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250년 전 경제적 사고

입력 2017-10-17 00:05:01

14년 전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아들과 친구의 딸을 데리고 호주 멜버른에 살던 친구 집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 가 본 멜버른의 도시 풍경은 너무나 생경했고 사람들의 생활습관과 문화도 우리와 많이 달라 나에겐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15일 후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그곳에 사는 친구 아들의 생활태도였다. 또래였던 친구 아들과 두 명의 아이가 더해지면서 집 안 분위기는 시끌벅적 어수선해졌고 신발들은 번잡하게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친구 아들에 의해 현관 앞 신발들은 가지런히 정리됐고 집 주위 정원에 떨어진 휴지와 바람에 날려온 낙엽들은 뛰어놀다가도 청소됐으며 주방 및 거실에 쌓여가는 생활쓰레기는 넘치는 때를 놓치지 않고 비워지고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고 기특하여 어쩌면 친구 아들은 부모를 돕는 심성이 이렇듯 따뜻하고 부지런한지 친구의 가정교육을 칭찬한 적이 있었다. 그때 친구는 이 모든 일이 매주 주는 용돈의 대가라고 얘기하며 웃었다. 아이도 한 가정의 일원으로서 최소한 용돈에 상응하는 노동은 해야 한다는 논리였고 호주 아이들은 모두 그렇게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그때만 하더라도 나는 물론 대부분 한국 엄마들은 매주 정해진 용돈을 대가 없이 주면서 얼마 주는 것이 합리적인 금액인지만 서로 공유하고 있었다. 호주를 다녀오고 난 이후 우리나라 아이들에게도 어릴 때부터 노동의 대가와 생활 속 경제적 사고의 중요성을 가르쳐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경제교육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내가 장기에 유배가 있을 때 주인 성(成)모 씨는 겨우 다섯 살 된 어린 손녀에게 뜰에 앉아 소리를 질러 병아리를 몰고 가는 솔개를 쫓게 하였고 일곱 살짜리에게는 긴 막대를 손에 들려 참새떼를 쫓게 하였다. 이처럼 한솥밥을 먹는 모든 식구들에게 각자의 임무를 맡도록 하였으니 이 점은 본받을 만하다. 늙은 할아버지는 칡으로 노끈이라도 꼬고, 늙은 할머니는 이웃집에 마을갈 때도 실꾸리를 들고 실 뽑는 일을 놓치지 않는 그런 집안은 반드시 먹을 게 충분하게 마련되고 가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조선 정조 때 실학자로 알려진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지에서 아들들을 걱정하며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지난 긴 추석 연휴에 사두고 읽지 않은 책을 꺼내 읽으면서 이미 250년 전 우리 조상은 이렇듯 노동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생활 속 경제적 사고로 지혜롭게 살아왔는데 그것도 모르고 14년 전 호주에서 그것을 깨닫고 돌아오다니 정말 한탄스러운 일이었다.

이제 22살이 된 아들은 공익근무 중이다. 매주 일요일 집 안 청소와 쓰레기 분리수거 후 버리는 일을 지금까지 열심히 하는 대가로 나는 학원비를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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