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의 시간은 더디다. 해와 달의 시간이다. 도시에서의 시간은 자동차와 빌딩의 시간이다. 물체가 빛의 속도에 가까워지면 시간은 느려진다. 물체와 빛의 속도가 같아지면 시간은 멈추게 된다. 시간의 흐름을 전혀 느끼지 못할 때 몸은 빛나게 된다. 몸과 마음이 무한에 수렴하며 무시간성이 된다.
겨울 나무들은 시간 밖에서 언 땅에서도 꿋꿋하게 뿌리를 내렸다. 직립한 나무들은 서로 의지하여 색깔과 형태를 달리하며 앙상블을 이룬다. 무성했던 잎들은 땅에 밟히며 바스라지고 간벌당한 산길은 시계가 넓어지며 동물들도 자취가 사라졌다.
자연은 종교나 철학, 과학 등 인간이 목적과 기능을 내세우며 만들어낸 그 어떤 방편보다도 유용한 무진장이 숨어 있다. 자연에 비하면 종교나 철학은 한편 불순하고 억압적일 때가 많았었다.
찻잔이 식고 생각의 샘이 고갈되면 바람 소리가 그리워진다. 겨울 산을 지키며 푸르름을 발산하는 소나무들은 파도 소리를 들려준다. 가까운 비로암에서 계곡의 물소리를 따라 올라가는 염불암 반석길은 비단길에 버금할 것이다. 마음에 생각을 덜고 창자에는 음식이 없어야 머리에 맑은 피가 돌게 되리라. 내려오는 도장길의 솔숲은 문명의 발길을 거부하며 겨우 사람이 다닐 만한 명품 바람길을 만들었다. 우록의 남지장사 소나무 동산은 경주 남산의 송림을 부러워하지 않았다. 지금은 평화와 열반의 언덕이 되었다.
자연의 시간은 나무의 시간이다. 해가 뜨기 전과 해가 질 때의 그 박명(薄明)의 순간들, 또는 모든 것이 뚜렷한 밝은 대낮과 칠흑의 컴컴한 밤의 적막, 그리고 어슴푸레 흐린 날의 음영이다.
우리들의 영혼은 나무처럼 깊은 명상이 깊어질 때 나무처럼 너그럽고, 풍부하게 순하고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모든 인간은 부족함과 고통의 파토스이다. 자연이 보내는 신호와 소리들은 인간의 생각이나 언어보다 빠르다.
새벽 동틀 무렵 숲에 가본 사람은 알 것이다. 새벽 공기와 그 빛의 아우라가 온몸을 감싸고 그 빛에 의해서 매일매일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정적과 외로움 속에서 나무들은 명상한다. 나무의 몸과 마음에는 태어나기 이전의 침묵을 가졌다. 원초적 혼돈의 에너지가 지극한 고요를 이루고, 우리들이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신비의 감수성을 숨겼다. 나무의 나이는 세월이 지나가고 바람의 기억을 저장한다.
나무의 자유와 갈망에는 이 세상의 풍진을 통과해 왔음을 바라보게 된다. 나무는 봄바람 같은 선한 의지와 미묘한 향을 품었다. 우리들의 마음이 절실하고 그 진실한 생각을 따라간다고 다 이뤄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절실함이 없었다면 그 어느 것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주관적으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 '굉장한 명성은 굉장한 소음'이란 말처럼 소음을 더 많이 낼수록 명성은 더 멀리 퍼질 것이다. 사람됨이란 타고나는 것도 있지만 또 여러 과정과 체험을 통해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유명한 명성이란 결국 소음의 다른 이름이다. 삶이란 과정에서 인간이 벌이는 일들이 적절하고 온당할 때 그 즐거움을 얻게 될 것이다.
욕망은 우리가 타고난 자연의 일부이다. 그것 자체가 나쁘다거나 좋다고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좋은 의도를 가질 때 욕망은 필요한 것이다. 내가 느끼는 착한 감정들은 다른 사람과 함께할 때 공감능력이 증가될 것이다. 이것은 높은 교양과 도덕보다 우선한다. 이러한 심미적 자연체험들이 사람들을 향상시키고 변화시켜왔던 것이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정치와 경제 일반의 일꾼들에게 속상해하고 화가 나는 일은 거짓말과 무능이 일반화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생활과 직결된 문화적 소양과 체험을 확산시켜야 하고 습관화해야 한다. 나무 아래 앉아 있으면 키가 큰 나무들은 우리를 얼마나 기분 좋게 하는가?
각정 스님'청련암 암주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경선 일정 완주한 이철우 경북도지사, '국가 지도자급' 존재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