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청첩이 사라지고 이른바 SNS로 대체한 청첩이 대세다. 문자나 카카오톡 메신저로 청첩을 보내는 것이다. 지난달 19일도 그랬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단체 카카오톡 방에 청첩이 하나 떠 있었다. 친한 친구 딸의 결혼식. 안 가볼 수 없는 곳은 이런저런 핑계 없이 빨리 마음을 정하는 것이 편하다. 장소는 서울 강남역 부근. 시간은 오후 1시. 토요일 교통체증을 감안해 일찍 집을 나서서 부지런히 식장으로 향했다.
식장에 도착하니 익숙한 이름의 대구경북 쪽 기업들의 축하 화환이 줄을 서 있다. 축의금을 전달하려고 신부 쪽 접수대에 서서 가만히 이름을 보니 친구 이름이 없다. 순간적으로 '아, 착각했구나, 딸이 아니고 아들인가 보다' 하고 신랑 쪽 접수대로 가니 하객들이 줄을 서 있다. 축의금 봉투를 넣고 혼주와 인사를 하게 되어 있다. 앞사람에 가려 혼주는 잘 보이지 않는다. 어쨌거나 봉투를 넣고 순서를 기다리다가 혼주와 악수하려는 순간,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내 또래이긴 하나 친구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환히 웃으며 내미는 혼주의 손을 뿌리칠 수는 없는 법. 일단 악수를 하고 "아, 축하하네. 그동안 고생 많았네" 하니 혼주도 "고맙네. 귀한 시간 내어 주어서" 하는 게 아닌가.
그렇게 일단 예는 차리고 그 자리를 벗어나 스마트폰을 꺼내 청첩을 다시 본다. 아뿔싸! 토요일 1시는 맞는데 날짜가 다르다. 몇 주나 먼저 온 것이다. 이런, 그렇다고 이미 낸 봉투를 돌려 달라 할 수도 없고. '에이, 밥이나 먹고 가자' 마음먹고 연회장으로 향했다. 으레 그렇듯이 결혼식을 보지도 않고 식사만 하려는 손님들로 만원이다. 둥근 테이블 한곳으로 안내받으니 그럴듯한 식사가 나온다. 안심스테이크에 전복과 새우구이 등등. 식사만 하는 하객들을 위해 결혼식 장면은 큰 화면으로 연회장까지 중계가 된다. 선남선녀의 행복한 결혼식이다.
사회자가 주례 선생님을 모시지 않은 결혼식이라는 멘트를 한다. 최근 주례 없는 결혼식이 유행이기도 하다. 그 대목에서 좀 찔린다. 나도 몇 번 주례를 보았지만 사실 성의있게 하지도 않았다. 그냥 건성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을 약간 공식적으로 했을 뿐이다. 많은 주례사를 들어보았지만 다 그게 그거다. 때로는 주례사가 길어서 짜증이 났을 뿐이다. 그러니 주례사 없는 결혼식이 당연히 유행이지. 주례 서는 사람들 다 반성해야 한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식사를 마쳤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결혼 연령은 점점 높아지고 결혼을 포기한 젊은이들도 많고, 결혼해도 아이를 적게 낳거나 안 낳다 보니 출산율은 점점 낮아진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35개 OECD 국가 중 최하위일 뿐 아니라 전 세계 225개국 중에서도 220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가임기 여성 1명이 평생 1.25명의 아이를 낳는다. 많은 대책이 나왔고 지금도 나오고 있지만 백약이 무효다. 그 원인에 대한 분석도 이미 다 나와 있다. 심지어 일부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의 이기적 태도를 성토하기까지 한다. "우리는 어려워도 많이 낳아서 열심히 키웠는데, 너희들은 더 잘살면서 왜 안 낳냐?" 하는 비난이다.
우리 부모 세대들은 우리를 주렁주렁 낳았다. 전쟁을 겪고 못 먹고 못살다 보니 오직 자식만이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흥부의 박씨와도 같은 존재들이었다. 자식은 미래의 노동력이었고, 미래에 당신들의 노후를 책임지는 보험이기도 했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자녀는 희망을 담보하는가? 핵심은 바로 그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누구도 그들에게 아이 낳기를 강요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날 어느 황당한 하객의 엉뚱한 축하를 받은 그 신랑 신부는 다복'다산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모든 신랑 신부 여러분 행복하게 잘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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