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 할매할배의 날 확산 앞장] <3>인성교육의 출발점, 할매할배의 날에서 찾다

입력 2017-10-18 00:05:01

빌 게이츠·오바마 만든 조부모 '무릎·밥상 교육'

경상북도는
경상북도는 '할매할배의 날'의 인식을 넓히기 위해 인형극을 제작해 공연하고 있다. 경북도 제공
지난 7월 영덕 병곡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밥상머리 체험교육을 받고 있다. 경북도 제공
지난 7월 영덕 병곡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밥상머리 체험교육을 받고 있다. 경북도 제공

"인성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경상북도는 이 같은 인식으로 '할매할배의 날'을 정해 가정, 학교, 지역사회와 소통'연계해 나가고 있다. 여성단체 및 종교단체를 포함한 여러 기관과 업무 협약을 맺었고, 교육부의 인성교육 5개년 종합계획에 반영돼 성품과 역량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가정에서의 인성교육 실천을 바탕으로 새로운 교육의 장을 열고 있는 것이다.

◆미래사회 인재상, 할매할배의 날 인성교육으로 출발

우리 교육은 늘 사람다운 사람이 우선이었다. 인성을 기반으로 지식, 기술, 창의성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 우리 교육의 변하지 않는 목표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입시 경쟁에 밀려 인성교육을 등한시한 결과로 청소년 폭력이나 자살과 같은 문제들이 심각해지면서 최근 인성교육의 기반을 다시 다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산업사회에서는 표준 지식을 효율적으로 학습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후기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표준 지식만으로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고, 개인 차원에서도 청소년기에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평생 유효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 때문에 지식 자체가 아니라 평생 삶의 기반이 될 개인의 품성이나 역량에 주목하는 것이다.

미래사회의 인재는 협업이나 의사소통 능력 등의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은 인성교육으로 출발한다. 즉 인성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 미래 교육의 핵심이다.

경북도 관계자는 "배려나 관용과 같은 인간관계 덕목을 중시하고 가치 덕목이 무엇인지 배우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이를 실천해 낼 수 있는 역량까지 연계해 교육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라고 했다.

◆왜 할매, 할배의 '무릎학교'가 필요한가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부모의 자식 사랑에 대해서는 엄격한 제한이 있었다고 한다. 공자의 아들 교육에 대한 '과정'(過庭), 맹자의 '역자교지'(易子敎之)와 같이 절제되지 않은 부모의 자식 사랑이 갖는 위험성을 경계했다. 그러나 현대사회가 핵가족화되면서 제한이 없어졌고 부모의 절제되지 않은 사랑은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

얼마 전 자식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 즉 앞으로 겪어야 할 경쟁과 이를 위한 지원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아이를 안고 아파트 창밖으로 뛰어내린 극단적인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또한, 자녀의 경쟁에서 한 발이라도 우위를 점하기 위해 시간적'공간적으로 철저하게 통제하는 소위 '헬리콥터 맘'이라 부르는 엄마의 존재나 '조부모의 재력과 아버지의 무관심, 그리고 엄마의 정보력이 아이의 학력을 결정한다'는 말은 정보화 사회의 노동의 감소에 따른 취업 경쟁에 내몰린 현대사회 자녀 교육의 병폐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 전통사회의 가정교육에서는 조부모의 역할이 매우 컸다. 조부모가 손자, 손녀의 배변 습관부터 옷 입기, 밥 먹기, 동요 등을 가르치는 교사 노릇을 담당했다. 아이들이 조부모의 무릎 위에 안기거나 그 둘레에 모여 앉아서 받는 교육을 '무릎학교'라고 일컬었다. 이처럼 조부모는 무엇보다 가정에서 손주에 대한 인성교육을 잘할 수 있다.

조부모가 몸소 보이는 행동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일상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을 통해 조손 관계도 좋아지고 아이들의 인성 함양에도 도움이 되는 이중효과가 있는 것이다. '마땅히 가훈을 알렸는가? 그것은 귓속에 있다'는 말처럼 어린 시절 할매, 할배에게서 들은 수많은 이야기는 손주의 귓속에 남아 필요할 때마다 툭툭 튀어나온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교육이며, 아이들은 할아버지나 할머니로부터 세상을 살아가는 예절과 지혜, 가문의 전통을 배우는 것이다.

◆격대교육 힘, 빌 게이츠와 오바마를 만들다

격대교육(隔代敎育)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손자, 손녀를 맡아 함께 생활하면서 부모 대신 교육시키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격대교육은 서양에서도 발견된다.

쉽게 말하면 부모보다 조부모를 통해 가르침을 받는 것을 말한다. 서구에서도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손주 교육에 열성적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창업한 빌 게이츠 역시 외할머니가 키운 '독서 영재'였다. 자서전 '게이츠'에는 외할머니와 보낸 어린 시절이 자세하게 묘사돼 있다. 외할머니는 늘 과자를 만들어 놓고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곤 했으며, 외할머니로부터 배운 게임은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일이라기보다는 기술과 지능을 계발하는 계기가 됐다. 또한 외할머니는 늘 책을 읽어주셨고 덕분에 빌 게이츠는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는 독서광이 되었고, 세계적인 회사의 창업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 첫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를 키워 낸 것도 조부모의 교육이 있었기 때문이다.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오바마는 외조부모와 함께 살았으며,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이 여전했던 미국에서 손자가 피부색 때문에 상처받지 않도록 사랑과 정성을 다해 키웠다. 한때는 마약에 손대며 방황한 오바마가 대통령이란 자신의 꿈을 이루게 한 것 역시 청소년 시절 조부모의 가르침 덕분이었다.

◆할매할배의 날 격대교육과 인성교육

아동은 성장 과정에서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아야 하며 적절한 외부의 도움과 보호가 필요하다. 언어를 익히고 생활습관도 배워야 하고,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한다.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드는 아동의 성격은 0세에서 5세 사이의 행동발달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이가 태어나서 스스로 몸을 움직이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육아의 골든타임이다.

최근 맞벌이 가정이나 경제적 사정 등의 이유로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데는 한계가 있으며, 육아도우미의 도움을 받는 것도 선뜻 마음을 낼 수가 없다. 따라서 시간적 여유가 있는 조부모들이 젊은 부모를 대신해 손주 양육에 나서게 된 것이다. 예로부터 격대교육은 훌륭한 가정교육의 수단이자 인성교육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졌었다. 격대교육의 전통을 살리고 미래세대의 교육을 위해 경북도는 매월 마지막 토요일 손주가 부모와 함께 할매, 할배를 찾아가는 날을 제정했으며, 섬김'봉양의 어버이날, 노인의 날과 다르게 만남과 소통으로 가족 공동체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지식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지혜까지 가르치는 격대교육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경북도는 노인복지관 등 집합교육과 경로당 방문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실제 3대 가족 간 식사를 하면서 그 속에서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의 '식시오관'(食時五觀) 정신을 배워보는 '밥상머리 교육'과 손주 세대의 문화와 대화법, 휴대폰 사용법 등 손주를 만났을 때 활용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된 '손주맞이 조부모교육' 등 교육 대상의 다양화와 방법의 다각도를 통해서 격대교육을 접할 수 있게 했다.

권영길 경북도 복지건강국장은 "대구시'경북도교육청과 연계해 조손이 함께하는 체육경기를 비롯해 행사, 대회 등 다양한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면서 "조손 관계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보고 격대교육의 전통을 되살리기 위해 '노인이 스승이다'를 발간해 퇴색된 조손 관계를 회복하고 격대교육의 역할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