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막한 아파트에 마음까지 밝히는 최고의 입주자대표죠."
4일 오전 대구 동구 신천 청아람아파트. 이곳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인 박병대(59) 씨가 한 주민의 집 천장에서 낡은 형광등을 떼어냈다. 박 씨는 전등이 사라진 자리에 전선을 다시 연결하고 안전장치를 넣어 에너지 효율이 높은 LED 전등을 설치했다. 거실과 방, 발코니, 화장실까지 109㎡ 크기의 집 전체 전등을 LED로 교체하려면 5시간이 넘게 걸린다. 박 씨는 주말과 휴일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주민들의 집 형광등을 LED 전등으로 갈아주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그가 주말과 휴일을 반납하고 전등을 교체해준 집만 40여 가구가 넘는다.
35년 경력의 베테랑 전기기술자인 그가 따로 받는 공임은 한 푼도 없다. 모두 재능기부다. "지난해 6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에 선출되고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골랐죠." 그는 조금은 늦은 나이인 20대 중반에 전기업에 뛰어들었다. 첫 직장으로 금융회사에 다니던 박 씨는 고물상에서 고장난 라디오를 사서 고친 일을 계기로 전기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선배들의 어깨너머로 훔쳐보며 기술을 배웠죠. 젊은 시절에는 공구를 들고 전국을 여행하면서 오래된 전등이나 가전제품을 고쳐주고 밥도 얻어먹고 잠자리도 해결했다"고 웃었다.
낡은 전등을 LED 전등으로 바꿔주기로 결심한 박 씨는 아파트 복도와 엘리베이터에 공고를 붙이고 주민들의 신청을 받았다. 처음에는 오해도 받았다. 재료비만 받고 LED 전등으로 교체해준다는 얘기에 미심쩍어하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 박 씨는 "인천의 한 공장에서 국산 부품을 도매가격으로 구매하고 인건비도 일체 받지 않으니 일반 전기업체에 맡기는 비용의 10%밖에 들지 않는다"면서 "의심하는 주민들을 만나 자세히 설명하니 마음을 알아주더라"고 했다.
주민들의 반응도 뜨겁다. 집 안이 한결 밝아졌고, 전기요금도 줄일 수 있어서다. 정인숙(59) 씨는 "집 안이 밝아져서 생활하기는 더 편해졌는데 전기요금은 오히려 13%가 줄었다"면서 "환해진 집처럼 내 마음까지 밝아지는 것 같다"고 즐거워했다.
박 씨는 "아파트에서 생활하면 누가 어디에 사는지도 모를 만큼 삭막해지는데 전등을 교체해준 뒤로는 길에서 마주쳐도 살갑게 인사를 나눈다"고 뿌듯해했다. 박 씨는 올해도 재능기부를 계속 이어갈 생각이다. 그는 "전등 교체를 희망하는 집이 많아서 50가구분의 재료를 추가로 구매했다"면서 "힘닿는 데까지 계속 전등을 교체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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