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기업 '脫한국'] "이런 식 임금 인상되면 국내서 더 이상 못 견뎌"

입력 2017-11-10 00:05:01

동남아 진출 모색, 公기업 용역 일감은 적고 우수 인력도 수급 힘들어 은행 담보대출에만 의존

최저임금 인상 등 국내 기업 경영 여건이 갈수록 악화하면서 해외 법인 설립이나 생산 거점 이전을 고민하는 국내 업체들이 늘고 있다. 해외 바이어 상담회 모습. 대구시 제공
최저임금 인상 등 국내 기업 경영 여건이 갈수록 악화하면서 해외 법인 설립이나 생산 거점 이전을 고민하는 국내 업체들이 늘고 있다. 해외 바이어 상담회 모습. 대구시 제공

"신시장 개척이라는 긍정적인 이유보다는 '이런 식으로는 국내에선 더 이상 힘들겠다'며 해외로 옮긴다는 데 심각성이 있는 거죠."

국내 기업들이 생산공장의 해외 이전이나 해외 법인 설립을 추진하는 이유는 갈수록 국내에서 기업 하기가 힘들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에서다. 내년에 시급 7천530원(16.4% 인상)으로 오르는 최저임금은 정부 로드맵에 따라 추가 인상이 예상되고, 근로시간 단축(주 68→52시간) 추진도 경영에 부담요인으로 꼽힌다.

◆지역 섬유'IT 기업, 해외 진출로 활로 모색

2015년 대구 수성구에 설립한 콘택트렌즈 수출 유통업체 S사는 지난 2월부터 베트남 투자유치 전문 컨설턴트를 통해 현지 법인 설립 시기와 방식, 시장성 등을 알아보고 있다. 이 업체는 수년째 연 8%씩 성장하는 베트남 시장의 유망성에 주목해 현지 바이어들에게 콘택트렌즈를 공급하며 판로를 개척해왔다.

이 업체는 회사 지출의 3분의 1 수준으로 비중이 크면서 날로 높아만 가는 영업비용을 줄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국내 직원이 해외 영업을 나갈 땐 숙박, 항공 및 현지에서 쓸 자금 등 부대비용이 크게 들지만 베트남 현지 영업사원들은 그보다 훨씬 저렴한 임금만 들이면 돼서다.

이 회사 대표는 "최저임금이 오를수록 임원과 직원이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는 상황이 못 된다. 정부의 자영업자 지원 정책은 실질적으로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은행도 들쑥날쑥한 전년 소득세 실적만 보고 대출을 해주니 연매출 2억, 3억 규모 기업은 담보대출에 목을 매느라 힘들 수밖에 없다. 차라리 베트남에 가서 인건비 지출을 국내 대비 4분의 1로 줄이자는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대구 IT 개발업체 B사도 지난해부터 베트남으로의 이주를 검토하고 있다. 지역 내에서는 주로 공기관'공공기업에 대한 용역 사업만 나오다 보니 경쟁이 너무 치열하고, 우수 인력이 대부분 수도권으로 빠져나간 탓에 일할 사람 찾기도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B사는 창업 초기 기업 입장에서 일감도 적은 가운데 높은 임금을 주고 능력이 뛰어난 직원을 고용하기가 어려우니 단순 작업을 하는 개발자만이라도 임금이 비교적 저렴한 베트남에서 찾자는 생각이다.

이 업체 관계자는 "현지 컨설턴트를 통해 알아보니 베트남에서도 IT 코딩 교육을 잘 받은 고학력자가 많다고 한다. 이들 월급이 우리 돈으로 월 80만원 선이라고 하는데, 일자리를 찾는 사람도 많은 데다 현지 서버 구축 등 수요도 많아 보여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관리자급 직원만 한국인 직원으로 구성해 이르면 내년 상반기쯤 현지 법인을 세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미 중국, 동남아 등에 공장과 법인이 진출한 지역 중견제조업체들도 당장 내년부터 경영 여건 악화가 걱정된다고 했다. 중국에 생산공장을 둔 지역의 한 자동차부품업체는 "정규직 170여 명이 일하고 있는데 내년에 10억원의 인건비 인상이 예상된다. 인건비가 계속 오르면 수출이 많은 중소업체 중에 해외로 거점을 옮기려는 업체가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대구의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홍콩에 법인을 설립하고 필리핀이나 베트남, 태국 등지로 공장 이전지를 알아보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인건비 높고 정부'은행 기업지원책 미흡한 탓

실제로 인건비 부담이 적고 노동 인력이 풍부한 동남아 등지로 법인을 추가 설립하거나 옮기는 사례는 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베트남에 법인 설립 신고를 한 한국 기업은 2015년 1천702곳에서 지난해 2천137곳으로 대폭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1천100건으로, 이 추세라면 올 연말까지 2천200곳을 넘길 전망이다. 미얀마, 라오스, 싱가포르 등 다른 동남아 지역도 비슷한 추세다.

중소기업들은 최저임금 상승과 근로시간 단축, 여전히 미흡한 저금리 대출 지원책 등으로 인해 앞으로는 국내 경영이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기업이 매출 하락을 이유로 중소 협력업체에 단가 인하와 주문량 축소에 나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지역 경제에 악영향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무역협회 대구경북본부 관계자는 "최근 베트남 경제성장률이 상당히 높고 베트남을 거점으로 동남아권에 진출하면 수출길 확보가 쉽다는 인식이 기업들 사이에 널리 퍼지고 있다. 외국 투자기업을 유치하고자 세제 혜택을 주는 것만큼이나 해외 진출 기업의 유턴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구테크노파크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의 해외 이전은 결국 국내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국내에서 생산을 다 끝낸 부분 가공품 상태로 해외에 넘기면서 국내 일자리에 영향을 주지 않고 기술 우위의 수출 성과도 거두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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