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수능 국어의 뒷이야기들

입력 2017-12-11 04:55:42

수능 시험에는 다양한 이의 제기들이 나오는데 국어에서는 동음이의어를 묻는 문제에서 부호(符號)와 부호(富豪)가 음의 장단이 다르기 때문에 동음이의어가 아니라는 이의 제기도 있었다. 이의 제기를 한 사람이 만약 이 칼럼 10월 16일 자 '새(新)와 새(鳥)'에서 이야기한 '언어유희나 문학적 표현에서는 소리의 장단을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동음어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본다.'라는 부분을 읽었다면 그런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움도 있다.(그때 우리 교무부장이 아재 개그를 '열심히' 한다고 했었는데, 자신은 아재 개그를 '재미있게' 하는 사람이라고 정정 보도를 요구했다.)

수능 문제가 나왔을 때 많은 전문가들은 경제, 기술에 대한 독서 지문이 어려워서 등급 컷이 작년과 비슷하거나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가채점 결과 실제 점수는 2~3점 오른 것으로 나타나 불수능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그 이유는 전문가들이 어렵다고 한 경제, 기술 지문이 모두 EBS 교재에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환율, 통화량, 금리의 관계에 대해 다룬 경제 지문은 체감 연계도가 매우 높았는데, 언론의 보도와는 달리 그 지문의 정답률은 높은 편이었다.

수능에 연계된 EBS 교재의 두 지문은 모두 내가 집필한 것이다. 경제 지문은 정부의 외환 시장 개입이라는 약간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목할 때마다 새로 쓰라고 할까 봐 조마조마했었다. 지문을 쓰고 문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관련 책과 논문을 읽고 내용을 완전히 소화해야 해서 그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독서 지문으로 사용하는 주제들은 학생들의 사회나 과학 선택과목에 따라 유불리가 없도록 가급적이면 학생들이 다 잘 모르는 대학교 교양 수준의 내용을 택한다. 그런데 대학교 수준의 지문은 그 분야의 전문 용어가 많고, 기본적인 내용은 안다는 전제하에서 쓴 것이기 때문에 고등학생이 읽기에는 어렵다. 이를 짧은 지문 안에서 고등학생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변별할 수 있는 수준의 지문으로 만들어야 한다.

가상의 상황을 설정하여 지문의 내용을 적용할 때 가끔씩 현실과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경제 지문에서 처음에 환율이 하락할 때 정부가 시장 개입을 하면서 통화량의 변동이 없도록 하는 내용으로 문제를 만들었는데, 전공 교수가 그렇게 하면 금리가 상승해서 역효과가 난다고 해서 지문 내용을 수정하고 문제를 다시 낸 일도 있었다.

그런데 어렵기는 하지만 그런 지문과 문제들을 계속 접하면서 잡학다식해지는 즐거움이 있다. 시험에 대한 부담이 없다면 EBS 교재나 수능 기출문제집은 어떤 책보다도 잘 다듬어진 유용한 교양서이다. 집에 고등학생이 있다면 아이와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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