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공감 행복 100세] ②대구 초고령 동네 찾아서

입력 2018-01-05 00:05:00

낡은 동네일수록 노인 많아…생활 고달프지 않게 환경 바꿔야

대구의 139개 읍
대구의 139개 읍'면'동 중 노인 비율이 높은 북구 산격1동 서당골에서 3일 노인들이 지팡이를 짚고 오르막 골목길을 걷고 있다.이채근 선임기자 mincho@msnet.co.kr

주민이 늙고, 동네가 낡았다. 노후한 공간일수록 노인인구가 많았다. 가파르고 불규칙한 골목길은 노인안전을 위협했다. 대중교통 접근성도 떨어지고, 의료와 문화시설도 멀다. 인구 고령문제가 도시 공간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대구의 139개 읍'면'동 중 노인 비율이 높은 '초고령 동네'를 찾았다. 이들 동네에는 기초생활수급자와 장애인 등 취약 계층의 문제도 안고 있다. 노인들의 삶이 복지 사각지대에 고립돼 있었다.

◆낡은 동네, 늙은 사람

3일 북구 산격1동 대구시청 별관 북쪽 골목길. 허리가 굽은 노인이 가파른 길을 올랐다. 손에 쥔 유모차에는 종이와 플라스틱병 등이 담겨 있었다. 천천히 좁고 경사진 길을 천천히 이동하면서 골목 구석구석에 있는 재활용 쓰레기를 모았다. 추운 날씨에도 소일거리를 찾고자 골목을 누비는 이 노인(78)은 "추워도 부지런히 폐지를 모아 팔아야 몇천 원이라도 수입으로 쥘 수 있다"고 말했다.

산격1동 18통장 김순자(59) 씨는 "동네 길이 경사지고 위험하다. 길에서 미끄러져 꼬리뼈에 금이 가 힘들어하는 노인도 있다"며 "여름부터 모아놓은 기초생활수급비로 겨울에 난방하고 밥을 복지관에서 해결하는 등 생활형편이 여의치 않은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산격1동의 주거환경은 대부분 단독주택이다. 5개 아파트가 있지만 저층의 소규모이고 지은 지 오래된 곳이다. 복지관은 산격사회복지관 1곳뿐이다. 남쪽 끝 동네주민은 이용에 염두를 내지 못한다. 거리가 1㎞ 가까이 떨어져 있어서다.

대중교통 이용도 불편하다. 남북으로 이어진 연암로와 북쪽 가로인 동북로 등 큰길로 나가야지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서당골 등 안쪽 골목에서는 10분 이상 걸어야지 버스승강장이 나온다. 버스 노선도 충분하지 않다. 급행노선 1개에 간선과 지선, 순환노선 등 10개 남짓이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동네 안쪽 주민들을 위해 중'소형 골목 버스라도 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활환경이 열악한 산격1동은 초고령 동네다. 주민 중 노인이 22.4%(2016년 말 기준)를 차지했다. 10명 중 2.2명이 노인인 셈이다. 노령연금 수급자 비율도 18.4%로, 대구 139개 읍'면'동 가운데 5번째를 기록했다. 가난한 노인들이 많다는 의미이다. 장애인 비율은 13.2%로 대구에서 가장 높았다. 기초생활수급자 많은 편이었다. 노인이 많고 주거환경이 좋지 않다 보니 2011~2016년 사이 인구가 1만3천18명에서 1만1천85명으로 14.9%나 줄었다.

◆대구의 노인 동네들

대구에는 산격1동처럼 노인인구 비율이 높은 곳이 적지 않다. 중구의 성내3동이 대표적이다. 이곳의 노인인구 비율(2016년 말 기준)은 27.2%이다. 이는 농촌인 달성군 하빈면(27.3%)을 제외하면 대구 139개 읍'면'동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이다. 노령연금 수급자 비율은 20.4%로 대구에서 가장 높다. 나이 들고 가난한 노인들이 많다는 방증이다. 장애인 비율도 대구 상위 10% 안에 들 정도로 취약한 계층이 사는 동네이다.

최근 아파트 건설로 젊은 층의 유입이 기대되고, 시와 구청에서 골목길 정비 사업을 벌이는 등 환경개선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전교생이 91명(지난해 3월 기준)에 그친 수창초등학교의 재학생도 늘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동네 대부분 여전히 낡은 상가와 오래된 집들이 남아 있다. 비좁은 골목마다 주정차한 차들로 빼곡해 안전을 위협한다.

서구 비산2'3동도 주민 중 24.1%가 노인이다. 대구 읍'면'동 중 6번째이다. 노령연금 수급자 비율은 성내3동 다음으로 높다. 무엇보다 1천 명당 사망자 수가 10.6명으로 5번째, 장애인 비율이 7.4%로 7번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동네의 인구는 2011~2016년 사이 17%나 줄었다. 폐'공가가 늘어나는 도심공동화를 겪고 있다.

특히 교통 편의성이 떨어진다. 동네의 남쪽과 서쪽 경계인 국채보상로와 달서로의 버스승강장 이외에 대중교통을 이용할 방법은 거의 없다. 동네 안쪽 주민들은 수백m를 걸어 나와야 한다. 병원은 물론 약국 등 의료 시설이 부족하고, 보육시설은 대부분 민간에서 운영한다.

초고령 동네인 달서구 월성2동과 수성구 범물1동은 사정이 다르다. 노령연금이나 기초생활수급 등 취약계층의 비중이 높지만 생활환경은 좋은 편이다. 월성2동은 달서구청과 성서2차 산업단지를 포함하고 있다. 공단 면적이 대부분이고, 나머지는 아파트 단지이다. 구청과 경찰서, 소방서 등 관공서를 끼고 있다. 대건중'고와 효성중과 효성여고 등 교육시설도 갖추고 있다.

범물1동은 대덕산과 진밭골 등 녹지를 제외하면 아파트가 대부분이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용지역과 범물역 등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하고, 범물실버복지센터와 용학도서관 등 여가'문화시설도 주거지 안에 있다. 백화점과 같은 대형 상업시설도 동네에 있다.

◆'초고령 동네'에 인간 중심 복지를

대구의 초고령 동네는 빈곤지도와 일치했다. 노인문제는 빈곤과 떼어놓을 수 없다. 여기에 더해 낙후한 주거환경의 개선도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구시에 따르면 대구에서 노인(65세 이상)이 주민의 20%를 넘는 초고령 동네가 8개 구'군 139개 읍'면'동 중 25개로 18% 비중을 차지했다. 노인 비율이 14% 이상인 고령 동네는 60%(83개)나 됐다.

초고령 동네를 구별로 보면 중구가 12개 동 중 절반이나 됐고, 남구가 13개 동 중 38.5%를 차지했다. 농촌인 달성군이 33.3%로 그 뒤를 이었고, 동구(20%)와 서구(17.6%) 등의 순이었다. 근래 들어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북구(8.7%)와 달서구(4.5%), 수성구(4.4%) 등은 초고령 동네 비중이 작았다.

초고령 동네는 하위소득 70% 노인을 대상으로 한 노령연금 수급자 비율이 높았다. 25개 초고령 동네의 노령연금 비율은 대구 전체 평균인 8.9%를 모두 넘었다. 대구 평균의 2배 이상인 곳도 6개나 됐다. 성내3동과 비산2'3동 등 상위 두 곳은 노령연금을 받는 주민 비중이 20%를 넘었다.

전문가들은 낙후한 초고령 동네의 개선을 위해 복합적인 접근을 강조했다. 기초생활수급이나 노령연금 등 시혜성 복지만이 아니라 경제 활동과 교육환경, 문화적인 접근성 등 다양한 방면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선 직업 등 경제활동이 가능한 환경이 필요하고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며 "인간 중심의 철학을 바탕으로 노인은 물론 젊은 세대가 살기 좋은 도시공간을 만들면 초고령 동네 문제가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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