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관찰사 서헌순이 있었다. 당시 경북은 조선 제일의 도(道)로 관찰사 한 번 지내면 한 대(代)가 먹고살 부(富)를 쌓는다…3년 임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 부인은 집의 솥이 파손되어…몰래 솥 하나를 구해 갖고 돌아왔다…서 씨가 알고…부인을 심하게 나무라고 즉시 솥을 대구 관찰도청으로 돌려보냈다…도민들은…그 덕을 칭송하여 솥을 녹여 종(鐘)을 만들어 성문의 서표루에 달았다…나라에 기생해서 사리(私利)를 탐하는 사람, 회사를 좀 먹는 사회는 발전하지 않는다는 적절한 예는…중국인이다. 조선에서도 서 씨의 예와 같이 경종을 울려야 한다.'
한국을 짓밟은 일본이지만 청렴한 한국인은 부러웠던 모양이다. 조선총독부 관리로 경남도지사 등을 지낸 다니 다키마 조선신탁회사 사장은 1935년 친일파 한국인 박영철이 펴낸 '조선동포에 대한 교훈'이란 책에서 '서 관찰사의 종'이란 글로 그를 소개했다. 동학 창시자 최제우 교주를 처형한 관리로 알려졌지만 그의 청렴은 일본인에게도 꽤 알려진 듯하다. 물론 서헌순의 청렴 사례를 굳이 꺼낸 것은 한국인에게 일본 제국을 위한 청렴의 충성을 주문하려는 의도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지역엔 이런 청렴한 인물이 숱하다. 조선 명종 때 함경도 병마절도사에서 병조참판으로 옮기는 길에 왕이 보낸 관리의 짐 수색 결과 헤진 이불 한 채만 나오자 되레 임금의 의복 선물을 받은 대구 출신의 이영이 그렇다. 뒷날 제주목사 근무 뒤 떠날 때 꾸린 짐 속에 말 채찍이 나오자 꺼내 관청 벽에 걸어두었다. 이후 주민들이 매월 초하루 걸린 말 채찍을 보며 기렸고 건물 이름도 '괘편당' (掛鞭堂)이라 부르자 괘편당은 그의 호(號)가 됐다. 명종이 "그대의 청백(淸白)은 가히 일월(日月)과 더불어 빛을 다투도다"라고 할 만하다.
이 밖에도 대구경북에는 이런 아름다운 청렴 이야기는 여럿이다. 경북 출신의 한 공직자는 남은 출장비도 반납했다는 최근세사의 청렴 이야기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청렴한 공직자 모습은 앞으로 당분간 떠올리기 어려울 것 같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온갖 비리가 해가 바뀌어도 터지고 지역 출신이 연관돼 더욱 그렇다. 경북 출신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나 최경환 국회의원의 구속과 같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구속 사유가 하나같이 앞선 사람들이 힘들게 쌓은 청렴의 공든 탑을 허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날이 또한 지나가겠지만 아프다. 서헌순의 종이라도 다시 달면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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