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 되므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이 시는 김종삼 시인이 작고하기 2년 전에 발표한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의 전문이다. 시가 뭐냐는 질문에 자신은 시인이 못 되었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당대 순수시 계열의 거목이었던 분의 대답이라니 좀 생뚱맞기도 하다. 그렇지만 각자 자기 분야에서 지내 온 내력을 생각해 보면 첫 두 행의 의미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대학시절 나도 문학동아리에서 합평회를 하면 무게를 잡으면서 '시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는 둥 '리얼리즘에 철저하지 못한, 가치 없는 글이다'는 둥의 말을 쉽게 했었다. 얄팍한 문학 이론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그렇게 함부로 평가하는 말들을 했었다. 그렇지만 시를 써 가면 갈수록 내 마음에 드는 시를 쓰는 것은 더 어려워지고 시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어쩌다 등단하게 되어 시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지만, 남들처럼 어디 글을 낼 때 '시인'교사'라고 쓰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아서 그냥 '교사 민송기'로만 쓴다.(요즘 들어 생각해 보면 좋은 교사가 되지 못한 관계로 '교사'를 쓰는 것도 부끄럽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시가 무엇인지 거창한 이론으로 말하는 것이 어려울 때, 남들이 암송해줄 위대한 작품에 대한 욕심을 포기했을 때 시에서 사람 냄새가 나고 시가 재미있어진다는 점이다. 그렇게 찾던 위대함은 저 높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 속에 있었던 것이다.
지난주에 가장 감동적이었던 장면은 이진성 헌재소장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 앞서 이 시를 암송하는 모습이었다. 이 시에 '시'라는 말 대신 '법'이라는 말을 넣어도 성립된다. 젊은 법관들은 완벽한 법의 논리로 정의를 세울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하지만, 세상에는 법의 허점을 이용하는 나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법을 잘 몰라 억울한 일을 당하는 선량한 사람도 있다. 그래서 사려 깊은 법관은 법을 법전의 논리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삶에 대한 탐구와 이해에서 출발하려고 한다. 그런 생각들을 압축해서 시로 낭송하는 헌재소장 후보자를 보면서 저런 분들은 국민 청문위원단이 같이 소주 한잔 마시며 인생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인사청문회를 대신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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