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챔니스 주택' 찾아온 손자·손녀

입력 2017-11-03 00:05:01

챔니스 선교사의 손자 데이비드 챔니스(왼쪽 두 번째)와 손녀 수전 카슨(왼쪽) 씨 부부가 2일 할아버지가 살았던 대구 동산의료원 의료선교박물관 내 챔니스 주택 앞 현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챔니스 선교사의 손자 데이비드 챔니스(왼쪽 두 번째)와 손녀 수전 카슨(왼쪽) 씨 부부가 2일 할아버지가 살았던 대구 동산의료원 의료선교박물관 내 챔니스 주택 앞 현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오래전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다시 만난 것 같습니다."

2일 오전 11시쯤 대구 중구 동산동 청라언덕.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서양식 2층 집 '선교사 챔니스 주택'에 들어선 데이비드 챔니스(58)와 수전 카슨(65'결혼 전 수전 챔니스) 남매는 다소 상기된 표정이었다.

1910년 미국인 선교사들이 거주하려고 지은 이 건물은 1925년부터 1941년까지 두 사람의 할아버지인 본 챔니스(O.Vaughan Chamness'1898~1987) 선교사와 할머니 헬렌 씨 가족이 살았던 곳이다. 현재는 의료선교박물관으로 쓰인다. "옛날에 할아버지가 보여준 사진 속 장소를 실제로 볼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는 남매의 얼굴에는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짙은 그리움이 묻어났다.

본 챔니스 선교사는 1925년 대구에 와 '애락원'(현 서구 내당동 대구애락원)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봤다. 부원장직을 맡은 그는 농사와 축산 등을 지도하면서 선교활동도 병행했다. 부인 헬렌 씨는 영유아보건소에서 일하며 아픈 아이들을 돌봤다. 부부의 활동은 1941년 일제에 의해 추방당하기 전까지 계속됐다.

데이비드 씨는 "할아버지는 한국에서 가져온 선반을 평생 간직했고 돌아가시기 직전에 '한국 선교 30주년 기념패'를 받고 아이처럼 기뻐했다"며 "일제강점기였음에도 당시 찍어온 사진 뒷면에는 '대구, 조선'이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할아버지는 한국과 대구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분"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방문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극적으로 이뤄졌다. 지난 9월 대구시의 영문판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챔니스 주택의 모습을 데이비드 씨의 아내 브렌다 챔니스(59) 씨가 우연히 보고 연락을 취한 것. 대구시와 접촉한 이들은 각자의 반려자와 함께 미국 시애틀에서 10시간 이상을 날아왔다. 할아버지가 평생 고이 간직했던, 당시 대구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는 각종 사진'영상 자료들도 가져왔다. 수전 씨는 "우리 6남매는 할아버지 집에서 각종 한국 물건들과 한글로 된 문서를 보면서 자랐다"며 "직접 대구에 와 보니 마치 빠졌던 퍼즐이 맞춰진 느낌"이라고 했다.

데이비드 씨와 수전 씨는 챔니스 주택에 이어 할아버지가 젊음을 바친 대구애락원으로 향해 1920년대 젊은 할아버지와 만났다. 두 사람은 일정을 마무리하며 서툰 한국말로 연거푸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할아버지한테 배웠던 몇 안 되는 한국말이라고 했다. 데이비드 씨는 "다른 형제들과 사촌들이 '사진을 보내달라'며 계속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다. 많이 궁금한 모양"이라며 "기회가 되면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대구를 찾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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