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칼럼] 시장경제와 정부의 역할

입력 2017-11-22 00:05:01

서울 출생. 관악고. 서울대 무역학과. 미국 캘리포니아대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조사국 통화재정팀장. 한은 부설 경제연구원 부원장. 전 한은 대구경북본부장
서울 출생. 관악고. 서울대 무역학과. 미국 캘리포니아대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조사국 통화재정팀장. 한은 부설 경제연구원 부원장. 전 한은 대구경북본부장

일자리 정책 시장과 거리 너무 좁아

혁신성장 분야 정부가 더 다가서야

中企성장 못지않게 대기업도 중요

역동성 살릴 기업 생태계 조성해야

문재인 정부의 국정 기조는 '사람중심의 큰 정부'이다. 이는 10년 가까이 유지되어온 시장우선주의와의 결별을 의미한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 혁신벤처 지원 등 굵직한 대책들이 신정부 출범 후 연이어 나오고 있다. 신정부 출범 이후의 6개월을 특징짓는 핵심 단어를 꼽자면 변화가 아닐까 싶다.

소득 불평등 심화, 높은 청년실업과 고용의 질 저하, 대기업·중소기업 간 경제력 격차 확대와 끊어진 성장 사다리 등을 감안할 때 변화의 당위성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변화는 발전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다. 변화의 방향뿐 아니라 수단도 적절하여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사람중심 경제, 소득분배 개선, 혁신성장 그리고 공정경제라는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에 동의한다. 그러나 정책의 구현 방법에 있어서는 일부 아쉬운 점이 있어 사견임을 전제로 몇 가지 건의하고자 한다.

시장경제에서 정부와 시장의 관계는 불가근불가원이다. 적정한 거리가 있다는 말이다. 더욱이 정책 분야에 따라 적정 거리는 달라진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정부가 시장에 너무 다가선 분야와 좀 더 다가가야 할 분야가 드러난다.

먼저 시장과의 거리를 너무 좁힌 분야로 일자리정책을 꼽고 싶다. 흔히 고용 문제를 고려할 때 고용률 등 총량지표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일자리는 취업 요건이나 고용 형태가 천차만별이다. 다종다양한 일자리에 인력을 배분하는 최선의 방법은 시장이다. 그 이유는 하이에크가 강조하였듯이 시장의 '가격 발견 기능'에 있다. 계획경제가 실패한 것은 정부가 시장 기능을 대신하려 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이 인건비 절감 수단으로 악용되어온 점에서 정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한 취지는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나 나그네 스스로 옷을 벗도록 유도한 이솝우화의 해님처럼 결과 자체를 겨냥하기보다 유도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위반을 엄정히 처벌하는 한편 정규직 시장의 유연성을 높인다면 기업 스스로 정규직 채용을 늘릴 것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일자리 문제에 있어 정부의 역할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세일러(Thaler) 교수가 말한 '넛지'(nudge)에 그치는 것이 좋다고 본다.

반면 혁신성장 분야에서는 정부가 시장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 그 이유는 혁신과 같이 복합적(complex) 현상에 대한 최상의 정부 지원은 관계형(relational)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혁신은 과학지식, 생산기술 그리고 마케팅 경험이 두루 축적된 가운데 타성에서 탈피하려는 유인이 더해져야 가능하다. 문제는 여러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요인들 간의 상호작용도 안정적이질 않아 '1+1=2'의 등식이 혁신세계에서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혁신의 결과를 예단할 수 없기 때문에 작은 변화부터 실천하는 실험정신과 실패에 좌절하지 않는 끈기 그리고 끊임없이 배우고 고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이러한 혁신 추구 태도가 존중받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생태계 조성은 한 번 만들면 끝나는 성격의 일이 아니다. 상시 관찰하고 문제가 발견되면 즉시 고쳐야 하는데 문제의 원인이 복합적이어서 부서별 칸막이식 접근은 효과적이지 않다. 시스템사고를 가진 일선 공무원의 종합 서비스가 요구된다. 이것이 관계형 서비스의 요체다. 관계형 서비스가 가능하려면 일선 공무원이 혁신생태계에 깊숙이 참여하여 현장감을 키워야 하고 문제 발생 시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충분한 권한이 부여되어야 한다. 이런 취지에서 필자는 혁신 관련 정부 조직의 혁신을 강조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경제의 역동성이 살아나려면 중소기업의 성장 못지않게 대기업의 성장도 중요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사다리의 끊어진 부분을 메우더라도 사다리가 짧으면 개구리가 우물 밖으로 나오지 못하듯이 대기업이 정체되면 중소기업의 성장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기술 프런티어의 확장을 선도하는 대기업의 존재 자체는 중소기업의 혁신 의욕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갈수록 높아지는 글로벌 가치 사슬의 장벽을 중소기업이 넘어서는 데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역동적 기업 생태계 조성에 기여할 대기업의 역할을 정부가 명확히 그려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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