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한길만 달려왔다<7>…제3회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 특선-이헌원

입력 2017-10-10 13:37:49

제8부 중고차 수출

1. Kami Trading

6월 말쯤인가 필리핀에서 이웃해서 살았던 김창득씨가 한국으로 일시 귀국하였다는 전화가 왔다. 나를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 집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는 부평역에서 택시를 타고 나의 아파트로 찾아왔다.

"왜 이렇게 놀고 계십니까? 세부에는 지금 중고차 사업이 막 벌어지고 있는데 자동차를 잘 아시는 사람이 이 사업을 하면 잘 할 것이니 어디 나와 함께 사업을 해보지 않겠습니까?"

"뜻은 고맙습니다만 장사란 해 본 일이 없는 사람이니 나서기가 어렵군요."

"아닙니다. 저와 협력을 하면 좋은 사업을 이어 갈 수 가 있을 것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그는 지금 카미 상상(Kami Trading Co) 라는 회사를 설립하였고 자동차 공장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의 자기 장인이 차를 보내주고 있는데 차를 잘 모르시는 분이라서 애로가 많다는 것이다. 그 일을 내가 하면 아주 적임자로 생각되어 찾아왔다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일을 하지 않겠다는 맘을 가지고 있는 때라서 섣불리 나설 수가 없었다. 만일 다시 실패하는 일이라도 생기면 거리에 나가 앉을 판이니까.

김창득 그 사람은 지금 중고 자동차 사업을 하는 방법을 설명하여 주면서 몇 군데 폐차장을 같이 가보고 자기 장인도 만나 볼 것을 권유하여왔다. 그래 한 번 알아나 보자는 심산으로 그가 안내하는 데로 포천에도 가보고 마산에도 가서 거기서는 장인어른도 만나보았다.

록스타(Rocsta)란 지프차를 보았다. 김씨는 이 차를 해체하여 컨테이너에 싣는 방법을 설명하였다. 필리핀에서는 그것을 재조립하여 판다는 것이다.

김씨는 우리 집에서 며칠 지냈다. 사업 계획서를 만들기 위해서 조사할 사항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 두 사람은 하나하나 차근차근히 조사해서 사업 계획서를 작성하는데 성공하였다.

우선 록스타 한 컨테이너를 실었다. 폐차장에서 차는 내가 주도적으로 점검하여 골랐다. 차 값이나 모든 경비는 일단 내가 다 부담하였다. 그리고 컨테이너가 세부에 도착할 때를 맞추어 나는 필리핀에 출장을 갔다. 그가 하는 통관 일부터 시작해서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해 보는 것이다.

김창득씨 집에서 머무르면서 하나하나 진행사항을 지켜보는 것이다. 그의 차에 동승해서 움직이니까 그의 동선이 파악되었다.

공장 크기는 이백 평정도 되는데 나대지이고 건물을 아직 짓지 못하였다. 비가 오니 자주 작업이 중단되었다. 작업자는 네 사람이고 모두 수공구로 작업하고 있다. 장비라고는 에이 후렘(A Frame)에 체인 블록(Chain Block)을 걸어 놓은 게 전부이다. 가끔 지게차를 불러서 쓰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작업을 해내는가) 의문이 든다. 이제 막 시작하는 모양 같다.

통관을 무사히 할 수 가 있을 것인지 걱정하는 모습이 역력하였는데 용케도 통관 수속을 마치고 공장으로 컨테이너가 들어왔다. 지게차를 부르고 일당 작업자를 네 명을 더 채용해서 하역 작업을 시작하였다. 램프(Ramp)가 없으니 지게차가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 갈 수가 없고 거저 체인이나 밧줄을 걸어 당겨내는 게 고작이다. 열악한 가운데에서도 재조립을 한 대씩 완료하여 갔다. 공장으로 와서 차를 사가는 사람도 더러 있다.

한국 업체 세 군데가 있었다. 김씨가 안내하는 대로 그런 공장들을 둘러 보았다. 그 중 펨코(Phemco)라는 회사에서는 프라이드 엔진을 전시해 놓은 것을 보았다. 모두 다 영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제 막 시작이니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리라.

김씨는 자기가 아는 사람들을 여러 명 인사시켜 주면서 자신의 역량과 사업을 전개하여 나갈 방도를 보여주려 애썼다. 그 중 에이치 알(HR)이라는 택시 회사도 방문하였는데 사장 라미레스(Ramirez)는 프라이드 부품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였다. 폐차장에서 프라이드를 해체하여 엔진을 위시한 부품을 보내주면 좋은 사업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세부에 와서 한 열흘간 조사한 바를 정리하여 보니 확실히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되었다. 그런데 김창득씨는 운전자본이 턱 없이 부족하였다. 그는 한국에서 자본을 만들 때까지 당분간은 한국에서 발생하는 경비는 모두 내가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외상거래는 어지간히 신뢰하는 사이가 아니면 할 수 없다. 그는 자금 회수 기간을 한 달로 잡았다. 곧 컨테이너가 세부에 도착한 날로부터 한 달 후에 대금 정산을 해 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나에게 컨테이너 당 2백만을 이익금으로 계상해 주겠다고 제안하였다. 나에게는 적지 않은 수입이다.

우리는 한국 내 집에서 작성한 사업 계획서를 수정보안 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합의문을 작성하여 각각 서명하였다. 귀국 하여 나는 과감히 회사를 설립하였다. 사무실 주소가 내가 거주하는 아파트이다. 그래서 집에다 사용중지 시켜 놓은 전화를 설치하여 팩스 전용으로 하였다. 명함도 만들었다. 첫 선적작업을 진행한 인천 원창폐차장을 중심으로 록스타를 구하기 위해서 분주히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시험선적 하였던 첫 컨테이너의 결제 대금이 들어왔다.

김씨는 합의문 약속을 지켰다. 차종도 다마스나 라보 같은 소형트럭의 주문도 보내왔고 포천에서 가서 본 건설폐자재도 함께 실어 달라는 주문을 보냈다. 그와 주문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보내주려고 애를 썼다. 2차, 3차 대금결제도 약속대로 받았다.

이번에는 프라이드를 해체해서 엔진이나 부품을 보내달라는 주문이 왔다. 이 작업을 위해서는 폐차장에 입주를 해서 작업장소를 제공 받는 일이 선결 문제였다. 여러 폐차장을 돌아다니면서 물색한 결과 부천의 남영폐차장과 인연이 닿았다. 작업자도 필요하였는데 대우자동차 엔진부에서 같이 근무하였던 김호민 씨를 수소문 끝에 찾았다. 찾고 보니 그는 이웃 금호 아파트 단지에서 살고 있었다. 나보다 두 살 위인 그도 지난해에 정년퇴직 하였고 마땅한 일자리를 찾던 중이었다. 김호민씨는 대우자동차 명장이 된 첫 번째 인물이다. 내 예상은 아주 적중하였다. 프라이드 차량을 갖다 놓고 하나하나 해체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는 명장답게 작업을 잘 진행하였다. 이것뿐이 아니라 록스타나 다마스(Damas)같은 차량의 해체나 싣는 방법을 남영작업자를 진두지휘 하면서 찾아내었다.

세부 김 사장이 마산 폐차장에 가서 프라이드를 해체하여 선적 해달라는 요구사항이 있어서 난 김호민씨를 마산으로 출장 보냈다. 마산폐차장에서는 프라이드 30대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세부 김사장의 장인이 마산폐차장 사장과는 잘 아는 사이라서 업무 협조가 다른 폐차장에 비해서 아주 잘 되는 편이었다.

작업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 나는 마누라와 함께 마산으로 갔다. 그 떄 마누라는 푸석푸석 아픈 몸이었지만 큰 딸이 보내준 경주 힐튼 호텔 숙박권이 있었으므로 기분 좋게 따라 나섰던 것이다. 김호민 씨는 작업을 아주 깨끗이 마치고 있었다. 이 사람이 일을 참 깔끔이 하였다고 폐차장 주인이 칭찬해 주었다. 아침부터 컨테이너에 싣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여기서도 김호민씨는 작업자들을 진두지휘하면서 선적작업을 정말 착오 없이 잘 진행하였다. 저녁 좀 늦은 시간 컨테이너는 부산항으로 떠났다. 김호민 씨에게 저녁 식사비를 넉넉하게 주면서 오늘 하루 수고한 작업자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술 한 잔 하도록 일러두었다. 다음 일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해서 작업자나 마산폐차장 주인과의 유대 관계를 돈독하게 해 두는 것이다.

한편 필리핀 김 사장에게서 송금이 들어오지 않는다. 마산폐차장에서 실었던 컨테이너에 대한 대금이 들어오지 않는다. 여기에 차량 이외에 30대의 프라이드 해체 부품이 들어있기 때문에 액수가 앞서 보낸 것의 두 배가 넘는다. 필리핀 김사장에게 전화를 해 보았다. 차량과 부품판매가 부진하여 송금을 못했으니 한 열흘만 기다려 달라고 하였다. 다음에 보낼 컨테이너도 이미 작업준비가 다 되었는데 이것을 예정대로 실어야 할지 중단해야 할지에 대하여 물었더니 그는 "나를 믿고 실어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의심 않고 실었다. 그러나 불안한 마음은 지울 수가 없다.

2. 아내의 발병

한편 2000년 12월 18일 아침밥을 지으려 부엌으로 나갔던 아내가 방으로 들어와서 다리가 아프다면서 펄썩 주저앉았다. 왼쪽으로 뇌경색이 온 것이다. 염려했던 바가 현실로 다가 온 것이다. 이제 막 중고차 수출일을 시작하였는데 마누라는 덜컥 병이 나 버렸다.

약속한 열흘이 지났지만 송금이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또 전화를 하였더니 먼저와 같은 대답이다. 마누라를 병석에 눕혀 놓고 떨어질 수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불안해서 그대로 있을 수가 없어 필리핀 출장을 갔다. 김사장은 판매가 급격히 줄어들어서 돈을 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공장에 가 보니 차량 재고가 많았다. 창고를 좀 넓혔고 작업장으로 쓸 가건물을 담을 의지해서 지었다. 그런 점은 달라져 보였으나 아직 내 눈에는 미흡하게 보인다. 왜 차가 잘 팔리지 않느냐? 에이치 알 택시(HR Taxi)에서는 프라이드 엔진을 왜 사가지 않았느냐 등을 물었으나 별 신통한 대답이 없다. 혹 다른 업체에서 가격을 내려 팔고 있지나 않은지에 대해서도 김사장은 아는 바가 없었다. 난 그를 앞세워 시내 다른 세 곳의 매장을 둘러 보고해서 판매 추이도 알아보았다. 팔고 있다는 가격은 4개월 전에 알아보았던 것과는 별 차이가 없다.

나는 김사장에게 차량이나 부품원가를 계산해 보았느냐고 물었으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원가계산을 한번 해보자고 하였더니 그렇게 하자고 하였다.

나는 통관비, 컨테이너 운송비, 하역비, 재조립 인건비, 부자재 등 재료비, 노무비, 경비 등을 분류해서 원가를 산정하였다. 내가 계산한 원가를 보고 자기 예상과는 달리 좀 높은 것이라고 김사장은 언급하였다. 김사장은 서로가 믿지 않으면 안 되니 한 번 더 자기를 믿어 달라는 얘기를 하였다.

"저는 자동차 만드는 일에 평생을 바친 사람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개선점을 말씀 드릴 터이니 아무 생각 말고 따라 주십시오"

아무리 작은 공장이라고 하여도 래이아웃(Layout)이라고는 말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주 작업장, 컨테이너 하역장, 간이 램트(Ramp) 제작 등에 대해서 조언을 해 주었다. 이것은 서로를 위하는 길이라고 하면서, 그는 운영자금의 부족을 느낀다고 하면서 한국에서 돈을 융통하여 밀린 대금을 정산해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나는 짬을 내어 바칼소를 만나 보았다. 그는 여전히 트란스팜에 근무를 하고 있었다. 자기 회사 사정이 말이 아니라고 하였다. 나는 카미 상사(Kami Trading)에 중고 자동차와 부품을 보내고 있다고 말하였더니 바칼소는 잘 시작하였다고, 전망이 좋을 거라고 격려를 하여 주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미심쩍었다. 김사장은 자동차를 잘 모르고, 자금력도 없고. 지금 공장도 너무 좁고, 판매매장을 별도로 갖지 못했고……, 등등 그러나 한 번 더 믿기로 하고 돌아왔다. 대금은 들어와 있었다. 마누라를 병원에 입원시켜놓고 오래 떨어져 있을 수가 없어서 나는 일주일 만에 돌아왔다.

나를 본 아내는 울기 시작했다. 간병인이 며칠 전부터 울기 시작하였다는 말을 한다.

"여보! 울지 말어! 내가 필리핀 출장 갔다 오느라 곁에 없어서 미안해요 여보, 이젠 내가 곁에 있을 테니까 울지를 말아요."

그러나 마누라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왼쪽이 움직이지 않으니까 자신이 비참한 모양이다. 나는 아내의 눈물을 두 번 기억하고 있다. 그 첫 번째는 신혼 초 대구 데이트를 마치고 시골 자기 집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새 신부는 헤어지기가 싫어서 눈물을 펑펑 쏟아내었던 것이다, 곱고 고았던 모습이고 두 번째는 둘째가 익산 큰 딸 옆에서 어린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갈 앞 일이 슬퍼서 눈물 한 줄기를 주르르 흘러 내렸던 일이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내가 해 줄 일은 이제 아무것도 없다" 하였다. 그 뿐 아내는 절대 우는 일이 없었다. 아내의 눈물샘을 말라 버리게 한 것은 전적으로 내 잘못이다. 나는 밤에는 아내 곁을 지키면서 밤을 새워야 했고 낮에는 일을 하는 고달픈 신세가 되었다. 세부 김사장을 믿고 또 한 컨테이너를 띄웠다. 두 컨테이너 대금이 물러 있음에도 불구하고 판매가 순조로우면 대금결제를 해 줄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다음 컨테이너는 일단 중단하고 대금결제가 되면 재개하기로 맘먹었다. 김호민씨에게는 미안하였지만 사정을 설명하고 다음 수출물량을 확보할 때까지 좀 쉬도록 양해를 구했다. 2월이 넘어가도 대금 결제가 없다. 여러 번 독촉전화도 해 보았지만 허사이고 오히려 버럭 화를 낸다. 나는 더 이상 김 사장하고는 사업을 계속 할 수가 없음을 느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도 실패를 하면 나는 이제 끝장인가? 마누라는 아프고 돈 들어갈 일은 많은데 이대로 나는 주저앉아야 하는 걸까? 결코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바칼소가 한 말을 떠올렸다. 중고자동차사업의 전망은 밝다고 한 말을.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와 같이 그 사업을 해 보자고. 그러나 그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음으로 파트너가 될 수는 없었고 자기를 채용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필리핀 사람 자본가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하였다. 내가 단독으로 이 중고차 사업을 하는 데 필요한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하였다. 나는 생각하였다. 이미 내친걸음이다. 이제는 이 길 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고.

또 아픈 마누라를 병원에 두고 필리핀으로 떠났다. 이번엔 숙소를 에이치(HR Hotel)로 정하였다. HR택시 주인 라미레스씨도 만나 보기 쉽고 또 바칼소의 집도 가까운 곳이니까.

카미 상사에 예고 없이 들렀다. 1월 달에 다녀가고 나서 3개월 만에 다시 온 것인데 공장 모양은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런데 내가 보내지 아니 한 낯선 차들이 보인다. 김 사장은 차를 팔지 못한 사유를 내가 부품을 잘 챙겨 넣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차를 완성할 수가 없어서 그렇다는 것이라고 하였다.

"부품이 빠졌다는 말은 언제 했느냐?"라는 나의 물음에는

"내가 부품이 없다고 이야기해도 보내줄 것 같지 않아서 마산폐차장에 연락을 해서 받았다"

라는 것이다. 고성이 오갔다. 그러나 소용이 없는 일임을 알았다. 나에게 지급할 대금은 차를 팔면은 갚겠다고 하는 것이다. 예상은 한 일이지만 사람을 너무 믿어온 내 잘못이다.

3. 크러스터 상사(Clester Trading)

저녁에 HR 호텔로 찾아 온 바칼소에게 소개해 준다는 필리핀 사람의 신상을 물었다. 그 파트너 될 사람은 파르도에 살고 있는데 첫째로 부자로써 큰길가에 땅을 갖고 있으며 둘째로 그 사람의 처삼촌이 전직 세부 세관장을 지낸 사람으로 통관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딱 원했던 사람이다. 이튿날 바칼소는 나를 자기 차에 태우고 파르도(Pardo)라는 곳으로 향하였다. 가는 길은 내가 탈리사이 테니스장(Talisay Tennis court)으로 자주 갔던 익숙한 길이었다. 오른쪽 큰길가 유명한 성당을 지나 조그만 골목길로 접어 들었다. 한 집에 이르러 열려있는 문 안의 마당으로 들어가서 문간방에 자리를 잡았다. 조금 있으니 주인이 낮잠을 자고 있었던 모양으로 부스스한 얼굴로 나타났다. 바칼소가 나를 소개를 한다. 내 명함을 건넸더니 그는 안방으로 들어가서 그의 명함을 갖고 나와서 나에게 준다.

클러스터 상사 매니저 아이크 사몬테(Clester Trading Company Manager IKE Samonte)

첫 인상은 아주 호인이다. 이런 사람이 이 장사를 잘 할 수가 있을까? 하는 의문부터 든다. 바칼소가 말하기로 이 사람은 일제 가전품을 들여와서 판매를 하고 있으며 가끔 일제 중고차도 팔아본 경험이 있는 자라고 하였다.

처삼촌 되는 사람이 전직 세관장을 지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한다. 한국에서 "내가 자동차부품이나 자동차를 컨테이너에 실어 오면 통관에 아무 문제가 없는가"라고 두 번째 질문을 하였더니 역시 그렇다는 대답이다. 큰길가에 자동차공장이나 전시장을 지을 땅이 있는가라고 또 물어보았다. 있다고 하면서 들어오는 입구의 땅이 바로 자기 소유라고 하였다. 우리는 일단 밖으로 나왔다. 그의 땅을 둘러보았는데 전시장과 부품창고를 짓기에는 충분하다. 나는 정비공장을 차릴 장소가 있어야 하는데 다른 땅이 있느냐고 하였더니 큰 길에서 꺾어 들어간 곳에 빈 땅을 보여주었다. 좀 좁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괜찮게 보였다. 우선 조건은 충분하여 보였다. 다시 집으로 들어왔더니 이번에는 그의 부인이 외출에서 돌아와 있었다. 필리핀에는 여자가 더 똑똑하고 높은 일자리에 있는 것을 보아 왔던 터라 그의 부인하고 이야기 하면 쉽게 결론이 날 것 같았다. 역시나 내 예상은 적중하였다. 이 여자는 참 똑똑하였다. 이 여자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였다. 클러스터 상사가 자동차나 부품을 수입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갖추고 있으며 실제 수입한 실적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래서 L/C를 개설해서 거래를 해보자고 제안을 하였다. 자기들이 일본제 가전품 장사를 하고 있으나 자동차를 하기에는 자본이 모자란다고 하면서 당분간은 대리점으로 출발하고 싶다는 의사를 제의하여 왔다. 나는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며 이튿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물러 나왔다.

오는 도중 바칼소는 성당 뒤에 한 집을 방문하였는데 바칼소의 형네 집이었다. 부모님들도 이 집에서 살고 계셔서 인사를 드렸다. 바칼소의 제매가 아이크를 소개해 주었다고 함으로 이 집과도 그렇게 인연이 있는 집으로 맺어졌다.

근무를 마치고 저녁에 다시 찾아온 바칼소와 대리점 계약을 맺는데 검토해야 할 사항들을 나열하면서 따져보았다. 당장은 가능한 것이 프라이드 부품이지만 프라이드 승용차를 완성차로 가져오는 것은 불법인데 이것은 통관상 문제이다. 몇 년 전 트란스팜이 온갖 탈법을 자행하는 것을 목격한 나로써는 그렇게 생각되었다. 문제는 아이크가 얼마나 정직하며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냐는 것인데 자기 제매가 그 집 이웃에 살면서 친분을 두텁게 하고 있으니 안심하여도 좋다고 바칼소가 강조하였다. 그러면 대리점 수수료를 얼마로 책정하면 좋겠는가라는 나의 물음에는 자기는 모르겠고 아이크와 상의하면 좋겠다고 한다. 나는 마지막으로 필요하다면 너를 채용하고 싶은데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좋다고 하며 같이 일할 기회를 달라고 하였다.

나는 코트라(KOTRA)에서 받은 무역서식집을 지참하여 갔고 필요할 경우를 대비해서 몇 가지 중요한 양식을 내 노트북에다 옮겨 놓았다. 대리점 계약을 몇 번이고 읽었다. 여기서 추가 보충해야 될 사항들을 생각해 보았는데 클러스터 상사측의 책임과 의무를 이렇게 적었다.

첫째: 통관에 책임을 져야 한다. 통관비를 비롯해서 통관비와 일체경비는 클러스터가 선납하고 후에 판매대금에서 매월 말 공제한다.

둘째: 필리핀 정부에 내야 할 세금 일체는 클러스터의 부담으로 한다.

셋째: 사업을 수행해 나가는 데 있어서 간섭을 받을지도 모르는 경찰이나 세무서 등의 외부 대 관공서 업무에 클러스터가 책임을 져야 한다.

이 세 가지 조건이었고 중요한 수수료 문제는 공란으로 두었다. 밤새 계약서를 만들고 노트북에 저장하여 세부 중심가에 있는 그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그 사무실에서 프린트 해서 보여 주었다. 사몬테 부인은 주의 깊게 읽어 나갔다. 그리고 수정 보안하고 싶다는 사항을 말하였는데 조그마한 사항 들이라 나는 동의를 보내서 쉽게 수정하여 나갔다. 마지막 수수료 문제에서 그들은 심사숙고 하였다. 나는 이 여자가 제의를 해 올 때까지 기다렸다. 여기저기 전화를 해 본다. 나는 세부말(Cebuano)를 몰랐으므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세금 부분인 것으로 짐작하였다. 드디어 그녀는 제안을 하였다. 수수료는 총 판매대금의 5%를 달라고 하였다. 내 예상보다 훨씬 낮은 것이다. 나는 흔쾌히 동의를 하였고 모든 사항들을 정리하여 프린트 하였다.

아이크가 먼저 서명을 하였다. 뒤따라 나 역시 서명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자기집으로 초대하였다. 집에 가니 필리핀 전통요리들이 한 상 가득 차려져 있었다. 아이크의 부모님과 자녀들 다섯이 둘러앉으니 한 방 가득 찼다. 참으로 좋은 분위기, 화기애애하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다.

4. HR 택시로부터 엔진 수주 활동

다음 날 클러스터 사무실에서 그들 부부를 만났다. 나는 당장 수주활동을 전개하자고 하였더니 그들은 흔쾌히 승낙하였다. 먼저 HR 택시에 대해서 운행 중인 택시의 대수, 필요한 부품종류 등을 알아보자고 하였다. 내가 지금 그 호텔에 투숙하고 있지만 필리핀 파트너와 같이 가서 정식으로 인사하고 예의를 갖추어 조심스럽게 이야기 해 보자고 하였다. 거기 가기 전에 펨코라는 회사에 먼저 들러서 HR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는 지와 엔진가격을 얼마나 받고 있는 지를 알아보는 것이 먼저 할 일이라는 나의 말에 다들 동감하였다. 우리 일행은 곧 펨코로 향하였다. 아이크가 운전을 하고 나는 길을 안내하였다. 도착하니 펨코의 구 사장은 없었다. 아이크가 종업원들에게 물어서 자기들 엔진가격은 7,000페소라는 대답을 얻을 수 있었다. 상당히 좋은 가격이다. HR택시는 세부에서는 제일 큰 회사이며 차종은 기아 프라이드 햇치백이라고 하였다. 마닐라에서 프란시스코(Fransico)자동차 회사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 회사는 기아와 CKD 공급계약을 맺었고 자동차 생산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거기서 생산된 차를 사서 택시로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 프란시스코(Fransico)는 없어져서 모든 택시회사들이 곤란을 겪고 있다는 말을 IKE가 하였다. 큰 고객을 발견한 것이다. 엔진수요도 많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택시로 사용되었던 차의 엔진은 1100CC이기 때문에 에어컨을 항상 켜는 필리핀에서는 엔진의 과부하로 인하여 조기에 망가졌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가격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는 문제에는 나는 이미 대안이 섰다.

나는 아이크에게 정중하게 전화를 걸어 방문일정을 잡으라고 요청하였다. 그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하였다. 약속이 당장 이루어졌다. 막탄에 있는 그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회사경내에는 낮 시간 인데도 불구하고 택시들로 꽉 찼다. 모두 고장이 나서 수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많은 종업원들이 열심히 차량수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크를 보고 주로 고장부품이 무엇인지 물어보라고 하였다. 직업 감독자인듯한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엔진과 에어컨부품, 씨브이 조인트(CV Joint), 서스펜션 관련 부품 등의 영어 명칭이 흘러 나왔다. 공장 한 켠에 있는 그의 자택으로 들어가서 라미레스씨를 만났다. 나는 이것이 두 번째 만남인데 사몬테 부부는 처음 대면하는 것 같다. 나는 솔직히 이야기 하였다. 카미상사의 김씨 하고는 거래를 중단하고 사몬테씨와 대리점 계약을 맺었다고. 그리고 내 명함을 또 내밀면서 한국 사람 이(Korean Mr Lee)라고 하였다. 라미게스는 나를 아주 반갑게 맞이하였다. 아이크가 찾아온 목적을 조심스럽게 이야기 하였다. 아이크는 아주 깍듯이 예의를 갖추었다. 라미레스씨는 대뜸 프라이드 엔진이 대량 필요하다고 이야기 하였다. 100대 정도는 있어야 된다면서 라미레스씨는 우리를 택시계류장으로 데리고 갔다. 바닷가 가까이 넓은 장소에 햇볕만 피하도록 나지막이 지은 가건물 속에 웬 택시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라미레스씨는 여기 있는 모든 차량들이 다 엔진을 바꾸어야 한다고 하였다. 내가 대충 세어 보았는데 100대는 족히 넘어 보였다. 내가 물었다. 엔진뿐만 아니라 에어컨 부품이나 조향장치(Rack & Pinion), 등속(CV Joint)같은 부품도 필요하지 않느냐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다시 사무실로 들어왔다. 엔진가격을 물었다. 난

"7,000페소이다"

하고 단호하게 말하였다. 라미레스씨는 순간 표정이 일그러진다. 7,000페소이면 펨코나 카미에서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량으로 사려는 사람에게는 값을 낮추어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다. 이런 말이 틀림없이 나올 줄 알고 나는 이런 답변을 준비하고 있었다.

"같은 값이라도 나의 엔진성능은 이들 두 회사보다 훨씬 뛰어나다. 펨코나 카미는 한국 폐차장에서 그냥 아무 차나 해체해서 보내온 것이지만 나는 프라이드를 해체하기 전 시동을 걸고 시운전을 해 보아서 좋은 엔진 상태의 차만 골라서 내 작업자가 해체한다. 주행거리가 150,000km(100,000 마일) 이하 차량만 선별한 것이기 때문에 엔진의 잔여 수명은 훨씬 길다. 나는 이를 보증할 수 있다. 가격에 대해서는 당신 말처럼 낮추어 주고 싶지만 두 회사는 선임자이고 그들의 가격을 지켜주어야 하는 것이 같은 나라의 사람끼리 지켜야 할 상도의가 아니겠느냐? 그러나 가격은 더 내려 줄 수 없으나, 그 대신 중요한 에어컨 부품들을 위시한 부품들의 가격을 대폭 낮추어 주겠다"

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부품 가격표를 제시하였다.

나의 긴 설명을 듣고 있던 라미레스씨는 비서를 시켜 책임자를 부르는 것이었다. 책임반장인 듯한 사람을 앉혀놓고 내가 제시한 부품들에 대해서 필요성을 묻는 모양이다. 이윽고 라미레스씨는 부품가격을 얼마나 깔아(Discount)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가격표에다 50% D/C라고 과감하게 써 보였다.

라미레스씨는 대 만족을 하였다. 바로 그 자리에서 지참하고 간 노트북을 이용하여 판매계약서(Sales Agreement)를 간단히 만들고 프린트를 해서 싸인을 했다. 사몬테는 입회인(Witness)으로써 서명하였다. 납기(Delivery)는 45일이었다. 이로써 한꺼번에 100대분 부품 매매 계약을 성사시켰다. 라미레스씨는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통관한 후 컨테이너를 자기 야드로 가져다 주면 자기네들이 하역작업을 해서 바로 창고에 보관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사몬테가

"그런 제안은 고맙지만 저희들이 하역을 하여 드리기로 하겠다"

고 하여 완곡히 거절하였다. 사실 이렇게 하기까지는 나는 많은 검토를 하였던 것이다. 엔진을 7,000페소 받으면 이것만으로도 프라이드 사는 가격 200,000원에 육박한다. 나머지 부품 가격을 잘 모르기는 했지만 50%만 받아도 모두 순익이 되는 것이다. 50% D/C한 부품의 총액이 10,000페소가 넘으니 이익규모는 대충 잡아도 100%가 넘는 수준이다. 세상에 이만 한 장사가 어디 있겠는가? HR은 500대의 택시 중 정상 영업을 하는 것은 거의 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니 이번 거래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잘만 하면 2,3차 매매계약을 해 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부품 뿐만 아니라 완성차도 팔 수 있다는 전망을 가졌다.

라미레스씨의 사무실을 떠나오면서

"나는 지금 당신의 호텔(Hotel)에 투숙 중이다"

라고 하였더니 그는 잡고 있던 나의 손에다 한 번 더 힘을 주었다.

사몬테 부부를 해변가(Stuki)l로 데리고 가서 그들이 먹고 싶어 하는 해물들을 골라서 맛있는 해산물 요리(Seafood)를 즐기자고 하였다. 식사 도중 오늘 하루 의외의 성과를 이끌어 낸 나의 솜씨(?)에 대하여 그들 부부는 참으로 놀라워하였다. 나는 당신네들 부부의 도움이 컸다고 오히려 그들에게 공을 돌렸다. 이제는 사전에 준비해야 할 사항들을 짚어 나갔다. 내가 먼저 제의하는 것보다 그들 부부가 먼저 말을 하도록 기다렸다.

통관문제는 전량 부품이니까 별 문제가 없다고 하였다. 다만 통관비를 최소화 하는 것에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하였다. 하역할 장소, 지게차, 사람, 그리고 엔진을 저장할 야드, 부품창고 등을 미리 준비할 사항으로 거론하였다. 구체적 실천계획을 세우기 위하여 내일 아침 일찍 파르도에 가기로 하고 헤어졌다.

호텔로 돌아온 나는 참으로 감사한 마음을 부처님께 올렸다. 좋은 인연으로 만나 서로에게 좋은 일을 하며 부처님께 복 짓는 일이 되도록 간절한 발원을 하였다.

그리고 호텔 내 수영장에 나가 수영을 즐겼다. 마누라 병간호에 지친 몸을 풀어주는 것에는 이 수영만큼 좋은 것이 없을 것이다.

아침 일찍 체크아웃(Check out)을 하였다. 프런트 직원이 라미레씨의 지시가 있었다면서 하루 분의 숙박비를 감해 주었다고 하였다. 직원에게 전화를 부탁했더니 곧 라미레스씨와 통화가 이루어졌다. 난 감사하다고 말을 하였고 45일 후인 6월 중순에는 다시 와서 좋은 엔진을 싣고 오겠다고 하였다. 그는 한 가지 덧붙였다. 엔진에는 CP (Certificate of Payment)가 있어야 하는데 아이크에게 빨리 끝낼 수 있도록 부탁하라고 하는 것이다.

파르도에 가서 아이크를 마지막으로 만났다. 그는 지게차를 가지고 있었고 운전도 잘 한다고 하였다. 부품보관창고에 대해서 나는 대략 도면(Sketch Drawing)을 그려 주었다. 그리고 엔진 씨피(Engine CP)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는데 최단기간 내에 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였다. 사몬테 부인이의 의견을 말하였는데 선적하기 전에 엔진 번호(Engine Stencil)을 탁본하여 DHL로 보내주면 미리 일을 착수할 수 있다 하였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였고 자주 전화를 하자고 말하였다. 공항으로 오는 길엔 카미에 들러서 김사장을 만났다. 좋지 않은 감정으로 헤어졌으나 서로 마음을 풀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좋은 말로

"김사장은 마산폐차장하고 계속하는 것이 나와 거래를 계속하는 것 보다는 좋을 것이니 그렇게 하십시오. 미수금에 대해서는 형편이 풀리는 데로 송금하여 주십시오"

그는 그러겠노라 하였고 근처 졸리 비(Jolly Bee)에 가서 간단한 점심을 사 주었다. 그리고 나를 고맙게도 공항 Pick Up을 해 주었다. 좋게 헤어지게 된 것이다. 막탄 공항에서 전화카드를 사서 한국의 김호민씨 집에 전화를 걸었다, 프라이드 부품 100대 수주를 받았고 오늘 귀국한다고 미리 알려주었다. 내일 아침 출근길에 들리겠다고 하였더니 반가워하였다. 그리고 이제부터 월급을 상향조정하여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다. 사실 그 동안 월급이 적었던 것이었는데도 그 사람은 묵묵히 일해 왔던 것이다. 바칼소에게도 전화를 걸어 고맙다고 하였다.

5. 첫 부품 선적

남영폐차장엔 한 달 만에 다시 복귀하였다. 남영의 김 사장을 만나서 필리핀에서 수주한 물량을 말씀 드렸다. 그리고 앞으로 프라이드 부품 또는 완성차의 수출의 전망이 밝으니 협력을 당부하였다. 김호민씨는 작업을 차분히 시작하였다. 나는 월급을 대폭 올려주었다. 남영폐차장 직원의 임금에 육박하는 수준이었다. 그가 정년 퇴직자로써 받을 수 있는 월급으로는 만족 할 수 있는 것이리라. 오후엔 좀 일찍 퇴근하여 마누라의 퇴원 수속을 밟았다. 의사는 통원재활치료를 받도록 조치하여 주었다. 4개월 여 만에 집에 오니 아내는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불구가 된 자기의 운명을 그대로 인정하고 조용히 수용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문득 생각하면 비참한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눈물을 자주 보이는 것이. TV의 슬픈 장면만 보면 또 눈물을 흘린다.

매주 아이크에게 전화를 걸어서 나의 작업 상황을 알려주었고 또 아이크가 준비하고 있는 사항에 대해서 묻기도 하였다. 라미레스씨에게도 나의 진척상황을 자주 알려주었다.

남영에서 차를 구해주는 것이 한계가 있어서 작업이 늦어지게 된다. 내가 납기를 지키기 위해서는 나도 다른 폐차장의 차를 직접 구해와야만 하였고. 한 폐차장에서 10대 이상의 차가 있을 경우에는 그곳에서 작업을 하여 남영으로 실어 오기도 하였다. 이런 노력 끝에 예정대로 100대분 작업을 완료하였다. 부품부피가 엄청나다. 다 싣지도 못 한다고 남영의 김영우 부장이 말하였다. 꼭 실어야 할 부품을 선정하였다. 그러다 보니 자동차 문짝 같은 것이 뒤로 밀렸다. 엔진 스텐실을 만들어서 DHL로 아이크에게 보냈다.

배를 띄워 놓고 정산을 해 보니 약 3천만원이 소요되었다. 필리핀에서 발생할 총 비용을 5백만원으로 계산하면 총 비용은 3천5백만원이다. 라미레스와 계약한 총액이 2백만 페소이고 원화로 따지만 5천 만원이니 수익 예상은 천 5백 만원이 된다. 싣지 못하고 남아 있는 부품의 가격총액이 5백 만원 정도로 추산된다. 결과적으로 이천 만원의 수익이 발생하였다. 이 정도면 만족할 수 있을만한 수준이다.

아이크에게 배가 도착할 예정일을 통보하였고, 내가 필리핀으로 갈 날짜와 함께 이번에는 아이크 집 가까운 곳에 호텔예약을 부탁해 놓았다.

일주일 예정으로 또 출장길에 나서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내가 없을 동안 엄마를 잘 돌보도록 여러 가지로 부탁을 하였다. 아내에게 선적한 물건을 하역하여 HR 택시회사에 인도해 주고 돈을 받아서 오겠다고 하였더니 또 주르르 눈물을 흘린다.

아이크가 많은 노력을 하였다. 밤새도록 야간 임시 조명을 켜 놓고 하역작업을 마쳤다. 많은 인부가 동원되었는데 모두들 이웃에서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한 소녀가 자기 아빠를 따라 나와서 부지런히 물건을 옮긴다. 어린 것이 잘못 하다가 다칠지도 몰라서 그만 두도록 몇 번이나 이야기 하였지만 그 소녀는 막무가내였다. 할 수 없이 그대로 두었다. 사몬테 부인이 야식을 준비해서 가져 나왔다. 마침 쉬어야 할 때가 되었는데 잘 되었다. 야식은 빵 구운 것과 음료수였다. 소녀에게는 빵과 콜라가 주어졌다. 기름 투성이 시커먼 손으로 빵을 덥석 받아서 입으로 가져가 먹는데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빵 한 조각이 순식간에 소녀의 입 속으로 사라졌다. 남아 있는 빵 한 개를 더 쥐어 주었더니 소녀는 부끄러운 듯 받아 들고 저 만치 돌아서서 또 먹는다. 이 소녀의 아버지나 일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도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이크에게 이 사람들의 일당을 얼마나 주느냐고 물어보았더니 200 페소라고 하였다. 우리 돈으로 5,000원인 것이다. 아까 그 소녀에게도 주느냐고 물었더니 어린애라서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한 두 시간 더 일을 해서 하역작업이 모두 끝났다. 사몬테 부인이 나와서 일당을 각자 나누어 주었다. IKE 말대로 그 소녀에겐 아무것도 없다. 나는 100페소짜리 한 장을 꺼내어 사몬테 부인에게 주면서 이 돈은 저 소녀의 몫이라고 하였다. 사몬테 부인은 저만치 가고 있는 소녀를 불러서 돈을 쥐어 주었다. 그 소녀는 자기 아빠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내밀었다. 아이의 해 맑은 웃는 얼굴이 어두운 데도 불구하고 훤히 보이는 듯 했다. 한편 내가 일거리를 좀 가지고 와서 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일 할 수 있게 하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처님께 감사한 마음을 바쳤다.

나의 작업복도 기름투성이 그대로였다. 새벽 3시 나는 가까스로 택시를 잡아타고 IKE가 잡아 놓은 펜션하우스로 돌아왔다. 택시 의자에 기름을 묻히지 않으려고 종이를 깔고 앉았다. 방으로 들어와서 나는 작업복을 대충 빨아놓고 곤히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오전 창고의 부품들을 보기 좋게 정리하였고 엔진도 줄을 맞추어 정돈하였다. 라미레스가 자기들 사람들을 데리고 IKE의 야드로 왔다. 쭉 둘러본 그는 대단히 만족한 얼굴이다. 두 사람이 엔진을 크랭킹(Cranking)하면서 한 대씩 검사를 하였다. 부품들도 검사를 해 보고 자기 주인에게 보고를 한다. 사몬테 부인이 나와서 라미레스씨를 정중히 대하고 엔진 씨피(Engine CP)에 대해서 일주일 내에 마치겠다고 하였다. 이윽고 HR 회사의 대형트럭이 와서 엔진을 싣기 시작하였다. IKE가 지게차를 잘도 운전을 한다. 그는 지난밤에도 열심히 지게차를 몰았는 데 오늘도 신이 나는 모양이다. 라미레스는 부품 중 타이어를 보고 대 만족을 하였다. 나에게 내일 아침에 자기 사무실로 오라고 한다. 돈을 현금으로 다 주겠다는 것이다. HR 사람들은 엔진과 부품을 모두 다 실어갔다.

IKE 부부와 함께 HR 사무실에 들렀다. 라미레스씨는 부하들이 보고한 서류를 들고 있다가 우리 일행을 아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는 어제 약속한대로 현금을 지불하겠다고 하면서 10% D/C를 요청하였다. 무슨 말인지 어안이 벙벙해진 나를 사몬테 부인이 나를 밖으로 데려 나가서 하는 말이 필리핀 상거래 관습상 PDC (Post Date Check – 우리나라의 약속어음과 같은 것)인데 이것을 현금화하는 데에는 보통 1개월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현금결제를 받으면 보통 10%의 D/C를 해주는 것이 관습이라고 설명하여 준다. 그러나 나는 선뜻 응할 수가 없었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사항이었다. 그러나 그대로 물러설 수는 없는 것이었다.

"존경하는 라미레쓰씨! 당신이 요구하는 것은 이곳 상관례에 따라서는 있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런 상관례가 전혀 없기 때문에 매우 당혹스럽습니다. 다음부터는 이 점을 명심할 것이고 그렇게 해 드릴 것이니 이번은 그냥 전액 결제를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라고 진지하게 이야기 하였다. 라미레스는

"엔진 씨피(Engine CP)를 아직 받기도 전인데 이렇게 현금결재를 해주려는 것은 당신의 성실함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네 나라의 상관습이 그렇다고 하니까 이번에는 5%만 D/C해 달라. 이 자리에서 또 50대분 2차 발주를 하겠다. 그러니 다음부터는 10% D/C를 부탁하겠다"

여기에는 나는 흔쾌히 승낙을 하였다. 그는 수표용지를 꺼내어 지급날짜를 오늘로 적어서 그것을 사몬테 부인에게 건넸다. 그는 또 친절하게도 거래은행에 전화를 해서 이 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일러두는 것이었다. 또 50대 분의 매매계약서에 서명하였다. 내가 서류를 만들어 가지고 간 것이 그 자리에서 바로 효과를 보았다.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뒤로 하고 그의 사무실을 나왔다. 그리고 정비공장으로 가 보았다. 어제 가지고 온 엔진으로 교체작업이 한창이다. 작업반장을 불러서 내 엔진의 성능이 어떠하냐고 물었다. 그는 이런 좋은 엔진은 처음 본다고 하면서 벌써 바꾸어 달고 시운전한 결과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 길로 지정은행으로 가서 돈을 받았다. 그리고 시내 중심가에 있는 환전소에 들러서 달러로 바꾸어 한국의 내 외환계좌로 송금을 끝냈다. 나는 속으로 "부처님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기쁜 마음을 바치려고 애를 썼다.

6. 프라이드 수출

첫 거래에서 성공을 거둔 일이 무척 기쁘기도 하였다. 예정대로 돌아 온 나는 마누라와 딸들에게 무사히 첫 거래를 마친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 주었다. 퇴직 후 마지막 주식거래에서 까먹은 돈을 곧 만회할 수 있고 향후 전망이 좋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하였다.

"당신 고생 하였소"

하고 마누라는 또 눈물을 흘린다.

"에이 엄마 울보"

하면서 딸들이 제 엄마를 놀렸다. 확실히 마누라의 마음은 아주 여리게 변해 버렸다. 중풍이라는 이 병이 그토록 강한 아내의 마음을 이렇게도 약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로부터 한 달 후에 또 필리핀 출장길에 올랐는데 이번에 나는 대단한 모험을 감행하였다. 부품 컨테이너 속에 프라이드 완성차 좋은 놈을 골라 두 대를 같이 실었다. 완성차를 그냥 싣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트란스팜이 온갖 불법을 자행하는 것을 수 없이 지켜 본 일이 있음으로 만일 통관문제가 생기더라도 반드시 해결책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완성차 두 대를 싣고 부품 50대 분을 실으니 컨테이너가 꽉 찼다. 김호민씨에게 곧 다음 컨테이너에도 이렇게 싣도록 지시를 내렸다. 선적서류 진행과 관련된 업무는 고등학교 동창생 이광식 관세사와 협의를 하였는데 엔진번호만 통보해 주면 수출면장을 진행하도록 해 두었고 B/L이 발급되면 DHL로 통보 받으면 된다. 엔진스텐실(Engine Stencil)은 김호민씨가 별도로 DHL로 보내주면 되는 것이다. 이번 출장은 좀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것은 HR 이외에 다른 바이어(Buyer)를 찾아야 하고 또 완성차 자체의 판로를 과감하게 개척해 봐야 하기 때문이다. 승용차가 잘 안되면 소형 트럭이나 그레이스 같은 승합차의 판로를 개척하는 일이다. 지난번 출장 때 잠깐 만나 본 유은수 라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필리핀에서 나의 회사도 설립 해 놓아야 하는 것이다.

7. 황중광 전무 영입

사몬테 부인이 작성하고 있는 회계장부의 신빙성에 문제가 있다. 매출이 누락이 되는 일이 가끔 있고 시제가 잘 맞지를 않는다. 처음에는 단순하였는데 재고 부품의 가지 수와 수량이 늘어나고 차종도 다양해지니까 간편 장부로는 맞출 길이 없다. 회계 전문 여직원을 채용해서 맡기는 것이 어떨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결국 믿기는 어렵다. 바칼소를 채용한다 해도 완벽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황중광씨를 채용해서 필리핀 주재원으로 내 보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부산버스공장에서 생산관리를 덕망 있게 처리해서 이사까지 승진했던 사람이다. 이 사람이 해외근무경험이 없는 것이 흠이긴 해도 조금 지나면 잘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배은효에게 전화를 걸어서 황중광씨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냥 부산에서 놀고 있을 거라고 얘기를 한다. 필리핀 주재원으로 한 사람이 필요한데 황중광씨의 근황도 알아보고 혹시 아무 일 없이 지내고 있으면 필리핀주재원으로 일할 의향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였다.

잠시 후 배은효가 알려주었다. 그는 놀고 있으니까 무슨 일이든지 찾고 있는 중이라고 하면서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 나는 즉시 황중광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배은효한테서 이야기를 들으신 대로 내가 중고차 사업을 필리핀 세부에서 하고 있는데 주재원이 필요하다. 필리핀에 가서 근무할 의향이 있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사람을 채용하여 주신다면 고맙게 생각하고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그래서 가족 사항을 물었더니 미혼 아들이 하나 있는데 대학 3학년이라 하였다. 사모님이 함께 필리핀으로 가실 수 있는지 물어보니 같이 갈 계획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필리핀에는 사모님과 함께 가서 주재하시면 좋겠다고 하면서 필리핀 생활비는 전액 별도로 책정하여 드리기로 하고 국내에서 월 보수는 얼마를 원하는지 물었다. 그것은 이 사장님이 정해 주시는 대로 따르겠다고 한다.

나는 이미 생각해 둔대로 이야기를 하였다.

"직위는 전무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은 듯 하고 국내 월급은 백오십만 원, 필리핀 생활비는 집세를 제외한 월 3만페소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필리핀에서 은행지점장급 월급이 2만5천페소입니다. 두 분이 생활하시기에는 충분할 것입니다"

라고 의견을 내놓았더니 이것에 만족한다고 하였다. 출발 가능한 날짜를 물어 보니 하시라도 좋다고 하였다. 그러면 일주일 후에 나와 함께 우선 황전무님이 필리핀으로 출발하도록 하자고 일사천리로 결정지었다. 국제운전면허증을 발급받고, 더운 나라이니 여름옷들을 준비하여서 11월 7일 서울로 오라고 하였다.

그날이 되어 나는 공항으로 가서 황전무를 마중해서 집으로 모셨다. 오는 차 중에서 필리핀에서 주재원으로써 할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에 와서 저녁 식사 후 지금까지 선적된 현황과 원가 자료 등을 설명해 주었다. 앞으로 할 일과 개념을 차 중에서 설명해 주었던 터라 이해를 빨리 하였다. 내일 오전에는 남영폐차장으로 가서 작업현장을 살펴보고 저녁에 함께 비행기를 타면 된다. 저녁에 한 차례 더 아이크와 통화를 하였다. 지금 세부엔 태풍이 엄청난 위력으로 지나가고 있어서 모든 상점들이 휴점 하고 있다고 하였다.

나와 Mr. Jun이 예정대로 내일 출발한다고 하니까 비행기가 이륙하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보고 공항으로 가도록 일러주었으며 동행하는 사람에 대해서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동행하는 사람은 나보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너를 도와 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들로서는 자존심이 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업을 원활하게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선택이라는 것을 그들도 이해를 하게 될 것이고 고맙게 생각할 것이다.

오전에 남영폐차장으로 갔다. 프라이드를 해체하고 있는 현장작업을 살펴보게 하였다. 부품들 명칭 등을 내가 사진을 찍어 책자로 만들어 둔 것을 한 부 주었다. 거기에는 현재 필리핀에서 팔고 있는 가격도 기록하여 놓은 것이다. 엔진에 대해서는 CP가 있어야 판매할 수 있다면서 엔진번호스텐실(Engine No. Stencil)을 뜨는 방법 등을 실제 해보도록 하였다. 대단히 중요하고 유익한 일을 하였다.

집으로 와서 저녁식사를 하고 천천히 공항으로 갔다. 비행기 출발시간이 저녁 9시이므로 별 서둘 것이 없다. 계수가 공항까지 데려다 주었다. 4시간 반 비행 끝에 막탄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아이크가 마중 나와 있었다. 황전무와는 첫 대면이다. 숙소를 아예 자주 머물었던 타리사이에 있는 펜션하우스(Pention House)로 정했다.

아침 인근 간이식당으로 갔다. 나는 이미 필리핀 음식에 익숙해져 있음으로 맛있게 먹었으나 황 전무는 잘 먹지를 못한다. 그래서 식빵으로 대신하였다. 출퇴근 용 차량은 어제 저녁 아이크가 두고 간 대우 레이셔로 하였다. 이 차는 아이크 큰 딸이 사용하고 있었던 것인데 당분간 황전무가 쓰도록 배려해 주었다.

출근을 해서 사몬테 부인과도 첫 인사를 하였다. 그들 부부는 황전무를 대단히 반가워했다. 대우자동차에서 30년간 일한 회사동료이고 같은 대학 출신이라고 나는 황전무를 소개하였던 것이다. 내가 한국에서 만들어 준 명함을 황전무는 그들 부부에게 건넸다. 제일 처음 써 먹는 것이었다. 미스터 준(Mr. Jun)이라는 필리핀 이름이 간단하고 부르기 좋았던 모양이다. 사몬테 부인이 가지고 있던 거래장부를 황전무한테 넘겼다. 부품재고 수량을 장부와 대조해서 확인해 갔다. 확인을 다 끝낸 후 부인은 매우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점심때는 맛있는 것을 많이 올려놓았다. 같이 일하게 된 황전무를 배려한 것이다. 이 집에서는 점심때는 항상 두세 사람 손님이 자리를 같이 한다. 풍족한 주인의 인심이 사람들을 불러 모우는 것 같았다. 오후엔 IKE와 함께 재고 차량을 파악하였다. 하루 만에 현황파악을 마쳤다.

퇴근 때는 백화점에 들러서 양식을 먹었고 내일 아침 것은 별도로 포장해서 가지고 나왔다. 이곳 음식문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다소간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세부 한인교회 박지덕 목사를 찾았다. 나의 회사 일을 책임질 주재원으로 황중광전무를 소개하여 드렸다. 그리고 황전무는 장노님이라고 말씀 드렸더니 대단히 반기었다.

박 목사님께 황장노 부부가 살아갈 집을 구해주도록 부탁을 하였다. 박 목사는 빠른 시일 내에 집을 구해 드리겠다고 약속하였다.

다음은 유은수 사장을 만나러 갔다. 유사장은 나를 많이 도와 주고 있는 사람이라고 황전무에게 미리 얘기하여 둔 것이다. 황전무를 만나 본 유 사장은 인품이 대단히 높은 분으로 보인다고 하면서 나 보고 사람 복이 많다고 하였다.

다음 서점(National Book Store)에 들러서 시내 지도 한 장을 샀다. 시내 길을 익히는 데는 지도를 보고 운전하는 것이 제일 빠르다.

황전무는 업무를 빠르게 익혀갔다. 회계장부를 기록 유지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하였지만 버스생산관리를 해온 그에게는 별 것이 아니다. 그러나 시간을 많이 뺏길 수 있으므로 아무래도 판매여직원 한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아이크에게 부탁하였다. 필리핀에 온지 한 주일이 지날 무렵 두 사람이 똑 같이 배탈이 났다. 음식을 잘 못 먹은 모양이다. 나는 필리핀 토속주 탄두아이 두 병을 사와서 설사에는 이것이 직효라고 하면서 마시자고 하였다. 내가 먼저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황전무는 교회에서 술 먹는 것을 금하기 때문에 망설이는 것이다.

"술이 아니라 약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드십시오"

나는 그렇게 권하였으나 끝내 그는 마시지 아니하였다. 이틀이나 더 고생하였음 물론이다.

일요일 세부 한인교회에 갔다. 누구보다도 박 목사가 반가워하였다. 그는 열심히 황장노가 살 집을 구하고 있으나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한다. 나는 일반주택보다 주택단지 내에 있는 집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하였더니 박 목사는 그런 곳에도 물색을 해 보겠다고 하였다.

예배 끝 순서로 처음 오신 분의 소개순서에서 박목사는 한인교회에 일대경사가 났다고 하면서 황장노님을 앞으로 모셨다. 이성상사 주재원으로 세부에 오신 것을 축하한다고 먼저 말하고 황중광 장노님이라고 신도들에게 소개를 하였다. 교인들의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 이후 황중광전무는 교회 발전을 위해 기여한 공로가 크다는 소문을 전해 들었다.

아직 기후와 음식, 그리고 필리핀의 풍습 등에 익숙지 못해서 고생하는 황전무를 시내 중심가 골드 픽(Gold Pick)이라는 호텔로 옮겨서 지내도록 조치해 놓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사몬테 부부에게 준(Jun)이 필리핀에서 하루 빨리 잘 적응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황전무가 일을 잘 해야 자기들도 편해지고 회사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이라고 그들 부부가 뜻있는 말을 해왔다.

황전무에게 주간단위로 판매, 재고들을 보고할 양식을 만들어주었고 송금요령도 알려주고 실제 그렇게 하여 보아 잘 하는 것을 알았다. 나는 모든 것을 황전무를 믿고 떠난다고 하였다. 이로써 황 전무를 필리핀에 주재시키는 일을 무사히 끝낸 것이다. 시기 적절히 잘 이루어진 것이다.

8.이성자동차( Leesung Motros Corporation)

2001년 12월 초 나는 필리핀 행을 또 하여야 했다. 집 사람은 내가 자기 곁에서 떨어져 있게 되면 무척 불안해하고 여러 가지 안 할 걱정을 한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그녀에게서 떨어져 있게 되는 일을 피하고자 하나 이번 출장은 할 수 없다. 나는 이번에 나의 회사를 설립하는 일과 공장을 자동차 거리에 가까운 에이 에스 포르투나(AS Fortuna)근방으로 옮겨야 하는 것이다. 아이크가 당초 약속한 자기부지 사용을 위한 조치를 계속 미루고 있기 때문에 큰 곳으로 옮겨야 하는 것이다.

필리핀 내에서 나의 회사 이성자동차(LEESUNG MOTORS CORPORATION)을 설립하는 일에 유은수 사장이 그 절차를 알려주었다. 주식 회사를 설립하는 것은 주무부서가 섹(SEC)이라는 곳이고 여기에 가서 일체의 양식을 받았다. 정형화된 정관이 있었고 모든 양식은 이곳의 빈칸을 채워 넣으면 되었다. 우선 주주가 최소한 다섯 명이 있어야 하였고 외국인이 설립할 때에는 주주 중 세 사람이 필리핀이어야 했다. 그리고 사장과 회계는 필리핀 사람이 맡도록 되어 있다. 필리핀 사람 세 사람의 이름을 빌려야 하는 것이다. 이 세 사람은 바칼소와 그의 형, 그리고 케내디를 선정하였고 이 사람의 이름을 빌리는 일에 대하여 이면 계약을 해서 공증을 받았다. 만약 이들이 배신을 해서 회사가 자기들 것이라고 하면 법적으로 아무 보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면 계약에는 이성자동차를 설립하는 데 단순히 자기 이름을 빌려주는 것이며 회사운영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 외에 유은수 사장이 한 가지 더 이면 계약 서류를 추가하였는데 주식을 양도한다는 매매계약서를 함께 작성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작성해서 이곳 변호사에게 맡기면 일사천리로 회사를 설립할 수 있었지만 비용 절감을 위해 나는 직접 서류를 작성하고 관련 서류를 발급받아 제출하였다. 이것으로 회사 설립일이 쉽게 마무리 되었다. 앞으로 회사 승인이 섹(SEC)으로부터 나오는 대로 추가 할 일들을 메모하여 황전무에게 주었다. 한편 공장 선정도 끝나서 내부공사를 시작하였다. 내부 수리가 완료되는 대로 내가 설계한 레이아웃에 따라 작업장을 만들면 된다.

박 목사의 덕택으로 황 전무가 살아갈 집도 구했다. 새로 옮길 공장과 가까운 곳이다. 내가 말한 대로 주택단지 내 안전한 곳으로 집이 깨끗하다. 이번 출장은 내가 예상한 기간을 훨씬 앞당겨 완료하고 귀국하였다. 세부적인 뒷일을 황 전무가 잘 챙기면 되는 것이다.

귀국하니 셋째 계수가 결혼상대자를 만났다고 공항에서 집사람이 귀뜸을 해 주는 게 아닌가. 어제 저녁 그 총각이 집으로 찾아와서 인사를 하였고 저녁 식사를 함께 하였다는 것이다. 큰 사위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사람으로 큰 사위가 중매를 섰다고 하니 믿을 만한 것이다. 집 사람도 즐거운 표정이었고 나도 기쁜 마음 한량없었다.

필리핀 사업도 기반을 다지는 중이고 자녀들도 하루 속히 제 갈 길을 잘 찾아간다면 이 만큼 더 좋은 일은 없다. 나는 부처님께 감사한 마음 바쳤다.

올해 마지막 컨테이너 작업을 하였다. 황전무가 업무용으로 사용할 차량을 프린스 ACE 성능이 우수한 것을 골랐다. 집 옆 재활용 센터에 들러서 사무실 집기도 구매하였다. 특히 황 전무 주택에 쓸 응접세트등 가구도 좋은 것을 골라 실었다. 다 의미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연말엔 대구상고 송년의 모임에 나갔다. 몸이 불편한 아내도 동행하였다. 이번 모임은 합동 환갑연이라 하였다. 동창 대부분이 올해 환갑을 맞았기 때문이다. 어느 동창은 환갑을 지내는 심정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말에 동감을 느꼈고 느긋해지는 마음을 느꼈다. 이때까지의 삶이 한 구비를 이룬 것이 분명하다. 한쪽을 되돌아 볼 여유가 생기는 것은 역시 환갑을 지내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리라. 나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서 막 정상 궤도에 올려놓은 느낌이다. 그러나 아직 초보자임에는 분명하다. 아직 새롭고 가슴 설레는 일이 많다. 무한한 성장의 예감을 갖는 동시에 불안한 마음이 있다. 혹시 실패하는 날에는 어떡하나? 무역업이란 때를 잘 타야 하는 것이다. 잘 적응하는 것이다. 변화에 얼마나 잘 대처해 나가느냐 이것이다.

많은 동창들의 얼굴에서 여유를 발견하였고 나 또한 그런 느낌을 가진다. 이제 황금인생을 사는 것이다.

2001년 한 해를 마지막 보내는 날이 되었다. 필리핀 현지 일을 황 전무에게 맡긴 것이 거듭 잘 된 일 중의 하나라고 믿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업을 한 단계 성숙한 단계로 발전시킬 계기를 만든 것이다. 내가 이곳에서 열심히 한 해를 더 노력한다면 모르긴 해도 내년 연말이면 제법 자본금이 쌓일 것이다.

2002년 연초 선적이 지연되고 있다. 지난해 말 세부 세관 공무원들이 쌀 밀수와 관련하여 많은 세관 공무원들의 교체가 있었는데 이로 지금까지 통관사 라디(Mr Rady)가 영향을 미쳐오던 모든 영역에 변화가 있어서 종전과 같은 선적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신년 초 이들 공무원들의 쇄신 업무처리를 지켜 본 뒤 일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황 전무가 보고를 해 왔다.

그래서 지금 시점에서 선적이 가능한 그래이스(Grace) 2대와 프리이드 부품 28대 분을 실었다. 램프(ramp)제작용 자재, 중고 에어컨과 황 전무용 식품과 부산에서 보낸 물건을 다 보냈다.

1월 중순쯤 황 전무는 승용차를 선적해도 좋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그 동안 남영에 모다 두었던 차량으로 세 컨테이너를 한꺼번에 실었다. 기분이 좋았다. 돈만 택시(Donman Taxi) 회사에 납품할 차량들이다.

9. 넷째 딸 입사

황 전무가 2개월 동안 업무 처리를 하는 중에 돈 관리의 어려움을 호소하였다. 수잔(Susan) 이라는 경리직원을 채용하였지만 은행에 가는 일을 맡길 수가 없으므로 꼭 본인이 가다 보니 시간 손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회계학을 전공한 넷째 딸 선희를 파견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였더니 환영한다고 하였다. 선희를 불러서 의향을 물어 보니 기꺼이 필리핀으로 가겠다고 한다. 고맙다. 2월말에 지금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고 3월과 4월 두 달 동안 이곳에서 훈련을 거쳐 필리핀으로 파견하도록 조치해야겠다. 먼 장래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자동차를 해체하는 과정과 부품 명칭을 잘 익힌 후 그곳에 가야 원활한 업무를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나는 황 전무에게 나의 이런 계획을 이야기하고 수고스럽지만 4월 하순까지 좀 참아달라고 부탁하였다. 계수의 결혼식이 4월 20일로 잡혔다. 결혼식이 끝나고 선희를 필리핀으로 가게 하면 된다.

선박회사 하트로트 (A hartrodt Korea)의 박성복 대리가 지난주 세부로 출장갔다가 황 전무를 만났다고 하였다. 황 전무의 인품을 좋게 보았다면서 한마디로 좋은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근본에 충실해서 무역을 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다. "이번 한해 잘 하여 기반을 이루기를 바란다 하면서 그런 의미에서 해상운임을 100,000원 인하해 주겠다"고 하였고 실적이 좋으면 하반기에 더 삭감해 드리겠다고 하였다. 나는 생각하였다. (기본은 다 이루어졌다. 잘 다듬어 나가면 좋은 성과를 이룰 것이다.)

그 동안 나의 관심을 쭉 끌고 왔던 MBC 드라마 '상도가 끝났다. 가장 감명 깊은 드라마였다. "장사란 이문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는 상도의가 시종 일관 드라마를 주도하였다. 이것은 어쩌면 내가 지금 발원을 항상 드리고 있는 내용과 닮은 점이 있는 것 같다. 나의 원은 내 사업을 통한 부처님께 복짓기이다. 물론 나는 이 사업을 통해서 생활을 할 수 있는 돈을 버는 것을 원하지만 양국 경제에 또 어려운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재화란 물과 같아서 한 곳에 가두어 두면 썩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잘 활용할 때에는 그 기능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상도에서는 시종일관 이것을 말하여 주고 있다. 이 드라마 중에서 잊지 못할 장면이 있다. 주인공이 첫 번째 위기를 스승이 준 "死" 자 한 글자를 깨달아서 홍삼을 불태우는 장면이다. 이것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생은 언제나 새로운 도전이며 새로운 시작인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라도 같은 형상일 것이다.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다. 인생은 언제나 새로운 목표이며 새로운 삶이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그 자체인 것이다'

선희가 예정대로 필리핀으로 떠났다. 선희가 가서 자리를 잡으면 황 전무도 좀 더 다른 일에 신경을 쓸 수가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작은 일에도 발목을 잡혀서 많이 고생을 하였다. 어제 선희를 대리로 임명하였음을 통보하였고 업무분장에 대한 지침을 전달하였다.

"황 전무를 보좌하고 황 전무에게 보고하며, 회계와 대 은행출입 업무"라고 명시를 한 것이다. 황 전무가 나의 뜻을 잘 헤아려 현황을 잘 인계하고 잘 교육해서 차질 없이 업무에 임하도록 하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금년 한 해를 잘 버터야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민다나오에 적극 진출하는 방법을 찾아보자 이를 위하여 나는 오랜만에 출장 계획을 가졌다.

필리핀에서 안정이 되면 다른 나라 캄보디아, 월남, 라오스 등의 나라에 진출할 채비를 갖추는 것도 다음 단계에서 해야 할 일이다.

근 4개월여 만에 필리핀 출장길에 올랐다. 이번 출장길에는 이진수씨가 동행하였다. 이 사람은 대우자동차 트럭부에서 근무하다가 판매로 나왔으며 대우국민차 딜러를 차려 독립을 하였고 이 국민차가 인기절정에 있을 무렵 회사를 좋은 값에 팔고 그 돈으로 부동산으로 가서 돈을 좀 모았다는 사람이다. 중고 자동차 수출을 하고 싶어 내가 필리핀에서 어떻게 사업을 하는지 보고 싶다고 하여 동행하게 된 것이다.

내가 황전무를 믿고 국내에서 맘 놓고 일했던 것이다. 새로 만든 만다위 쪽 공장이나 파르도 공장엔 자동차와 부품들로 꽉 찼다. 회사가 엄청나게 커졌다. 나도 노력을 하였고 황 전무도 많이 애썼다. 선희는 황전무 집에서 당분간 머물고 있었다. 어서 따로 살게 해 줘야 황 전무 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게 된다. 나와 이진수씨는 전에 자주 머물렀던 웨인즈 인 호텔(Wayns Inn Hotel)에 묵었다. 가자마자 선희 생일을 맞아서 글든 까와리(Golden Cawarie)라는 전통 음식점에서 조촐한 잔치를 벌였다. IKE부부와 그 자녀들 사무실 여직원들 모두 초대하였다. 이진수씨는 선희에게 아주 근사한 꽃다발을 생일 선물로 주었다.

이진수씨는 나의 사업장을 쭉 둘러보았다. 그리고 다른 사업장도 함께 둘러 보았는데 이중 그래도 제일 짜임새 있게 보이는 곳이 나의 사업장이라고 하였다. 내가 없는 동안 IKE가 부품창고 옆 토지를 정리하였고 철재로 집을 지어 이층에는 사무실로 만들고 자동차 전시장도 잘 마련하였다. 물론 경비는 황 전무에게 지불하도록 방침을 내린 바 있다. 부품판매만 전담하게 된 수잔이라는 여직원을 똑똑하게 일을 잘 하는 것 같았다. 선희와 호흡이 잘 맞는 것 같다.

택시업자 돈만(Donman)을 방문하였다. 그도 사업장을 넓게 꾸몄고 나에게서 사간 프라이드를 도장하느라 분주하였다. 그는 내가 좋은 차를 보내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해왔다. 나는 당신이 나의 차를 사 주어서 내가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하였다. 돈만(Donmon)! 이 사람은 중국계다. 형제들도 많다고 한다. 이 사람을 만난 건 전적으로 IKE공이 크다. 프라이드 가격을 80,000페소(한화 약 2백만원)에 사가고 있다. 대당 300,000원 정도 이익이 나는 수준이다. 벌써 50대정도 가져갔다. 이 사람은 세부에서 제일 큰 택시회사를 목표로 뛰고 있다. 좋은 고객을 만났다. 이 사람이 프라이드 차량을 많이 보유할수록 부품수요도 많아질 것이다. 부품 값을 20%D/C해 주라고 지침을 내렸다.

아이크와 함께 HR 라리레스씨를 방문하였다. 그는 프라이드 가격을 70,000페소에 100대를 사겠다는 제안을 해 왔는데 6개월 전이나 지금이나 똑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가격엔 별 이익이 없다 최소한 80,00페소는 되어야 하는 것이다. 프라이드를 가져오는 것이 여전히 위법인 상태에서는 위험요소가 있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 값에 응하기가 어려웠다. 그의 택시 계류장을 둘러보았는데 많이 줄기는 했으나 여전히 놀고 있는 차량이 많았다. '저 차량들을 고쳐도 쓰지 못하는 것인가?' 나는 연구과제를 IKE에게 던졌다.

일요일 뱃놀이에 나섰다. 황 전무 가족, IKE가족, 그리고 이진수씨등 배를 빌려 타고 막탄섬 앞바다에 나가 노는 것이다. 이것을 아일란드 호핑(Island Hoping)이라고 하는데 관광객들에게 매우 인기 있는 물놀이이다. 레천(Lechon 통돼지 바비큐) 한 마리를 싣고 가면 푸짐하다. 이것은 필리핀 사람들의 낭만이 깃든 전통 놀이다.

이진수씨는 일주일 만에 기분 좋게 귀국 하였다. 맛있는 해산물 요리와 전통요리도 대접하였고 뱃놀이도 즐겼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좋은 차를 공급해 주겠다는 제안을 했으니 나도 고마워했고 그도 고마워했다. 좋은 차 공급자를 많이 확보할수록 유익한 일이다.

10. 다바오(Davao) 출장

황전무와 민다나오 여행길에 올랐다.

그 동안 우리 상점에 와서 프라이드를 사 가지고 간 씨엘로(Cielo)와 몇몇 부품업자들을 찾아보고 시장전망을 점쳐 보는 것이다.

먼저 씨엘로 고(Cielo Go)공장에 들렀다. 그는 프라이드를 곱게 도장을 하고 있었다. 판매전망을 물으니 대뜸 민다나오는 나의 거점이니 여기로 오지 말라고 위협을 한다. 자기는 세부로 가서 내 차를 사오고 있는데 네가 굳이 여기로 올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나는 웃으면서 그건 아니다. 내가 여기에 와서 매장을 차리면 네가 세부까지 가서 차를 가지고 오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고 하였다. 그는 묘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판매경쟁자가 될까 봐 염려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다음은 아이아(Ayah)형제들을 만나 보았다. 아이아(Ayah)는 형한테서 독립을 하여 조그마한 부품가게를 열고 있었고 택시 3대를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이 사람에게서 무한히 성장할 잠재력이 있음을 그의 일거수일투족에서 느꼈다. 황전무에게 나의 소감을 얘기하였더니 그도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다.

그 다음 부품상 가디아(Gadia)를 찾았다. 이 사람이 그래도 제법 크게 부품매장을 갖고 있었다. 펨코도 벌써 진출해 있었다. 그의 매장엔 프라이드 엔진을 깨끗이 청소하여 잘 진열해 놓았다. 가격을 물어보니 7.000페소라고 한다. 세부의 나의 가격과 똑 같다.

시내를 돌아보던 중 승합차를 많이 전시해 놓은 곳을 보았는데 송 모터스(Song Motors)라는 상호이다. 여기 들어가서 사장을 찾아보니 바로 송씨이다. 승용차 판매전망을 물어보니 택시 대 폐차용뿐이고 일반 수요는 거의 없을 거라는 말씀이다.

지금 다바오 모타(Davao Motors)란 곳에서 프라이드를 절단해 와서 재조립하여 택시로 팔고 있다고 하였다. 다바오 모타 사장이 세관장과 경찰을 끼고 다른 한국 사람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방해를 하고 있으니 아예 그런 줄 알고 단념하는 게 좋다고 한다. 절단차량에 비해서 완성차를 가지고 올 수 밖에 없는 나로서는 우선 가격 경쟁에서 밀릴 것이 뻔하다. 이사람 때문에 씨엘로 고(Cielo Go)가 많은 차량을 팔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짐작이 갔다. 그래서 다음 이야기를 하였다. 자기에게 그래인스를 보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내일 아침 견적서를 가지고 오겠다고 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그래이스 견적서를 잘 만들었다. 황전무와 머리를 맞대고 전략은 짰는데 이 다바오에서는 송사장에게 비교적 싼 값으로 거래를 터 이를 발판으로 진출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가격을 낮게 해서 이튿날 가지고 갔다.

나의 견적서를 본 송사장은 대단히 만족해하였다. 송 사장은 부산에 사는 자기 동생한테서 차를 공급받고 있다고 하였는데 아마 나의 견적에 만족하는 걸 보면 가격이 훨씬 낮았던 모양이었다. 다바오 세관통관과 기타경비는 송 사장이 부담하는 조건이니까 나는 한국에서 배를 띄워 보내기만 하면 되었다. 계약서를 작성하였다.

첫 출장길에 의외의 성과를 올린 것이다. 그래이스 가격을 낮게 해 주어도 대당 50만원 이익이 되는 것이다. 가벼운 걸음으로 돌아왔다.

만다위 공장에 문제가 발생하였다고 황 전무가 말을 한다. 그것은 폭우가 오면 근처 일대가 물바다로 변한다는 것이다. 배수가 안 된다는 것이다. 한차례 침수를 당했는데 물이 빠진 공장을 청소하느라 직원들이 많이 고생을 하였다는 것이다. 나는 그 점을 미쳐 알아보지 못하였다. 주인을 찾아서 대책을 논의하였으나 그 일대가 다 그러니 무슨 대책이 있을 수 없다. 협의 끝에 계약 기간 2년을 1년으로 단축하고 앞으로 6개월 이내에 공장을 옮기는 것에 합의를 하였다. 모든 일을 순리를 따져 차분하게 이야기를 전개하니 쉽게 결말이 난 것이다. 우기가 지났으나 폭우에 대비하여 당분간은 피해를 최소화 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황전무에게 일렀다.

그렇지 않더라도 공장이 협소해서 옮기고 싶던 차에 계약 갱신을 하게 되니 일이 잘 풀렸다. 황 전무에게 비가와도 침수 피해가 없는 높은 지대의 공장 1500-2000평정도 큰 대지를 임차할 것을 말해 두었다.

선희에게는 다음 번 출장 때는 네 엄마와 같이 올 테니까 셋집을 좀 큰 것으로 구하라고 일러두었다. 그리고 난 다바오 송 모터에 공급할 그래이스 싣기 위하여 열흘 만에 돌아왔다.

이번 출장은 참으로 유익하였다. 이젠 국내에서 안심하고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상 못할 어려움이 있겠지만 나의 사업은 활기를 찾았다.

카미 김사장이 한 컨테이너의 대금을 지불하여 주었으나 두 컨테이너 값은 주지 않고 버티고 있다. 온갖 이유를 붙여서 특히 HR 고객을 가로채 갔다고 심한 불평을 하였다. 따지고 보면 그렇지가 않다. 그 사람을 알게 된 것은 김 사장을 통해서 이루어졌지만 김 사장이 HR에게 부품을 별로 공급해 준 것이 없었던 것이다.

선희가 월말결산자료를 보내왔다. 역시 전문가가 다르다. 나도 대구상고 출신이니까 대차대조표를 보고 이해할 줄 안다. 그러나 이것을 아무도 작성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황 전무도 이 자료를 보고 있을 것이고 확실한 비젼(Vision)을 갖게 될 것이다. 큰 일만 보고해 왔다.

황전무는 나의 지침대로 다바오 송 모터에 출장을 다녀와서 결과를 보고하여 왔다. 송 사장이 내가 보낸 그레이스의 차량 성능이 우수하다고 대단히 만족해하고 있다고 하며 향후 더 많은 주문이 예상된다고 하였다. 기분 좋은 일이다. 다음 번 출장 시에는 선희를 동행하여 아이아와 가디아의 밀린 부품 값도 받고 좋은 관계를 유지토록 특히 송 사장을 만나 그의 부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서 유대관계를 다져가라고 지침을 주었다. 그리고 다바오 모터(Davao Motors)를 비밀리에 방문해서 작업현장을 둘러보고 거기서 나온 택시들이 어떻게 운행되고 있는지도 파악해 보라고 하였다. 황 전무는 내가 의도하는 바를 잘 이해 할 것이다.

11. 레미디오(Remedio) 공장

2002년이 저무는 12월초 황전무가 드디어 새로운 공장부지 임대 계약을 하였다고 보고를 해 왔다. 나는 한해 선적하는 일을 깨끗이 마무리 하고 필리핀 출장길에 아내를 대동하였다.

제일먼저 황전무가 새로 계약한 레미디오(Remedio)공장으로 갔다. 들어가니 입구 왼쪽에 종업원 숙소로 쓸 만한 큰 집이 한 채 있다. 직사각형으로 생겼는데 한 눈에 아주 넓어 보인다. 공장 터가 아주 넓다. 4,500제곱미터라고 하니 1,400평 정도가 된다. 전에 건물이 있었던 자리에는 콩크리트 기둥 기초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도 보았다. 이 기둥 기초를 이용하여 창고 건물을 신축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한 마디로 딱 마음에 드는 장소이다. 전의 세입자가 벽돌을 만드는 공장을 하였다는데 숙소로 사용하였던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우선 부품창고와 사무실로 사용해도 좋겠다. 아침에 사무실에서 임대계약서를 보여주었는데 이만한 크기에 활용할 수 있는 건물도 있으니 아주 저렴한 것이다. 높은 지대이니 침수 염려는 없는 곳이다. 토지 주인이 중국 사람이라고 하였는데 황 전무의 인품을 아주 잘 본 모양이다. 하여간 황전무는 대단한 일을 한 것이다.

아까 건물을 지으면 좋겠다는 곳을 자세히 보았다. 기둥 간격이 5m이고 넓이는 세로(5x2) 10m 가로가(5x12) 60m이다 10x60=600㎡(180평)가 된다 바닥에는 콘크리트 바닥이 그대로 남아 있으니 이 규격에 맞추어 목재로 건물을 짓게 되면 좋을 것이다.

만다위 공장에 들렀다. 아이크가 열심히 일하고 있다. 여기도 많은 차량과 부품들 특히 타이어가 많이 쌓여 있다. 왜 이렇게 타이어를 팔지 못했을까? IKE에게 새로 임대한 공장부지가 아주 마음에 든다고 하였다. IKE도 그렇게 생각하며 황전무가 큰 공을 세웠다고 칭찬하였다.

창고 건물과 작업장 건물이 없으니 이를 빨리 지어야 하겠다고 하면서 내일은 그 계획을 세워보자고 하였다.

사방 외곽 담벽이 높이 서 있으니 작업장은 이 벽에 기대어 지으면 쉬울 것으로 생각하였다. IKE에게 유능한 목수한 사람을 데리고 오도록 부탁하였다. 이번 출장에는 이 일을 나의 주된 업무로 정하였다. 왜냐하면 이것이 선결되어야 만다위 공장을 옮겨 올 수가 있는 것이다. 내가 적절한 때 출장을 잘 왔다. 집에 가서 밤 늦게 창고 건물의 설계도(Sketch Drawing)을 이리 저리 그려 보았다. 내일 목수를 만나고 목재상이나 제재소에 들러서 목재의 규격들을 조사해서 가장 적당한 자재를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이튿날 IKE가 목수를 데리고 왔다. 나는 목수에게 내가 만든 도면을 보여 주면서 나의 설계 개념을 설명하여 나갔다. 목재 트러스(Truss)를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목재의 규격은 우리가 설계하는 대로 제재소에서 만들 수 있다고도 하였다. 그러니 설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되었다. 기둥기초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에는 나무 기둥을 세우는 방법에서 목수가 제안하는 대로 현장 맞춤으로 설계하였다. 공사기간을 4주 이내로 잡아달라고 하니까 그렇게 해 주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바로 세부에서 제일 크다는 제재소로 가서 주문을 마쳤다. 소요예산은 자재값이 40만페소 인건비는 턴키(Turn key Base)로 4만5천페소에 구두계약을 하고 곧 착공하였다. 임대기간이 5년이므로 이 기간 내에 감가상각을 다 해서 본전을 회수한다는 생각이다. 중국인 땅 주인을 만나보았는데 사람인상이 매우 좋다. 내가 자동차 공장을 짓는다니까 지하수가 풍부한 곳이니까 안성맞춤이라고 하였다. 난 이 공장을 얻게 된 것이 거듭 좋은 예감으로 다가왔다.

건물공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만다위 공장 일을 보면서 IKE는 매일 두 세 시간씩 건물 짓는 일에 정성을 기울여 주었다. 내가 현장에서 공사 감독을 하는 것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소요되는 자재는 내가 직접 시내에 나가서 사다 주었다.

반쯤 트러스가 올려졌을때 난 집 사람을 데리고 와서 현장을 보게 하였다. 아내는 남편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대견한 생각을 하고 남편이 그저 자랑스러운 모양이다.

한편 황 전무와 상의를 해보니 시내에도 자동차 전시장을 만들어서 판매를 하면 더욱 상승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위치를 아이아라(Ayala)백화점 근방이 좋을 것이라 생각되어 장소를 물색해 보라고 지시하였다.

황 전무는 바쁜 중에도 내가 공사하고 있는 현장을 자주 보러 왔다. 잇달아 지을 작업장 간이 건물에 대해서도 의논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 창고 건물만 완공을 하면 일단 한국으로 돌아가서 선적 업무를 계속해야 하는 것이다.

4주가 채 되기도 전에 건물이 완공 되었다. 도중에 양철지붕과 외곽 칸막이용 철재는 싸게 살 수 있는 곳을 발견하게 되어 당초 보다 공사비를 줄일 수도 있었다.

건물은 완공하고 나니 제법 자동차 공장다운 모습이 갖추어졌다. 이사를 하루 만에 끝냈다. 10명 정도의 종업원들이 정말 수고를 많이 해 준 덕택이다.

나는 자축하고 싶었다. 시작 첫날 점심때 잔칫상을 차렸다. 우리나라 식으로 고사를 지냈다. 레천 큰 놈 한 마리와 근처 가게에서 밥을 해 오고 탄두아이 술을 나누었다. 모두들 깨끗하고 넓은 공장에서 일하게 되니 기분이 좋다고 하였다. 더구나 미혼자나 타지에서 온 작업자들은 공장 내 기숙사에서 지내게 되니 더 할 수 없이 좋은 모양이었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큰일을 마치고 한 달여 만에 아내와 함께 귀국하였다. 이곳을 갖게 되고부터 회사는 크게 성장할 기틀을 맞게 되었다. 이런 공장을 찾아 임대차 계약을 성사시킨 황전무의 공이 대단히 크다. 이 공장은 내가 자동차 사업을 하는 한 유용하게 쓰일 곳이다.

12. 경인폐차장

2003년 1월초 남영으로 새해 첫 출근을 하였다. 필리핀에 갔다 온 선물로 양주 한 병을 들고 사장실을 찾았다. 남영 사장이 곤혹스러워하면서 폐차사업을 종료하고 이곳에다 아파트를 신축할 계획임을 밝혔다. 3개월 후에는 이 장소를 깨끗이 비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혀 뜻밖이다. 나는 이곳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착실히 성장하여 왔던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새로운 작업장을 찾아나서야 하는 것이다. 이날 나도 여기서 작업을 끝낼 계획을 김영우 부장과 협의하였다. 김부장은 자기 사업을 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다른 폐차장에 차를 공급해 주는 영업직 사무실을 갖고 일을 한다는 것이다. 잘만하면 나하고도 계속 사업의 연관성을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30여명 되는 전 종업원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뿔뿔이 헤어지는 것이다.

나는 작업자 한 명 채용이 필요했다. 작년 말 필리핀으로 출장 가기 전에 고용하고 있던 두 사람을 그만두게 하였기 때문이다. 초창기 열심히 정말 내일같이 일을 해 주었던 김호민 씨는 자기 동생과 건축 사업을 하게 되어 아깝지만 떠나보냈던 것이다. 그 뒤 대우자동차 엔진부 현장에서 근무하였던 두 사람을 고용하여 왔으나 늘 일하는 게 부실하여 결국 그만두게 하였던 것이다.

김 부장에게 남영 작업자중 제일 쓸만한 일꾼 한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하였더니 그는 대뜸 김신용이라는 사람을 적임자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도 이 사람이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면담을 하였다. 그는 기꺼이 이성상사를 위해서 일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었다. 보수는 남영에서 현재 받고 있는 대우이면 족하다고 하였다. 월급 백이십만원과 4대보험 그리고 1년에 한 달치 퇴직금을 바란다고 하였다. 적지 않은 대우였지만 나는 그를 채용하기로 결정하였고 내일부터 일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내일 이력서와 4대 보험 가입을 위한 제반 서류를 제출토록 일러두었다.

집 사람은 또 유민한방병원으로 재활치료를 계속 하였다. 큰 딸이 또 제 엄마를 간호하게 되어 힘들게 되었다. 필리핀 출장 중에서도 아침저녁 단지 내 산책을 계속하였던 것이다. 아직도 옆에서 부축을 해 주어야 한다. 이 사람에게는 많이 걷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제발 더 나빠지지만 않기를 바랄 뿐이다.

새로운 작업장을 찾아 나서기 시작하였다. 율도 근처에 있는 원창 대신 경인, 합동폐차장을 두루 찾아보면서 사장과 면담을 한 결과 경인폐차장이 가장 유력하였다. 내가 필요로 하는 차량의 구입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아들이 지금 대리로 근무 중에 있으니 앞으로 일을 김 대리와 상의하면 잘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사장 아들 김대리란 사람을 만나보니 일을 배우는 중이고 앞으로 아버지 대신 사장 일을 볼 사람이므로 보통 월급쟁이 직원하고는 분명 다른 점이 있었다.

남영에서 작업물량을 다 소화한 뒤인 2월 초순 나는 작업장을 경인폐차장으로 옮겼다.

프라이드를 해체한 부품 20대 분과 완성차 프라이드 6대를 한 컨테이너 싣는 것이 계속 되었다. 돈만(Donman)이 지속적으로 사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프라이드 베타는 쉽게 구해지지 않아서 나는 다른 폐차장을 기웃거려야 했다. 그러던 중 월미도 들어가는 입구에 소링 작업장이 크고 보유차량도 직접 구입하고 있는 곳을 발견하였다. 거기 가서도 차량 프라이드 베타를 몇 컨테이너 싣기도 하였다. 빈 공간은 타이어로 채웠다. 타이어는 그래도 지속적으로 잘 팔리고 이익도 20% 수준은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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