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에 쓰고 남은 포도 한 상자가 꽉 찬 냉장고 안에 들어가지 않아 밖에 두었더니 며칠 전부터 온 집안에 시큼한 냄새가 나고 정체 모를 벌레가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냉장고를 미리미리 정리하지 못한 탓에 결국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이번 주말은 기필코 냉장고를 정리하리라 마음먹은 토요일 아침, 냉장고 정리하랴, 빨래 돌리고 널린 빨래 걷으랴 정신없는데 간밤에 추웠다며 남편이 두꺼운 이불을 내어 달란다. 그 말에 이불장을 열었는데 생각했던 이불이 보이질 않는다. 이불을 하나하나 다 꺼내봐야 한다는 얘기다. 순간 짜증이 확 올라왔다. 미리미리 잘 정리해 둘걸 평소에 바쁘다는 핑계로 정리를 못 하는 나 자신이 미워졌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대학생 150명을 세 가지 방에 무작위로 배정해 과제를 수행하게 하는 실험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첫 번째 방은 사무용품이나 책들이 책상 위에 흩어져 있는 지저분한 방이었고, 두 번째 방은 물건들이 잘 정돈된 방, 세 번째 방은 아무것도 없는 방이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순발력과 집중력을 평가하는 과제를 줬는데 지저분한 방에 있던 참가자들이 나머지 참가자들보다 대답을 늦게 하는 경향이 발견되었다고 하고 과제가 끝난 후 "과제를 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묻자 지저분한 방에 있던 참가자들이 다른 참가자들보다 상대적으로 "지쳤다" "힘들었다" 등의 반응을 많이 보였다고 한다.
이런 실험을 굳이 해보지 않더라도 평소 생활 속에서 느끼는 현상들이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는 순간 개지 못한 빨래들과 쌓여 있는 우편물들, 다림질을 기다리는 옷들을 보면 머리가 복잡해지면서 정작 실행에 옮기지도 못하고 마음 편히 쉬지도 못하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일본 제1호 정리정돈 컨설턴트인 고마츠 야스시가 쓴 복잡한 삶을 단순하게 만드는 힘 '정리정돈의 습관'을 보면 정리정돈의 습관이 살아가면서 얼마나 큰 경쟁력이 될 수 있는지를 새삼 느끼게 해준다.
정리정돈을 잘하려면 우선 쓸모없는 것들을 제대로 버리는 습관부터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버려야 할 것들이 쌓여 있으니 공간이 부족하고 공간이 부족하니 정돈이 잘 안 되며 정리정돈이 안 되어 있으니 필요한 물건을 제때 찾을 수가 없다. 결국은 급할 때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찾거나 새 물건을 사야 하는 경우가 생기니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게 되는 셈이다. 나는 정리정돈 습관이 삶을 단정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단순히 공간을 정비하는 것 이상의 효과로 말이다. 살면서 많이 느끼고 깨달았음에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나의 게으름을 깊이 반성하며 평소 허물처럼 벗어둔 침대 위 이부자리를 반듯하게 개켜두고 혼자 흐뭇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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