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조선의 왕 현대 소환…광개토대왕, 자주적 리더십, 선조, 정통성 콤플렉스 다뤄
군주제 사회의 정점엔 '왕'(王)이 있었다. 전통시대 왕은 국정의 최고 통수권자였고 입법, 사법, 행정을 총괄하는 전제군주였다. 이 책은 권력의 저울 위에서 때로는 위태롭게 비틀거리고 때로는 평온하게 역사를 써내려간 우리 역사의 왕들을 소개한다. 작가의 시점에 의해 이 책에는 모두 24명의 왕이 등장한다.
현대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왕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저자는 한국 역사에 등장하는 왕을 둘로 나누어 구분하고 있다. 첫째는 '민족의 관점'에서 본 왕이고, 둘째는 '민주적 관점'에서 본 왕이다. 전자(前者)에서 왕은 과거 신민(민족)을 이끌던 지도자로 나타난다. 사극이나 영화에서 묘사되는 통치자로서 왕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외세에 맞서 영토를 지켜냈거나 민족의 자존심을 높인 왕은 찬양의 대상이 되고 반대의 경우 비난의 대상이 된다.
민주적 관점에서 왕은 민중을 억압하는 세력의 대표자로 나타난다. 왕 한 사람이 유일한 주권자였던 전제군주제는 모든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주의와 완전히 대립되는 체제였다. 지난 수 천 년 동안 전제군주제는 민주주의를 위해 반드시 타도되어야 하는 체제였고 부활해서는 안 되는 낡은 유산이었다.
이 책은 앞서 제시한 두 개의 분석 틀 중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왕들을 평가하고 있다. 이 시각에서 보면 아무리 위대했던 왕이라 하더라도 그의 리더십은 세습군주제 산물이므로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저자는 '단군왕검'에서 군주의 탄생과 의미를 따져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광개토대왕'에서는 한국사에서는 드물게 신민과 군주 사이에서 주체적 왕권을 견지했던 대왕의 사례를 통해 자주적 리더십에 대해 살피고 있다.
백제의 중흥군주 '무령왕' 편에서는 반란을 일삼던 귀족들을 제압하면서 권력을 장악해가는 리더십에 초점을 맞춘다. 몽골의 지배하에 놓였던 고려의 후기 왕들을 통해서는 일국의 왕이면서 동시에 다른 제국의 신하였던 '충(忠)자 돌림 왕'들의 비극을 다뤘다.
서출(庶出) 콤플렉스에 찌들어 있었던 조선 14대 왕 '선조' 편에서는 정통성의 콤플렉스가 어떻게 왕실에서 후계를 둘러싼 살육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묘사했다. 나아가 권력 사유화의 아이콘 연산군, 북벌의 정치를 주창했던 효종, 예송의 군주 현종, 탕평의 군주 영조 이야기도 특유의 시각으로 풀어낸다.
병자호란 비운의 왕 '인조' 스토리도 흥미롭다. 저자는 인조의 처세를 백성을 버리고 달아난 무능한 군주, 조선왕조 정신을 지키려다 무릎을 꿇은(삼전도 굴욕) 지도자로 분류하며 독자들에게 그 평가를 맡기고 있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휘청거리다 백성들을 나락으로 떨어트린 고종에 대해서는 주체성을 상실한 실패한 군주인지, 황제 자리에 올라 독립국가로서의 존엄을 지킨 군주인지 묻고 있다.
저자는 단군에서부터 조선의 고종에 이르기까지 24장에 걸쳐 우리 역사 속 왕들을 '소환'하고 있다. 개성이 뚜렷한 왕들이 주로 등장해 일독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독서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교양서로서의 목적 외 왕의 일대기, 영웅담이 아닌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역사 속 왕들을 평가했다는 점에서 '군주'에서 '민주'로 나아갔던 인류의 역사 발전 과정을 흐릿하게나마 '포착'해 낼 수 있다. 318쪽, 1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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