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도 어쩔 수 있나요. 안전하리라 믿고 학교는 보내야죠."
20일 오전 7시 30분쯤 포항시 북구 영신고등학교 정문은 오랜만에 학생들의 발걸음을 맞았다. 갑작스러운 지진으로 휴업 결정이 내려진 지 닷새 만이다.
큰 재난 이후 아이들을 다시 학교로 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가벼울 리 없다. 이날 아침에만 해도 규모 3.6의 강한 여진이 이어졌다. 이날 정문에는 아이들을 데려다 주는 학부모들의 승용차가 줄을 이었다. 학교 앞에서도 멀어져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느라 좀처럼 발걸음이 떼지 못했다.
학부모 이모(48) 씨는 "마음 같아서는 그냥 집에서 공부하라고 말하고 싶지만, 남들 다 가는데 우리 아이만 놔둘 수 없어 무거운 마음으로 등교를 도와주러 왔다. 고등학교 입학 후 승용차로 바래다주기는 처음"이라며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면 얼른 운동장으로 피신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정말 학교의 지진대응 매뉴얼을 믿어도 될지 불안하다"고 했다.
이날 포항지역 125개 초'중'고교 중 17곳(초교 13곳, 중학교 4곳)을 제외하고는 일제히 등교를 재개했다. 비록 여진이 이어지고 있지만, 마냥 휴업을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휴업 연장을 결정한 17곳 역시 피해가 큰 시설물을 서둘러 보강하고 5일 안에 정상 등교를 실시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교육 당국의 결정이 너무 이르지 않느냐는 불만도 많다. 상황의 특수성을 감안해 조기 방학 등을 시행하고 정밀안전진단 및 시설보강을 우선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이에 대해 포항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정말 피해가 큰 흥해초교 등 대상 학교는 이미 조치를 취하고 있다. 건물 안전진단은 당연히 시행해야 하지만, 조기 방학은 아직 이른 문제가 아닐까 한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학교들은 지진 후 첫 등교인 만큼 대체로 단축수업을 시행하는 모습이었다. 일부 학교는 오후 6시까지 정규수업을 모두 진행했지만, 이곳 또한 보충수업과 자율학습 등은 모두 취소했다.
유성여고의 경우, 고3 수험생들은 2교시를 마친 오전 11시쯤 조기 하교했으며, 나머지 1, 2학년생들도 오전 수업만 마치고 오후 1시쯤 집으로 향했다. 지진으로 인한 수험생들의 안정을 위한 조치였다.
유성여고 3학년 정모(18) 양은 "일찍 수업을 마치고 포항시청에 여권을 신청하러 갔다. 친구들과 수능 후 일본 여행을 계획했었는데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몰라도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진정되는 기분"이라며 "친구들과 같이 여권을 만들고 오후에 함께 공부하면서 서로 기운을 복돋워주고 있다"고 했다.
수능이 며칠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을 위한 지원책도 큰 관심거리다. 해병대의 경우 울릉고 수험생을 위해 청룡회관 숙소를 무료 제공하며, 연회장을 임시 독서실로 꾸며 수험생들의 공부를 지원하고 있다. 포스코는 인재개발원에서 이재민 수험생 2명을 돌보고 있으며, 호텔 베스트웨스턴도 흥해지역 이재민 중 수험생을 둔 10가족에게 무료 숙소와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