 아톡실을 만든 뒤 그 분자구조를 변화시키려고 606번이나 시도한 끝에 매독균을 줄이면서도 인체에는 해가 적은 살발산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를 '606'으로 명명하였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새해 의료업계에서는 '빅데이터'와 '정밀의료'가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는 정밀의학 구현, 신약 개발 등에 천문학적인 재원을 쏟아부을 태세다. 2022년 한국인 건강수명을 현재 73세에서 76세까지 높인다는 게 정부의 목표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한국의 '에를리히'를 키우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과정보다 결과만 중시하는 환경에서는 무병장수의 꿈이 요원할 수 있다. 창조적인 발상들이 꽃을 피우지 못하고 사그라지지 않도록 606번까지는 아니어도 마음껏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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