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태양을<끝>…제3회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 특선-김영곤

입력 2017-10-10 11:24:00

45, 마이 홈으로

대대 헬기장에 내리자 비로소 살아있는 세상 같다.

사람 냄새, 땀 냄새, 정글 냄새, 전쟁 냄새가 난다. 헬기들이 푸다닥 거리며 오르고, 간간이 들려오는 포성, 중화기의 연속음, 귀에 익은 M16총소리, 생동감이 있는 것 같다.

먼저 대대장에게 신고를 했다. 곧 귀국을 앞둔 대대장은 등을 두드려주며 무척 반갑게 맞아주었다.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특히 그날의 전투상황들. 이야기 끝에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었다. 소대로 복귀해서 신병들이 오면 다시는 이런 참혹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교육시키고 싶다고 했다.

"김 병장! 고마워. 김 병장 뜻대로 하고, 꼭 건강한 몸으로 귀국하길 바란다."

"감사합니다. 맹호!"

대대장에게 인사를 하고 중대CP로 갔다. 그동안 인사계와 서무계는 귀국을 했고, 사병계와 보급계 외에는 모두 신병이다. 그렇지만 모두 나를 알아보는 눈치다. 나에게 너무 신경 쓰는 것 같아 괜히 미안스럽다.

내 총은 이미 반납해 버렸단다. 하기야 귀신이 아니고서야 내가 복귀할 줄은 그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보급계는 개인화기와 장비, 지급물품을 모두 차에 실었다. 다시 신병이 된 기분이다. 그동안 손에 총이 없으니까 좀 허전했는데, 무장을 하고나니 이제야 사람 모양을 갖춘 듯 마음 든든하다.

조용한 시간, 중대OP로 향했다. 15교량을 지나 똥포 3거리와 20고지를 지나고 있다. 20고지의 광활한 정글은 불에 타 검게 변해버렸고, 곳곳이 폭격과 포격으로 무덤을 파헤친 듯 붉은 흙들이 뒤집혀 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결이 높아지는 것 같다.

'그래! 나는 이곳에서 다시 싸울 것이다!'

오른쪽으로 째째산이 보이고 그 옆에 OP관망대가 묵직하게 서있다. 누에고지를 지나 16교량에서 3A도로로 우회전하여 과부촌을 지나고 있다.

'아! 슈와 ... ,'

왼쪽으로 보이는 슈와 집은 폭염 속에 고요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달려가고 싶지만 꾹 참고 OP로 올랐다. 가슴이 벅차다. 살아있음이 이 순간만큼 더 행복할 수 있을까?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모습들. 관망대, 취사장, 휴게실, 벙커 ... , 손을 들어 조용히 성호를 그었다.

중대장과 소대장이 반겨 주었다. 중대장과 면담을 마치고 소대로 갔다. 보고 싶은 얼굴들은 몇 명 없고 신병들만 보인다. 장 필호 선임하사는 이미 귀국해 버렸고, 강 은향 병장, 서 재윤 병장, 곽 병원 병장, 이 홍주 병장, 맹 연영 병장, 추 진수 일병, 안 영록 일병 그리고 우리분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막내 천 기성 일병이 남아 있다.

천 기성 일병이 달려와 가슴에 머리를 박고 눈물을 쏟는다. 참았던 설움이 터진 듯 목 놓아 운다.

"김 병장님! 모두 다 가버렸습니다. 모두 다 갔다고요!"

"그래! 반갑다. 살아있어 주어서 눈물겹도록 반갑다.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지?"

뜨거운 눈물이 쏟아진다. 분대원들을 지켜주지 못한 자책감이 물밀 듯 밀려든다. 목구멍에 뜨거운 것이 콱 막혀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다. 살아남은 소대원들 모두 눈물을 흘린다. 결국 모두 끌어안고 울음바다가 되어버렸다.

"어이! 김 병장, 그만 해. 그만하고 백 홈 기념 건배 해야지!"

서 재윤 병장이 벌개 진 눈을 훔치며 맥주 캔을 건넨다.

"자! 모두 고맙고 반갑다. 한 잔 하자."

"살아 돌아온 김 영곤 병장을 위하여!"

"목숨 걸고 전우들을 구출한 강 병장과 서 병장을 위하여!"

"건배! 건배!"

마셨다. 마시고 또 마셨다. 울다가 웃다가 고함지르고, 욕도 하다가 취해서 곯아 떨어졌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우리분대 벙커로 갔다. 벙커로 가는 교통호는 사람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보수되어 있고 개인호는 무너진 그대로였다. 급히 내 개인호로 뛰어갔다.

'아! 이게 웬 일인가!'

내 개인호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모래주머니들은 쓸려 내려가 흙더미 속에 묻혀버렸다.

'아니! 이럴 수가 ... , 내 3만 불! 내 3만 불은?'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내 유일한 꿈, 내 인생의 등대불이 되어줄 3만 불이 흔적도 없이 사러져 버렸다.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이렇게 세상이 처절하게 나를 외면 한단 말인가! 망연자실하여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땅위로 삐죽이 올라온 모래주머니들이 보였다. 보이는 대로 파내서 마구 찢고 뒤지고 풀어 헤쳤다. 누가 봤으면 실성한 줄 알았을 것이다.

'미쳐도 좋다. 찾아야 한다. 내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친 이유 중의 하나가 이 3만 불인데 ... , 꼭 찾아야 한다.'

모래주머니를 헤집고 또 뒤졌다. 숨이 차다. 땀이 줄줄 흐른다. 숨을 몰아쉬며 모래주머니에 털썩 주저앉았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 수십, 수백 개의 모래주머니들을 어떻게 일일이 파낼 것인가?

그것도 남의 눈을 피해가면서 ... , 불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만일 3만 불을 찾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 설령 찾는다 해도 내 것이 될 리는 만무다. 내가 지금 파놓은 모래주머니를 봐도 수상쩍게 생각할 것이다.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내 복은 모두 여기까지인가! 내 꿈과 희망이 철저하게 조각이 나버렸다. 기어코 3만 불은 내 몫이 안 될 것인가 보다. 일단 천천히 방법을 찾아보기로 하고 우리분대 벙커로 갔다.

벙커는 텅 비워 있었다. 유일하게 생존한 천 일병은 퇴원 후 화기분대에 배속되어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벙커는 눈뜨고 못 볼 지경이다.

침상은 먼지만 잔뜩 쌓여있고 그 위로 도마뱀들이 제 세상인양 돌아다닌다. 주인 잃은 관물함은 문짝이 떨어져 덜렁거리고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 관물함을 열어보니 그동안 준비한 귀국선물들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고, 편지들만 마구 흩어져 있다.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누구의 짓일까? 아무리 분대원 모두가 유고를 당했을지라도, 관물이야 반납하드래도 이렇게 철저하게 사물까지 싹쓸이를 한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괘씸한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3만 불도 땅 속으로 사라지고, 귀국선물까지 사라져 버리다니 ... , 허탈하다. 머릿속이 하얗다.

김 성하 분대장의 관물함에 쓰다만 편지가 있다.

'어머님, 어머님께서 해주시는 비빔국수가 무척 먹고 싶습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첫 전투를 치르면서 불안한 눈빛으로 나만 바라보던 김 하사. 고국에 부모님과 아내, 두 살 박이 자식까지 두고 이 머나먼 이국전선에 오자마자 목숨을 바치다니 ... , 자다가도 일어나 아들 사진을 들여다보던 순박한 김 하사가 안타까워 가슴이 미어진다. 폐허로 변해버린 벙커. 텅 빈 벙커에서 허탈하게 앉아 눈물을 훔치다 나왔다. 열대의 태양은 어김없이 솟아올라 대지를 달군다. 그 작열하는 태양아래 찢어발겼던 모래주머니들이 흩어져 있다. 자꾸 그 모래주머니에 눈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편 죽은 분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이 3만 불을 챙겨가는 나를 저승에서 본다면 얼마나 불공평하다고 하겠나 싶다.

'내가 지나친 욕심을 부리는 건가? 지금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만도 감사하고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닌가! 그래. 3만 불, 미련을 버리자! 어차피 내가 3만 불을 벌자고 여기에 온 것은 아니지 않은가.

비빔국수를 먹고 싶다는 편지를 마무리 짓지도 못하고 이승을 하직해 버린 김 하사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늘 입버릇처럼 말하지 않았나. 돈 밝히고, 여자 밝히고, 훈장 밝히는 놈, 살아나가는 것 못 봤다고. 그래 미련을 버리자!'

하지만, 생각할수록 살아남은 놈들이 괘씸하다. 아무리 분대가 전멸하다시피 했어도, 관물함에 있는 사물은 가족에게 보내줘야 하고, 아직 생사를 모르는 전우의 사물에 손댄다는 것은 사리에 어긋나는 짓이다.

소대장에게 달려가 따졌다. 왜 생사가 판명되지 않은 소대원의 사물에 손을 댈 수 있느냐고? 소대장으로서 부하의 물건을 왜 지켜주지 못 했느냐고? 경황이 없어 그랬노라고. 정말 미안하다고 한다.

물론 많은 부하를 잃고 경황이 없었던 것은 이해가 가고, 월남전에 오자마자 이틀간 큰 전투를 두 번씩이나 했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속상한 것은 훈장을 양보하고 받은 카메라도 아깝지만, 동생들에게 줄 선물들이 깡그리 없어졌으니 더 분통이 터진다.

목이 터져라 외치고 싶다. 무너진 개인호로 가서 허공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탄창을 갈아 끼우면서 무려 100여발을 쏴도 진정이 되지 않다. 곰곰이 생각할수록 무슨 허깨비놀음 같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 전쟁터로 끌려와 정글 속에 내동댕이쳐진 것부터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것들이 모두 꿈속의 꿈만 같다. 나는 무엇 때문에 총질을 하며 죽였던가? 내가 이 정글에서 총질을 한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었던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이 월남 전선에 죽으려고 온 것은 아니지 않느냐! 어찌하던 살아 돌아가려고 염원해 왔다. 이건 비단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 월남전에 투입된 모든 한국군이 같은 심정이었을는지 모른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전쟁이고,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나 자신이다. 내가 지금껏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인가? 애석하게도 잃은 것들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더러운 전쟁!

46, 끝없는 전쟁

소대병력이 충원될 때까지 일단 2분대 벙커에서 지내기로 했다.

복귀 3일째. 시간을 내어 슈와를 찾았다. 중대에 돌아오던 날, 중대장실을 나오다가 2소대 정 철영 상병을 만났다. 그는 내가 후송되고 3, 4일 지나 위병소 근무를 서는데, 슈와가 와서 나를 찾더라고 했다. 정 상병이 머리에 손가락을 대고 '빵' 하면서 총 맞는 시늉을 하니까 슈와가 넋이 나간 듯 울면서 뛰어가더라는 것이다. 경솔한 정 상병에게 화 가 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당시에는 누구도 내가 살아서 돌아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테니 ... ,

슈와 집은 여느 때와 같이 조용하다. 이글대는 태양열을 받아 야자수마저 늘어진 듯하다. 다가갈수록 조용함은 뭔가 텅 빈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전 같으면 슈와가 이미 알고 뛰어나와 철모를 받아 줬을 텐데 아무런 기척이 없다. 뭔가 섬뜩한 기분이다.

"슈와! 슈와! 헤이 슈와!"

불러도 대답이 없다. 사격자세를 취하면서 조심조심 집으로 접근했다.

천천히 나무문을 밀쳤다. 곰팡이 냄새가 물씬 나고 집 안은 텅 비어 있다. 부엌의 살림살이며, 대나무 침대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바닥에 부서진 그릇 조각이 나뒹굴고 있다.

'어떻게 된 걸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슈와의 흔적, 우리가 사랑을 나누던 흔적, 그 무엇도 찾을 수 없다. 구석구석 돌아보니 가재도구들을 옮겨간 자국들이 보인다. 이사를 한 듯하다. 허탈하다. 착잡한 기분이 든다. 이것이 슈와와의 이별이란 말인가! 우리의 인연이 이토록 짧고, 이토록 하잘 것 없는 것인가. 이제 와서 나의 미련함이 후회가 된다. 그동안 어떤 방법으로든 슈와에게 무사하다고 전해야 했는데 ... , 정말 온 가족이 이렇게 떠나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문턱에 걸터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왜 이곳을 떠났을까? 무엇 때문에 떠나버린 걸까? 나 때문일까?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갑자기 회한이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괴어올라 온다.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독립가옥이다 보니 어디 물어 볼 이웃도 없다. 줄담배만 피다가 슈와의 해맑은 모습을 그리며 터덜터덜 돌아왔다. 힘이 하나도 없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내겐 이젠 아무것도 없구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다. 돈도 사랑도 꿈마저도 ... ,'

이제 한 달 후면 귀국이다. 귀국 말년 생활을 하다 보니 식욕도 의욕도 없다. 관례대로 매복이나 작전은 열외다. 그렇다고 마냥 빈둥거리자니 충원이 되지 않아 고생하는 소대원들이 안쓰러워 보인다. 오히려 왕성하게 움직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지금 중대 전체가 병력이 모자란다. 우리소대는 두 번이나 충원 받았지만 아직 3개분대도 못다 채웠다. 못 본 채 할 수도 없어 아침에는 솔선하여 도로정찰을 도우고, 급수차 선임탑승과 관망대 근무도 자원했다. 귀국을 보름 앞 둔 날이다. 오늘만 하고 그만 둘 양으로 급수차 선임탑승을 했다. 급수장에 도착 하자마자 점심시간이라고 급수를 중단하는 바람에 빈캐시장을 들렀다. 모두 나다니지 말라고 하고, 2분대 장 상호 일병을 데리고 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상점들을 기웃거리다가 동생들에게 줄 선물을 샀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식수를 받아 기지로 향했다. 태양이 뜨겁게 대지를 달구는 한 낮. 월남 사람들은 '씨아스타 타임'을 즐기는 시간이라 도로는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하지 않는다. 잡담을 하면서 똥포 삼거리를 막 지나는데, 대바구니를 진 두 사람이 정글 쪽으로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김 병장님, 저기요!"

경계병이 먼저 발견하고 알려줬다. 얼핏 봤을 때 농부인 듯 보이나 그래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이! 장 일병, 위협사격 한 번 넣어 봐!"

장 일병이 두 사람 쪽 정글을 향해 공중으로 연발 사격을 했다. 별 경계심 없이 통상 의심지역에 화기를 집어넣는 그런 수준이었다. 그런 순간 놈들의 총탄이 급수차를 향해 날아들었다. 놀란 운전병이 차를 급정거 했다. 동시에 뛰어내리며 대응사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놈들은 이미 정글 속으로 자취를 감춘 뒤였다. 실로 생각지도 못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겼었다는 내가 또 이렇게 어이없이 당하는구나 싶다.

'도대체 이 전쟁의 끝은 어디란 말인가?'

피해상황을 살펴보니 놈들이 쏜 총탄에 급수차 오른쪽 사이드 미러가 깨지고, 한 발은 엔진 덮개를 때린 것뿐이다.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놈들의 사격 실력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입이 딱 벌어진다. 놈들은 미군이나 우리처럼 연발사격은 하지 않는다. 실탄이 절대 부족하기 때문에 한 발을 쏘더라도 정조준 하여 쏘는 것이다. 지금처럼 짧은 시간에 그 먼 거리에서 이 정도로 맞추다니 오싹하지 않을 수 없다.

'제대 말년에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라고 했는데 하마터면 큰 일 날 뻔 했다.'

경계병으로 나선 장 일병은 처음 당하는 일이라 얼마나 놀랬는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다.

"임마! 정신 차려. 오줌 안 쌌어?"

그만하기 다행이다. 이젠 꼼짝 않고 기지에 있어야겠다. 내가 무슨 불사조도 아니고 ... ,

헤아릴 수 없는 사선을 함께 달려온 강 은향, 곽 병원, 이 홍주, 맹 영영 병장이 귀국을 하게 되었다. 실로 수많은 날을 두고 정글과 암벽과 뜨거운 태양과 싸우며, 피와 땀과 눈물의 순간들을 가슴에 담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거다.

'모두 귀국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고국에 가거든 부디 영혼으로 조국의 품에 안긴 전우들의 연령 앞에 살아서 돌아 왔노라고, 그래서 이렇게 찾아 왔노라고, 넋이라도 달래 주기 바란다. 정말 고생 많았다. 고국에서 다시 만나자. 잘 가거라. 전우들아!'

특히 성주 출신 곽 병원 병장은 며칠 후면 우리 집으로 찾아가서 내 편지를 어머님에게 직접 전해줄 것이다. 편지를 받아보신 어머님께서는 무척 놀라시겠지. 자식의 무사함을 위해 불철주야 기도하시는 어머님과 나를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을 위해서라도, 이젠 부질없는 복수심이나 쓸데없는 용렬함을 접어두고 조용히 돌아갈 준비나 해야겠다.

'그래! 나도 이제 마음을 접고 이 월남 전선을 탈출하자!'

그나저나 전통을 자랑하던 맹호 기갑연대 2중대 3소대는 이제 발톱 빠진 호랑이가 되었다. 나와 서 재윤 병장도 보름 후면 귀국을 한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신병들을 집합시켜 정신무장을 시켰다. 내가 가르쳐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가르쳐 주었다. 다시는 이런 참혹한 일을 당하지 않고, 맹호의 정신으로 이 월남 전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말이다.

우리 급수차가 총격을 당했던 똥포 삼거리에서 군수품을 수송하던 차량들이 기습을 당했다.

놈들의 준동을 차단하기 위해 연대작전이 전개되었다. 중대OP가 연대 Tac.CP가 되어 연대장이 OP에서 진두지휘를 한다. 우리 중대는 일부 경계병을 제외한 전 병력이 투입되고, 안케페스에 매복을 나간 소대는 내가 OP를 내려가기 전에는 철수하지 않는다.

안캐페스에 가기 전날. 천 기성 일병이 그 바쁜 와중에도 귀국박스 판넬을 갖고 왔다. 그리고 사진첩과 자기 정량인 C-레이션 박스도 들고 왔다. 자기분대가 없어져 화기분대에 얹혀 지내며 마음고생, 몸 고생 하는 막내 천 일병이 안쓰러워 한바탕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다. 이렇게 너만 두고 떠나게 되어서 ... ,"

"김 병장님! 귀국을 축하드립니다. 제가 김 병장님께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죄송합니다."

천 일병은 주먹으로 눈물을 훔쳤다. 나 역시 목이 메인다.

"고맙다. 나는 이렇게 살아 돌아가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꼭 살아서 돌아오너라. 너 귀국하는 날, 연락해라. 내 부산항에 나갈게. 야! 임마. 꼭 살아서 돌아와야 돼! 알았지!"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맹호!"

천 일병은 경례를 붙이고 뛰어갔다. 이렇게 우리는 눈물로 이별을 했다.

47, 안녕! 베트남

사흘째 덩그러니 놓인 귀국박스를 한심한 생각으로 보고 있다.

C-레이션 박스 몇 개와 소대원들이 준비해준 잡동사니를 쓸어 모아 담았지만 다 채울 수가 없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귀국박스마저 채우지 못한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서글프다. 같이 귀국할 서 재윤 병장이 안쓰러웠던지 야전 점프와 정글화 한 켤레, 자기 C-레이션 한 박스를 가져다준다.

분대원들을 모두 잃고, 마지막 희망이기도 했던 3만 불을 땅 속에 묻어버리고, 사랑하는 슈와 마저 멀리 떠나버린 지금, 정신 줄을 놓고 귀국박스도 봉인하지 못한 채 멍하니 앉아 있다. 귀국 출발 3일 전, 파월 동기인 1소대 이 창재 하사가 OP로 놀러왔다. 그는 귀국준비를 마치고 한가한 시간이나 죽이려고 왔던 것이다. 이 하사는 그동안 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단다. 그래도 같이 귀국할 수 있어 천만다행이라며 진정으로 반가워했다. 그러면서 내 귀국박스를 보더니 눈이 동그래졌다.

"김 병장, 왜 이러고 있어? 귀국 안 할 거야?"

"아! 지금 못 박으려 해."

이 하사는 내 박스 안을 뒤적거리더니 혀를 찼다.

"이게 뭐야? 쓰레기잖아. 이걸 짊어지고 귀국하려고 그래? 아니 탄피 박스도 하나도 없이?"

탄피박스는 귀국자들이 꼭 챙겨간다. 우리나라는 지하자원이 부족한 나라다. 특히 동(銅)은 군수산업에 많이 쓰인다. 우리들이 기지에서 위협사격을 하고나면 탄피가 많이 떨어진다. 귀국자들이 이 탄피를 모아가면 이것을 사들여 다시 녹여 실탄을 만든다고 한다.

지휘관들이 대놓고 명령하지는 않지만, 모든 장병들이 귀국할 때 탄피를 모아가도록 독려한다는 것이다. 이왕 버리는 것을 모아 재활용하는 것이다. 장병들이 모아가는 탄피는 모두 부산의 보충대에서 풍산금속 직원들이 연병장에 천막을 치고 기다리고 있다가 갖고 오면 중량을 달아 그 자리서 바로 현찰을 준다.

그래서 귀국자들은 최소의 부피로 최대한 많은 탄피를 가져가기 위해 캐리버 50탄피에 캐리버 30(LMG)탄피 두 개를 두들겨 박아 넣어 C-레이션 박스에 차곡차곡 채운다. 한 박스 가득 채우면 딱 13관(貫). 1관 당 약 1,100원 정도를 계산해서 준다. 탄피 한 박스면 약 1만5천 원 정도. 병장 월급이 500원 남짓임을 감안할 때 거금이 틀림없다.

그러면 병사들은 그 돈으로 남포동 나가서 술 한 잔 하고, 완월동으로 진출하여 꿈에도 그리던 국산 꽁까이 한번 품어보고, 택시 잡아타고 고향집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1만5천원이면 하루저녁 실컷 먹고 마시고, 쓰고도 남는 돈으로 이것이야말로 파월장병들의 위로금이라는 것이다. 거기다가 애국하는 일이라고 하니 ... ,

보통 우리 같은 말단 부대에서는 귀국할 때 후배들이 탄피 한 박스 만들어 주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그런데 나에게는 귀국 필수품인 탄피박스가 없으니 이 하사가 놀랄 수밖에.

내게는 분대원들이 모두 귀신이 되어 먼저 귀국해버리고 탄피박스 하나 챙겨줄 후배가 없는 것이다. 이 하사는 내일 아침까지 박스에 못을 박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고는 돌아갔다.

해가 진 다음 1소대의 누에고지에서 '두둥 두둥' 하는 요란한 캐리버 50 사격소리가 들린다. 분명히 이 창재 하사가 분대원들을 시켜 캐리버50과 30으로 위협사격을 하는 것이 틀림없다. 나한테 줄 탄피를 모으기 위해서 사격을 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 해가 중천에 오를 무렵 이 하사가 급수차를 타고 와서 탄피 한 박스를 내려놓고 갔다. 참으로 눈물겹도록 고마운 일이다. 솔직히 챙겨주는 후배가 없어 섭섭하긴 했지만, 그것은 과욕이란 생각이 더 컸었다. 분대원 모두 영혼으로 돌아갔는데 될 법한 소린가.

그런데 내 박스가 안쓰러웠던지 중대장이 각 소대에서 갹출한 탄피 두 박스와 커피포트와 커피 잔 세트, 보온물통을 갖고 왔다. 그래도 박스에 빈 공간이 있는 것을 보고는 C-레이션으로 채워주었다.

"김 병장!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 귀국해서 열심히 잘 살기를 바란다."

두 손을 꼭 잡아 주었다. 많은 부하를 잃은 중대장에게 마지막 이별의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맹호!"

이제 떠나야 할 때다. 눈물이 쏟아져 다시는 가지 않으려던 우리분대 벙커를 찾았다. 그래도 뒷마무리는 하고 가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벙커는 여전히 황량함, 그대로이다. 우리가 피를 씻고 땀을 식혔던 곳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이곳에서 전우들과 생사고락을 한 날들이 자꾸 떠오른다. 문짝에 붙어 있던 여배우들의 사진들은 바닥에 나뒹굴고, 관물함에는 쓸 만한 것들은 모두 쓸어가 버리고 위문편지나 필요 없는 사물, 필기구 따위만 흐트러져 있다.

내 관물함도 문짝이 뜯긴 채 덜렁거린다. 한푼 두푼 수당 모으고, 사살한 적 호주머니 뒤져서 챙긴 돈을 모아 마련한 야외전축, 훈장 양보한 대가로 인사계가 준 카메라, 우리분대가 모두 사라진 후 누군가가 문짝을 뜯고 챙겨갔을 것이다. 그 외 빈캐시장에서 사 모은 일제 화장품이며 동생들 선물, 신형 미제 야전점프 등 귀국박스를 채우고도 남을 것들이 모두 없어져버렸다.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지만 내가 잃은 이것들은 내 목숨을 건진 대가로 생각하고 잊기로 했다.

한 분대가 이토록 철저하게 당하고, 벙커가 주인도 없이 버려진 경우는 아마 이 월남전에서 손꼽을 정도일 것이다. 과연 이 벙커가 다시 제 구실을 하기는 하게 될까? 다시 교통호를 쌓고, 개인호를 구축하고, 미니스커트를 입은 문 희가 방긋 웃고 있는 그런 벙커로 되살아날 수 있을까?

그래. 나중에야 어찌되건 지금 나뒹구는 내 전우들의 체취가 묻은 것들은 모두 그들과 함께 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물함에 버려진 개인 속옷들, 버려진 사물, 벙커 바닥에 흩어진 편지, 잡지 등 잡동사니들을 모두 밖으로 쓸어 모았다.

박 동식 병장의 관물함을 치우다 보니 유독 꽃 편지가 눈에 띄었다.

'사랑하는 오빠에게'로 시작되는 편지는 살갑게도 오빠를 부르며 '서울에 첫 눈이 왔다'고 알려주고, '오빠가 제대하면 같이 있을 전세방 한 칸을 얻을 수 있도록 열심히 저축하고 있다'면서 '오빠가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사랑 한다'고, 끝을 맺고 있다.

순임이 ... , 박 병장의 애인. 양장점에서 기술을 배우고 있는 스물한 살 처녀. 박 병장이 보여준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갸름하고 예쁜 얼굴에 차분해 보이는 아가씨였다. 사회에서 용접기술을 배우다가 입대한 박 병장은 제대하면 같이 살림을 차릴 계획이라고 했다.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하나. 박 병장 애인은 박 병장이 귀국할 날을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는데, 그는 이미 이 세상으로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가족이라면 전사통지서가 가니까 박 병장의 죽음을 알지만, 그녀는 모르고 있을 것이다. 가슴만 까맣게 태우고 있을 박 병장의 애인을 생각하니 박 병장이 불쌍해서 못 견디겠다.

눈물을 흘리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 터이지. 흐르는 눈물을 삼키며 쓸어 내온 것들에 불을 붙였다. 땀내가 배이고 영혼이 깃던 것들, 모두 주인 곁으로 돌아가 영원히 함께 하기를 빌었다.

'김 성하 하사, 최 봉석 병장, 박 동식 병장, 민 경래 상병, 유 성종 상병, 서 영조 일병, 부디 전쟁 없는 곳에서 영생하기를 ... ,

그 동안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월남 전선에서 승자와 패자는 귀국 때 박스를 메고 가는가, 박스에 담겨 가는가에 달렸다.'

그래. 내게도 이런 날이 올 줄은 언감생심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뒤통수에 총알이 박혀있지만, 유골 박스에 담겨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렇게 귀국박스를 메고 돌아가는 것이다.

과연 나는 이 전쟁에서 승리 했을까? 내게 남아 있는 것, 나에게 돌아온 것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이제 정녕 고국의 품으로 돌아가는가? 숱한 애환과 사연이 깃던 이국전선. 이름 모를 초원에서 내 전우를 잃고, 내 피를 쏟아 메마른 대지를 붉게 물들여놓고, 이제 귀국의 장도에 오르게 되었구나.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진 그날의 전투, 목숨을 건 전우애!

1970년 1월 9일 밤. 째째산의 대 혈전과 1월 10일, 내 분대원들을 모두 잃고 내 피를 쏟아버린 원한의 20고지!

먼 후일, 영원보다 더 먼 후일에도 내 정녕 잊지 않을 것이다.

잠시나마 내 영혼을 바쳐 사랑했던 슈와! 그리고 정겨운 사람들!

수많은 사연들과 추억들을 정글의 무덤 속에 묻어버리고 조용히 고국의 품에 안기고 싶다.

남아 있는 전우들아! 따이한의 맹호답게 용맹스럽게 싸우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너라.

비록 허접하지만 귀국박스는 봉인해 먼저 내려 보냈다. 잘 가라고 손 잡아주는 그리고 손 흔들어주는 후배 한 명 없지만,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월남 전선을 떠날 것이다.

이만하면 이역만리 월남 전선에서의 생활, 잘 한 것이 아닐까? 미련도 후회도 없이 떠난다만, 먼 후일 이 처절한 날들이 다시 생각나겠지.

뱃고동이 운다. 갑판에서 본 퀴논. 멀리 언덕 위의 성당. 꼭 1년 전, 나는 이 배 위에서 저 성당의 첨탑을 다시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었다. 오늘 남지나해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아침 태양을 다시 보았고, 성당 앞의 성모상도 보았다. 왼손을 가슴에 얹고 오른손으로 경건하게 성호를 그었다.

"주님! 이제야 알았습니다. 내 비록 시련과 고통 중에 있을 때, 주님을 원망도 하였지만,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항상 제 곁에서 저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셨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주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은총으로 고국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었음에 깊은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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