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29대 대통령 워런 하딩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꼽힌다. 1921년 1월부터 급사한 1923년 8월까지 불과 2년 7개월간 재직했지만 역사의 부끄러운 한 시기를 장식했다.
그는 대통령다워(?) 보이는 출중한 외모에 힘입어 높은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곧 지도자로서 자질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자신을 도운 고향 친구들을 각료로 임명했고 이들은 이권을 챙기며 부패를 저질렀다. 하딩은 이를 제대로 알아채지 못했고 제어하지도 못했다. 금주법이 시행되고 있었으나 백악관에서 술을 마시며 포커를 치는 재미에 더 빠져들었다. 유약하고 부패하고 무능했던, 함량 미달의 리더였다.
하딩의 고향인 오하이오주 매리언에는 그가 살던 3층 집이 지금도 남아 있으며 집 뒤편에 자그마한 하딩 박물관이 있다. 초등학교 교실만 한 크기로 조성된 공간에 하딩의 성취와 실패와 관련된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의 군사 질서를 세운 워싱턴 군축회의의 성과보다는 '오하이오 갱'으로 불리던 하딩 일파의 부패와 무능이 더 크게 와 닿는다. 성과를 포장하지 않고 실패를 감추지 않은 채 담담히 알리는 모습이 인상적인 곳이다. 미국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이나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웅장한 도서관 겸 박물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빈약하고 초라하지만 부끄러움을 감추지 않고 잘못을 경계하자는 의미를 전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 작업이 진행되면서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에 이어 이명박 정부의 국기 문란도 실체가 밝혀지고 있다. 국가정보원과 군의 민간인 불법 사찰과 불법 선거 개입 의혹, 방송 장악, 문화 예술인 등 블랙리스트 작성, 4대강'자원외교'방위산업 비리 의혹, BBK와 다스 실소유주 의혹 등이 증거 자료들과 함께 엮여나오고 있다.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정치 보복'이라며 반발하고 있으나 헌법 질서를 짓밟은 중대한 범죄행위일 뿐이다. 과거보다는 미래를 내다보자고 말하지만 바른 미래를 위해서는 과거를 깨끗하게 정리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여러 불법이 박근혜 정부의 그것보다 덜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명박근혜'로 부르는 조어가 절묘하게 느껴진다. 두 정권의 불법이 매우 중대하고 양상이 비슷하고 광범위하게 자행됐다는 점에서 판박이처럼 닮아 어떠한 연결고리가 있지 않았나 짚어볼 필요성도 있다.
포항 도심을 벗어나 북쪽으로 7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고향 마을이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포항시 북구 흥해읍 덕성리의 일명 '덕실마을'이다. MB는 재임 중일 때도 그랬지만, 퇴임 후에도 인기 없는 대통령이었다. 그의 고향마을 방문객 수가 점차 줄어들었고 지금은 연 10만 명 내외라고 한다. 그가 이끌었던 정부의 각종 불법, 비리 의혹이 터져 나오는 요즘에는 더 한적하다. 포항시가 이 마을의 시설 관리를 위해 내년에 10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가 논란을 빚었는데 이 예산을 그대로 집행하기도 난감해졌다.
포항 사람들이 MB를 입에 올리지 않은 지는 오래됐다. 한때 대통령을 배출한 지역으로서 자부심도 있었으나 언제 그랬나 싶다. 가끔 화제로 삼더라도 비판하거나 비난한다. 고향을 알게 모르게 배려했다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그와 가까웠던 일부 동향 인사가 '덕'을 봤을 뿐이며 측근 고향 사람들을 기용한 '영포라인'이 그의 실패와 추락을 불러왔다고 진단한다. 우리나라에도 전직 대통령의 문화가 정립될 필요가 있다고들 이야기한다. 인기가 있었든 없었든 전직 대통령의 공과를 돌아보는 도서관이나 기념관 건립 사업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들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 이러한 논의는 부질없어진다. 전직 대통령 문화가 정립돼야 정치도 안정될 수 있는데 아직은 요원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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