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 역풍…기업 '脫한국'

입력 2017-11-10 00:05:01

인건비 싼 동남아로, 섬유·자동차부품·전자 등 대구경북 주력 제조업종 베트남 태국 둥지

지역 섬유가공수출업체인 A사 이모 대표는 지난여름 한 달 동안 베트남 호찌민과 하노이를 누비고 다녔다. 수년 전부터 생각해온 공장 후보지를 본격적으로 물색하기 위해서였다. 생생한 현지 정보를 얻고자 자동차부품, 섬유, 전자 등 베트남에 터 잡은 한국 업체 15곳을 소개받아 방문했다.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 땅값, 인건비 다 올려놨다'며 말리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이 대표는 "호찌민에 즐비한 한국의 법무법인과 은행들을 보면서 생산라인 일부라도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더 굳어졌다"고 말했다.

A사는 제품의 80~90%를 수출하는 강소기업이다. 그런 A사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된 건 갈수록 악화하는 국내 제조업 여건 탓이다. 이 대표는 내년에 인상되는 최저임금 기준으로 국내에서 숙련된 봉제 근로자 1명 인건비는 약 250만원(잔업 및 주말근무 포함)인 반면, 베트남에선 50만원 남짓이라고 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한국에선 봉제 근로자들의 고령화로 일할 사람을 더 이상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주문을 따내도 공장을 가동 못 하면 허사 아닌가. 베트남에는 젊은 인력들이 넘쳐나고 기술은 가르치면 된다. 다음 달에는 공장 이전 후보지를 알아보기 위해 미얀마로 보름간 떠날 계획이다"고 했다.

국내 제조업체들의 '탈(脫)한국' 고민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수익성 악화가 심화하면서 국내보다 인건비가 싸고 젊은 인력이 풍부한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로 해외 법인 설립 또는 생산 거점 이전을 검토하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수출지원센터는 현재 전 세계 20곳에서 282개의 '수출인큐베이터'를 운영 중이다. 수출인큐베이터는 해외진출을 준비하는 기업에 3, 4년간 임대하는 현지 사무공간이다. 현지 법인 설립부터 세무'법률, 통역 등 제반 사항을 돕는 '기업 정착 도우미'다.

수출지원센터에 따르면 특히 최근 2, 3년 사이 동남아 지역으로 희망 기업이 밀려들고 있다. 베트남은 가장 '핫'한 지역이다. 호찌민과 하노이 25개 수출인큐베이터는 현재 공실이 없다. 이곳에는 대구경북 업체가 호찌민에 3개, 하노이에 2개가 입주해 있다. 센터 측은 "베트남 경우 6개월 이상 입주 대기 중인 업체가 10곳을 훨씬 넘는다. 동남아 쪽 진출 희망이 많아 다음 달에 태국 방콕과 미얀마 양곤에 모두 20개의 수출인큐베이터를 신규로 오픈할 예정이다"고 전했다.

국내 제조업의 해외 진출 주 이유는 단연 '신시장 개척'이다. 그러나 최저임금 추가 인상 등 장기적 경영여건 악화를 우려하는 제조업체들 사이에선 동남아 진출을 불가피한 대안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대구 한 식품가공업체 대표는 "인상된 최저임금이 적용되면 내년에 직원 90여 명 인건비가 올해보다 총 4억원가량 오른다. 내후년에 최저임금이 또 오르면 버틸 방법이 없다. 동남아 국가들은 아직 소득수준에 비해 한국 제품 가격이 비싸지만, 고성장하는 나라인 만큼 장래를 보고 이곳으로 공장 이전을 생각하는 업체들이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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