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찻잔에 담기는 가을

입력 2017-10-28 00:05:01

낙엽이 비처럼 내린다. 솔 갈비를 모아서 불을 지피니 맑고 푸른 연기가 타닥타닥 피어오른다. 가을 샘물은 간장처럼 졸아서 손으로 움켜 마셔도 감로가 되었다. 사과는 터질 듯 단맛이 들고 속내를 감추지 못하는 노란 은행은 냄새가 진동한다.

따가운 가을 양광 아래 익고 물드는 모든 존재들은 이제 뿌리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바람은 숲과 나무를 흔들어 산길에 꽃길을 만들어주었다. 그대여, 올여름에 무엇을 했는가? 밭 한 이랑은 목화 심고, 반 이랑은 차나무 심었다. 나머지는 푸성귀 심었다네.

여름에 바래고 찢긴 창호지를 뜯어내고 새로 산 한지를 바르고 문틈에도 문풍지를 덧댔다. 그 밝고 환한 얼굴은 절반은 청풍이고 바람이다. 외출했다 돌아오니 누군가 창문마다 손가락으로 숭숭 구멍을 뚫어 놓았다. 방문을 노크하기에 "누구세요?" 하고 문을 열었다. 딱따구리 암컷이 포르르 날아올랐다. 새가 그랬다. 새들도 가을을 아는구나. 새가 구멍을 만들었으니 혼을 낼 수가 없었다.

백장 회해 선사가 시봉하는 위산 영우에게 불쑥 물었다. "너는 누구냐?" "예, 영우입니다!" "화로가 식었다. 불씨가 남아 있는지 한 번 뒤적여 봐라"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없다고?" 백장이 벌떡 일어나 불집게를 들고 한참 동안 식은 재를 헤집었다. 그리고 작은 불씨를 찾아냈다. 영우 스님 눈앞에 들이대며 "이것이 불씨가 아니더냐?" 그때 위산 영우가 문득 스승에게 절을 올렸다.

존재들은 모두 따뜻한 불씨(불성)를 가졌다. 풀벌레가 사라진 텃밭에서 끝물 고갱이를 골라내고 가지와 고춧대를 뽑고 있었다.

10월 산중을 비우는 일이 잦아서 텃밭을 고르지 못해서 가을 무와 배추 심는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혼자 사는 사람은 게으름이 최고의 악덕이 된다.

그가 문득 대문 앞에 서 있었다. 늦깎이로 출가한 김행자가 백담사에서 교과안거를 마치고 찾아온 것이다. 김행자는 46세로 출판업을 하다가 정리하고 기본선원에서 참선하고 있는 초보 사미로 '동암'이란 법명을 받았다. 마침 남은 일을 함께 마무리하고 손을 씻었다. 그와 맞절을 했다. 마루에 앉아 찻잔을 마주하니 고향 친구를 대한 듯 친숙하여 울컥 반가웠다.

기본선원은 조계종 종립선원으로 4년 과정의 초심자 전문교육기관이다. 본래 팔공산 동화사에 세웠으나 2013년부터 이전해 설악산 신흥사에서 운영하고 있다.

나이 들어서 출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익숙하지 않은 새벽 3시의 예불은 누구나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특별한 수행이다. 쏟아지는 졸음을 극복해야만 한다. 하루 세 번의 엄격한 발우 공양과 대중울력은 군대 이상의 규율이고, 묵언이 기본이며, 고행이 뒤따른다. 그 나머지는 좌복 위에서 벽과 마주하고 절대 고독과 맞서야 한다. 이 정진에는 10분만 자리를 이탈해도 퇴방을 당하게 된다. 화두가 잡히고 찬바람에 무릎이 시리고 발이 저릴 때 비로소 혼자 있음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출가는 자기가 스스로 선택한 삶이다. 어쩌면 산중에 사는 출가자의 무위의 삶은 '사회적으로 유용한가' 의심받기도 하지만, 순간순간이 하루가 되고 하루가 지나 한 달이 된다. 한 달 한 달이 지나 한 해가 될 때 풋풋한 초심은 따뜻한 봄 향기가 되면서 그 마음에 자비심이 깃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선배로서, 먼저 산에 온 사람으로서 자비를 베풀게 되었다. 첫째, 출가자는 생활인이 아니다. 더구나 직업인도 아니다. 둘째, 출가자는 가난한 사람이다. 언제나 맑은 가난으로써 재산을 삼아야 한다. 셋째, 출가 수행자는 홀로 가는 사람이다. 넷째 출가 수행자는 자기로부터 시작해 세상에 도달한 사람이다. 다섯째, 수행자는 언제나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이다.

시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목숨이다. 시간은 오는 것이 아니고 지나가는 것이다. 게으르지 않은 이런 수행자라면 아침의 맑은 샘물을 솟아나게 하리라. 가을은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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