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끼 컵라면만…아이 위해 재기해야죠"
이정호(가명'51) 씨 집에서는 라면 수프 냄새가 진동했다. 방 한구석에 빈 컵라면 용기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 이 씨는 며칠째 하루에 한 끼만, 그것도 컵라면으로 때우고 있는 상황이다.
5년 전 운영하던 가게가 망하며 얻은 우울증에다 수년간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60㎏이 넘던 이 씨의 체중은 47㎏까지 줄었다. 최근 들른 병원에서는 위궤양과 뇌출혈이 의심된다며 정밀진단과 치료를 권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이들 밥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는 형편이라 수백만원이 들어갈 치료를 받을 여유가 없네요. 내 건강보다도 아이들만큼은 제대로 키우고 싶은데 그마저도 쉽지 않으니 비참하네요."
◆사업 실패로 우울증… 한때 삶 포기도
친구와 함께 서울에서 마트를 운영하던 이 씨의 인생 그래프가 기울기 시작한 것은 6년 전이었다. 동업하던 친구는 주식에 거금을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봤고, 결국 이 씨 동의 없이 마트를 팔아버렸다. 졸지에 빈털터리가 돼버린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구에 살던 이 씨의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 씨는 "다시 일어설 겨를도 없이 어머니 장례를 치르며 쫓기듯 대구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돈도 돈이지만 어머니 사고까지 겹치면서 상실감이 너무 컸다. 눈앞이 캄캄했다"고 떠올렸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돌아온 이 씨에게 가족들도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이 씨는 우울 속으로 더욱 침잠해 갔다. 아내는 기울어버린 집안 사정을 비관해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을 앓게 됐다.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내는 아침 일찍 나가 술을 마시다 밤늦게 들어오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이 씨는 "내가 집에 들어오니 아내가 답답해하며 나를 피했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할 정도"라며 "아이들을 생각하면 이혼도 힘들 것 같아 정신과병원 입원을 수차례 권했지만 이마저도 거절당했다. 사실상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런 아내를 보다 못한 이 씨도 결국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이 씨는 4년 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이 씨는 "가족에게 아무 힘이 못 되는 것 같아 너무 비참했다. 버티다 못한 어느 날 스스로 목을 매려고 한 적이 있다"며 "그때 딸아이가 '아빠!' 하며 다가왔고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도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며 나쁜 생각은 절대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아이들 제대로 키우는 게 마지막 꿈
어둠 속에서 허덕이던 이 씨에게 아이들은 마지막 남은 한 줄기 빛이다. 이 씨는 부모가 우울증에 걸려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도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은 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공부를 잘하고, 초등학교 5학년 딸도 의젓하다고 말하면서 이 씨 얼굴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이 씨는 "못난 부모와 달리 아이들은 그래도 잘 컸다. 해준 것이 너무 없어 미안한 마음뿐"이라며 "아이들이 대학에 갈 때까지만이라도 버팀목이 돼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 씨는 건강이 회복되는 즉시 직업교육을 받아 돈을 벌고 싶다고 했다. 새벽에 나가 막일도 해봤지만 일거리가 꾸준하지 않은데다 쇠약해진 이 씨의 몸이 견디기에 일은 너무 고됐다. 이 씨는 "공부 욕심이 많은 아들이 얼마 전 학원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도저히 돈을 구할 길이 없어 알겠다는 말만 하고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부모 입장에서 공부하겠다는 아이의 앞길을 막는 것 같아 가슴이 찢어진다"며 "건강만 회복하면 일자리를 얻어 열심히 일하고 싶다. 다시 재기해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마지막 남은 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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