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한길만 달려왔다<8>…제3회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 특선-이헌원

입력 2017-10-10 13:40:22

13. 율도 수출 단지

이럴 즈음 이진수 사장이 율도 제4보세구역에 자기 사업장을 차렸다고 알려왔고 한번 찾아오라고 하였다. 반가워서 즉시 찾아가 보았는데 거기가 자동차 수출단지임을 알았다. 이때까지 폐차장만 돌아다녀서 내가 미쳐 몰랐을 뿐이었다.

이진수씨는 컨테이너 사무실을 야드에 두고 차를 매집해서 자기 야드에 전시를 해서 판매한다고 한다. 여기 차량은 차주에게 직접 사와서 수출말소를 시켜 수출면장을 끊는데 수출하고 나서 세무서로부터 폐차재활용지원금을 구매가격의 10/110을 지급 받는다고 한다. 아예 이것은 신선한 소식이었다. 나 보고 폐차말소된 차를 사지 말고 수출말소된 차를 사서 이런 혜택을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런 사실이 있는 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진수 사장은 자기 옆에 컨테이너를 아예 나에게 주려고 갖다 놓고 야드도 잡아놨다는 것이다. 그 컨테이너를 자기가 사온 가격 150만원만 내라고 하였다. 컨테이너를 둘러보니 새것이고 이진수 사장 것과 똑 같은 크기였다.

이 야드에는 자기와 같이 마당장사를 하는 사람과 나같이 수출하는 사람이 공존하여 중고차사업을 하는 곳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였다. 너무나 충격적이고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을까? 실제 수출단지를 둘러보니 엄청나게 넓고 많은 회사들이 입주하여 있다. 내가 간절히 찾던 프라이드 베타도 눈에 띄었고 가격을 물어보니 폐차장 가격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여기 있는 모든 차량들은 전부 수출말소가 된 차량들이었다.

나는 이진수 사장에게 고맙다는 말을 백 번이나 더하고 만타 관리실에 가서 임대계약을 하였다. 이렇게 해서 나의 중고차 수출패턴이 완전히 바뀌었다. 폐차말소가 아닌 수출말소된 차량이나 자동차번호가 그대로 달려있는 차량을 사서 수출말소를 시키고 수출면장을 발급받으니 수출 후 차량구입금액의 약 9%의 추가지원금까지 정부로부터 지원받게 된 것이다.

부품수출을 위해서는 폐차장을 한군데 더 물색해서 차량이 확보 되는 대로 작업을 해 나가면 되었다. 새롭게 물색한 곳이 시화공단에 있는 광진폐차장이었다. 여기는 인천에서 좀 멀기는 하지만 내가 원할 때 작업할 수 있는 물량이 항상 있고 또 가격이 좀 싸다는 잇점이 있었다.

김신용이를 채용한 것이 아주 잘 된 일이었다. 단지 내에서 쇼링을 할 때에는 몽골사람 두 사람을 일당 채용하여 거들게 하고 지게차를 임대하여 주면 거뜬히 해치웠다. 쇼링 비용이 대폭 줄어 들었다. 쇼링 작업이 없는 날은 광진이나 경인에 가서 부품작업을 하여 쌓아 두는 것이다. 그러다가 부품으로만 한 컨테이너가 되면 거기서 선적을 하면 되었다. 김신용이는 이런 일을 참으로 잘도 수행하였다. 처음에 김호민씨를 만나서 작업의 기초를 닦았고 지금은 김신용이가 잘 하고 있다.

이진수 사장이 내가 필요로 하는 차량을 잘 공급해 주었다. 작년에 세부 출장길에 동행을 해서 잘 대접한 것이 이렇게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 몰랐다.

세부 황전무와 인터넷으로 채팅을 할 수 있게 컴퓨터 시스템을 갖추었다. 매일 저녁 일정한 시간에 인터넷으로 들어가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 사람이 자주 보고를 해왔지만 이렇게 대화의 장이 마련되니 서로 세세한 점들을 이야기 하게 되었다.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선희에게도 집에서 사용할 컴퓨터를 사서 보냈다.

새 공장에서 쓸 물건들을 주문하였는데 장비로서는 카 리프트(Car Lift) 2주식 2대, 대형 재키(Garage Jack) 2대, 부품저장대 제작용 자재 등이었다. 카 리프트와 잭키는 장한평에 가서 중고품을 샀다. 저장대 재료는 앞서 보낸 것과 같은 규격이었으므로 앵글과 합판을 설계대로 절단하여 보냈다. 현지에서 용접하고 합판을 올려 놓으면 깨끗하게 완료되는 것이다.

새로운 전시장과 민다나오 시장 조사를 위해서 출장 와 줄 것을 황전무가 요청하였으므로 이에 응하기로 하였다. 선희에게는 새로운 집을 옮기게 되면 네 엄마가 단층에서 거처할 수 있는 집을 찾아보도록 일러두었다. 선희가 좋은 집을 구했고 좋은 간병인도 구해 놓았다는 연락이 와서 마누라와 함께 여행길에 나섰다. 아내는 나와 떨어져 있기가 싫다는 것이다. 어느새 5개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던 것이다. 그 동안 사무실 직원으로 방 전무의 아들을 채용해서 모든 선적에 관한 사항이나 서류작성 처리에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훈련을 마쳐 논 상태이다. 나 혼자서 다 처리하기가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선희가 새로 이사 한 곳은 퍼시픽 하이트(Facific Height)라고 하는 주택단지이다. 조그마한 주택들이 줄지어 있는 곳이었다. 선희와 간병인(Care giver)가 이층에서 지내고 우리 부부는 일층 넓은 방에서 지내게 되니 아주 편리하였다. 선희는 여전히 파르도 공장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차량이나 부품판매는 아직도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황전무가 보아 두었다는 전시장 후보지를 둘러 보았다. 아이알라(Ayala) 맞은편에 큰길가의 집인데 불이 나서 집이 타버린 상태로 있었다. 좀 좁기는 하나 위치가 좋아서 적당한 곳으로 보였다. 같이 둘러본 아내가

"불이 난 곳이니 여기서 장사를 하게 되면 사업이 불꽃 같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덕담과 예언을 해 준다. 주인을 만나 협상을 하였다. 집 주인이 불 난 잔재를 말끔히 치워주겠다고 한다. 계약을 하였다. 창고를 지었던 그 목수를 불러서 견적을 받았다. 잔재가 치워지는 대로 공사를 시작해서 2주일 내 완공하겠다고 하였다. 한번 믿어본 사람이라서 과감히 발주를 주었다.

14. 민다나오 진출

민다나오 진출에 대해서 황전무가 그 동안 보고한 내용이 많이 있었는데 한번 다시 가 보고 결정을 짓자고 한다. 다바오 모터(Davao Motors)란 곳을 아이와(Ayah)와 함께 택시업자로 변신하여 방문하였는데 공장내부를 잘 둘러보았다는 것이다. 절단 차량을 재조립하는 작업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굉장히 큰 규모로 사업을 하고 있으니 경쟁상대가 되기 위해서는 좀 힘들어 보인다는 것이다. 다바오 행 비행기에서 이렇게 출장 요점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다.

송사장을 먼저 찾았다. 그에게는 문배주 한 병을 선물로 드렸다. 사업하는 겉모양은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내가 보낸 그레이스들이 전시장에 잘 정돈되어 있다.

"좋은 차를 보내주어서 감사합니다." 라는 그의 인사말에

"저에게 주문을 계속 주시니 제가 오히려 고마울 뿐입니다."

우리는 서로 덕담을 하였다.

그는 앞으로 스타렉스(Starex)를 가지고 오는 것에 대해서 검토 중이라고 하였다.

난 한국에 돌아가서 이 차량에 대한 견적서를 보내 드리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저녁식사를 함께 하자고 하여 장소와 시간을 알려주었다.

다음 아이아(Ayah)를 찾았다. 그는 몰라보게 발전하였다. 그는 택시를 벌써 10대 가까이 운행하고 있다고 하는데 택시 중에는 아벨라도 있다고 한다. 나는 처음 듣는 이름이다. 나는 이렇게 변화에 대해서 잘 따라가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자책이 앞선다.

아이아를 앞세워 다바오 모터를 찾아갔다. 내 눈으로 절단 차량 작업을 관찰해 보기 위함이다. 듣던 대로 공장 규모가 크다는 인상을 받았다. 절단된 것을 용접하는 것을 자세히 보았는데 그리 어렵게 보이지는 않는다. 도장시설을 잘 갖추었다. 스프레이 부스(Spray Booth)와 샌딩(Sanding)시설 그리고 도장건조실(Infrared Barking Oven)도 갖추고 있다. 그의 도료는 베이킹 타잎(Baking Type)을 쓰고 있었다. 돌아 나오는 길에 절단 차량들이 노천에 그대로 놓아두고 있어서 어떤 차량을 벌써 심하게 녹이 쓴 것도 보인다. 이 점이 아주 안 좋아 보였다.

나의 결론은 이 사람이 찹 찹(Chop-Chop)을 하고 있으니 나도 찹 찹(Chop-Chop)으로 대응하는 게 옳다고. 다만 이 사람이 나의 사업을 방해하지 않으면 난 얼마든지 경쟁해 나갈 수가 있다고 보았다. 정면 돌파를 시도해 보는 것이다.

펨코에도 가 보았다. 모양은 전에 보았던 것과 별다르지 않다. 엔진이 잘 팔리느냐고 종업원에게 물어보았지만 대답을 듣지 못했다. 다바오엔 일제차 미니트럭과 밴(Van)들이 여러 군데 전시되어 있는 것도 보았다.

씨엘로 고(Cielo Go) 공장에 또 들렀다. 이 사람은 우리보다는 펨코 구 사장한테서 차를 공급받는 것이 더 많은 모양이다. 달라진 것은 일제차 "파재로" 같은 RV차량을 시도하고 있는 게 특이하게 보였다. 그는 여전히 내가 다바오(Davao)에 진출할까 봐 경계의 눈초리를 하고 있었다.

시내 매장을 쭉 둘러 본 결과는 세부보다는 자동차판매매장이 훨씬 많이 보인다는 점이다. 도시도 세부보다는 훨씬 크고 짜임새가 있으며 전체 도시 계획에서 차량 흐름이 신호등이 없어도 소통이 원활하게 되어 있다. 민다나오란 섬은 필리핀에서 두 번째 가는 큰 섬이다. 인구도 아주 많다.

장기적으로는 자동차산업의 미래가 밝다고 보았다. 황전무도 이렇게 보고 있었다. 이런 결론을 가지고 출장에서 돌아왔다.

회의를 열었다. IKE부부, 황전무, 선희를 참석시켜 다바오 진출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모두 찬성하는 쪽이었다. 황전무가 다바오지점장으로 나가도 세부사업에 문제가 없는지 하나씩 검토하였는데 별 문제가 없었다. IKE부부가 아주 적극적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H.R에게는 IKE 부부가 책임을 지고 지금 돈만(Donman)을 관리하는 것처럼 할 수 가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자신 있게 한번 해 보겠다고 하였다.

난 과감하게 다바오 지점을 오픈(Open)하는 일의 일체를 황전무에게 일임하였다. 세부 일은 선희와 IKE에게 인계하고 조속히 다바오로 떠나도록 지침을 정하였다.

한편 레미디오 신 공장에는 카 리프터(Car Lifter)가 설치되었고 에어 컴프페셔(Air Compressor)를 가동하면서 수공구 작업을 파워툴로 교체하는 것을 시도하는 중이었다. 창고내의 자재도 잘 정리하였고 새 전담관리자 여직원도 채용하였다.

기분 좋게 돌아왔다. 나의 출장길엔 언제나 굵직한 일들로 채워졌다. Ayala판매전시장도 오픈하였던 것이다. 전문판매인 한 사람을 또 채용하였다. 나의 사업이 번창하면서 필리핀 사람들을 고용한 수가 20명이 넘어섰다. 내가 이 사업을 통해서 필리핀 사람들에게 많은 일자리를 마련해 주겠다는 나의 부처님께 세운 발원이 조금씩 성취되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돌아와서는 아벨라 차량을 선적하기 시작하였다.

연말이 또 다가온다. 사몬태가 자기 큰 딸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줄 좋은 차를 보내달라는 요청이 왔다. 어떤 차를 원하는지 물었더니 지금 선희가 타고 있는 프린스처럼 큰 차를 원한다는 것이다.

좋은 차를 보내달라고 하니 무슨 차가 적당할지 고심하였다. 곰곰 생각하니 월미도 쇼링장 김사장이 한 말이 생각이 났다. 용인 자동차 경주장 주변에 경주용으로 사용되었다가 퇴역한 차량을 헐값에 살 수 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값이 왜 싸냐 하면 그곳 경주용 차량들은 모두 자동차 메이커에서 기증된 것이기 때문이란다.

나는 하여간 거길 가보기로 하였다. 과연 주변에는 자동차 경주에 참가하는 업체가 많았다. 각 업체에는 경주용으로 리모델링(Remodeling) 작업을 하고 있었고 도중 고장 난 차량을 수리 정비하는 작업도 하고 있었다. 한 업체에서 매그너스를 보았는데 주인에게 이 차를 팔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값만 좋으면 팔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락을 얻어 차를 시운전 해 보았더니 차량 성능이 아주 좋다. 주행거리를 보니 겨우 만삼천km을 주행한 것으로 되어 있다. 주인에게 물어보았다. 이 매그너스도 경주에 참가한 일이 있느냐고? 없다는 대답이다. 대우자동차에서 기증받은 그대로이며 다만 주행장으로 오가는 용도로만 사용하여 온 것이라고 하였다. 협상 끝에 이백오십만원에 샀다. 자동차에 대한 서류는 원래 아무것도 없으니 수출업자에게나 팔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차량대금을 지급해 주었다. 카 캐리어(Car Carrier)를 불러서 바로 가져왔다.

사몬태 큰 딸이 복이 있으려고 하니까 뜻 밖에 좋은 차를 구입하였다. 나는 선희에게 이를 자세히 알렸다.

또 다섯 달 만에 필리핀으로 출장을 왔다. 물론 마누라와 동행이었다. 한국의 12월 추위가 매섭게 시작되었으므로 마누라에게는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지내기가 훨씬 편한 것이다.

일년 전에 지은 창고건물은 공장을 찾는 손님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있다 한다. 누가 무어라고 하여도 이것은 나의 걸작품이다. 최대한 싼 건물을 지어 감가상각이 쉽게 되도록 하는 것이다.

목재 건물이지만 사용기간이나 용도에는 철골구조물에 버금가는 것이다.

IKE 부부가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전에 없이 좀 심드렁한 표정이다. 내가 보낸 메그너스에 대하여 불만이 있는지 별 이야기가 없다. 나도 담담히 그냥 있었다. 돈만(Donman)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벨라(Avella) 한대를 주면 어떻겠느냐 네가 좀 갖다 주면 좋겠다고 하였더니 별 반응이 없다. 그러다가 부인이 좀 빈정거리는 말투로

"Mr. Lee는 이제 부자가 되었다."라고 하는 것이다. 더욱 어안이 벙벙해진다. 이런 말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곧 사몬테 부인은

"우리에겐 크리스마스 선물로 무엇을 줄 것이냐?"고 묻는다.

"난 이미 주었는데 받지 않았느냐? 좋은 차 매그너스를"하고

"그 차 대금을 선희에게 지불하였는데 무슨 선물이냐?"

이상하다. 나는 분명히 선희에게 이 차를 구입한 경위와 성능, 구입금액을 말해 주었고, 구입금액에 해상운임과 통관비만 계산하여 아무 이익을 붙이지 말라고 지시하였는데 선희가 과도하게 청구를 하였단 말인가? 나는 곧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물었다. 이 대리는 내가 시킨 대로 그대로 하였고 금액에 대한 설명도 해 주었다고 한다.

나는 이대리에게 얘기 들은 대로 설명해 주었다. 특히 특별한 경로를 쫓아 산 것이라서 아주 싸게 산 것이다. 이 차를 시세대로 사려면 내가 산 금액의 3배가 넘는다고 하면서 가방에서 시세표를 꺼내어 보여 주었다. 그러니 너희들은 이미 아벨라 3대를 선물로 받은 거나 같다고 말해 주었다. 이렇게 긴 설명을 듣고서야 비로소 이해가 되는 모양이다.

"미안하다. 이렇게 성능이 좋고 비싼 차인 줄은 미처 몰랐다. Mr. Lee의 노고에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기분이 풀어졌다. 외국사람과의 사업에는 조그마한 오해가 큰 불란을 가져 올 수도 있는 것이다. 곧이어 IKE가 아벨라를 몰고 나는 내 차를 몰아서 함께 돈만(Donman)의 야드로 갔다. IKE는 돈만에게

"이 차는 Mr. Lee가 너한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라고 호기 있게 말하는 것이다. 돈만도 전혀 뜻밖의 큰 선물을 받고 대단히 좋아하는 것이다. 그는 이미 150대의 택시를 운행하고 있다. 앞으로 100대를 더 가질 계획이라고 하였다. 제일 큰 고객이다. 아벨라 한대를 선물로 주어도 전혀 아깝지 않는 것이다. 상도에서 '장사란 이윤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고 하였듯이 이성상사의 브랜드를 믿음과 신뢰를 앞세워 나타내는 것이다.

IKE를 대동해서 다바오로 갔다. 황전무가 고군분투하고 있기 때문에 이성상사의 파트너로써 IKE가 분명 할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나의 이 생각은 적중하였다. 황 전무가 애로를 겪고 있는 사항들을 다 듣고 곧 황 전무가 가고 싶어 하는 곳을 함께 찾아 나섰다. IKE는 내가 만들어준 명함을 사용하였다. 한 면은 클러스터 상사(Clester Trading)이고 다른 한 면은 이성상사의 대리점 사장이라고 되어 있는 것이다. 필리핀 사람끼리 자기들 말로 이야기를 나누니 분위기가 벌써 확 달라진다. 나는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대화 분위기를 봐서는 좋은 상담을 하는 것 같다. 가끔 가격에 대해서 황전무에게 물어보고 조정해 나간다. 드디어 아벨라 한대를 팔았다.

황 전무는 판매원으로 필리핀 한 사람을 채용하고 있지만 이 IKE처럼 적극적이지 못한 모양이다. 나는 IKE에게 지금 고용하고 있는 사람에게 고객을 응대하는 방법, 특히 가격을 조정해 나가는 화술에 대해서 가르쳐 주라고 부탁을 하였다. 나의 부탁을 받고 IKE는 이 종업원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IKE의 이런 면모는 처음 본다. 함께 출장을 온 것이 역시 효과가 크다.

나는 황전무에게 너무 실적에만 연연하지 말고 느긋하게 하라고 당부하였다. 시간이 나는 대로 가가얀으로 가서 시장 상황도 파악해 보고 특히 재현 자동차 부품 상점에 들러서 홍사장을 만나보라고도 당부하고 세부로 돌아왔다.

12월은 카톨릭 국가인 필리핀 사람들에게 마음을 들뜨게 하는 계절이다. 12월에는 컨테이너가 도착해서는 좀 곤란해지는 것을 알았다. 세관공무원들이나 경찰들, 대통령 지속 사정기관인 CIDG 같은 데서 공연히 트집을 잡는 수가 있으니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몸을 낮추는 달이다.

가진 사람들의 덜 가진 사람들에게 베푸는 달로 생각하고 있다. 거래처 고객에게 선물을 준비하여 보내는 것은 필수적이다. 종업원들에게도 13month라고 하여 100%보너스를 지급해야 한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종업원 가족들도 초대해서 게임을 하고 놀며 푸짐한 음식을 나누며 노래방 기기를 설치해서 밤새 노래도 한다. 이날 하루만은 종업원들이 왕이다.

그리고 밤새 불꽃놀이로 아주 소란스럽다. 높은 곳에 올라가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가 있다. 올해는 IKE 집에서 폭죽놀이를 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래미디오(Remedio) 공장에서 파티가 끝나자 IKE의 집으로 갔다. 여러 가지 모양의 폭죽들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이윽고 12시가 넘어서자 사방에서 하늘 높이 불꽃이 올라가서 굉음을 내며 터진다. IKE 집안 마당에서 모든 식구들이 나와서 폭죽 쏘아 올리기를 즐긴다. 나도 하였다. 심지에 불을 붙이면 로켓트처럼 하늘 높이 올라가서 폭발한다. 몇 개 쏘아 올려보니 재미가 있다. 어떤 것은 공중에서 여러 단계로 폭발하는 것도 있다. 온 국민이 즐긴다.

필리핀 사업은 이제 날개를 달았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15. 몽골 출장

나의 첫 번째 몽골여행은 지난해 10월 하순이었고 두 번째는 한 달 뒤인 11월 하순이었다. 율도 수출단지 맞은편에 있었던 몽골 청년 "애기"와 동행하여 소련 "울란우데"라는 곳에 가서 쌍용 승합차 이스타나의 수출 길을 공동으로 개척해 보자는 생각에서였다. 애기 형제들이 소련에서 유학을 하였기 때문에 그곳 사정을 잘 아니 공동으로 출자를 해서 사업을 계획해보자는 취지였다.

애기와 한국 출발부터 동행하였다. 이 애기 누나와 매형 두 사람이 한국에 나와서 일하고 있었다. 서로 이웃하여 있으니 자연 친하게 된 것이다.

소련으로 갈 때에는 기차를 탔다. 울안우데까지 17시간이 걸린다고 하였다. 장기 여행이니까 방한 칸에 상하 좌우 침대가 있어서 네 사람이 타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윗 양복을 벗어 벽에 걸었다. 애기는 잠시 자리를 떴고 나 혼자 앉아있는데 두 사람 청년이 들어와서 윗층이 자기들 자리하고 시늉을 하면서 이불을 펴고 무슨 보따리를 올려놓으려고 내 양복 걸어 둔 곳을 짐 보따리를 가리면서 올려놓는 척 하다가 나가 버리는 것이다. 잠시 뒤에 돌아온 애기가 자기 지갑을 빼내어 침대 밑에 넣는 것을 보고 나도 그렇게 해야 되겠다고 내 양복에서 지갑을 찾으니 없어졌다. 나는 비로써 아까 그 청년들의 수상한 행동이 생각 난 것이다. 지갑에는 달러는 몇 푼 없었다. 애기가 공동으로 쓸 여행경비를 몽골에서 이미 환전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갑 속에 신용카드가 들어있다. 이것이 문제였다. 나는 애기의 핸드폰을 빌려 한국의 큰 사위에게 지갑을 소매치기 당한 것을 이야기하고 카드 사용중지를 하라고 일렀다. 소련 방문 길에 소매치기부터 당하니 기분이 안 좋다.

애기는 수완이 좋았다. 울란우데의 몽골 영사관에 찾아가서 거기서 운영하는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몽골 영사관을 면담하였는데 나는 준비해 간 문배주를 선물로 주었다. 애기가 자동차 수출 건에 협조와 도움을 요청하는 모양이다. 그 영사관은 비서를 불러 무슨 지시를 내린다. 그 비서는 애기에게 만나 볼 소련 정부사람과 소련 사람의 이스타나 판매 전시장 등을 가르쳐 주는 것 같았다. 영사관을 나온 우리는 택시를 잡아타고 애기가 가는 대로 가서 보니 이스타나의 전시판매장이다. 우리가 그 매장을 들어서는데 이스타나 두 대가 그 전시장 안으로 막 도착해서 들어 오는 모양이 보였다.

그 차는 울라디보스토크 항에서 통관을 마치고 하바로스크를 거쳐 장장 4,000km를 달려 온 것이라 한다 애기가 이 주인하고 열심히 상담을 하였지만 별 결실을 보지 못했다.

다시 택시를 타고 정부기관 세무서 같은 곳을 둘러서 통관절차, 관세, 취등록세 등의 자료를 받아왔다. 이스타나의 제작 년도가 3년에서 5년 사이 지난 것이 관세가 가장 쌌다. 3년 이내와 5년 이후의 관세가 똑같은데 앞의 것의 약 1.5배 가량 높다. 이것의 취지는 5년 이상 오랜 된 차량은 가지고 오지 말라는 뜻이다. 숙소에 돌아와서 오늘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열심히 원가계산부터 해 보았다. 승산이 있어 보였다.

다음 날 이스타나의 용도를 조사해 보았는데 이 차가 시내버스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다른 매장이 있는지 영사관 비서에게 물어 보았는데 어제 이야기해 준 곳 한 군데 뿐이라고 한다. 다시 그 매장을 찾아서 한국의 공급자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한국의 부산이라는 곳에서 공급받고 있다면서 자세히 가르쳐 준다. 애기는 쏘련 말이 능통하고 화술이 좋아서 첫날 묻지 못했던 여러 가지 영업상 비밀인 판매원가와 이익규모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묻고 대답하는 대로 기록 하였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좀 미진했던 부분들을 보완하였다. 통관 후 이송경비가 너무 많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몽골로 차량을 가지고 와서 국경을 통과하는 방법도 찾아보기로 하여 귀로에는 버스를 택하였다. 국경에서 애기는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통관이 가능한 루트를 찾아냈다.

몽골로 다시 돌아와서 사업계획을 만들어 보았는데 그 골자는 애기의 큰 형이 울란우데로 나가서 판매전시장을 갖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 일치를 보았지만 결국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다만 울란우데 시내를 운행하고 있는 택시 회사를 찾아가 택시사장을 만나보려 하였으나 그 비서가 우리말로 사장은 지금 한국에 나가 있으니 귀국하면 만나보라고 하면서 연락처를 주었다. 울란우데에 애기와 함께 공동투자로 진출하는 일은 여러 가지 할 일들이 많았으므로 포기하였다. 애기도 더 언급이 없었다.

울란우데 택시 사장을 만났다. 박사장이다. 그는 현대의 카운티 25인승이나 기아의 버스 한대를 사고 싶다는 제의를 해왔다.

나는 다시 만나 견적서를 주었다. 내가 제시한 금액이 일만사천불이었는데 그는 이 가격에 동의하였고 지불조건은 싣기 전에 50% 송금을 받고 나머지 50%는 그가 통관을 한 후 받기로 하였다. 나는 신월동 경성자동차에서 만난 방노준씨에게 차량구입을 의뢰하였다.

그리고 부산으로 내려가서 이스타나 수출회사를 찾아보았다. 그의 야드에는 많은 이스타나가 있고 작업자 두 사람이 차를 정비하고 있었다. 좌석을 떼어내고 깔판을 새것으로 바꾸고 차량 내부를 깨끗이 청소를 한다. 외부 도장도 수정을 하고 엔진의 노후 부품, 히타(Heater)점검 등 아주 정성껏 일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울란우데, 소련매장에 보내고 있는 지가 오래되었으며, 천신만고 끝에 사업이 이제 기반을 이루었다고 하였다. 나도 한번 이스타나 수출을 해보고 싶은데 방법을 좀 알려 달라하였더니 다른데 소개해 줄 만한 바이어가 없다고 한다.

16. 하바로프스크 출장

나는 부산여동생 집으로 갔다. 제매의 6촌 형 되시는 분이 하바로프스크에 거주하고 계신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소련 지도를 보면 블라디보스토크 항에서 통관을 마친 차량들이 반드시 하바로프스크를 통과해야 되니 이 하바로스크에 거점을 차리면 위치상 좋은 곳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재매가 전화를 걸어 내가 생각한 사항들이 맞는지를 물어보게 하였다. 하바로스크엔 자동차 매장단지가 있는데 주로 일본차라고 하였다. 아주 활발하다는 것이다. 그 매장에 입주하는 것은 쉬우며 자동차가 매매가 되면 수수료를 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큰처남 되는 사람이 한번 찾아가서 뵙겠다는데 괜찮겠느냐고 동의를 구했다. 그래서 방문할 날짜를 정했다. 재매와 같이 동행하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이분과는 초면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사업이야기를 하기에는 곤혹스러운 점이 있다.

한편 울란우데 박사장이 50%를 보내왔으므로 버스를 속초 대포항으로 보내어서 선적을 완료하였다. 그런데 박사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버스가 하바로스크 못 미친 곳에서 고장을 일으켜서 정비업소에 입고를 시켰다는 것이다. 차가 있는 곳을 가르쳐 주었다. 무엇이 고장인지는 내가 가서 알아봐야 할 것이었다. 일이 묘하게도 하바로스크에 출장일정 중에 이런 사고가 발생하였다니 아예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방노준씨가 여수에서 구입하여 손수 운전을 해서 속초까지 바로 가져갔기 때문에 버스를 점검하지 못했다. 한편 난 기아자동차에 가서 사고수리를 한 일이 있는지 정비기록을 입수해 보았다. 엔진이 오버히트(Over Heat)를 해서 관련 부품을 교체를 한 기록들이 확인되었다. 그 수리를 한 것이 아직 20일이 채 되지 않는다. 방노준에게 운전하고 갔을 때 무슨 이상한 점이 없었느냐고 물었으나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버스가 수리정비를 한 것이 있는지 알아보았느냐고 하였더니 전혀 그런 일이 없다고 한다. 난 그제서야 정비기록서를 보여주면서 엔진을 크게 수리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제서야 그는 차주에게 전화를 걸어 수리 사실을 확인하고 왜 그 사실을 숨기고 나에게 차를 팔았느냐 이 버스가 소련에 가서 엔진고장이 나 있는데 책임을 지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다.

내가 하바로스크에 출장을 가서 고장사항을 알아보고 오겠다. 만일 고장원인이 수리를 잘못한 것이 밝혀지면 모든 책임은 방노준씨가 져야 하니 그 차주와 긴밀한 연락을 하고 있으라고 하였다. 하바로스크에 출장을 떠났다. 나는 박사장에게 내가 현장에 가서 고장원인을 알아보고 수리를 해서 차를 울란우데로 보내겠다고 하였다. 박사장은 나의 즉각적인 행동에 감사한다는 말을 하였다.

제매와 동행한 것이 잘 되었다. 나는 먼저 버스 고장사실을 실토하고 도와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 사돈은 앞으로 나와 파트너가 되어 일할 사람을 불렀다. 사업이야기 이전에 우리 일행은 그 정비공장으로 찾아갔다. 나의 파트너가 될 사람 이름이 '알렉새이 이'이었다. 교포 3세인데 우리말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는 고장 정황으로 보아서 크랭크샤프가 불량으로 메탈베어링이 이상마모를 일으켜 엔진오일이 다 새나가서 고장이 난 것이라고 정확하게 진단하였다. 그 자리에서 엔진을 내려 분해하였더니 메탈베어링이 편 마모가 일어났다. 이것이 명백한 증거임으로 사진을 찍고 손상된 부품들 을 잘 간직 하였다. 내가 가지고 간 카탈로그 그림을 하나하나 보면서 교체하여야 할 부품 명세서를 만들었다. 이에 대체할 부품 명세서를 만들었다. 이에 대한 출장 보고서를 만들어 방노준 씨에게 팩스로 보냈고 교체 부품은 구매하도록 요청하였다.

다음 날 우리는 공동판매장을 찾았다. 엄청나게 넓고 많은 차량들이 전시되어 있다. 대부분 일제 차량이다. 일제 차라도 운전대 위치는 바꾸지 않고 그냥 사용 하였다.

알섹세이는 독립적인 자기 매장을 갖고 있었다. 파는 가격을 물어보니 괜찮은 수준이다. 공급받는 가격을 물어보니 블라디보스로크에서 구입하는 비용을 말해 주었다. 그는 한국에서 공급자가 없어서 찾고 있던 중이라고 하였다. 평소 사돈하고 친분이 있는 터라 믿을만한 사람이다. 더구나 교포 3세이니 믿을 만 했다. 그는 자본이 없다고 솔직히 이야기 하고 대리점 계약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사돈이 관리를 해 주면 안심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돈에게 중간에서 챙겨야 할 일들을 말했더니 자기 사위에게 맡기면 잘 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대리점 계약서를 만들고 서로 서명을 하였고 Witness 으로 사돈이 서명을 하였다. 대리점 수수료는 대당 1,000불을 주기로 하였던 것이다. 나에게도 모든 경비를 제한 순익이 대당 1,000불이 되니까 이 사람이 잘 판매하면 사업성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송금을 받는 절차가 까다롭고 요구하는 서류들이 많았다.

버스를 주문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길래 박 아무개라고 말씀드렸다. 사돈은 이 사람을 잘 안다는 것이다. 사할린에서 이혼하고 살았는데 여자관계가 복잡하고 교포들을 등쳐먹기도 한 사람인데 거래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을 해온다. 버스를 고쳐주어도 돈을 떼먹을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수리 후 그 정비공장에서 차를 인도하기 전 남은 금액을 다 받으라고 말씀하여 주신다. 그리고 그 정비공장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나의 허락을 받기 전에는 차를 넘겨주지 말라는 요청을 하는 것이었다. 사돈의 일 처리가 깔끔하고 명쾌하였다. 앞으로 사위에게 지급할 보수를 물었더니 월 2,000불이면 좋다고 하여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 드렸다.

하바로프스크에 머무는 짧은 동안이었지만 사돈은 시내의 얼음 공원을 구경시켜 주었다. 거대한 얼음 궁전에는 온갖 동물들의 기괴한 모습, 아취, 얼음집들의 현란한 조각들을 구경하였다. 영하 30도가 더 내려가는 혹한 속에서 쏘련 사람들은 조각 예술을 얼마나 사랑하길래 이런 거대한 얼음 조각 공원을 만들어 논 것일까! 참으로 찬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재매는 귀국길에 올랐고 나는 불라디보스토크로 가서 한국 영사 관장을 만나 보고 이곳의 일제차 계류장을 같이 방문하였다. 한국 차는 이제 시작 단계이니 보이지 않았고 모두 일본 차 일색이었다. 영사관장은 앞으로 자동차가 전망이 좋으니 잘 해 보라고 격려하여 주었다.

귀국 후 방노준 씨에게 지참하고 온 메탈베어링을 보여주고 고장원인은 정비 공장에서 엔진과열로 변형된 크랭크샤후트롤 교체 하지 안한 것이 주된 원인이라고 하였다.

그는 모든 것을 인정하겠고 배상을 하겠다고 나섰다. 교체부품을 사는 것이 50만원이 소요 되었는데 이것을 지불하겠다는 각서를 받았다. 부품을 사돈에게 항공으로 보냈다.

한편 알렉세이에게 보낼 서류도 즉시 갖추어서 사돈에게 DHL 발송을 하였다,

이스타나 차량을 우선 3대 구입하였다. 이것도 모두 방노준씨가 구해 준 것이다. 그러자 사돈이 OK싸인을 보내 왔다. 그래서 나와 직원, 방노준씨가 한대씩 몰고 속초로 가서 선적을 완료 하였고 B/L을 받아 사돈에게 매일로 송부하였다.

박 사장이 사람을 보내어 수리비를 대납하고서 버스를 찾아가 버렸다. 그는 뒤에 3천불을 보내왔다. 수리비 대납한 것과 이송비 등의 이유로 4천불을 삭감해 버린 것이다. 방노준씨도 차일피일 보상을 해 주지 않는다. 그는 끝끝내 말만 앞세우고 움직이지 않았다.

이스타나 판매금액이 3개월 후에 들어왔다. 알렉세이가 차를 파는 속도가 너무 늦다. 그 후 2대 더 선적한 것이 있는데 좀 걱정이 되었지만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자금 회전이 늦어지면 도저히 사업을 할 수 없다고 사돈에게 말씀 드리고 사위의 보수 2천불만 보내라고 해서 그렇게 소련 사업을 종료하였다.

뒤돌아 보건 데 사업시작 시기가 잘 못된 것이다. 영하 33도-40도의 혹한기에 자동차를 보낸 것이 잘 못 된 것이다. 하바로프스크 1월 18일부터 1월 25일까지 영하 33도의 혹한을 경험하였다.

실컷 고생만 하였다. 사돈에게 폐를 끼쳐서 미안한 생각을 갖고 지냈는데 그런지 얼마 뒤 사돈은 타계하셨다고 한다. 혹시 그때 혹한 속에서 뛰어다니시느라 지병이었던 천식이 덧난 게 아닌지 송구스럽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17. 컨테이너 억류

나쁜 소식이 있었다. 그 동안 필리핀의 이대리가 보고를 하여 주었는데 컨테이너 4대가 억류되어 버린 것이다. 이 대리가 신문을 스크랩해서 보내 왔는데 컨테이너 문이 활짝 열어젖혀져 있고 그 안에 아벨라가 실려 있는 모습이다. 이 중 한 컨테이너는 부품만 실은 것인데 원가가 이천만원이 넘는다. 도합 총액이 4천만 원이나 되니 금년 장사는 완전히 망쳐버린 것이다. 세관이 다분히 나를 겨냥한 느낌이 있다. 이 대리가 이 일로 아이크 부부에게 심하게 항의하였고 그 집에서 점심 식사를 하지 않는 등 사이가 아주 나빠졌다. 작년 연말에 나보고 이제 부자가 되었다고 빈정거릴 때 좀 이상한 느낌을 받았던 것인데 이들의 농간인지 어떤지는 몰라도 일을 당하고 말았다. 지금 나를 대하는 것도 어쩐지 좀 냉랭하다. 이미 억류된 것은 되돌릴 수 없다. 누군가에 의해 컨테이너 속 물건들 빠져나가고 빈껍데기만 남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이 헤어지자고 먼저 제안을 하기 전에 나는 모든 것을 참고 인내하기로 맘먹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좋은 소식이 있었다. 넷째 선희가 필리핀 총각을 만나서 교제 중이라고 마누라가 알려주었다. 그 총각은 시내 라훅(Lahug)에 있는 큰 호텔 워터프런트(Water Front)의 지배인으로 있다는 것이다. 마누라는 그 총각을 몇 번 만나 보았는데 키가 크고 인물이 좋고 당당하다는 것이며 자기 마음엔 꼭 든다고 하였다.

다바오 황 전무에게 들렀다.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있으나 별 실적이 없다. 송 모터스(Song Motors)도 옛날 공급자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몇 달 동안 아무런 실적이 없었던 것이다. 난 철수하기로 결정하였다. 뒤처리는 현재 직원에게 맡기고 세부로 조기 복귀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그러나 이 결정은 좀 성급한 것이었다. 뒷날 세부 항이 막혔을 때 다시 다바오(Davao)로 진출할 계획을 세웠는데 어려워서 그만 두었던 것이다.

18. 새롭게 직면한 위기

황 전무가 보고해 온 바에 의하면 세부에서 여러 업체가 생겨나서 경쟁이 치열해 졌다는 것이다. '세부한인중고차연합회'를 결성하여 판매가격을 정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가격이 자꾸 떨어지고 있어서 수지가 악화되는 추세라고 하는 것이다. 매월 선희의 결산자료에서 이미 이것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내심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황 전무는 연말에 회사 일을 그만 두겠다고 한다. 김상희 장로가 오픈(Open)하는 영어학원장으로 가기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황전무 적성으로 봐서는 그 자리로 가는 것이 좋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잡을 수가 없다는 느낌이다. 회사 수지가 악화되는 때에 황전무까지 그만두면 손실이 크다. 설상가상으로 아이크도 그만 둘 조짐이 보인다고 선희가 보고해 왔다. 4개의 컨테이너가 억류된 이후 사이가 자꾸 나빠지고 있고 그리고 무슨 시기심 같은 것이 보인다는 것이다. 지난번 출장 때 아이크 부부가 뭔가 소원해 지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것이 이런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인가? 나는 올해의 마지막 선적일 11월 초순으로 좀 당겨 잡았다. 조기 출장을 가서 두 사람이 빠지는 것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것이다.

선희에게 내가 출장을 가지 전에 그 청년 헥터(Hector)가 자동차 일에 관심이 있는지 의중을 떠 보라고 일러두었다. 아마 헥터는 자동차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차근차근 배워나가면 되는 것이다. 무슨 일을 맡겨도 잘해 갈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가는 것이다. 이번 출장길은 왠지 발걸음이 무겁다. 먼저 간병인에게 별도의 사례금을 주었다. 그러면서 추위가 얼추 지난 내년 1월말 경 귀국할 예정이니 그때 다시 수고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셋째 딸과 손자가 동행하였다. 우선 내부적으로 두 축이 사라지면 당분간은 힘들어 질 것이다. 경쟁이 치열해진 외부환경에는 또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나?

내 마음부터 다 잡았다. 초심으로 돌아가자. HR에 첫 컨테이너를 가지고 와서 부품을 판매하였던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하자. 돈만(Donman)에게 프라이드를 한대 두 대 공급하기 시작했던 때를 생각하자 그 동안 혹시 자만심에 빠진 일은 없었는지?

선희가 헥터의 의중을 전해 주었다. 헥터는 자동차 일을 맡아서 새로운 도전을 해 보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로 워터 프런트(Water Front) 호텔로 찾아가서 면담을 하였다. 넓은 호텔 로비에 앉았다. 이층 복도 난간에 설치된 연주대에서는 언제든지 감미로운 생음악이 흐른다. 이렇게 넓고 우아하고 정감이 넘치는 호텔로비는 드물다.

헥터는 근무복 차림으로 로비에 나타났다. 그는 자리에 앉자 대뜸

"나는 아직 운전을 할 줄 모른다. 파파(Papa lee)가 좀 가르쳐 주면 좋겠다."

나는 이 말이 마음에 들었다. 백 마디 말보다 이 한마디가 자동차 일을 해 보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기초부터 배우겠다는 뜻이다.

"좋다. 내가 운전을 가르쳐 주겠다. 내일이라도 당장 우리 회사로 오너라"

그날 헥터는 바로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사직서를 보고 놀란 호텔 사장이 간곡히 만류하였다 하는데 헥터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는 한 마디만 남겼다는 이야기를 뒤에 들었다.

이미 마음이 돌아선 아이크에게는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 곰곰이 생각한 끝에 이미 클러스터 상사(Clester Trading)가 널리 알려져 있으니 아이크가 독립하는 길을 열어주자고 결심하였다. 호텔을 나선 나는 공장으로 바로 가서 아이크와 마주 앉았다.

"그 동안 나와 함께 일해 주어서 고맙다. 너도 이제 네 사업을 차려 독립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고 단도직입적으로 운을 띄웠다.

"그래 좋게 생각한다. 오늘 저녁 내 마누라와 상의를 한 연후에 그 결과를 내일 아침 말해 주겠다."

내일 아침 무엇을 요구하여 올까? 나는 이미 나의 복안을 가지고 있었다.

황 전무를 만나서 재차 그의 뜻을 들었다. 김상희 장로가 영어학원을 시내 중심가에 내려고 빌딩 하나를 아예 임대하였는데 리모델링(Remodeling) 작업이 한창이란다.

"황전무가 거기 가서 학원 원장이 되면 오히려 그쪽 일에 더 적성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보다 좋은 자리로 옮기게 됨을 축하합니다"

"그 동안 나를 믿고 일을 맡겨 주신데 대하여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수고하여 주셨습니다. 특히 이 레미디오 공장 같은 좋은 곳을 찾아주어서 회사가 도약 발전하는 기틀을 세워주셨습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이렇게 서로 덕담을 주고받았다. 이번 주말만 이 대리에게 인계할 사항이나 아이크와도 정리할 것이 있으면 처리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시간이 되시면 돈만이나 HR 라미레스 사장을 만나서 작별인사를 해 주십시오. 사람의 인연이란 또 어떻게 만날 날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예, 잘 알았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사표서는 12월말 일자로 제출하여 주십시오. 그때까지는 월급을 지급하여 드리겠습니다. 퇴직금이라도 별도 더 드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

"아닙니다. 그것만이라도 만족합니다."

"이번 토요일 저녁이면 좋겠습니까? 괜찮으시다면 골드까와리(Golden Cawarie)로 나와 주십시오. 사모님과 함께 석별의 정을 나누고 싶습니다."

"예, 고맙습니다"

황전무와는 이렇게 정리가 되었다.

다음날 아이크 부부를 파르도 공장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들의 요구는 내가 예상했던 대로이다. 파르도에 있는 전시장 철골구조 건물과 목조 창고건물을 그대로 넘겨달라는 것이며 자동차와 부품 값을 도매가보다 싸게 달라는 것이다. 나는 흔쾌히 승낙하였다.

자동차나 부품 값을 도매가에서 10% D/C해 주겠으며 지불조건은 인도해 갈 때 50% 지급해 주고 나머지 50%은 1개월 내 지급해 달라는 나의 의견을 이야기하였다. 그들 부부는 대단히 만족하였다. 그리고 작업자는 필요한 사람만큼 마음에 드는 사람을 데리고 가도 좋다고 과감하게 말해 주었다.

이날 오후 레미디오 공장 회의실에 전 종업원이 참석한 회의를 열었다. 아이크와 황전무가 회사를 떠나게 되었음을 알렸다. 그리고 새로 부임한 헥터를 소개하였다. 떠나는 두 사람의 간단한 인사에 이어 헥터가 취임인사를 하였다. 이 자리에서 아아크는 웬일인지 부끄러워하고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시종일관하였다. 나는 여러 종업원들 앞에서 아이크를 따라 갈 사람은 따라가도 좋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한 사람도 따라나선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오래 전에 심복으로 일해 왔던 파브로 마저도 아이크를 외면하였다. 그의 리더쉽(Leadership)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19. 사위 헥터(Hector) 영입

나는 약속대로 헥터에게 운전을 가르쳤다. 우선 자동차의 구동원리를 간단히 설명하여 주었다. 엔진에서 나온 힘이 트란스밋션에 전달되는 과정, 밋션을 통하여 바퀴까지 전달되는 과정을 설명하여 주었다. 그리고 차를 한대 정하여 시동을 걸고 1단으로 출발했다가 정지를 하고 출발하였다가 정지를 하는 동작을 시범을 보여주었고, 그것을 해보게 하였다. 잘도 따라 한다. 이번에는 일단에서 출발하였다가 바로 2단 변속하는 법을 가르쳤다. 이 사람이 아주 잘도 해낸다. 이번에는 공장 가까운 곳에 주택단지를 짓기 위하여 부지를 정리해둔 곳이 있었는데 거기로 갔다. 내부도로만 잘 정비되어 있고, 아직 집을 짓지는 않았다. 운전연습을 하기 에는 너무나 좋은 곳이다. 운동장 트랙 같은 내부 도로는 넓고 한 바퀴 돌면 500m는 족히 되는 길이다. 아무 방해물도 없다. 그는 마음 놓고 달렸다. 5단까지 변속을 자유자제로 한다.

마지막으로 후진과 Parking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한번 물리를 터득한 그는 어렵지 않게 척척 잘도 한다. 한 두 시간 연습하고 나니 이만하면 시내에 나가도 충분하다는 판단이 들어서 그에게 핸들을 맡기고 파르도 공장으로 향하였다. 시내주행을 하는 것이다. 조금도 망설임 없이 잘 하였다.

"내일 운전면허증을 받아 오겠습니다."

한다. 여기서는 시내운전을 시켜보고 잘하면 바로 운전면허증을 주는 모양이었다.

이 대리가 오전에 내가 지시한 대로 아이크와 판매계약서를 잘 만들어 놓았다. 전시되어 있는 차 중에서 그들이 사고 싶어 하는 차량을 골랐고, 부품 중에서도 잘 팔리는 물건들을 골라서 매매계약서에 첨부하였다. IKE가 50%의 금액을 지불하였다.

파르도에 남아있던 나머지 차량과 부품을 직원들은 시켜 모두 Remedio공장으로 즉시 옮겼다. 떠나면서 나는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해나가면 머지않아 좋은 사업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너희들 크러스터 상사(Clester Trading) 이름이 이미 잘 알려져 있으니 이 고객들만 잘 관리하여도 될 것이다. 나는 새로운 고객을 찾아 나설 것이니 그리 알아라."

돌아 올 때도 헥터에게 운전을 맡겼다. 이튿날 그는 과연 운전면허증을 들고 나타났다. 난 예감하였다. 이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부문제는 이렇게 정리하였다. 헥터가 들어와서 공장은 새로운 분위기가 되어갔다. 이제는 외부변화에 대처하는 일이다. 헥터는 공장에 있는 숙소를 살펴보더니 이곳을 리모델링(Remodeling)하여 가족이 들어와서 살면 한 달에 4만페소 집값을 절약할 수 있다는 말을 해 온다.

과연 그러하였다. 이 건물은 아주 잘 지어졌고 비가 새는 곳도 없이 말짱하였다. 기숙하고 있던 종업원들은 공장 근처에 방을 구하여 나가서 살게 하면 별 경비가 드는 게 없었다. 그들이 거처 할 곳은 살림집이 아니었으며 적은 값으로도 충분하였기 때문이다.

헥터는 리모델링 일부터 시작하였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기술 좋은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 집 안팎이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기 시작하였다.

공장 내에 있는 기숙사 리모델링 작업은 열흘 남짓해서 모두 끝이 났다. 동시에 착공하였던 사무실 신축은 일주일 만에 끝이 나서 기숙사 내에 있던 사무실을 먼저 옮겼다.

리모델링을 해 놓으니 고급 살림집이 되었다. 종업원 기숙사로 사용하였던 2개의 방은 화장실이 딸린 일류 여관방이 되었다. 두 방 사이 공간은 거실로 꾸몄다. TV도 설치하였고, 응접세트도 들여 놓았다. 이 곳의 용도는 멀리 지방에서 또는 다른 섬에서 찾아온 도매 고객들의 숙소로 사용할 계획이었다.

중앙의 큰 방은 선희가 결혼을 하면 신혼살림을 차릴 곳이고, 작은 방 하나는 우리 부부가 거처할 곳이고 나머지 방은 주방과 식당으로 꾸며졌다. 방이 다섯, 거실이 둘, 그리고 화장실이 셋이나 되는 대형 살림집이 되었다. 사위가 될 헥터의 아이디어는 이렇게 훌륭하였다. 나도 황전무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좋은 집을 두고 월셋집을 전전하였던 것이다.

이사를 해 놓고 나니 마누라는 싱글벙글 좋아라했다. 심심하면 공장 내에 들어와서 작업자들이 일하는 모양도 구경하고 또 사무실로 찾아와서 남편이 일하는 모습도 지켜보고 딸 하고도 이야기를 나눈다.

종업원들이 헥터를 대하는 태도가 과거의 IKE나 황전무를 대하였던 태도보다 확 달라졌다. 헥터는 사장의 사위가 될 사람이므로 오너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오너 일가족이 공장 내 살림집으로 이사를 와서 살게 되니 종업원들의 출퇴근 시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들어나게 되었다. 그들은 긴장하였고 예의를 지키느라 항상 조심하였다.

20. 고품질전략

내부적인 정리는 잘 되었다. 이제 외부 환경변화에 대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뾰족한 대책이 없으니 골머리를 싸매고 고민에 고민을 하였다. 앞서도 말했지만 한국업체들끼리 단합을 못하고 스스로 가격을 깎아내리니 꼬시래기 제살 깎아먹기 아닌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다. 품질을 최상으로 만들어 그만큼 가격을 올려 받아보면 어떨까?

엔진의 오일과 밋션오일을 무조건 갈아버리고 타이망 벨트(Timing Belt)를 위시한 모든 벨트(Belt)류를 새 것으로 교환하고 난 뒤 엔진 룸을 깨끗이 청소한다. 시트와 카펫트를 떼내어 세탁을 한다. 대쉬보드와 골주카바 등 플라스틱 제품 등에는 약품처리를 해서 새 것처럼 보이도록 한다. 차체는 새롭게 도장을 하고 모든 라이트를 새 것으로 교환한다. 시트와 카펫을 다시 장착하고 시트카버를 씌운다. 깔판도 새 것으로 교체한다. 이렇게 하면 차의 안과 밖이 마치 새 차와 같아 보인다.

이렇게 최상의 품질을 만들어서 적정 가격을 책정하여 한번 팔아 보자. 차의 가격이 비싼 만큼 품질로 고객에게 만족을 준다.

나의 구상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사위가 될 헥터는 이런 나의 구상을 대단히 기발한 생각이라고 찬동을 하였다.

우선 샘플 카 한대를 만들어 보기로 하였다. 엔진오일, 밋션오일, Belt류, 기타 소모품을 교환하고 나니 엔진소리가 아주 부드러워졌고, 힘도 좋아졌다. 세척제 약품으로 청소하니 엔진 룸이 새 것처럼 깨끗해졌다. 차체 내부도 깨끗해졌고, 고약한 냄새가 없어졌다. 마지막 도장이 문제였는데 헥터가 수소문하여 최고의 도장기술자를 불러왔다. 도장 후엔 바핑(Buffing)을 하여 광택을 내었다. 마지막으로 헤드라이트와 깜박이, 뒤 컴비네이션 라이트를 새 것으로 바꾸어 놓으니 자동차는 환골 탈퇴를 하여 새 차로 변신하였다.

나는 추가된 재료비, 인건비 등을 세밀히 계산하여 자동차의 원가 계산을 완료하였다. 그리고 나서 이것을 헥터에게 주어 적정 마진을 붙여 판매가를 결정하도록 하였다.

그는 선희와 함께 완성차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새 차의 가격을 조사하였다. 신중을 기한 끝에 15%의 마진을 붙여도 잘 팔릴 것이라 전망하였다. 시내 한국업체가 파는 가격과 비교하여 보면 소형 아벨라가 3만페소, 스포티지가 5만페소가 높은 가격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 가격에는 잘 팔릴 것이라 확신하였다.

차를 전시장에 올려 내놓기 이전에 고객들을 불러서 시승회를 가졌다. 좋은 반응이었다. 판매가격에 대해서 어떤 가격을 정했느냐고 물었으나 나는 웃으면서

"얼마가 적정가격이라고 생각하느냐?"고 오히려 반문하여 고객들의 의견을 먼저 들어보기로 하였는데 그들 대부분은 우리가 예상한 금액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이렇게 해서 나의 역 발상은 성공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나 혼자 먼저 귀국하였다. 필요부품들을 구매하여 필리핀으로 보내기 위함이었다. 모든 도장 장비도 함께 선적하였고 도료도 실었다.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오니 헥터는 도장작업장 텐트설치를 마쳤고 도장작업은 바끼야오(외주계약)로 해서 도장업체가 인력을 갖추고 있었다.

한꺼번에 10대를 완성하여 매장에 전시하고 신문광고를 내었다. 매장분위기는 마치 새 차를 파는 곳으로 일변하였다. 호평 속에 나의 차량들은 속속 팔려나갔다. 어떤 고객들은 좋은 차를 만들어 주어서 고맙다고 하면서 오히려 선물을 헥터에게 안겼다.

나는 성공하였다. 한국경쟁업체 누구도 나를 따라오지 못했다. 나는 그들과의 가격경쟁에서 완전히 탈피하게 되었다. 회사는 또 한 번의 도약을 하였다. 내부문제를 슬기롭게 정리하였고, 외부환경변화엔 역 발상으로 위기를 탈출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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