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엔 먹을 게 없다. 볼 것도 없다. 딱히 내세울 만한 게 없다. 맞다. 몇 년 전까진 그랬다. 외부 평가도 그랬고, 우리 스스로도 그렇게 알았다.
지금은 아니다. 대구에 이렇게 맛있는 먹거리가 많은 줄 몰랐다는 게 일성이다. 이렇게 볼거리가 즐비한 줄도 몰랐다. 전국도, 대구도 놀랐다.
그런데 애초 없었던 게 새로 생겨난 게 아니다. 원래부터 있었지만 좋은 줄 몰랐을 뿐이다. 스스로 평가절하해 이렇게 괜찮은 것인 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가 자랑을 안 하니 우리도, 외부도 모르는 게 당연했다.
왜 그랬을까. 겸손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대구의 기질 때문일 것이다. 드러내지 않고, 나서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대구 특유의 문화 말이다. 내세울 게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너무 낮추고, 별거 아니라며 내세우길 꺼리고 부끄러워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번 터지면 화끈한 것도 대구의 기질 중 하나다. 겉으로 드러내고 표현하는 데는 둔하지만 속에선 열정과 애정이 끓고 있는 게 대구사람이다. 누가 손만 잡고 끌어내 주면, 불만 붙여주면 그 힘은 가히 폭발적이다. 특히 위기나 결정적인 상황이 닥치면 그 모습은 더욱 분명해진다.
110년 전 국채보상운동이 그랬고, 20년 전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가 그랬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나랏빚 1천300만원을 국민이 대신 갚자며 대구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확산된 최초의 시민운동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기부문화 운동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외환보유액을 늘려 외환위기를 극복하자며 전국 최초로 금 모으기 운동에 나선 곳도 대구다.
이달 28일 대구에서 행사 하나가 열린다. 대구FC 엔젤클럽의 '엔젤데이' 행사다. 엔젤클럽은 대구FC를 재정적으로 후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민간 모임이다. 대구시민들이 출자해서 만든 국내 최초의 시민구단을 한 번 제대로 살리고 키워보자며 시작한 모임이다. 지방자치단체 지원금이라는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목숨만 연명하는 '식물 구단'이 아니라 명문 자립 시민구단으로 키워 보자고 뭉친 시민들의 모임이다.
부끄럼 많고 나서기 싫어하는 대구에서, 성공 여부를 자신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 몇몇이 시작한 이 모임이 이제 28일이면 1004(천사)명의 회원을 가진, 말 그대로 온전한 엔젤(천사)클럽이 된다. 대구FC의 천사가 되기 위해 스스로 '엔젤'임을 자처하고, 1004명의 회원을 목표로 시작한 작은 움직임이 이제 이름과 같은 모양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것도 목표보다 1년이나 빨리 달성했다. 이를 자축하는 자리가 28일 엔젤데이다.
말이 1004명이지 손에 쥐어지는 게 없는데도 생돈 100만원(엔젤 기준)을 매년 내야 하는 회원이 1천 명 이상 모였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다. 회원 가입을 권유하러 찾아가 조심스레 말을 건네면 '왜 이제 왔느냐', '왜 이렇게 늦었느냐'며 되레 섭섭해하는 분이 많았다고 한다. 체면 때문에, 쑥스럽고 '뻘쭘'해 뒤로 빠져 있다가도 나서야 할 때, 힘을 보태야 할 땐 팔 걷고 나서는 대구의 기질을 잘 드러내는 단면이다. 그래서 엔젤클럽은 28일을 기점으로 2천 명, 5천 명, 1만 명을 향해 다시 출발한단다.
여러 스포츠 중 하나인 축구 관련 행사, 그것도 사교 모임 같은 후원 단체의 자축 행사를 두고 무슨 대구의 저력을 운운하고 호들갑 떠느냐고 할 수도 있다. 맞다. 그런데 여태껏 이런 모임은 없었다. 전국 어디에서도 없었고,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들다.
28일 엔젤데이는 그들만의 사교 모임 행사로 그칠 수도 있고, 대구 DNA를 다시 작동시키는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이날, 이 모임이 '대구FC'의 엔젤을 넘어 '대구'의 엔젤이 되기 위한 출발점이 되길 바라는 것은 너무 큰 바람일까. 28일 엔젤데이가 꿈틀대고 있는 대구 DNA를 폭발시켜 살기 좋은 대구, 꿈과 희망, 미래가 있는 대구를 만드는 시민운동의 '시작 버튼'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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