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해의 엔터 인사이드] 단막극이 다시 뜬다

입력 2017-10-20 00:05:04

JTBC
JTBC '알 수도 있는 사람'
KBS
KBS '만나게 해, 주오'
생동성 연애
생동성 연애

회생이 어려울 듯했던 방송사 단막극 제작이 최근 들어 활성화돼 눈길을 끈다. 한때 광고가 붙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청률을 올리는데 한계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드라마 시장에서 밀려나기도 했던 게 사실. 하지만, 최근에는 플랫폼이나 편성 방식을 다양하게 변주하며 살길을 찾아 호응을 얻고 있다.

끊임없이 단막극 제작에 의지를 보였던 KBS가 올해도 '드라마 스페셜'이란 이름으로 10편의 작품을 하나씩 꺼내 보여주고 있으며, tvN도 12월부터 '드라마 스테이지'라는 타이틀로 10편의 단막극을 차례로 선보일 예정이다.

JTBC는 웹 드라마 형태로 꾸준히 신작을 공개하고 있으며, '드라마 페스타'라는 타이틀로 방송용으로 재편집해 채널에도 편성하고 있다. 앞으로도 웹 드라마와 채널 편성용 단막극을 꾸준히 기획하겠다는 뜻을 드러내기도 했다. MBC 역시 최근 단막극을 재방송해 파업으로 생긴 콘텐츠의 공백을 메우고 기대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1980년대, 단막극의 전성기

방송사의 단막극 제작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졌던 시기는 1980년대다. 1980년대 초부터 KBS가 'TV 문학관'이란 타이틀로, MBC는 1983년부터 '베스트셀러 극장'이란 이름으로 매주 단막극을 편성했다. 각 작품의 완성도나 재미에 따라 시청률이나 호응도의 편차가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양대 지상파가 매주 한 편씩 야심 차게 준비해 선보인 단막극들은 '안방극장 전용 영화'처럼 인식되며 큰 인기를 누렸다. 장기전 형태로 방송되는 연속극이 주를 이루던 시절, 단막극은 시청자들에게 TV 드라마의 새로운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신선한 포맷이었다.

방송사의 입장에서는 신인 작가를 발굴하고 자사 소속 PD들의 연출력을 평가할 기회로 단막극을 활용할 수 있어 유용했다. 이미 메인 연출자나 작가로 자리 잡은 이들도 단막극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하며 자신들의 역량을 실험할 수 있어 좋았다.

198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지상파에서 미니시리즈 형태의 드라마가 제작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드라마 시장의 주류로 떠올랐다. 미니시리즈는 길게 늘어지는 연속극에 비해 간결하고 집중도 높은 전개와 연출을 할 수 있어 제작진으로서 완성도에 대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시청자들로서도 연속극과 단막극의 장점이 잘 결합한 미니시리즈는 충분히 만족스럽게 받아들일 만한 포맷이었다.

연속극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미니시리즈의 확산은 드라마 광고시장의 흐름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으며 한편으로 단막극에 몰리던 수요층을 와해시킨 원인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물론, 미니시리즈의 인기 때문에 단막극이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고 단정하는 건 문제가 있다. 1980년대 초반부터 매주 지속했던 단막극 제작으로 인해 방송사가 소재 고갈 현상을 겪기도 했으며 관성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는 일도 있었다.

시들해진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KBS와 MBC는 타이틀을 바꿔 환기를 시도하며 단막극의 인기를 이어가려 노력했다. 그 목적으로 KBS는 1987년께 'TV문학관'이란 타이틀을 '드라마 초대석'으로 바꾸고 붐업을 노렸다. 하지만, 사실상 'TV문학관' 시절과 같은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그 뒤로는 주간 단위의 고정적인 편성이 아닌, 말 그대로 '스페셜'과 같은 느낌으로 단발성 또는 기획성 편성으로 단막극을 선보이고 있다.

MBC는 1989년에 '베스트셀러 극장'을 종영하고서 1990년대 초반에 다시 '베스트극장'이란 타이틀로 단막극을 부활시켜 2000년대 중반까지 정기 편성을 유지했다. 주간 단위 정기 편성을 KBS보다 좀 더 오래 끌고 간 셈인데 그래도 결국은 저조한 시청률 등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이 포맷을 포기해야만 했다. 이후로는 비정기적인 형태로 단막극을 선보이고 있다.

◆새로운 활로 찾고 기사회생

'비정기적인 형태'로 제작이 이뤄진다는 건 사실상 단막극이란 포맷 자체의 명맥이 끊어졌다는 말과 같다. 간혹 완성도와 재미를 갖춘 단막극이 나와 화제가 된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프로그램이 가진 화제성과 시청률을 기반으로 광고 영업을 하는 방송사에서 일회성, 또는 길어봐야 2~4회 안에 종영하는 단막극을 들고 광고주에게 어필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16회 정도를 미니시리즈에 가장 알맞은 회차로 정의하고 있는 이유 역시 지속성에 따른 화제성 상승 등을 목표로 광고 매출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인데 그래서 단발성 편성으로 끝나는 단막극은 시장에서 환영받을 수가 없다.

그래서 단막극은 신인 발굴 등 미래를 도모하는 차원의 투자 개념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최근에는 방송사 단위에서 나름대로 리스크를 최소화할 방법을 찾으면서 다양한 단막극을 만들고 있으며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는 케이스까지 늘어 고무적이다.

한 예로, 지난 9월 방송된 KBS의 1회 분량 단막극 '드라마 스페셜-만나게 해, 주오'는 일요일 밤늦은 시간임에도 전국 시청률 4.5%를 기록했다. 채널 수가 많아지고 경쟁이 치열해져 프라임타임대 미니시리즈가 10%를 넘어서기 쉽지 않은 현실 속에서 주말 심야에 편성된 단막극이 5%에 육박하는 성적을 올렸다는 건 주목할만한 일이다. 모던보이와 모던걸이 활개치던 1930년대 일제강점기 경성에 결혼정보회사가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재기발랄한 로맨틱코미디를 완성해 호평을 받았다. 일요일 심야에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 스페셜'은 '만나게 해, 주오' 외에도 '우리가 계절이라면' 등을 4%대 선상에 올려놓으며 호응을 얻고 있다. 추석 연휴 기간에도 '드라마 스페셜'의 하나로 '정마담의 마지막 일주일'과 '강덕순 애정변천사' 등 두 편의 단막극을 내보내 완성도 면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웹 드라마는 말 그대로 온라인을 기반으로 공개되는 드라마를 말한다. 포털사이트를 비롯한 온라인 상의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서비스되며 주로 10분 안팎으로 짧게 회차를 나눠 모바일로 부담없이 감상할 수 있게 하는 게 특징이다. 플랫폼의 특성상 젊은 층에 어필할만한 내용이 주를 이루며 아이돌 가수를 비롯해 젊은 스타들이 출연한다. 톡톡 튀는 설정과 연출, 기발한 아이디어가 눈에 띄는 작품이 많아 온라인 공개 후 채널에 편성돼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최근 MBC는 2월에 한 차례 공개했던 웹 드라마 '세 가지 색 판타지' 시리즈 중 '생동성 연애'를 채널에 재편성해 4%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자체발광 오피스' '아름다운 당신'의 박성훈 PD가 연출을 맡고 영화 '감기'의 박희권 작가, 그리고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집필한 박은영 작가까지 투입된 실험적 시도가 돋보인 작품이다.

JTBC도 드라마 극본 공모 당선작을 웹 드라마로 만들어 선보이고 있다. '알 수도 있는 사람' '힙한선생' '어쩌다 18' '마술학교' 등의 작품을 네이버 TV를 통해 공개했고 '막판로맨스' 등 새로운 작품을 라인업에 추가하고 있다. 지난 추석에는 '알 수도 있는 사람' '힙한선생' 등의 작품이 TV 방영에 걸맞게 편집돼 '드라마 페스타'라는 타이틀로 편성되기도 했다. 각 작품마다 소녀시대 수영, 샤이니의 민호, 이원근, 이유비, 안우연 등 젊은 스타들이 대거 캐스팅돼 주목도를 높였다. 톡톡 튀는 소재와 위트 있는 연출에 대한 평가 역시 긍정적이다.

tvN도 '드라마 스테이지'라는 타이틀로 신인 작가들의 데뷔 무대를 마련했다. '드라마 스토리텔러 단막극 공모전'에서 선정된 10개의 작품을 단막극으로 만들어 선보인다. 단막극에 대한 투자가 결국은 국내 드라마 산업의 발전에 밑거름이 된다는 차원에서 요즘 방송사들의 단막극 제작 움직임은 충분히 반길만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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