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게임
인종, 젠더, 지역… 이제 문제는 '세대'다.
'부자 아빠가 가난한 아들의 밥그릇을 훔친다'는 표현처럼 세대 갈등은 최근 우리 사회에 가장 큰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오랫동안 세대론을 연구해온 전상진 서강대 교수는 이 책에서 오늘날 세대 갈등 문제를 '세대 게임'이라는 틀로 해석하며 문제 해결의 열쇠를 찾고 있다.
'세대 게임'이란 그에 참가한 사람들이 세대를 이뤄 서로 경쟁하고 다투는 활동과, 게임의 판을 짠 집단들이 (이익을 취하기 위해) 세대를 활용해 사람들의 경쟁이나 갈등을 부추기는 움직임을 말한다. 해묵은 지역 갈등이나 계층'계급 대립보다 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세대 갈등, 청년 대 기성세대의 대결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레스터 서로 교수 '세대 대결' 예측="가까운 미래에 계급 전쟁은 빈자와 부자의 대결이 아니라 젊은이와 노인의 싸움으로 다시금 정의될 것이다." MIT 경제학 교수 레스터 서로는 1996년 '뉴욕 타임스 매거진' 칼럼에서 '어떤 혁명적 계급의 탄생'을 알렸다.
그의 예견은 초고령'저출산 시대를 맞아 국제 흐름은 물론 특히 한국의 현 상황과도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2016년 19~75세 국민 3천66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사회통합 실태 및 국민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2%가 '10년 후 고령자와 젊은이 간 갈등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응답했다.
인구가 감소하면 사회적 긴장도는 높아지게 되는데 특히 정치적 긴장이 커진다. 정치는 재화의 분배를 결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계층 간, 세대 간 이해가 부딪칠 수밖에 없다. 저자는 기득권, 노인들의 정치적 성향을 '시니어 권력 모델'로 정의한다. 이들은 막강한 득표력으로 자신들의 몫(연금, 의료 혜택 등)을 챙기고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들에 유리한 정책을 수립하도록 압박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낀 젊은 층들이 조직적 반발을 시작한 것이다.
최근 언론의 보도, 학교, 직장, 가정이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면 사회 전반에서 벌어지는 세대 갈등은 위험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말이 안 통하는 꼰대' '젊은 애들은 이래서 문제'라고 서로 비난하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세대 게임'이란 틀로 사회 현상 진단=저자는 일상적, 혹은 학술적으로 혼재해 쓰이는 '세대' 개념을 알기 쉽게 정의하고, 한때 청년의 전유물이던 '세대' 개념이 변화해온 배경과 과정을 살피고 있다.
또 청년과 기성세대의 갈등을 전면에 내세우는 '세대 전쟁론'에 대해 흥미로운 분석을 펼쳐 보이며, 새롭게 대두된 세대 연구의 최신 성과들을 대입해 차근차근 정리하고 있다.
전 교수는 우리 사회 도처에 널려 있는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세대 게임'이라는 틀로 분석하고 있다. 보통 세대 게임은 게임에 참여하는 '세대 당사자'와 게임을 고안하고 설계하여 그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세대 플레이어'라는 두 집단으로 나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세대 플레이어'와 그들이 게임을 통해 얻는 '정치적 수익'에 주목한다. 세대 게임의 플레이어들은 사회 현안을 세대의 문제로 해석하는 '세대 프레임'을 통해 온갖 사회문제를 '세대'의 부호로 변환한다. 즉 사회문제들이 세대 갈등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원인들에 주목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마치 촛불과 태극기가 대립했던 지난 광장의 소란을 법치와 민주주의의 틀이 아닌, 세대 대립의 문제로 몰아가 사회 갈등을 불러일으킨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 세대 게임 플레이어는 대체 누굴까. 저자는 명확히 '용의자'를 지목하고 있지는 않다. 게임 플레이어들이 누군지 특정하지 않았지만 시민들의 정치적 소외와 차별을 숨기려는 위정자일 수도 있고, 부의 불균등한 분배'불평등 모순을 감추려는 기업 집단일 수도 있다.
불행하게도 세대 프레임으로 사회 갈등을 바라보면 문제의 해결책은 특정 세대에게 책임을 묻고 그들로 인해 손해를 입은 다른 세대에게 보상하는 식이 된다. 이 결과 이기적인 기성세대가 청년의 현재를 빼앗고 미래를 '탕진'하기 때문에 (불공정한 처사를 일삼는) 기성세대를 벌해야 한다는 식의 사회 분열적, 소모적 논리가 성립된다.
◆'세대 프레임' 허구에 속지 말아야=전 교수는 '정말 세대들의 싸움이 시작된 것인가'라는 질문에 '아니요'라고 답한다. 누군가 현재 사회의 갈등을 세대 갈등으로 비치도록 기획하는 세력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취객과 경관의 일화'로 지금의 상황을 비유한다. 가로등 불빛 아래 취객과 경관이 열쇠를 찾고 있다. 여기서 열쇠를 잃어버린 게 맞느냐는 경찰의 질문에 취객은 "여기가 아니라 저긴데, 저긴 가로등이 없어서 못 찾는다"고 답한다.
저자는 우리가 '세대 프레임'이라는 가로등의 강렬한 불빛에 현혹된 것은 아닌지를 되물으며 그 나름의 손전등으로 문제 해결의 열쇠를 찾아보자고 말한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의거해 저자는 독자들에게 되묻는다. "혹시 우리도 세대 프레임의 강렬한 불빛에 현혹되어 엉뚱한 곳만 주시하는 것이 아닐까." 책은 이런 세대 프레임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게임 플레이어들이 짜놓은 틀을 항상 '의심하라'고 말한다.
세대 플레이어들이 아직 건재하고 쉽게 조작이 가능한 세대 프레임 탓에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서 갈등이 보다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다.
저자는 "갈등은 모든 사회에 상존하고 필요악으로 존재한다"며 "중요한 것은 여러 사회 갈등들이 중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무의미한 세대 갈등들을 여러 겹으로 겹쳐 놓으면, 갈등이 더욱 선명해져 소모적 싸움을 계속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 전상진은=서강대학교 사회학과 및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빌레펠트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우리 시대의 다양한 현상들을 사회학이라는 '도구'로 해석하고 진단하는 일을 하고 있다. 특히 세대 문제, 음모론, 자기계발 붐 등의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음모론의 시대' '세대 게임―세대 프레임을 넘어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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