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창의적인 대한민국을 꿈꾸며

입력 2018-01-09 00:05:00

얼마 전 한 고등학교 앞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학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검은색 롱패딩 점퍼를 입고 걸어 나오는 게 아닌가. 엇비슷한 수준이 아니라 일견 클론(복제인간)의 출현 같았다. 중·고등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고가의 롱패딩 열풍이 일자 일부 학교에서는 위화감 조성을 이유로 '롱패딩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학생들은 따뜻하면 그만 아니냐며 반발이다. 청소년기 동조 소비 성향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청소년들은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을 타고 우리나라를 이끌어가야 하는 미래 세대라는 점에서 지금의 롱패딩 열풍이 심히 걱정스럽다.

인지심리학에서는 '복식 효과'(enclothed cognition)라는 말이 있다. 입는 옷에 따라 사람의 생각과 능력이 영향을 받는다는 이론이다. 간수복을 입으면 간수처럼, 죄수복을 입으면 죄수처럼 생각하게 된다는 실험 결과는 유명하다. 평상시 점잖은 사람도 예비군복만 입으면 다소 거칠거나 불량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무엇을 입느냐는 스스로를 표현하는 도구이자 생각을 지배하는 프레임인 것이다. 똑같은 옷을 입은 학생들에게서 과연 독창적인 생각과 창조적 행위가 나올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학생들만 탓할 일도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창의력의 중요성을 사회 전 분야에서 강조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가 과연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지니고 있는가. 엄격한 상하관계 속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들어맞는 것이 한국 사회다. 유교식 서열문화에 군대문화가 결합된 한국식 권위주의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며 주어진 틀 속에서 타협하고 순종하기를 강요한다. 우리나라가 유독 노벨상 앞에서 초라해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창의성(creativity)이란 기본적으로 남들과 다름에서 나오는 능력이다.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개체들이 자유롭게 자신을 드러내도 배척과 질타를 받지 않는 사회여야 개인의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다. 즉 창의성 제고의 원천은 '다양성'이다. 다양성 보장은 민주주의의 근간이라는 점에서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이기도 하다. 국내 거주 외국인 수가 220만 명으로 한국은 이미 다문화 사회에 있지만, 인종적 순혈주의를 강조하며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여전한 것만 보아도 한국은 다양성이 인정되는 나라와는 거리가 멀다.

다양성이 없는 나라의 미래는 어둡다. 1500년대 세계 최강대국인 중국 명(明)나라가 유럽 국가들에 역전당한 것은 막강한 중앙집권적 권력 때문이었다. 통제를 선호하는 절대적 권력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개방으로 나아가기보다 폐쇄적이고 획일성을 강요한 탓에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국가 운영 틀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의 경직된 상명하달식 체계는 한국 지방 도시만의 독특한 문화 형성을 억압했고 나라 전체를 동질화시켰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위한 정치권의 창의적인 해답 도출을 기대할 수 있을까.

세계경제포럼(WEF)의 창시자 클라우스 슈밥 회장은 '한국은 다양성과 유연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혁신과 창의성'을 들며 '작고 빠른 물고기'가 돼야 한다고 충고했다. 인류 미래와 삶을 근본적으로 뒤바꿔놓을 4차 산업혁명 앞에 서 있는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다양성은 남과 다름을 포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다가오는 2018년에는 포용과 관용의 정신이 널리 확산되고 자유와 희망이 넘치는 대한민국이 되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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