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선이 만난 사람] 조주희 美 ABC뉴스 서울지국장

입력 2017-11-17 00:05:05

"뉴스 볼 때, 보도하는 언론이 어떤 경향인지 아는 게 중요"

사진 이무성 객원기자.
사진 이무성 객원기자.

우리에게 조금은 낯설고 신비감마저 느껴지는 외신기자를 만났다. 외국 언론에 비친 대한민국, 그리고 외신기자가 보는 대한민국의 언론. 미국 ABC뉴스의 조주희 서울지국장과 솔직하고 꾸밈없는 대담을 나눴다.

-황유선: 외신기자라 하면 일단 화려해 보인다. 외신기자의 실제 모습이 궁금하다.

▶조주희: 파견국 시선에서 보면 외신기자는 해외 특파원이다. 한국에서 취재를 하며 다른 나라 언론사에 기사를 송고한다. 출퇴근이 엄격하지 않지만 양국의 시차 때문에 24시간 일이 돌아가기도 한다. 이곳 밤 시간에 미국에서는 보도를 해야 하고 미국 밤 시간에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취재해야 한다. 외신기자로 성공하려면 양국 언어는 물론이고 양국의 정치, 역사, 문화를 모두 수용하고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경력과 경험이 요구된다.

-황: 우리 언론은 해외 특파원 파견직을 선호하는데, 한국의 외신기자도 인기 있는 자리인가.

▶조: 외국에선 한국에 가는 걸 안 좋아한다. 한국은 외국인이 살기 힘든 나라다. 영어가 통용되지 않는 나라다. 홍콩, 싱가포르 심지어 요즘 중국만 해도 영어가 잘 통한다. 게다가 한국은 국제 뉴스의 중심이 아니다. 반면, 중국 북경에서는 항상 뉴스가 생산된다. 서울에 있으면 대한민국 관련 뉴스보다 북한 관련 뉴스를 훨씬 더 많이 보도하게 된다. 주인공은 북한이고 중국이다.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서울에 기반을 두고 ABC뉴스 서울지국장을 할 수 있었던 배경도 북한 때문이다.

-황: 미국의 유력 언론은 한국을 주목해 왔다. 한국은 그들에게 어떤 존재로 인식되고 있나.

▶조: 미국이나 유럽에서 남한을 아느냐고 물으면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북한은 다 안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할 때 남한이냐 북한이냐 묻는 사람은 그나마 식자층이다. 서구에서는 의외로 한국에 한 번이라도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많지 않다. 그들은 일본 도쿄, 중국 베이징에는 가도 한국은 잘 안 온다. 남한에 대한 인지도가 굉장히 낮은 편이다. 반면, 북한은 악명이 높아서 인지도도 높다. 단, 남북한의 통일은 세계적 관심사다. 동서독처럼 통일비용이나 사회융화 문제가 논의될 것이다.

-황: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 도발에 외신은 매번 심각한 위기감을 표출하지만 정작 한국 언론은 평온하다. 어떻게 된 연유인가.

▶조: 외신은 한국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외신은 지금 이 순간도 위기를 느끼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다"고 하는데 우리도 마찬가지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비를 해야 무언가 벌어졌을 때 취재를 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 언론은 위기의 주범이 김정은이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라고 보고 있다. 김정은보다 더한 사람이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무슨 말이냐면, 트럼프는 계속 김정은을 자극하는 말을 하고, 김정은은 더 자극적인 말로 받아친다. 일명 '말의 전쟁'이라고 한다. 주거니 받거니 말의 전쟁을 하다가 급기야 북한이 못 참고 전쟁을 일으키게 될까 봐 그것을 걱정한다. 미국은 국방부 장관이나 국무부 주요 각료들이 있어서 트럼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제도적 장치가 있다. 하지만 북한은 김정은이 다 결정한다. 예전처럼 단순히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전쟁하는 시대는 아니다. 자국의 이익에 부합해야 전쟁이 일어나는데 북한은 생존을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거나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다.

-황: 우리나라 언론은 한시도 고요한 때가 없다. 특히 정치 뉴스가 그렇다. 다른 나라에 비해 과한 측면은 없는가.

▶조: 한국처럼 뉴스를 많이 보고 정치에 관심 많은 국민도 없다. 미국 보통 사람들은 정치에 큰 관심이 없다. 나라가 너무 넓어서 자기의 지역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더 크고 범국가적인 정치에는 관심이 낮다. 반면, 우리는 좁은 땅덩어리에서 서로 부딪히며 살고, 교육 수준이 높다. 또, 역사적으로 계속된 외세 침략으로 인해 생존에 대한 강한 열망이 있다. 바로 이런 것들이 이유다. 특히 생존하려면 어딘가 군중에 가서 붙어야 하고 대세가 바뀌면 빨리 내 입장을 정해서 적응해야 살아남는다는 압박감이 크다. 그래서 대중주의가 국내에서 통하는 것 같다. 가령, 부조리는 어느 사회든 다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자체적으로 반성하고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 부조리는 '쟤네들'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쟤네'가 강하면 그쪽에 붙어서 자기가 있던 진영일지라도 비판한다. 지금 한국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런 것이 보인다. 또, 진보와 보수의 진정한 의미도 모르는 것 같다. 보수나 진보의 기본 가치보다 자신이 지지하는 특정 정당을 기준으로 정치 성향을 분류한다. 만일 미국 사람들이 민주당 지지자, 공화당 지지자라고 하면 선거 지원도 하고 당에 대해 공부도 하고 모임에도 참석한다. 미국은 의외로 '나는 중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이를 자랑스러워한다.

-황: 보수와 진보로 양분된 언론이 다른 논조를 낸다면 그중 무엇을 믿어야 할지 선택의 문제가 된다. 그렇다면 언론을 신뢰할 수 있을까.

▶조: 나도 언론인으로서 이런 고민을 많이 한다. 내 하루 일과는 한국 언론을 전부 다 모니터링하고 여론을 점검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한국 언론의 가장 슬픈 현실은 주류 언론이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주류로 인정받았던 몇몇 언론사들이 지난 10년 동안 한국 정치의 격동기를 거치며 주류이기를 포기했다는 느낌이다. 질이 너무 떨어졌다. 어떻게 이렇게 편향적으로 쓸 수 있을까 생각할 정도로 변한 곳도 있다. 과거의 주류 언론이 냈던 르포기사, 분석기사는 질이 높았다.

언론의 역할은 중심을 잡는 것이다. 중심이 여기에 있다고 보여주는 것이 바로 주류 언론의 역할이다. 언론이 대중을 휘어잡아 움직이고자 한다면 그것은 선동이다. 주류 언론의 역할은 중심이 여기 있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려주는 선에서 끝나야 한다.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거기에 더해 다양한 전문가 의견이나 사건 개입 당사자들의 말을 모두 전해주는 것이 언론의 임무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판단과 실행은 관료와 정치인이 하는 것이다. 그건 언론의 역할이 아니다.

미국 언론은 기본적으로 인정받는 주류가 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ABC, NBC, AP, 로이터 등은 모두가 인정하는 주류 언론이다. 이념적으로 약간 기운 매체로는 보수 성향의 월스트리트저널, 진보성향의 msnbc 정도다. 그다음에 아주 편파적인 좌우파 언론이 있다. 그들은 그 기준에 맞게 보도하고, 보는 사람들도 그렇게 인정하고 본다. 즉, 내가 어떤 언론을 선택해 뉴스를 소비할 때 그 언론이 어떤 경향인지 인지하고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념적으로 기울었는데 주류라고 주장하는 언론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 언론의 제일 큰 문제는 '척'을 하는 것이다. 스스로 공정하다고 얘기한다는 자체가 문제다.

-황: 취재도 안 하고 다른 언론이 쓴 기사를 베껴서 기사랍시고 업로드하는 직원 두세 명의 영세 인터넷 회사가 수천 개다. 폐해가 매우 심각하다. 미국도 그러한가.

▶조: 받아쓰기를 한다는 것은 언론사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것도 자칭 한국의 가장 공정한 언론이라고 주장하는 주류 언론의 그런 행태는 문제의식을 넘어서 같은 언론인으로서 창피하다. 언론윤리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는 것이다. 기자 개개인이 그러하니 민주주의 언론이 지켜야 할 윤리적 가치란 게 없다. 저널리즘 윤리를 묻고 기자가 이래도 되느냐고 물으면 '다 그런다'고 하거나 '그게 왜요'라는 대답을 들을 때가 있는데 기가 막힌다. 의사들이 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처럼 기자들에게도 최소한의 그런 절차가 필요하다. 남에게, 사회에 해를 끼치지는 않겠다는 양심적, 윤리적 선서를 하고 기자라는 타이틀을 줘야 한다. 인터넷 사이트를 만든 뒤 신고만 하면 언론인이 되고 미디어가 되는 환경이 가장 큰 문제다. 대기업 같은 데 가서 CEO의 사생활에 대한 과장된 뉴스를 올리겠다고 홍보실을 협박해 돈을 뜯어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미국에서 이러면 감옥 간다. 저널리즘 윤리에 벗어나는 일에 형량이 굉장히 높다. 취재원에게 돈을 받거나, 거꾸로 취재원에게 돈을 주거나, 사건에 개입하는 것도 금기이다. 상대가 법적 소송을 제기하면 백 퍼센트 형사처벌된다.

-황: 이를 민주주의 언론의 자유와 연관된다고 하면 어떨까.

▶조: 미국의 민주주의는 언론의 자유다. 다만 언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모두가 알고 있고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 역사가 짧다 보니 언론의 진정한 역할이 뭔지 잘 모른다. 우리나라 언론은 정치, 검찰, 대기업과 너무 긴밀하고 밀접하다. 이 연결고리를 언론 스스로 끊어야 한다. 언론인이 퇴직해서 바로 정치인이 되고, 정치인들이 언론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도 문제다. 검찰이 주는 대로 그대로 받아쓰는 언론도 있다. 검찰이나 정치인이 와서 흘려도 넙죽 받아쓰면 안 된다. 특종의 유혹과 언론이 지켜야 할 가치 사이에서 고민할 때 너무나도 쉽게 특종에 대한 욕심을 선택하는 것을 보면서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봤다. 정치권이나 검찰이나 재벌 등에 언론인들은 휘둘리면 안 된다. 마치 언론이 '갑'인 듯 행세하지만 사실상 이는 '을' 노릇이다.

-황: 포털에는 민감한 기사에 대해 수천 개의 댓글이 달리며 갖은 인신공격과 유언비어 등이 난무한다. 언론인으로서 어떻게 인식하는가.

▶조: 저널리즘에 대한 좀 더 깊은 생각을 해야 한다. '댓글에선 이런 여론이 있다' '네티즌들은 이렇게 말한다'고 나오는 기사들이 많다. 기사 자체가 잘못됐다. 네티즌이라고 하면 곧 댓글 다는 사람인데 이 사람들의 의견을 여론이라고 하는 것은 문제다. 책임감 없는 그들의 멘트에 너무 비중을 두면 안 된다. 가령, 내가 누군가를 인터뷰하면 그 사람은 나를 기자로 인정하고 나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진다. 그렇게 한 말을 옮기는 것과 화풀이와 분풀이 차원에서 가상공간에 쓴 것을 여론이라고 옮기는 것은 큰 차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언론은 네티즌의 목소리를 너무 크게 다룬다. 언론과 기자가 자기가 주장하고 싶은 것을 네티즌의 목소리를 빌려서 보도하기 위한 꼼수라고 본다.

-황: 우리나라 언론인과 미국 언론인은 차이가 있는가.

▶조: 한국에서 언론인의 위치는 엘리트, 권력층, 가진 자로 분류된다. 미국에서 언론인은 그냥 감시견, 제3의 눈 정도다. 미국에서 기자에게 '이렇게 보도해 주세요'라고 부탁하는 일도 없다. 국내 언론 환경에서 신기한 것은 언론인이 사회적 문제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 저런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다고 전달하는 자가 언론이다.

나는 뉴스에 감정이 섞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감정을 담으려면 처음부터 아예 뉴스쇼라고 공개해야 한다. 그러나 마치 공정한 주류 언론인 것처럼 내세우며 멘트나 기사의 논조를 약간 비틀어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기사를 송고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모 언론사에서는 뉴스에서 브리핑을 하기도 하는데 그런 뉴스쇼가 시청률이 높은 것에는 박수쳐 줘야 한다. 그러나 공정한 언론이라고만 포장하지 말고 뉴스쇼라고 공개해야 한다. 내가 혹은 언론이 치우쳤다고 공표할 수 있다. 그렇지만 치우친 내가 정의롭거나 객관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민주주의니까 좌우에 치우친 인생을 선택할 수 있을지언정 나만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양극화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낙관적으로 생각하면 진정한 민주국가로 가는 성장통이다.

-황: 외신기자의 꿈을 꾸는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조: 완벽한 두 언어 구사력과 호기심이 있어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질 높은 주류 언론을 많이 접하는 것이다. 신문은 꼭 신문지면으로 읽고, 뉴스도 프로그램 전체를 다 보되 수준 있는 뉴스를 골라 봐야 한다. 주류 언론으로 인정받는 외국 언론의 훌륭한 기사를 많이 읽고, 시간이 허락하면 좌우로 조금씩 기운 언론을 섭렵하면 된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