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윤의 에세이 산책] 떡국 한 그릇

입력 2018-01-02 00:05:04 수정 2018-10-16 11:29:59

아침놀이 동쪽 수평선을 물들인다. 사람들은 더디기만 한 해를 차분히 기다리고 있다. 차가운 바람 온몸으로 맞으며 지나간 시간과 어지러운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으리라.

말간 이마를 내밀며 해가 돋는다. 동쪽의 섬을 지나, 바다를 건너, 빛은 뭍에 있는 사람들에게 달려든다. 수만 개로 분열하여 수만 명의 동공에서 살아 있는 해. 세상의 습하고 어두운 곳까지 파고들어 환하게 불을 밝힌다. 오늘을 기도하는 사람, 큰 목소리로 자신에게 '괜찮아! 파이팅!'을 외치는 사람, 지금보다 조금 더 괜찮은 내일을 염원하는 사람, 모두 저마다의 방법으로 한 해를 소원하고 있다. 공허했던 날들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고 싶어 나는 오래오래 해를 바라본다. 붉디붉은 빛이 내 안에 가득 채워졌으니 올 한 해 더는 시리지 않고 따뜻했으면 좋겠다.

어린아이는 제 몫의 떡국을 앞에 놓고 방금 떠오른 햇살보다 더 환하게 웃는다. 떡국을 먹어야 나이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에 쉴 새 없이 숟가락질을 해댄다. 두 그릇을 먹으면 두 살 더 먹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아이. 나도 아홉 살 무렵엔 정말 그런 줄만 알았다. 아이들은 먹은 떡국 그릇 수에 따라 나이를 셈했고 '내가 형이니, 네가 아우니' 하며 실랑이를 벌이다 누구 하나는 서럽게 울곤 했다. 아이들에게 나이를 먹는다는 건 어른에 가까워진다는 의미였고, 어른이 된다는 건 모든 걸 이루었다는 것과도 같았다. 어른이 되면 뭐든 다 가질 수 있고, 어디든 다 갈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과연 지금 나는 얼마만큼의 어른이 되어 있는 걸까. 먹은 떡국 그릇 수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의 어른으로 잘 성장해 가고 있는 것일까.

떡국은 새해 첫날 정갈한 마음으로 먹기에 제격의 음식이다. 옛날 설날은 태양이 새로 태어나는 날로 여겼다. 양의 기운이 새로 돋아나고, 깨끗한 기운이 질병을 막아주는 신성한 날이었다. 쌀이 귀했던 옛날엔 빚을 내서라도 귀한 쌀을 구해 가래떡을 만들었다. 떡을 길게 뽑아 오래 살게 해달라는 소망을 담아 떡국을 나눠 먹으면 한 해 동안 평안을 누릴 수 있다고 믿었다. 새해 하루만큼은 잘 먹어야 한 해 동안 배곯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방앗간 앞엔 불린 쌀 대야가 줄지어 있곤 했다. 반나절은 족히 기다려야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가래떡을 받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한 접시 덜어 시렁에 얹어 기도를 하셨고, 또 한 접시를 덜어 아버지 몫으로 내어 놓은 후에야 우리 4남매를 먹이셨다. 가래떡 한 줄씩 받아들고 설탕이며, 조청에 찍어 오래오래 아껴 먹곤 했는데 그날은 저녁밥을 걸러도 밤새 포만감으로 숨이 가쁘곤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모두 떡국으로 나이를 먹으며 여기까지 와 있는 것이다. 요즘에야 쌀도, 먹을 것도 흔하다지만 옛날 떡국은 새해 첫날에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얼고 녹기를 반복했던 이 땅 위에서, 덥고 시리기를 반복하는 우리의 허한 마음들에게 떡국 한 그릇으로 오래오래 배가 불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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