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젊음의 분출
주월 한국군사령부 시계도 돌긴 도는가 보다.
지루한 안캐페스의 매복생활도 끝이다. 6월 첫날 오전 8시를 기해 철수했다. 우리는 만사를 제쳐놓고 교량 아래로 가서 목욕을 했다. 16교량은 우리가 혼신의 힘을 다해 지키는 곳이지만, 오늘 같은 날은 우리에게 편안한 여유 공간이 되기도 한다. 매복이나 작전을 다녀오면 우리는 먼저 이 다리 아래로 와서 목욕을 한다. 그리고 평소에도 빨래도하며 다리 그늘아래 앉아 시원한 맥주로 피로를 푼다. 이때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또한 몸보신 하는 것도 이곳이다. 가끔 배회하는 길 개를 잡아 다리 아래서 삶아 보신을 한다.
이곳에는 개들이 많다. 특히 주인 없이 돌아다니는 길 개들이 자주 눈에 띈다. 월남의 농촌지역 사람들은 개를 잡아먹지 않는다. 대부분 불교도들이기 때문에 더더욱 개를 식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끔 기지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개가 눈에 띄면 총으로 쏘아 잡는다. 그리고 이곳 다리 밑에다 솥을 걸고 보신탕을 끓여 먹는 것이다.
그뿐인가. 이 16교량은 넘치는 청춘의 발산지이며 육보시를 하는 곳이다. 수컷들만 사는 내일이 없는 전쟁터. 병사들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섹스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에서 긴장감 때문인지 분출하는 욕구를 주체하지 못한다. 어쩌면 죽음을 예비하는 동물과 같이 종족보존에 대한 욕구가 작동하여 성욕이 왕성해지는 건지 모르겠다.
물론 전쟁터이다 보니 굳이 성욕을 억누를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인간? 도리? 도덕? 그런 건 이곳 전쟁터에서 통하지 않는다. 총알이 박혀 숨넘어갈 때 도덕 찾나? 차라리 성욕을 분출함으로써 내 몸의 긴장을 이완시키는 것이 더 급하다. 순간이나마 죽음의 공포로부터 탈출하는 것이다.
이미 그것을 꿰뚫고 있는 장사꾼이 있다는 것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우리가 붙여준 이름 '붕붕 꽁까이'. 그녀는 언제부터 장사수완을 발휘했는지는 몰라도 이 16교량 아래 그늘로 오토바이를 타고 와 출장영업을 하고 있다. 기가 막히도록 타이밍을 잘 맞추는 우리들의 연인 '붕붕 꽁까이', 오늘도 다리 밑에 담요를 깔고 기다리고 있다. '붕붕'이란 성행위를, '꽁까이'는 아가씨를 이르는 말이다.
이 꽁까이는 빈캐에서 이곳 16교량까지 2주일에 한 번씩 온다. 하얀 아오자이 차림에 온몸을 금붙이로 치장하고는 오토바이를 타고 몸을 팔러 오는 것이다. 그녀는 다리 아래 그늘에 군용 우의인 판초를 한 장 쳐서 가리고, 군용 담요 두어 장 깔아놓고 영업을 한다. 한 번 몸값에 5불을 받거나, C-레이션 한 박스를 받는다. 아니면 양담배나 국산 필터 담배 5보루를 받는다.
"오빠, 씨바네?" 하고 나에게 말을 건넨다. 이게 무슨 말인지 몰라,
"뭐라고?"
"붕붕 안 해?" 아하 그거!
"얼마?"
"5부울."
그래서 이 병장에게
"이 병장님, 붕붕 하자는 데요?"
홀랑 벗고 물속에 잠겨있던 이 일준 병장이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소리 쳤다.
"어이! 3달러 오케이?"
이 병장은 5달러가 권장소비자가격(?)임을 뻔히 알면서도 3달러를 부르며 흥정을 한다.
"노, 노! 5달러. 오케이?"
"에라잇 이년아! 빈캐 가면 3달러 충분해. 4달러 오케이?"
이 병장이 손가락 네 개를 치켜들며 4달러를 부르자 꽁까이는 손가락을 다 펴 보이며 5달러를 고집한다. 비누칠을 한 몸을 씻은 이 병장은 발가벗은 체 꽁까이에게 다가갔다. 꽁까이는 아오자이 자락을 슬쩍 걷어붙이며 요염한 자태로 호객을 한다. 이 병장이 가까이 가자 꽁까이는 손바닥을 펴서 내민다. 선불을 내놓으라고.
"햐! 이 약아 빠진 년, 하고 줄게."
꽁까이가 알아듣건 말건 이 병장이 다가서니 꽁까이는 오토바이 뒤로 몸을 피하며 손바닥을 내민다. 선불이 아니면 어림없다는 투다.
"어이! 박 상병, 거기 내 전투복 상의 주머니에서 10달러 좀 갖고 와!"이 병장은 박 동식 상병을 향해 소리쳤다. 꽁까이는 이 병장에게 가슴을 내민다. 돈을 지불할 동안 가슴 만지는 것은 서비스한다는 투다. 이 병장은 오토바이를 사이에 두고 꽁까이의 가슴을 왁살스레 주무르고 있다. 박 상병이 10달러를 찾아 건넸다. 이 병장은 꽁까이에게 10달러를 지불하면서, 박 상병을 가리키며 저 친구도 할 거니까 1달러를 깎아 달라고 손짓 발짓을 한다. 눈치 빠른 꽁까이는 둘러매는 핸드백에 서 1달러를 꺼내 거슬러 준다. 그리고는 판초 뒤로 가서 아오자이를 허리 위로 걷어 올린다.
"어이! 박 상병, 오늘 내가 한턱 쏜다. 기분 한 번 풀어!"
"이 병장님, 감사합니다."
자칭 '영등포 바람' 이병장이 박 상병에게 붕붕 접대를 해주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번 안캐페스 매복에 들어간 지 사나흘 만에 이 병장은 고열이 심한 몸살을 앓았다. 옳게 먹지도 못하고 고생을 많이 했다. 그때 조수인 박 상병이 얼큰한 찌개를 끓여 댄다고 애를 많이 썼다. 비스킷 깡통에 구멍을 내 바람이 통하게 하고 안에 크레모어 떡을 넣어 불을 붙인 후, 미트볼이나 소시지에 분말고추장을 넣고 얼큰하게 끓인다. 박 상병은 귀찮지만 내색 않고 열심히 수발을 들었던 것이다. 이 병장이 오늘 박 상병에게 붕붕을 대접하는 것은 그의 마음 씀씀이에 보답하려는 계산이 깔려있었던 것이다.
"야, 이년아! 돌리지 말고 가만히 있어. 금방 쌀 것 같잖아!"
이 병장은 판초너머 꽁까이의 다리가 보이도록 어깨에 걸치고 몇 번 철벅거리더니 이내 조용하다.
"어이! 이 병장, 벌써 쌌어? 5달러 아깝지 않아? 옳게 감상이나 좀 하도록 하지."
"야! 박 상병, 넌 5달러 값어치 해라. 알았지? 젖통도 좀 주무르고. 알았지?"
차 병장이 사타구니를 씻고 있는 박 상병을 향해 소리쳤다.
"야! 이 병장, 죽은 좆 만지지 말고 빨리 나와. 박 상병 숨넘어가!"
"에이 씨! 맛도 없는 깰롱에 돈 아깝다. 아까워, 이년 돌리는 데는 뭐기 있어."
이 병장은 박 상병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혼잣말을 씨부렁거리며 물로 뛰어든다.
아니나 다를까 박 상병도 오십보백보다. 판초 너머에서 일어선 체 고개를 젖히고 몇 번 움직이더니 이내 잠잠하다. 한참 혈기 탱천한 젊음이 어찌 주체가 되겠나.
"어이! 김 상병, 한 번 안 해? 옷 다 말라가. 하려면 빨리 가!"
"에이, 분대장님. 잘 알면서. 난 안 해도 된다고요."
"에라이, 미친 놈! 그럼 평생 고자 노릇 할래?"
무슨 말씀. 난 절대 저런 여자와는 안 해. 나에게 모든 걸 바친 영아를 생각해서라도 절대 그럴 순 없지. 암 그렇고말고 ... ,
목욕을 하고 깨끗하게 빨아 말린 전투복을 입었다. 기분이 가뿐하다.
막사에 돌아오니 오후에 연대 번개극장에서 고국 위문공연단의 공연이 있단다. 오늘 하루 기분 째지는 날이다.
모두 때 빼고 광내서 연대 번개극장으로 갔다. 고국에서 온 이 미자, 박 재란을 비롯한 여가수들과 미끈한 댄서들의 공연에 극장은 청춘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특히 이날 공연에서 이 미자는 병사들이 씌어준 철모를 쓰고 또 탄대를 두르고 10곡을 내리 불렀다. 병사들의 넋을 쏙 빼놓고 눈물의 도가니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박 재란이 경쾌한 리듬으로 '밀짚모자 목장 아가씨'를 부르며 무대에 나타나자 이 일준 병장은 아예 무대에 뛰어올라 '영등포 바람'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옆이 트여 허벅지가 허옇게 드러난 미니 원피스를 입은 무희들이 등장하자 누구랄 것도 없이 무대로 뛰어올라 흔들어대는 바람에 공연장은 완전히 광란의 무대로 변해 버렸다. 긴장의 연속인 전쟁터에서 오랜만에 시름을 놓고 마음껏 즐겼다.
16, 목 타는 6월
1소대가 송콘강을 건너 매복 진입을 하다가 당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려고 나무 그늘로 들어가다가 놈들이 설치한 부비트랩이 폭발해 5명의 사상자가 났다. 채 명신 장군이 했다는 '적은 있는 곳도 없고, 없는 곳도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정말 놈들은 아군이 있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건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가 보다.
우리 분대가 딩칸 계곡으로 3박4일 매복을 나가게 되었다. 계곡 깊숙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일치감치 저녁식사를 하고 출발했다. 초행길이 아니어서 진입하기는 좀 수월했다. 언젠가 3분대가 호랑이를 만났다는 곳이 이곳이다. 긴장으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 같다. 다행히 무사하게 진입하여 크레모어 설치를 끝내고 한숨을 돌렸다. 해가져도 정글은 습도가 높아 후텁지근하다. 자리를 잡아 본격 경계에 돌입하는데 "슈웅" 하고 포탄이 날아오는 소리가 났다. 무의식중에 몸을 움츠렸다. 천지를 뒤흔드는 폭발음과 함께 매복지의 약 30m 전방에서 포탄이 떨어져 터지는 게 아닌가. 얼마나 소리가 큰 지 귀가 먹먹하다.
폭발력과 폭음의 크기로 봐선 박격포나 105mm 포탄은 아닌 것 같다. 월맹군에서는 없는 훨씬 센 놈으로 아무래도 미군 8인치 포인 것 같다. 무전기로 중대를 호출했다. 그 순간 또 한 발이 날아와 더 가까운 곳에서 터진다. 모두 납작 엎드렸다.
"쾅!"
무시무시한 소리에 귀청이 찢어졌는지 마치 깊은 물속에 있는 것처럼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바위와 나무 조각들이 날아와 하늘에서 마구 쏟아진다. 흙더미가 목덜미 속으로 마구 떨어진다. 중대를 호출하던 분대장도 송수화기를 집어 던지고 분대원들의 배 밑으로 파고든다. 원체 다급하다 보니 고참병이고, 졸병이고, 체면이고, 나발이고 없다. 모두 한 덩어리로 엉겼다. 무리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필사적이다. 오직 살겠다는 본능뿐이다. 정말 미치고 폴딱 뛰겠다. 하늘에서 바로 코앞에 떨어지는 포탄을 무슨 재주로 피한단 말인가! 무슨 조치가 없으면 모두 몰살당할 판이다. 겁에 질려 엉덩이를 치켜들고 떨고 있는 5분여 동안 무려 6발의 포탄이 떨어져 터진 후에야 잠잠했다.
포격이 멎고 중대장이 무전망에 등장했다.
"은하수 하나! 여기는 300!"
"송신!"
"귀소 피해 없는가? 보고하라!"
매복 진입할 때 미군의 레이더망에 우리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측에서 사전에 매복 작전을 통보하지 않아 미군 8인치 포대에서 오인 포격을 했다는 것이다.
"니기미 씨팔! 송아지 껌 씹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8인치 포 6발이나 날아와 터졌는데 ... , 야! 시부랄 놈들아! 모조리 뒈질 뻔 안 했나!"
정말 끔찍스러웠다. 포격이 멎고 점검해 보니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그 난리 통에 물 백이 모두 터져버렸다. 4일간 마실 식수가 바닥이 난 것이다. 수통에 남아있는 물로는 하루도 견디기 어렵다.
"부처님 자비냐? 하느님 은총이냐? 물 백은 다 터졌는데 어떻게 수박은 한 통도 안 깨졌냐? 참 신기하네?"
"그나저나 물 백이 저 모양이니 수박 한 두통이 아니라 모두 다 깨지게 생겼어."
이 일준 병장과 차 경철 병장이 너스레를 떠는 가운데 밤은 깊어만 간다. 드디어 날이 밝고 해가 떴다.
'이 아침에도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 밤의 악몽을 되새기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아침부터 갈증이 시작된다. 최대한 물을 아끼려고 과일 통조림을 마신다. 단맛에 물이 더 고프다. 어린 나뭇가지를 자르면 물방울이 떨어지는데, 건기라 그런지 몇 방울 떨어지다 말라 버린다.
중대장에게 조기 철수를 요청했다. 중대장은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아 보란다. 오후가 되니 너나할 것 없이 갈증은 극에 도달했다. 귀국한 안 병장에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신병일 때, 작전을 나가 물이 떨어지고 목은 마르고 죽을 지경에 고참병에게 물 한 모금만 달라고 하니, 그 고참병이 자기 대검을 쑥 뽑아 건네면서 하는 말이 내 팔뚝을 찔러 피를 빨아 먹으라고 하더란다. 모두 갈증에 축 늘어졌다.
월남 와서 두 번째 매복에 나선 박 동식 상병은 정신이 희미한 지 꼼짝 않고 신음소리만 낸다. 이 일준 병장은 몇 방울 나오지도 않는 오줌을 받아먹겠다고 낑낑거린다.
기진한 분대장이 차 병장과 나를 부른다. 어떻게든 물을 구해 오라고 명령했다. 매복은 복지부동이 철칙이다. 움직이면 죽음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두 명의 목숨을 내놓는 짓이지만, 분대원 모두가 살기 위해서는 달리 방법이 없다. 차 병장이 수통을 모두 수거하더니 앞장 섰다.
이름 하여 '딩칸 계곡'이라지만 한국의 산골짝과 달리 물을 구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차 병장과 나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무작정 물을 찾아 계곡을 헤맸다. 이미 출발하면서부터 적에 대한 경계는 접어두고 계곡을 뒤졌다. 약 1시간을 헤맨 끝에 조그만 웅덩이 하나를 발견했다.
말이 웅덩이지 손바닥이 겨우 잠길 정도에 불과하다. 거기에다 나뭇잎이 쌓여 있어 퍼낸들 얼마 되지 않을 듯하다. 우선 철모로 조금 떠서 마셔 보았다.
"웩!"
풀과 나뭇잎 썩는 냄새에 소똥 냄새까지 섞여 속이 뒤집힌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물인데. 철모로 최대한 찌꺼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떠서 수통 7개를 억지로 채웠다. 각자 갖고 있는 소독약을 넣어 찌꺼기를 가라앉힌 후 한 방울씩 혓바닥을 적시며 철수 때까지 버텼다.
정말 생각하기조차 싫은 끔찍한 3박4일이었다.
매복 작전을 마치고 기지에 돌아오니 맥이 탁 풀린다. 목욕을 하고 개운한 기분으로 침상에 누워 눈을 부쳤다. 한참 단잠에 빠져 있는데 소대장이 와서 깨운다. 지금 당장 군장을 꾸려 231고지에 올라가 2주일간 경계근무를 하란다. 기지에 포가 계속 날아오니까 이젠 별 짓을 다한다. 미군 8인치 포탄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소똥 썩은 물로 목구멍 적시며 3박4일 버티고 왔는데 또 장기매복이란다.
"씨팔! 침상에서 잠 한숨 못자고 또 장기매복이라니 ... ,"
"무슨 놈의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씨부랄! 월남전은 우리 분대만 치르나?"
231고지는 처음 나가는 곳이라 길을 만들면서 올라가야 한다. 고지로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심한데다 초행이라 죽을 맛이다. 완전군장을 한 채 통로를 개척하면서 올라가자니 콧구멍에서 열기가 훅훅 쏟아진다.
약 2시간 만에 매복지점인 정상에 도착했다. 우선 수색과 지형정찰을 한 뒤 제 1선에 조명지뢰와 부비트랩, 제 2선에 크레모어를 설치했다.
앞으로 2주간 생활해야 할 터이므로 움막을 짓기로 했다. 움막이래야 가늘고 키 작은 나무를 서로 옭아매고 그 위에 나뭇잎을 덮어 비와 햇볕을 피하고 위장도 겸한다.
고지 바로 아래 16교량과 오일펌프 스테이션이 있다. 좌측에는 개나리 고지, 우측으로는 누에고지, 뒤로는 100고지와 소도산이 훤히 건너다 보인다. 이곳에서 우리는 침투하는 적을 차단하고 이 고지를 사수해야 한다. 매복기간 식량과 식수는 헬기로 보급해 주기로 했다. 2주간 또 철모를 베개 삼아 자야하는 신세가 되었구나.
17, 231고지
231고지의 날들은 평온했다. 적의 동태는 전혀 감지되지 않고 상급부대에서도 별다른 지시가 없다. 밤낮 교대로 경계근무만 한다. 근무가 없는 시간, 별달리 할 짓거리도 없어 무료함을 달래보려고 고국의 라디오 방송을 듣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P25 무전기 롱 안테나를 올려 주파수를 맞추면 고국의 국제방송이 이곳 월남에서도 또렷하게 들린다. 특히 방송 중에도 음악프로는 대인기다. 펄 시스터즈의 '커피 한 잔'이라도 나올라치면 모두들 조용히 따라 부른다. '영등포 바람' 이 일준 병장은 아예 스텝까지 밟는다고 법석이다. 그리고 이 방송을 통해 고국의 소식도 들을 수 있다.
어느 날. 이 방송을 듣다가 완주 군청 재무과 여직원들이 스튜디오에 나와 파월 장병들을 위해 노래하는 것을 듣고, 그 중 한 사람. 이름이 마음에 들어 편지를 띄웠더니 바로 답장이 와서 지금까지 계속 펜팔을 하고 있다.
"캬아악, 캭!"
비명과도 같은 공작새 울음소리가 들린다. 정글에서 흔히 듣지만 그 소리는 별로 아름답지는 않다. 공작새는 화려한 자태에 비해 내지르는 소리는 어찌 그리 고음인지, 게다가 소름이 끼칠 정도다. 사람 귀청을 못으로 긁는 것 같다. 8부 능선의 개활지에서 한 무리가 군무(群舞)를 추고 있었다. 아마 짝짓기를 할 모양이다.
"번데기! 번데기! 여기는 은하수 하나!"
"송신!"
차 경철 병장이 쇠뭉치를 들고 누에고지에 무전을 날렸다.
"이상 징후 포착! 좌표 728, 492로 한방 날려주기 바람. 이상!"
"감 잡았다. 이상!"
누에고지로부터 즉각 박격포 한 발이 날아와 터졌다. 포탄은 정확히 군무를 추는 공작새 무리의 가운데 떨어졌다.
"명중! 수고 바람. 이상!"
차 병장이 같이 가자고 한다. 도착해 보니 공작새 몇 마리가 널브러져 있다. M16 소총 사격보다 더 정확한 포격이다. 수컷이 많이 죽어야 하는데 세 마리뿐이다. 일단 위치로 안고 와서 공작새 꼬리 깃털을 모두 뽑았다. 오색의 공작새 꼬리 깃털은 애인이나 펜팔 상대에게 편지를 쓰고 장식으로 함께 넣어 보낸다. 이 공작새의 깃털 편지는 받아보는 사람을 황홀하게 만든다. 그래서 항상 인기 만점이다.
낮에 경계근무를 서다보면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고지 가까이 하늘에 한 조각의 구름이 떠가는 목가적인 풍경도 볼 수 있다. 간혹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목덜미를 식혀줄 때는 고국의 가을을 느끼게 한다. 긴장도가 떨어지니까 영아 생각, 부모님 생각, 친구들 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
'아마 영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편지를 하지 않을 리가 없어. 기지에 내려가면 친구 병제에게 편지를 해서 한 번 알아보라고 해야겠다. 고향생각, 애인생각은 나뿐만 아니라 전우들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하루는 근무교대를 하고 오면서 보니 막내 박 동식 상병이 총을 가슴에 안고 쭈그리고 앉아 쿨럭이고 있었다. 아마도 무언가 사무치는 게 터진 모양이다. 또 한 번은 뒷일을 보고 오다가 우연히 눈을 돌리니 누가 큰 나무 뒤에 앉아 풀무질을 해대고 있었다. 엔간히 급했던 모양이다.
'그래, 모두 똑같이 미물 같은 인간이 아니더냐. ... ,'
231고지에 온지도 어언 2주일이 흘렀다. 그동안 충분히 식량과 식수를 공급 받았고, 별다른 사고도 없이 잘 보냈다. 아마도 월남 땅을 밟은 후 가장 느긋하게 보낸 날들이 아닌가 싶다.
이제 화기분대와 임무교대를 하게 되었다. 일부는 하산을 하고 나머지 병력은 화기분대가 올라오면 인수인계를 하고 내려가야 한다. 철수 준비를 하고 대기하고 있을 때, 똥포 삼거리에서 빈캐 쪽 19번 도로상에서 미군 군수차량이 놈들에게 기습을 당하고 있다는 전문이 흘러나왔다. 곧이어 3중대에 출동명령이 떨어지고, 61포대에서 105mm 포 지원과 무장 헬기의 공중지원, 누에고지에서의 포 지원으로 반격을 하고 있었다.
누에고지 하단부 19번 도로와 20고지는 우리 중대 전술지역이다. 거의 1시간 정도 시간이 흐른 후 포성과 총성과 헬기 소음이 잦아들고 상황처리를 하고 있다는 교신이 뜬다. 마치 중계방송을 듣듯 무전망에 귀를 기우리고 있을 때 교체병력이 올라왔다.
파월동기 서 재윤이도 왔다. 같은 소대에 있으면서도 자주 볼 수 없었는데 반가웠다. 우리는 즉석에서 맥주 한 캔을 따서 만남과 건강 축배를 들었다. 그 동안 지난 이야기를 나누고 철수 했다.
지난 2주간은 철모를 베개 삼아 맨땅을 뒹굴었지만, 이젠 침상에서 다리 쭉 펴고 늘어지게 잘 수 있다. 마침 철수해 내려오니 이동영사반의 영화 상영이 있다고 한다. 이곳은 월남에서도 최전방이라고 이동영사반이 좀체 오려고 하지 않는다.
얼마 전, 최 봉석 상병이 연대에 갔다가 하룻밤 자게 되었다. 마침 그날 저녁 극장에서 영화 상영이 있었다. 한창 영화가 무르익어 가는데 연대 외곽 철조망 근처에서 폭음이 일어났다. 최 상병이야 통상 겪는 일이니 그러려니 하고 죽치고 앉아 있었단다. 그런데 연대 계집애 같은 놈들이 서로 밟고 밟히며 도망 가더라나. 영사병도 달아나 버리고 텅 빈 극장에 최 상병 혼자 남아 있고, 영사기만 저 혼자 돌아가더라고 했다.
그런 놈들이 오늘 이 16교량까지 간 크게 찾아와 주었다. 용감하고 기특하구나. 타이틀은 '100정의 라이플'. 가위질 하지 않은 오리지널 영화였다. 에로틱한 분위기와 여주인공의 풍만한 젖가슴이 내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오랜만에 맥주 한 잔 한데다 고국에서 많은 편지가 와서 기분이 빵빵하다. 꿈속에서도 그리던 부모님과 동생들, 그리고 친구들... , 이렇게 편지로나마 만날 수 있어 얼마나 반가운지. 그러나 기다리고 기다리는 영아의 편지는 오늘도 보이지 않는다. 편지로 만나지 못한 영아의 모습을 꿈속에서라도 만나 보려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쾅! 콰쾅!"
영아와의 상념에 빠져 드는데 또 놈들의 포격이다.
'씨부랄!
달콤한 꿈은커녕 또 밤새도록 개인호에서 경계근무를 했다. 아예 모포를 갖고 개인호에서 눈을 붙여야 할까 보다'
1개 분대는 누에고지에, 1개 분대는 231고지에, 1개 분대는 매일 밤 기지 주변에 매복, 전 소대원이 쉴 새 없이 고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아침에 기지 앞 도로와 정글을 수색했다. 정글 속에서 시체 1구를 발견했다. 간밤 우리들의 위협사격에 맞아 죽은 듯하다. 그런데 도로변 철조망 앞에 너무도 어이가 없는 물건이 하나 놓여 있었다. 난데없이 곡식 따위를 담는 묵직한 마대자루가 하나 있었다. 조심스럽게 마대를 풀어보니,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그 마대 속에는 온갖 쇠붙이와 뇌관과 장약이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아마 이게 그동안 우리를 괴롭혔던 그 포탄일 가능성이 있다. 불발된 것이 분명하다.
이 사제 폭탄은 던져서 땅에 떨어질 때 뇌관을 쳐서 장약이 폭발하도록 제조한 것이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마대포탄이라고 할까?
놈들은 지금까지 이것을 기지 가까운 곳에 갖고 와서 던졌을 것이다. 아니면 옛날 석포(石砲)마냥, 휨이 좋은 대나무 장대 끝에 매달아 기지 안으로 날려 보냈던가, 아니면 다른 물리적 힘을 이용했을지도 모른다.
이제야 의문이 풀린 것 같다. 그토록 공격을 받으면서 왜 발포지점을 관측하지 못했는가를 ... , 첨단의 무기와 군사기술들이 이 엉성한 사제폭탄에 완전 농락당한 것이다.
'오냐! 알았다. 이 촌놈의 새끼들! 잡기만 해봐라. 완전분해 해버린다. 꼭 잡고 말 것이다.'
모두들 철저하게 복수해주겠다고 이빨을 갈았다. 그래서 기지 앞 정글에 50m 간격으로 1개조 3명씩, 3개조가 매일 밤 자리를 옮겨가며 매복을 서기로 했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자. 잡는 건 시간문제다.
18, 위협사격
놈들은 갈수록 과감해진다. 사흘이 멀다 하고 송유관이 폭파되는가 하면 전신주가 넘어진다. 도로엔 TNT를 묻고, 정글 곳곳에 부비트랩을 설치한다. 기지에는 계속 마대포가 날아든다.
놈들은 어제도 19번 도로상에서 미군 군수차량을 기습하고 사라졌다. 6월 들어 벌써 세 번째다. 상급부대에서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16교량과 오일펌프 스테이션을 총공격하겠단다.
'이 촌놈의 새끼들이 뒈지려고 안달이구나!'
실제로 베트콩이나 월맹군들을 잡아놓고 보면 참으로 왜소하고 무장도 변변찮다. 참말로 한 주먹거리도 안 된다. 그래도 만만히 볼 일은 아니다. 이놈들은 정글에서는 날고 긴다. 뿐만 아니라 밤이면 천지가 제 세상이라고 활개치고 다닌다. 우리들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때문에 만사 불여튼튼이라고, 놈들이 기지에 아예 접근할 수 없도록 근원적인 싹을 잘라버리는 것이 시급하다. 중대에서는 16교량 기지 주변과 개나리 고지, 누에고지 하단부의 소 정글을 아예 깨끗이 밀어버리기로 했다. 작업은 미 공병대의 캐터필러를 지원 받기로 했다.
미군 캐터필러 2대는 정글을 완전히 없애는 작업에 들어갔다. 기지 주변을 개활지로 만들어 한밤중이라도 놈들이 접근하면 금방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공병대원들이 정글을 미는 동안 우리 분대가 경계업무를 나갔다. 그들이 쉬는 시간이면 서로 이야기도 하고 담배도 나눠 핀다. 기지 안에서도 가끔 미군들과 맥주를 나눠 마시면서 짧은 영어 실력으로나마 손짓을 해가며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가끔 배알이 틀릴 때가 있다. 그들이 노골적으로 우월감을 가지고 우리를 '노랭이' 라고 멸시하는 경우다. 대부분 미군들은 무장헬기의 기총사수인 마이클처럼, 자신들이 세계의 지배자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자기들은 세계의 자유를 수호하는 십자군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월남 전선에 온 것은 공산화 위기에 놓인 아시아를 구하기 위해 온 것이며, 스테이크를 먹는 미군은 너희들과는 차원이 다른 족속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너희들 한국군도 어차피 아시아 노랭이들 아니냐는 뭐 그런 태도를 은연중에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쉽사리 주눅들 맹호 전사들이 아니다. 그렇게 잘난 놈들이면 실력으로 한판 붙어보자는 오기가 발동하는 것이다. 녀석들에게 태권도 자세를 취하면서 덤벼보라고 하니 '오! 노, 노!' 하면서 손사래를 친다. 파월 한국군은 모두 태권도 유단자로 알고 있다. 그래서 너희들은 사격솜씨가 엉망이라고 슬슬 약을 올린다. 그러면 십중팔구는 내기사격을 하잔다. 원래 돈 걸고 내기 좋아하는 족속들 아닌가. 바로 우리가 노리는 바다. 미군은 우리들에 비해 조준사격 솜씨는 엉망이다. 녀석들은 교전이 붙으면 자동, 반자동으로 놓고 무조건 '드르륵' 긁어 버린다. 하기야 월남전에서의 조준사격은 그들에게 큰 의미는 없다. 전투병들이 그런데 공병 주특기 병사들이야 더 말 할 것도 없다. 10발 사격 한판에 담배 한 갑을 걸고 세 판을 한 뒤 담배 세 갑을 챙겼다.
아직 기지 주변정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출동명령이 내렸다. 놈들이 똥포 마을을 거쳐 소도산의 월맹군 18연대 9대대로 보급수송을 한다는 정보가 들어와 우리 1분대가 놈들을 때려잡으러 가란다.
4일간 낮 동안은 누에고지에서 휴식을 취하고, 밤에는 소도산으로 통하는 길목을 매일 자리를 옮겨 가면서 매복하기로 했다.
매복 둘째 날. 100고지 아래 통로를 차단하고 앉았다. 놈들의 이동이 있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무척 긴장이 된다. 크레모어 설치를 끝내고 땀을 닦은 후, 막 경계에 들어가려는데 누에고지에서 통상적으로 하는 위협사격이 시작되었다. 캐리버 50과 30, AKK, 60mm 박격포를 신나게 날리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총탄이 귓전을 스치는가 싶더니 연이어 총탄이 우리 매복지 쪽으로 빗발처럼 쏟아지는 게 아닌가. 모두 바싹 엎드렸다. 총탄이 머리 위로 날아가는가 하면 머리맡에 떨어져 흙이 튀어 목덜미에 떨어진다.
"이 씨 팔 놈들이!"
총알이나 포탄이 떨어져 튄 흙이 날아와 목덜미에 떨어지면 그 불쾌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차라리 총을 맞아도 그보다 더 불쾌하지는 않을 거다.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 쇠뭉치를 들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야! 이 개새끼들아! 사격중지! 사격중지!"
사격이 뚝 그쳤다. 모두들 놀란 가슴을 쓸어냈다. 까딱했으면 아군 총탄에 모두 황천으로 직행할 뻔했다. 우리분대의 매복지점을 누에고지의 2분대가 미처 파악을 못하고 또 확인도 하지 않고 사격을 했던 것이다.
"2분대 이 새끼들, 아침에 기지에 가서 함 보자. 죽을 뻔 했잖아! 벌써 몇 번째야. 씨 팔!"
세 번이나 위치를 이동하면서 매복했지만 끝내 적들은 구경도 못하고 아군의 위협사격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누에고지로 돌아왔다.
"야! 이 씨부랄 놈들! 모조리 확 갈겨 버려? 앞으로 똑바로 해!"
이 일준 병장이 화가 풀리지 않아 2분대원들에게 욕을 해대고 있다. 모두들 미안한지 말없이 듣고 있다. 아무런 성과도 없이 우리는 다시 16교량 기지로 돌아왔다.
오늘은 3분대가 기지 앞 정글에 3개조로 나누어 매복을 나갔다. 오늘 나는 관망대 초반 근무다. 하늘에는 반달이 떴지만 구름이 약간 끼어 시계는 그리 좋지 않은 편이다. 신경을 써서 매복조에 이상 유무 확인을 하고 시간을 알리고, 중대 상황실에 '이상 무' 보고를 하고 있는데 매복지에서 크레모어 터지는 소리가 났다.
"야! 잡았구나!"
소대장이 총알같이 관망대로 뛰어 올라왔다. 매복조를 호출 했다. 이어 중대 OP에서 조명이 오르고 중대장도 무전망에 등장했다. 매복조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전방에 분명히 물체가 쓰러져 있단다. 이어 신음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야! 드디어 해냈구나!"
가슴이 뛰고 온몸에 전류가 찌릿하게 흐른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대대장, 연대장까지 무전망에 등장했다. 모두들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잠시 후, 매복조로부터 상황보고가 있었다. 확인해 보니 멧돼지란다. 맥이 탁 풀린다. 멧돼지라니.
"니기미! 좋다 말았네. 기가 막혀,"
그런들 어쩌겠나. 대대장, 연대장도 모두 칭찬과 격려를 해주었다. 내친 김에 그놈이라도 끌고 나왔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멧돼지고기 파티를 하기로 했다. 소대원들이 달려들어 털을 뽑고 내장을 들어내고 완전분해를 했다. 졸지에 멧돼지고기 회식이다.
"캬! 안주가 좋으니 술맛 또한 기똥차구나! 쥑인다. 쥑여!"
7월 들면서 신상에 두 가지 변화가 생겼다.
상병 계급장을 단 지 4개월 만에 최 봉석 상병과 함께 1계급 특진을 하여 병장으로 진급했다.
그 동안의 전과 공훈에다가 주월 사령부의 '월남 특진' 덕도 본 셈이다. 세상일에 귀 밝은 고참병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 보면, 우리는 한. 미간에 맺은 '브라운 각서'에 따라 미국으로부터 월남참전수당을 받아 정부에서 우리에게 해외근무수당이라며, 상병 45불, 병장 54불을 준다. 졸지에 공돈 9불이 더 생긴 셈이다. 자장면 80그릇 값이다.
내 경우처럼 국내에서보다 병장 진급이 7, 8개월 빨라지면 미국으로부터 받는 돈이 더 많다는 계산이다. 전체 병력으로 봤을 때는 무시할 수 없는 큰 액수인 것이다. 이를 두고 우리 사병들은 '월남 특진'이라고 한다. 그러나 행정병들에게서 간혹 흘러나오는 말들은 약간 달랐다.
우리나라 참전병사 한 명당 미국으로부터 받는 참전수당은 우리들에게 지급하는 해외근무수당 보다 열 몇 배나 된다는 것이다. 우리들에게 주는 수당 외의 돈은 모두 경제개발비용과 국토방위비로 들어간다고 했다. 그런 거야 나 같은 병사가 시시콜콜 알 바 없다. 어쨌건 그 돈이
한 푼이라도 국가에 들어간다면 나라살림에 보탬이 될 거고, 난 진급해서 수당 더 받아서 좋고 ... ,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닌가.
병장을 다니까 기분도 좋지만 그만큼 책임감도 느껴진다.
또 하나의 변화는 우리 1분대가 2분대와 교체하여 누에고지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누에고지는 중대 OP에서 보면 도로를 따라 능선이 누에의 옆모습을 닮았다하여 우리들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누에의 꼬리지점이 신병사고 지점이자, 전임 대대장 일행이 기습공격을 당해 모두 전사한 곳이다.
누에고지에서는 째째산과 그 아래 있는 똥포 마을, 똥포 삼거리, 20고지의 광활한 소 정글, 그리고 그 뒤에 있는 100고지까지 모두 시야에 잡힌다. 그야말로 정략적 요충지인 셈이다. 이 누에고지는 놈들의 입장에서 보면 멱통 깊숙이 칼을 들이대고 있는 형국이다. 그 때문에 우리와 대치하고 있는 월맹 정규군 18연대 8대대와 9대대는 이 누에고지를 총공격하려고 기회만 엿보고 있다.
19, 부비트랩
누에고지에 올라 인수인계를 했다.
기지 내 청소, 제초작업, 철조망 보수 ... , 할 일이 태산이다. 우선 급한 대로 조명지뢰 재설치, 크레모어 점검부터 했다. 여기서는 낮 동안 신병사고 지점에 2명의 경계병을 내보낸다. 그곳은 치고 빠지기에 용이한 지형적 특성으로 사고가 잦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날, 최 봉석 병장과 둘이 무전기를 매고 신병사고 지점으로 갔다. 근무는 한 명은 위장포를 씌어 만든 참호에서, 한 명은 옆에 있는 나무위에 판자로 엮어 만든 관망대에 올라가 경계를 한다. 같이 간 최 병장은 위장호 안으로 들어가고 나는 나무에 오르기 위래 사다리를 잡았다.
"딱!"
내가 사다리를 잡는 순간 폭발음이 났다. 큰 폭음은 아니지만 금속음과 함께 매우 불쾌한 소리다. 그와 동시에 섬광이 번쩍 하면서 몸이 공중으로 붕 떴다 떨어졌다. '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뒹굴었다. 앞이 보이지 않고 눈과 팔에 강한 통증을 느꼈다. 최 병장이 나를 부축하여 호 속으로 밀어 넣었다.
"번데기! 번데기! 여기는 번데기하나! 김 병장 BT(부비트랩)에 당했다."
'아! 내가 이렇게 당하다니, 눈을 당하고 말았구나.'
눈 안에 모래가 들어간 것처럼 쓰리고 화끈거린다. 내가 놈들의 부비 트랩에 걸리다니 ... , 어처구니없고 비참한 생각이 든다. 분노가 치민다. 분대장과 분대원들이 곧바로 달려왔다. 수통의 물로 눈을 씻어 주었지만 전혀 눈을 뜰 수가 없고 통증만 더 하다. 분대장이 압박붕대로 눈을 감쌌다. 헬기가 도착하여 연대로 날아가는 동안 끝없는 패배감과 분노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연대 의무중대에 도착하여 압박붕대를 풀고 치료를 받았다. 군의관은 부비트랩의 장약이 터지면서 안구에 화상을 입은 것 같다고 했다. 며칠 치료해 보자고만 한다. 팔은 약간의 찰과상만 있을 뿐 이상이 없단다. 그러면서 다른 데 다친 곳이 없는 게 희한하다고 했다. 아마도 부비트랩의 각도가 엇비꼈기에 그렇지, 정면으로 받았다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아찔한 생각이 든다.
'도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내가 이 얍삽한 촌놈들에게 당하다니 ... ,'
눈을 가린 채 병상에 누어있으니 온갖 생각이 다 든다. 조무래기들한테 얻어맞은 기분이다. 우리가 이 월남전에서 가장 두려워하고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이 바로 이 부비트랩이다. 이것 때문에 우리 기동력이 절반 이상 위축된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놈들 같으면 정당하게 맞붙지만, 보이지 않으면서도 어느 순간이건 방심할 만한 곳에서만 이렇게 목숨을 노리는 것이다.
과연 내가 앞은 볼 수 있을지 불안하다. 만약 내가 앞을 못 보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영아의 모습을 어떻게 볼 수 있을 것이며, 가족들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지, 소아마비 동생, 외국으로 가버린 형, 모두들 내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릴 텐데, 어떻게 이 꼴로 돌아간단 말인가. 서러움에 속울음을 삼키다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아마 군의관이 진정제를 주사했나 보다.
정글과는 사뭇 다른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찌른다. 물건들이 부딪치는 소리에 잠이 깼다. 잠은 깼지만 여전히 암흑이다.
"어이! 김 병장, 식사!"
누군가가 식판을 침대에 놓고 숟가락으로 밥을 떠 입으로 가져다준다.
"나 알지? 1소대 김 상철 병장."
"아! 김 병장님. 좀 어때요?"
"다 나았어. 난 모레 복귀할 거야. 어때, 기분 엿 같지? 일단 좀 먹어."
1소대 김 병장은 얼마 전 송콘강 건너 매복 진입하다가 부비트랩에 당했다. 분대장은 전사하고 허리와 다리에 부상을 입어 후송되어 온 것이다. 여기서는 이 정도는 상처라고 여기지 않으니 며칠 휴양 잘 한 셈이다.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찌르고, 부상병들이 끙끙대는 악몽 같은 암흑 속에서 이틀이 지났다. 군의관이 붕대를 풀고 눈을 떠보라고 했다. 눈을 껌뻑거리니 아리고 시큰하다. 그러면서 희미한 빛이 느껴지고 흐릿하지만 무언가 윤곽들이 느껴진다.
"아! 보인다."
"어때! 빛이 느껴져?"
"예! 뭔가 희미하게 윤곽이 보입니다."
"다행히 화상이 깊지 않은 것 같네. 며칠만 더 치료하면 괜찮아질 거야. 걱정 안 해도 돼."
나도 모르게 이마와 가슴에 성호를 그으며 '감사합니다. 주님!' 하면서 감사의 기도를 했다.
부비트랩에 당한지 5일 만에 완전히 시력을 회복했다. 병실생활이 갑갑해 죽을 지경이다. 한시라도 빨리 기지로 돌아가고 싶다. 사람의 세포는 3개월이면 모두 바뀐다고 했던가. 이미 야생에 길들여진 내 생체구조는 메트리스 침대를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 벙커의 나무 침상이 편하지 이곳 침대에서는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소대장에게 퇴원해서 복귀하겠다고 보고를 했다. 소대장은 복귀하지 말고 곧바로 연대 통신 중대로 가서 레이더 교육을 받고 오란다.
누에고지는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요충지이고, 적들이 항상 접수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런 만큼 지금과 같이 1개 분대가 지키기에는 극히 위험하다고 우려들 했다. 해서 상급부대에서는 누에고지에 화력보강을 하기로 결정하고, 화기소대에서 60mm 박격포와 사수, 탄약수, AKK 사수 등 3명이 지원 나와 있는데, 여기에 서치라이트와 P33레이더까지 추가 설치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레이더가 설치되면 앞으로 반경 4km 이내는 놈들의 움직임을 낱낱이 관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난 며칠간 누에고지는 레이더와 서치라이트를 설치하기 위해 관망대 확장 및 보강공사를 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누에고지에서는 식수 조달이 큰 골칫거리였다. 고지 하단 도로변에 드럼통을 두고 급수차가 물을 채워두면 10갤런 통으로 일일이 져다 날랐다. 이제부터는 헬기로 1톤짜리 고무 물 백을 공급해 준다고 해서 헬기가 랜딩 할 공간을 확보하고 샤워실도 지었다고 한다.
레이더와 서치라이트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발전기 작동도 해야 한다.
마침 주특기가 통신인 내가 연대 의무중대에 입원해 있고, 치료도 끝났으니 소대장은 이 모든 것을 운용할 제반 교육을 다 받고 오라는 것이다. 교육을 이수한 후 분대원 누구라도 레이더와 발전기를 작동할 수 있도록 내가 다시 교육을 시켜야 한다.
교육은 통신 중대장과 함께 1대1로 진행 했는데, 마침 중대장은 내가 통신교육을 받았을 때의 교관이었다. 무척 반가워하며 열심히 가르쳐 주고 또 숙지했다.
어차피 누에고지는 독립으로 1개 분대가 근무하다 보니 레이더나 발전기가 이상이 생기면 신속하게 수리지원을 받을 수 없다. 그 때문에 기계 운용법에 대해 확실하게 매뉴얼을 숙지해야 한다. 레이더 운용교육을 고등학교 입학시험 공부보다 더 열심히 했다. 한시 바삐 '마이 홈'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연대에 3일간 더 잡혀 있었다. 열흘 만에 누에고지로 돌아와 분대원들을 다시 만나니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분대원들에게 교육 시키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모두들 열심이다. 죽지 않으려고.
20, 마대 포 공격 끝!
어쨌건 마대포로 공격하러 오는 놈들을 꼭 잡아야 한다. 소대원들의 사기는 완전 제로 제로에 가깝고 마대포탄에 모두 노이로제에 걸린 듯하다. 소대장은 16교량에 근무자만 남기고 소대원을 이끌고 누에고지로 왔다. 똥포 마을 근처에 전원 매복을 나가기로 했다. 경산 사나이 서 재윤 병장도 왔다.
똥포 마을에서 과부촌을 잇는 지점과 사원으로 갈라지는 지점을 매복 포인트로 잡았다. 근래 레이더에 자주 포착된 지점이다. 누에고지의 우리분대도 일부 매복에 투입되었다. 그야말로 소대 작전이다.
해가 지고 야음을 틈타 매복지로 진입했다. 달도 없는 밤. 일몰 직후의 어둠은 더욱 짙다. 까만 하늘에 별들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선두에 2분대가 가고 그 뒤로 소대장과 우리 1분대, 화기분대 순으로 진입하고 있다. 사원을 빙 돌아 하천을 따라 마을 쪽으로 가는데, 앞쪽에서 '적 출현' 신호가 왔다. 일시에 '동작 그만'이다
10시 방향에서 움직이는 한 무리가 나타났다.
"무이?"
놈들이 나지막이 외쳤다. 아마도 '누구냐?' 라는 말인 것 같다. 다시 연달아 '무이? 무이?' 하면서 총의 자물쇠 푸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 일시에 엎드리면서 자동으로 긁었다.
"드르륵, 드르륵, 탕, 탕 탕!"
순간적인 조우였다. 동시에 양쪽에서 총탄이 빗발치듯 쏟아진다. 워낙 깊은 어둠이라 전혀 물체를 가늠할 수 없고, 단지 총구의 불빛만 향해 쏘았다. 우리는 총을 쏘면서 뒤로 물러나 하천 둑으로 내려섰다.
곧이어 조명이 오르고 박격포 지원이 잇따랐다. 조명을 대낮처럼 밝히자 놈들은 도로 밑으로 흩어져 달아나기 시작했다. 소대장은 산개해서 공격하라고 소리치지만 우리는 추격을 하지 않았다.
칠흑 같은 밤. 상대적으로 놈들에 비해 지형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가 추격하는 것은 위험천만이다. 앞쪽에 한 놈이 고꾸라져 있다. 상황을 끝내고 쓰러져 피가 줄줄 흐르는 놈을 도로에 끌고 나왔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전투가 그랬겠지만 교전은 실로 순간이었다. 눈 깜박하는 동안에 끝이 난다. 찰나와도 같은 시간. 먼저 보고 먼저 쏘지 못하면 이미 끝난 목숨이다. 저기 뒹구는 놈의 시체가 그것을 말해준다. 백번 중에 한 번, 어느 한 순간 내가 늦으면 나도 저 꼴이 될 것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내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먼저 보고 먼저 쏘아야 한다.
'살아가는 놈이 장땡이다. 무조건 먼저 보고 빨리 당겨라!'
상황종료 보고를 했다. 대대장이 시체와 노획품을 APC에 실려 보내라고 한다. 신병사고 지점에서 전사한 대대장 후임으로 온 대대장은 보안사 출신으로 보병대대에 자원해 왔다고 한다. 사살한 적은 꼭 눈으로 확인하려고 한다. 인수하려고 온 APC에 적의 시체와 노획품을 실어주고 막 철수 하려는데 '어이쿠! 내 다리.' 하면서 털보 강 은향 병장이 풀썩 주저앉는다. 살펴보니 허벅지 관통상이다. 얼마나 정신없이 싸웠으면 총알이 자기 몸 뚫고 지나가는 것도 몰랐을까.
"아이고! 이 등신아."
강 은향 병장도 APC에 태워 보내고 소대원들은 모두 누에고지로 올라왔다. 참으로 운이 안 맞는 날이다. 10분만 일찍 진입해서 크레모어 설치하고 앉았으면 대형사고 쳤을 건데 ... , 아깝다. 그야말로 한 줄에 꿰어놓은 명태 새끼와 같은 놈들을 놓치다니, 원통하다.
불꽃 튀듯 쌍방 한 차례 붙고는 며칠째 적정이 잠잠하다. 분대원들은 모든 촉각이 빳빳하게 서는 긴장상태로 지내다가 기지 내에서 느슨한 날을 보내게 되면 좀 힘들어 한다. 하루만 조용히 있도록 내버려두면 몸이 근질거려 주리를 튼다. 저녁을 먹고 배를 깔고 엎드려서 편지를 쓰고 있었다. 차 경철 병장과 박 동식 상병은 랜턴 불빛 아래서 캔 맥주를 까면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이 일준 병장은 팬티 속에 손을 집어넣고 '명랑' 잡지를 뒤적이고 있다.
밤 10시경. 16교량 쪽에서 크레모어 폭음과 함께 적색 타식이 올랐다.
적색은 적 출현을 알리는 신호다. 분대원들은 모두 밖으로 뛰어 나갔다. 무전기 볼륨을 올리고 상황이 벌어진 곳을 주시한다. OP에서 4.2인치포의 조명이 오르고 M16과 AK소총 소리가 뒤섞여 요란하다.
3분대가 3개조로 기지 앞에 매복을 나갔는데, 3A도로 독립수(獨立樹) 근처인 듯하다. 상황이 벌어진 곳이 16교량에서 좀 떨어진 곳이다. 모두들 무전기에 귀를 기우리며 마음을 졸이고 있는데, 교신이 떴다. 마대포탄을 던지러 오는 놈들을 사살하고 상황처리 하는 중이라고 했다.
"만세! 만 만세다!"드디어 잡은 것이다. 놈들을 박살낸 것이다. 분대원들은 교신을 듣고 환호성을 질렀다. 서로 얼싸안고 춤을 추며 기쁨을 나눴다. 연이어 들리는 교신은 적 3명을 사살하고, AK소총 2정과 마대포탄 26개를 노획했다는 것이다.
"야! 내일 내려가서 이 새끼들 대검으로 각을 떠버리자!"
"이 개새끼들은 내가 껍데기를 벗겨놓을 테다."
모두들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중대장뿐만 아니라 대대장, 연대장까지 등장하여 흥분된 목소리로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그동안 두 달 가까이 전 소대원들이 밤잠을 설치며 놈들을 잡아 보겠다고 매복에, 수색에 ... , 개고생 한 것을 생각하면 정글도로 난자를 해도 직성이 풀리지 않을 것 같다.
날이 밝자 모두 16교량 현장으로 달려갔다. 검은 농민복을 입은 세 놈이 갈가리 찢겨진 채 16교량과 3A도로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널브러져 있다. 지난 두 달 가까이 저 엉성한 놈들에게 당했다고 생각하니 되레 우리가 초라해 보인다.
대대장이 제일 먼저 달려왔다. 기분이 좋아 연신 싱글벙글 하며 일일이 악수를 하며 등을 두들겨 준다. 뒤이어 중대장이 도착하고 곧이어 연대장도 참모들과 함께 도착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지휘관들도 어지간히 애를 태웠나 보다. 모두 마대 포 공격 사례는 월남전을 통틀어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했다. 브리핑을 하는 동안에 연대장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시체는 삼거리에 널어놓았다. 주민들에게 공개하는 것이다. 미군들도 구경하러 나와 퍼질러져 있는 놈들과 마대포탄을 보고 엄지를 치켜들고 '넘버 원, 코리아'를 외쳤다.
그 많은 날들을 전 소대원이 놈들을 잡아 보겠다고 안캐페스, 딩칸 계곡, 똥포 삼거리, 째째산, 바슈엔산, 231고지, 개나리고지, 과부촌까지 매복과 수색을 병행하며 참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개고생을 했다.
오늘밤은 모두가 마음껏 자축파티를 열기로 했다. 지휘관들도 실컷 기분 내라고 많은 선물을 보내왔다.
오일펌프 스테이션에서도 감사표시를 해왔다. 미군들도 그동안 마대포 공격으로 고생 많이 했다. 그들이나 우리나 포격이 있는 날은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으니 피로감은 매한가지였을 터이다. 심지어 막사까지 불타는 피해를 입었으니 오죽 했었겠나. 그들도 오늘밤부터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고맙겠나.
마음 놓고 이 기쁨을 즐길 수 있는 저녁이다. 푸짐한 파티가 준비 되었다. 육포에 과일에 C-레이션 찌개에 푸짐한 안주를 놓고 '화이팅'을 외치며 질펀 마시고 또 마셨다. 야외전축에서는 '선데이 모닝(Sunday Morning)'이 돌아가고 있다. 미군들도 양손에 양주병과 안주를 들고 자축파티에 동참하여 마음껏 즐겼다. 미군들과 함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했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전쟁. 승리자만이 누리는 특권이다.
"부어라! 그리고 마셔라! 우리가 해냈다.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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