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철이 만난 사람]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 겸 전경련 상근부회장

입력 2017-12-08 00:05:01

"반도체 호황 통계 착시에 불러…지금이 진짜 위기다"

권태신(68) 한국경제연구원장 겸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은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부위원장'국무총리실장'주(駐)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한민국 대표부 대사'재정경제부 차관'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실 정책기획비서관'재정경제부 국제업무정책관 등 경제관료로서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는 이 경력을 켜켜이 쌓으며 평생동안 국내외 경제 현장을 목격해왔다.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 47층에서 만난 권 원장은 주가가 오르고 성장률이 다소 회복세를 보인다고 해서 우리 경제가 지금 탄탄하다고 보면 큰 오산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지금이 위기라고 했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것이다.

그는 현 정부가 쏟아내는 경제정책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 이대로 가면 2'3등 국가로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놨다.

-각종 통계지표는 우리 경제가 건실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체감경기는 다르다는 얘기가 있는데?

▶착시현상으로 봐야 한다. 지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가 이제 겨우 회복됐다. 지금은 세계경제가 회복하는 좋은 기회다. 이럴 때 우리 경제도 체력을 회복해야 한다. 대외 무역의존도가 80%가 넘는 우리로서는 정말 좋은 기회다. 우리 경제가 올해, 내년이 좋아 보이는데 착시현상에 따른 것이다.

-무엇이 착시라는 말인가?

▶통계적으로 보면 국내 상장사 525개의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은 120조5천억원이다. 전년 동기 대비해서 26조1천억원 증가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상장사 전체 영업이익은 523개 회사 합쳐봐야 1천억원밖에 안 된다. 상당수 회사 영업이익이 마이너스라는 얘기다. 반도체, 석유화학, 철강 등 일부 소수업종 덕에 수치상 건실함을 유지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상황이 안 좋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전에도 나타났다. 우리 경제는 1993년부터 3년 동안 아주 호황이었다. 1995년에도 반도체와 자동차가 호황을 이끌었다. 1995년 역사상 처음으로 1천억달러 수출을 달성했다. 그 결과 1995년에는 스탠더드앤푸어스(S&P)가 한국 신용등급도 올렸다. 1996년부터 기아자동차를 비롯해 구조적인 문제가 시작됐는데도 1996년 말에 600이었던 주가지수가 1997년 6월에 799까지 올라갔다. 그러더니 그해 말에 외환위기가 터졌다. 지금 상당히 비슷한 느낌을 갖고 있다. 지금은 반도체가 워낙 잘되고 석유화학과 일부 업종이 잘 굴러가고 있지만 일부 업종이 우리 경제를 이끌고 있는 점은 문제다.

-지금은 외환보유고가 충분한데 위험이 또 온다는 말인가?

▶그 당시와 비교할 때 단순히 달러가 모자라서 생기는 지급 불능 사태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외환보유고가 충분하고 단기부채도 훨씬 적어진 데다 경상수지 흑자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돈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외환위기 가능성은 크지 않다. 반면 경제 자체가 성장 잠재력과 활력을 잃고 구조적으로 장기 침체로 빠지고 있는 상황은 위험하다고 본다.

다양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 열악한 기업 환경, 투자 부진 등이 원인이다.

서서히 온도가 높아지는 냄비 안에 있는 개구리는 죽을 수밖에 없다. 서서히 망해가고 있으면 자기가 죽는 줄 모를 수 있다.

과거 '안 된다, 안 된다'고 하면서도 세계경제 성장률보다는 우리 경제 성장률이 높았다. 그런데 10여 년 전부터 떨어지고 있다.

김영삼 정부 때 세계경제 성장률이 3.4%인데 한국은 7.8%로 한국이 4.4%포인트(p) 더 높았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세계경제 성장률보다 우리 성장률이 2%p 더 높았다. 노무현 대통령 때는 세계경제 성장률이 5.1%였는데 우리 경제 성장률은 4.5%였다. 이명박 대통령 때는 세계경제 성장률과 우리 경제 성장률이 같았다. 박근혜 대통령 때인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세계경제 성장률은 3.4%인데 우리는 2.9%였다.

우리나라 전체 성장률은 시간이 지나면서 주춤해지고 있다. 앞으로는 더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나?

▶구조조정을 잘해야 한국 경제가 살아남는다. 한국이 얼마나 기업 하기 어려운 나라인가? 2007년부터 2016년 사이에 인가기준으로 하면 돈이 국내로 들어온 것은 950억달러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 우리 기업이 해외로 가지고 나간 돈은 2천740억달러다. 2천740억달러는 우리 돈으로 300조원 가까이 된다. 들어온 돈은 100조원 수준이다. 우리나라 밖으로 나간 돈이 들어온 돈의 3배가 된다. 일자리 100만 개 정도는 해외로 나갔다.

왜 나갔느냐? 한국에서 사업을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 없는 규제가 우리나라에는 있기 때문이다. 규제가 과다하고 노동시장이 한국만큼 경직된 나라는 없다. 그런 요인이 겹쳐서 우리 기업이 한국에 투자를 안 하고 해외로 나가니까 결국 일자리도 없다. 이런 상황을 방치하면 한국이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그리스처럼 2등 국가로 전락할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지금 우리 경제 상황에 맞다고 보는가?

▶세계적으로 검증도 안 된, 단기처방으로 삼아야 할 소득 주도 성장을 밀어붙이고 있다. 소득 주도 성장론의 핵심은 '임금을 올리면 그 사람들이 소비를 하고 그 소비를 통해 기업들이 투자를 하고 그래서 성장한다'는 논리다. 그런데 정부가 마음대로 임금과 배당을 높일 수 있다면 왜 이 세상에 잘 사는 나라와 못사는 나라가 있겠나? 궁극적으로 경제는 기업이 하는 것이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을 하면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어 보이지만 결국 장기적으로는 더 큰 피해가 온다.

이상론자들인 로베스피에르 등이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국민들이 우유값과 빵값이 오른다는 불만을 토로하니 인위적으로 가격을 내렸다. 빵과 우유 업자들이 원재료가 비싸서 어쩔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니 정부는 다시 이들 원재료 가격을 인위적으로 억제했다. 결국은 우유와 밀가루 생산업체들이 생산을 포기하는 상황으로 귀결됐다. 그랬더니 빵과 우유 가격은 더 올랐다. 이런 식의 사회주의 경제는 모두 실패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계획해서 경제를 운용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수정자본주의라고 해서 과다한 양극화라든지 빈부격차를 일부 수정하기 위해서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시장경제하에서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고 정부가 수출하고 정부가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개입하면 할수록 부작용은 더 많이 발생한다.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정부를 내세웠다.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정책이 제대로 나오고 있는 것인가?

▶인위적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최저임금을 올리면 당장은 근로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세기업이나 중소기업은 이런 임금 수준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대기업도 중소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높아지면 부담이다. 결국 대기업은 해외로 나갈 수 있다. 중소기업도 해외로 나가든지 망하든지, 자동화를 선택한다. 그렇게 되면 이 정부가 불쌍한 청년 실업자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만든 일자리 정책들이 오히려 일자리를 없애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우를 범하는 격이다.

전 세계 잘된 나라들은 모두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서 기업이 투자하게 만들고 규제를 없애서 제4차 산업사회로 가고 있다. 선진국들은 이렇게 해서 경제를 살리려고 한다. 명령과 규제로 일자리를 만들고 국민의 소득을 올린 나라가 어디 있나? 일부 수정자본주의자들은 단기적으로는 유효수요 창출을 한다고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그 정책을 지속하면 부작용이 더 커진다.

최저임금을 올해 16%나 올렸다. 2018년에 최저임금이 7천530원이 되면 기업이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15조2천억원이다. 통상임금에 보너스까지 합쳐지면 21조9천억원을 기업이 더 부담해야 한다. 또 근로시간을 갑자기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면 추가로 근로자를 고용하는 데 따른 부담이 12조3천억원 정도다. 쉽게 말해 약 50조원 정도를 기업이 더 부담한다. 여기에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60만~70만 명 규모인 비정규직 봉급이 약 2배 가까이 올라간다. 비정규직 임금을 한꺼번에 올리면 기업이 80조원 정도를 더 부담해야 한다.

이런 비용을 부담하면서 우리 기업이 세계에서 유수의 글로벌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가?

-문재인 정부는 공무원 증원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려고 한다. 전직 경제 관료로서 이 정책을 어떻게 보나?

▶안타까운 발상이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그리스에서 공무원이 어떻게 늘어났고 그 결과가 어땠는지 우리는 확인을 했다. 공무원은 직접 부가가치를 생산하거나 물건을 만들어 수출하는 사람이 아니다. 거둬들인 세금을 나눠 쓰는 직종이다. 그리고 이 공무원 조직에는 경쟁이 없다. 회사는 망하지만 국가는 망하지 않는다. 효율성이 발휘되지 않는 영역이다.

공무원 한 명이 늘어나면 재직기간 중에 3천만원에서 5천만원의 연봉을 지급해야 한다. 퇴직 후에도 연금을 20년에서 30년 동안 보장해 준다. 생산적인 일에 종사하지 않으면서 규제와 간섭이 주 업무인 공무원을 자꾸 늘려서야 되겠나? 나라마다 공무원 수를 계산하는 방식이 다르다. 우리나라 공무원 수가 아직 적다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계산법에 따라 판단은 다를 수 있다. 또 공무원 규모가 비슷하다 하더라도 선진국과 우리를 수평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곤란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 1인당 국민소득은 5만달러에서 6만달러다. 우리나라는 아직 3만달러에 도달하지 못했다. 다른 나라 흉내 내기에는 이르다. 추세도 중요하다. 우리나라 공무원 증가 속도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너나없이 공무원이 되면 그 공무원들 먹여 살릴 세금은 누가 내나? 눈앞의 것이 달콤하다고 그것만 바라서는 안 된다.

-진정한 기업 경쟁력, 국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교육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예전부터 우리 교육은 문제가 많았다. 내가 영국과 미국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유학시절을 돌아보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공부에 필요한 공식을 정확하게 외우고 있으니 주어진 과제를 빨리 처리한다. 이에 반해 외국인 학생들은 공식보다는 해당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논리를 조합해 과제를 처리하더라. 좀 늦긴 하지만 외국 학생들이 장기적으로 더 많은 창의력을 발휘하고 문제 해결 능력도 좋은 것 같았다.

우리는 정답을 외우는 공부를 한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 사유의 깊이를 요구하는 공부를 한다.

특히, 외국 학생들은 자신들의 논리를 말과 글로 표현하는 데 뛰어난 역량을 보여서 놀랐다. 한국 교육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그때 절감했다.

영국의 경우, 역사 과목은 외우는 것이 아니다. 특정 왕의 재위 기간에 대한 책을 서로 읽고 핵심 내용을 공유하고 그 역사를 통해 우리가 현재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토론한다. 외우는 것이 아니라 영국 역사에 대한 견해를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한다. 우리는 4지선다형 시험에 대비해 외우는 공부만 했다.

-교육 개혁의 구체적 복안이 있다면?

▶교육을 받고 나온 학생들이 그 역량을 발휘할 산업현장의 목소리가 교육정책에 반영돼야 한다. 선생님들에게만 교육을 맡겨 놓으니 그분들 편한 상황만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교육현장에서 선생님들도 경쟁해야 한다. 모든 사회조직이 그러하듯 경쟁이 없는 곳에서는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오죽하면 학교 교육에 만족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학원에서 공부하고 이것도 만족하지 못하면 해외로 공부하러 가겠나?

수요자 위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대구의 영진전문대학을 보라. 이 대학은 매년 커리큘럼을 짜기 전에 대구경북지역 중소기업 1천여 곳을 돌며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수요를 조사한다고 한다. 기업현장의 요구가 높은 분야에 집중하고 교육도 요구에 맞춘다. 이제 우리 교육도 그렇게 가야 한다. 공급자, 선생님 위주가 아니라 학생들, 학생들이 일해야 하는 회사 위주로 교육을 탈바꿈시킬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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