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침산·고성동 '근대산업유산' 사업 추진]섬유도시 영광 시작점…새로운 역사를 입힌다

입력 2018-01-09 00:05:00

쌍용그룹 모태 금성방직 보존…낡은 공장·창고 관광자원화

대구 북구 고성동의 한 근대 공장 건물 옥상을 카페로 리모델링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침산·고성동 일대에는 근대적인 모습이 남아 있는 공장
대구 북구 고성동의 한 근대 공장 건물 옥상을 카페로 리모델링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침산·고성동 일대에는 근대적인 모습이 남아 있는 공장'주택'상가 등 건축물 270곳이 있어 이를 활용한 관광산업 육성프로젝트가 추진될 전망이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대구 북구 침산동에 있는 근대 공장 건물. 1960, 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공장 건물은 바로 뒤편 새로 들어선 고층 아파트 단지와 묘한 이질감을 드러내고 있다. 성일권 기자
대구 북구 침산동에 있는 근대 공장 건물. 1960, 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공장 건물은 바로 뒤편 새로 들어선 고층 아파트 단지와 묘한 이질감을 드러내고 있다. 성일권 기자

대구 북구는 한때 산업의 중심지였다. 특히 침산동'고성동 일대는 1939년부터 경부선 북부지역에 조성된 '1공단'과 6'25전쟁 이후 확장된 '2공단'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초기 산업 발달의 산파 역할을 했다. 일제강점기 대구 최초의 공단지역으로 지정된 곳도 이 일대이지만 산업구조의 변화 속에 쇠락한 구도심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던 중 2000년대 초반부터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문화예술시설, 편의시설 등이 들어서며 상전벽해를 이뤘다. 그러나 여전히 이곳엔 묘한 이질감이 남아 있다. 높이 솟은 고층 아파트 단지와 낡은 공장 등을 맞대고 있어서다. 오랫동안 그늘졌던 이곳이 새로운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북구청은 수십 년 전 들어선 공장과 창고 등을 '근대산업유산'으로 관광자원화할 계획을 추진 중이다. 낡고 칙칙했던 옛 공단의 흔적이 새로운 역사와 문화가 흐르는 공간으로 거듭날 기회를 맞은 셈이다.

◆'섬유도시' 대구의 출발점

해방 직후 한국 섬유업체의 24.2% (149곳)는 경북(대구 포함)에 자리를 잡았다. 특히 절반이 넘는 95개 업체는 대구에 밀집했다. 대구 공업에서 섬유가 차지한 비중도 33%에 이르렀다. 대구가 섬유도시로 발전한 이유다.

1948년 9월 27일 설립된 금성방직은 당시 지역의 대표적 섬유 기업 중 하나였다. 한때 재계 순위 10위권까지 성장했던 쌍용그룹의 모태가 됐다. 창업주 김성곤 회장은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 경북지부 재정부장으로 일할 때 사업 기회를 잡았다. 해방 직후 일본 동경방직 방적기 2천 추를 불하받으며 침산'칠성동 일대에 금성방직을 설립했다.

대구역과도 가깝고 인구가 밀집해 공장에서 일할 사람을 찾기가 쉬웠고, 판매나 물류도 편리했다. 섬유산업은 그가 1962년 쌍용양회를 설립해 시멘트 재벌로 도약하는 데 결정적 발판이 됐다. 김성곤 회장 스스로도 1967년 금성방직을 매각할 때 "딸 자식을 시집보내는 것 같다"고 할 정도로 애착이 컸다.

침산동 아파트 숲 사이에서 금성방직 공장 건물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1천900㎡ 규모의 8개 공장 건물은 현재 칸칸이 나뉘어 목공, 금형 등 각기 다른 유형의 영세 제조업체들이 들어온 상태다. 나무 도마나 냄비받침을 만드는 목공소를 운영하는 A씨도 우수한 물류 여건을 찾아 수년 전 이곳을 찾았다. A씨는 "수익성이 높지 않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면서 "주변이 아파트 숲이라 언젠가는 이곳에도 아파트가 들어서겠거니 하는 얘기만 나온다"고 했다. 북구청은 이곳이 기업 역사의 전시공간으로 가치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옛 공장의 화려한 변신 기대

1950년대에 지어진 상당수 공장 건물들은 수명을 거의 다한 상태다. 지난 5일 찾은 칠성동 한 농자재 부품 공장. 과거 '칠성피혁'이 운영되던 이곳에는 지은 지 60년이 넘은 공장 건물 4개 동이 있다. 콘크리트 외벽은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색이 다 바랬고, 철문은 녹슬어 삐걱거렸다.

공장 맞은편에 65년째 살고 있다는 채태선(68) 씨는 "예전에는 소가죽을 가공하는 큰 공장이었지만 1970년대 후반 문을 닫았다"면서 "이후 가내수공업 공장이 들어오긴 했지만 지금까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고 했다.

옛 상가나 주택 밀집 지역들의 시간도 과거에 멈춰 있다. 옥산초등학교와 시민운동장 주변에는 옛 주택 40여 채가 모여 있었다. 슬레이트 지붕 아래에는 나무판자가 덧대 있고 담벼락은 깊게 금이 가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오래된 상가 건물 위에는 방수포가 깔렸고 타이어 10여 개를 얹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막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골목이지만 변화의 바람도 감지된다. 옛 정취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개성을 불어넣으려는 시도다. 박용산(32) 씨는 고성동 한 공장 건물에 카페 개업을 앞두고 있다. 1970년대에 지어진 철강 공장의 옛 골격은 그대로 둔 채 현대식 인테리어로 꾸미는 중이다. 박 씨는 "세월의 때가 묻어나는 옛 공간에서 새 트렌드를 즐기는 카페를 구상했는데 수년 동안 상상하던 이미지가 여기에 있었다"며 "굉장히 넓지만 오래된 공장을 임차한 덕분에 임차료가 저렴하다. 테이블은 조금만 두고 각종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편안한 갤러리 같은 공간으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삼성창조캠퍼스 중심 투어 코스 가능

근대산업유산의 활용 방안은 윤곽이 잡힌 상태다. 권상구 시간과공간연구소 이사는 "공장은 설비를 다시 갖춰 기업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관, 사택 및 기숙사는 게스트하우스, 창고는 카페 및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며 "이미 옛 제일모직 터에 삼성창조캠퍼스가 중심을 잡고 있기에 이 공간들을 사람들이 걸으면서 둘러볼 수 있게 해준다면 중구 근대골목 이상의 큰 성과를 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렇게 되면 시민운동장과 삼성창조캠퍼스가 중심이 된다. 남쪽으로 칠성동 옛 대성산업 공장과 북쪽으로는 침산동 옛 금성방직 공장으로 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어서다. 대성산업 공장에서 시민운동장, 삼성창조캠퍼스를 거쳐 옛 금성방직 공장까진 2㎞가량으로 걸어서 30분이면 충분하다. 특히 시민운동장 일대는 축구전용구장을 포함한 대구복합스포츠타운으로 변신할 예정이어서 시너지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북구청은 보고 있다.

그러나 걸림돌도 적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재원 마련이다. 270여 개로 추산되는 건물을 매입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든다. 노후 주택가의 재건축 움직임에 따라 정비구역으로 지정될 수도 있다.

북구청은 우선 공모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북구청 관계자는 "1곳당 최대 5억원을 지원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근대산업관광 공모를 준비 중"이라며 "부분적인 성공이라도 거둔다면 사업 확대 기회는 훨씬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구청은 이달 중 '대구근대산업관광 아카이브 작업 및 콘텐츠 개발' 최종보고회를 연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