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게 물든 석양 아래, 억새풀 은빛 물결
억새 군락 3㎞ 이어진 '주남저수지'
기러기 등 다양한 철새 탐조도 가능
한 폭의 그림 같은 '화왕산'황매산'
가족 단위 나들이하기 최적의 장소
흐르는 것 어이 강물뿐이랴.
계곡의
굽이치는 억새꽃밭 보노라면
꽃들도 강물임을 이제 알겠다.
갈 바람 불어
석양에 반짝이는
은빛 물결의 일렁임,
억새꽃은 흘러흘러
어디를 가나.
위로위로 거슬러 산등성 올라
어디를 가나.
물의 아름다움이 환생해 꽃이라면
억새꽃은 정녕
하늘로 흐르는 강물이다.
-오세영의 시 '억새꽃' 전문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랬던 것 같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울렁거려 고개를 돌려보면, 그곳에 이미 가을이 와 있었다. 흔히들 가을은 고독의 계절이라 한다. 뜨겁게 타오르는 단풍도 잠시. 높은 하늘에 닿지 못하고 쓸쓸히 떨어지는 낙엽 때문일까. 어쩌면 내내 방심하고 있다가 불현듯 한 해의 마지막으로 치닫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가을이 전해주는 독특한 분위기에 취해 무작정 집을 나섰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쭉 뻗은 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즐기던 중 그것을 봤다. 그것은 하얀 물결이었다. 때로는 은빛 바다처럼 잔잔히 일렁이다가도 이내 금빛 날갯짓으로 가을을 노래했다.
지난달 28일 오후 찾아간 창원 주남저수지는 주말을 맞아 나들이를 나온 상추객(賞秋客)들로 북적였다. 각자 자리를 잡은 채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방문객 너머로 한눈에 전부 담을 수도 없는 저수지와 고즈넉한 둑방길, 은빛 흐드러진 억새 군락이 어우러져 제법 운치 있는 모양새를 이루고 있었다.
둑방길에 올라 억새를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줄기 끝에 촘촘히 피어난 회갈색 억새꽃 사이로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억새와 귀뚜라미가 만들어내는 가을의 하모니에 빠져들기 시작할 무렵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코끝을 간질이는 억새꽃에 터져 나오는 재채기를 애써 참으며 고개를 돌렸다.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석양과 억새풀이 만들어내는 은빛 물결 사이로 군무를 추며 이동하는 이름 모를 철새의 모습에 마음이 울렁였다.
억새는 가을의 대표 식물답게 가을이면 경남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창원 주남저수지와 창녕 화왕산, 합천 황매산의 억새 군락은 멋들어진 가을 풍경을 연출해 매년 많은 가을 나들이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 매일 똑같은 도심의 풍경에 질렸다면 하얀 물결로 가득한 억새 군락지를 찾아 특별한 가을 경험을 만들어 보자.
◆억새와 철새의 완벽한 궁합, 창원 주남저수지
창원시 의창구 동읍 대산면 일대에 위치한 주남저수지는 오랜 옛날부터 동읍, 대산면 농경지에 필요한 농업용수를 공급해주던 자연 늪이며, 산남(96만㎡), 주남(403만㎡), 동판(399만㎡) 등 3개의 저수지로 이루어진 배후습지성 호수이다.
주남저수지에는 제방을 따라 총길이가 약 3㎞에 달하는 억새 군락이 조성돼 있다. 제방의 양옆으로 우거진 억새밭 사이를 거닐고 있노라면 한 폭의 그림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산책로 곳곳에 벤치와 저수지 풍광을 전망하기 위한 데크가 마련돼 있어 여유롭게 가을을 만끽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인 장소다.
매년 가을이 되면 만개하는 물억새와 함께 기러기, 재두루미, 고니, 잠수성 오리, 물닭, 댕기흰죽지 등 다양한 철새를 탐조(探鳥)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주남저수지만의 장점이다. 늪 주위에 꽃을 피우고 한들거리는 물억새 위로 월동지를 찾아 비행하는 기러기의 울음소리는 주남저수지의 가을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주남저수지는 2017년 현재 람사르협약의 등록습지 기준에 상회하는 동양 최대의 철새 도래지로 주목받고 있으며, 특히 두루미류의 중간 기착지 및 재두루미의 월동지로서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산의 절경과 어우러진 억새 군락, 창녕 화왕산
창녕 화왕산(해발 757.7m)은 관룡산(해발 753.6m)과 하나의 산군을 형성하고 있는 창녕 대표 명산이다. 지난 2002년 10월에는 산림청에서 선정한 '100대 명산'에 포함되기도 했다.
화왕산 정상부에는 사적 제64호인 둘레 2.7㎞의 창녕 화왕산성이 있으며, 산성 내부와 주변에 국내 최대 규모(약 18만6천50㎡)의 억새 군락이 자리하고 있다. 매년 초가을이 되면 화왕산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억새의 은빛 물결이 장관을 이루기 때문에 상추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창녕군은 지난 2013년부터 매년 7천만원의 사업비를 들여 화왕산 억새 군락을 보존하고 있으며, 특히 지난달에는 등산객과 지역민의 안전을 위해 2억3천만원의 예산을 투입해 180m에 달하는 등산객 전용 데크로드를 준공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화왕산은 수려한 경관으로 드라마 '허준' '대장금' 등의 촬영지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현재도 드라마 세트장이 남아있어 방문객에게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하늘과 맞닿은 억새밭, 합천 황매산
합천군 가회면과 대병면에 걸쳐 있는 황매산(해발 1,113m)은 합천의 진산이지만 가야산과 해인사의 명성에 가려 산행 서적이나 관광지도에서도 찾기 힘들 정도로 무명의 산이었다. 덕분에 훼손되지 않은 아름다운 골짜기를 간직하고 있는 산이다. 특히 해발 900m 지점에 펼쳐진 한 폭의 그림 같은 억새 평원은 철쭉과 더불어 황매산을 대표하는 볼거리다. 황매산은 해발 1,000m가 넘는 높은 산이지만 해발 800m 지점까지 차량 진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가을 하늘만큼 높은 곳에서 억새를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즐겨 찾는다.
합천군청은 올해 1억8천여만원의 예산을 편성해 등산로를 정비하고 휴식공간을 추가 설치하는 등 시설을 재정비함으로써 황매산을 찾는 행락객들의 편의성을 더욱 높였다.
또한 황매산 억새평원 바로 아래에는 오토캠핑장까지 위치하고 있어 가족 단위로 가을 나들이를 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오토캠핑장 이용을 원하는 방문객은 사전에 예약을 해야 하며 황매산오토캠핑장 홈페이지(http://camp850.com)를 통해 예약할 수 있다.
갈대와 억새 구별=억새는 갈대와 함께 가을이 되면 꽃을 피워 장관을 이루는 가을의 대표 식물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비슷한 생김새와 개화 시기로 인해 구분을 하지 못한다.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은빛이나 흰색을 띤다면 억새다. 갈대는 고동색에 가까운 갈색을 띤다. 억새는 줄기가 갈대에 비해 가늘기 때문에 약한 바람에도 쉽게 한들거리지만 갈대는 줄기가 뻣뻣하다. 그뿐만 아니라 억새의 높이는 1~2m로 갈대(2~3m)보다 훨씬 작다.
두 식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뿌리다. 억새는 곧고 짧은 뿌리가 촘촘히 얽혀 포기나누기를 하는 것처럼 증식하기 때문에 다른 식물과 함께 자랄 수 없다. 하지만 갈대는 뿌리가 굵고 통통하다. 갈대는 뿌리줄기에 있는 마디를 따라 수염뿌리와 줄기가 다시 올라오기 때문에 뿌리 사이로 잡초들이 자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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