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 방지언 장편소설 '큐피드 아홉 개의 성물', 학이사

입력 2017-10-21 00:05:01

나비야, 나비야

그림: 노재화 작
그림: 노재화 작

어디서 왔을까? 벌초를 하는 아버지 산소에 배추흰나비가 날아왔다. 이십 대에 죽은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가 나비 날개에 어른거린다. 우화(羽化)의 고된 여정으로 얻은 20여 일의 생(生)인데도 나비의 몸짓은 참 고요히 여유롭다. 수많은 갈등 속에서 이제는 거의 100년의 세월을 어지러이 사는 인간도 신의 눈에는 저 나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이 물음 끝에 신이 있다. 절박한 순간마다 신을 찾는 인간의 본성엔 신이 있는 게 분명한 것 같다. 인간으로 태어나기 이전에 있었을 세계에 대한 아득한 그리움 같은 상상에 신화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래서 신과 인간의 사랑은 흥미롭다. 대구 출신인 방지언 작가의 장편소설 '큐피드 아홉 개의 성물'을 단숨에 읽게 되는 이유다.

방지언은 휴먼판타지 장르에 뛰어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서울예대 극작과 재학 중에 대중가요 작사가로 데뷔했고, 현재 드라마 작가로 활동 중이다. 2017년 초에 발행된 이 책을 봄에 읽고, 이 가을에 다시 읽는 데도 재미있다. 고미술품을 둘러싼 판타지 미스터리로 인간 세상으로 쫓겨난 큐피드가 신들이 준 아홉 가지 미션을 완수해 가는 이야기다.

소설의 주인공은 서울에서 태어난 스물아홉 살의 현이경으로 여덟 번째로 환생한 사랑의 신 큐피드다. 그는 성물을 찾는 미션 수행 과정에 피할 수 없는 위험에 직면하게 되고, 위기의 찰나에 괴한의 정체를 스캔하며 오로라에 감싸져 안전한 곳으로 이동된다. 이렇듯 신의 보호를 받으며 이경이 다섯 번째 성물을 찾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현이경은 여섯 번째 성물을 찾기 위해 떠난 파리에서 가이드 윤승지를 만난다. 이후 이경은 인간에 대한 심적 변화를 경험한다. 신(神)이지만 인간관계의 인간적인 고뇌를 어쩌지 못한다. 또, 승지라는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천상으로의 귀환을 앞둔 이경의 꿈을 흔든다.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소멸이냐, 영원이냐. 다른 경우의 수는 없었다.'-403쪽-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없다. 인간으로 살고 있기에 '이경은 슬펐다.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슬펐다.'-252쪽- '완전한 소멸은 그만큼의 추억을 필요로 한다.'-253쪽- 마지막 미션을 완수해야 하는 인간 삶의 마지막 밤, 이경은 신의 위엄과 인간의 사랑 사이에서 갈등한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사랑을 상기시키는 이경의 선택에 가슴이 뻐근해진다.

"네가 겪고 있는 모든 고통은 너로부터 발아되었고 너로부터 날개를 달았어."296쪽- 고개를 끄덕인다. 내 인생은 나의 의식(意識)이 엮어 간다. 소설의 끝, 하늘로 아득히 솟구쳐가는 나비를 바라보던 모자(母子)를 떠올리며 산소에서 사라진 나비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나비야, 나비야. 이 책은 잠자는 상상력을 깨운다. 아득히 높은 가을 하늘을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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