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태양을<5>…제3회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 특선-김영곤

입력 2017-10-10 10:55:43

25, 번개작전 - 1

이틀간 승리의 축제는 끝났다. 우리는 또 싸워야 한다.

어제 밤늦도록 꾸린 군장을 짊어지고 중대 OP 헬기장으로 갔다.

07시 20분. 우리는 거대한 치누크에 몸을 실었다. 잠시 후 랜딩한 곳은 해발 512고지의 후장산 마루다.

우리보다 먼저 공중 투입되어 임무를 끝낸 수색중대와 교대를 하고 사주경계를 하면서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중식을 마치고 바로 이동명령이 떨어졌다. 이번 작전은 후장산 아래 화니 계곡에 위치한 적들의 신병훈련소를 급습하는 것이다. 계곡을 향해 내려가니 태고의 거목들이 하늘을 가리고 경사가 제법 심하다. 이제 산을 타는 데야 이력이 붙어 별 어려움이 없지만, 길을 터면서 내려가야 하고 특히 암벽을 타고 내려갈 때는 아찔했다.

오늘 중으로 좀 더 낮은 계곡으로 내려가기 위해 강행군이다. 출발할 때는 놈들의 기습을 의식 했지만, 자신의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차 경계는 생각도 못하고 있다. 도무지 수색작전을 펼치는 건지, 산 속에 길을 내는 건지 모르겠다. 해질녘에야 겨우 5부 능선에서 분대별로 분산하여 숙영지를 잡았다. 해는 지고 하늘의 별조차 보이지 않는 밀림, 바로 앞의 사람 얼굴도 분간할 수 없다. 암흑 속에서 야광 플래시 하나에 의지해 밤을 보냈다.

작전 이틀째. 먼동이 튼다. 식사하기가 무섭게 하산이 시작 되었다.

워낙 경사가 심해 그냥 미끄러져 내려가기도 하고 로프에 매달려 하강하기도 한다. 능선의 하단부로 내려갈수록 거목은 점점 사라지고 대신 가시가 달린 관목과 덩굴이 얽힌 숲이 나타났다. 등에 진 배낭 무게에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땀이 흘러 내려가 정글화도 철벅거린다. 나뭇가지와 덩굴을 헤쳐 나가기가 보통 고역이 아니다. 이동이 시작된 지 두어 시간쯤. 멀리서 요란한 총성이 들린다. 접전이 시작되었나 보다. 곧이어 6중대 병력이 당했다는 무전이 흘러나온다. 좌측 능선을 타고 내려가던 4중대가 놈들의 저격으로 소대병력이 큰 피해를 입었단다.

이제 놈들이 서서히 반격을 하나 보다. 맥박이 빨라지고 긴장이 더해진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좌우 경계를 하면서 하산한다.

신경이 한껏 날카로운데 산거머리와 불개미들마저 달려들어 괴롭힌다. 나뭇잎에 붙어있던 산거머리들이 비 오듯 우수수 떨어져 목과 팔뚝에 흡반을 박고 피를 빠는 것이다. 또 나뭇가지에 뭉쳐 매달려 있던 개미 덩어리도 덮친다. 그때마다 옷을 벗고 모기약을 뿌리는 소동이 일어난다. 소동이 벌어진 사이 물 한 모금과 담배 한 대로 잠깐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전진한다. 한증막과 같은 열대의 숲을 헤치고 나가는 것은 사막을 걷는 것과 다를 바 없다. 30분도 지나지 않아 목이 탄다. 그러나 수통 3개가 나의 생명수인데 다음 보급 받을 때까지 아끼고 아껴가며 목을 축여야 한다.

거의 해가 저물 무렵, 무전기에서 헬기 보급이 있다는 전달이 왔다. 시계가 약간 트인 개활지에 연막을 올리고 보급을 받는다. 종일 기갈 속에 허덕이다 들이키는 물, 그 맛 어디에다 비기랴! 또 한 번의 어둠이 내렸다. 전 중대 병력이 한 곳에 모여 숙영지를 잡았다.

작전 3일째. 놈들의 저항이 상상외로 거세다.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눌러앉아 다음 명령을 기다려야 했다. 낮 동안 미 공군의 팬텀기들이 지축을 흔들며 폭격을 하고 있다. 밤에는 항공조명이 밤새 정글을 밝히고, 우리는 앉은 자리에서 꼼짝도 못하고 명령만 기다린다.

- 우리는 가끔 작전 중에 '안개비 샤워'를 한다. 미군 항공기에서 희뿌연 물질을 뿌리는데 마치 안개처럼 내린다. 그것을 맞으면 샤워하는 것처럼 청량감이 든다. 땀범벅의 작전 중에 이것을 맞으면 시원하고 더 없이 상쾌해 진다. 모두들 철모를 벗어 들고 이 안개비를 맞는다. 그런데 장교들이 말하기를 그것은 제초제라고 했다. 항공기에서 제초제를 뿌린 지역은 얼마 후 숲이 벌겋게 되어 고사한다. 미군은 정글에 제초제를 뿌려 숲을 고사시켜 적들의 은거지를 초토화 시키는 것이다. 때로는 항공기로 오일을 뿌려 불을 지르기도 했다. -

자리를 잡아 앉아 이틀 밤을 새운 뒤에야 진격 명령이 하달되었다. 지금부터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적의 신병훈련소가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어느 순간,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온몸의 신경을 집중하여 이동한 끝에 앞이 확 트인 개활지로 나왔다. 우려했던 기습도, 교전도 없었다.

적의 훈련소는 개활지 중간에 거대한 수목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수도 없이 말로만 듣던 적의 신병훈련소다. 주위에는 반영구적으로 구축한 진지가 있다. 훈련병 시절에 받던 각개전투 훈련시설이 여기에도 있다.

우리의 훈련소와 다른 점은 지하 동굴이 있다는 것이다.

훈련소는 곳곳에 포가 떨어져 구덩이가 움푹 파였고, 폭격에 부서지고 불에 탄 건물들만 황량하게 남아있다. 놈들은 뒹구는 시체 몇 구를 버려두고 모두 도망가고 없었다. 중대는 횡대로 대열을 지어 수색해 나갔다. 개활지 끝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 꽤 넓은 하천이 나타났다. 이 지역의 웬만한 골짜기에는 물을 구경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곳은 건기인데도 물이 강물처럼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다.

물과 정글, 그리고 넓은 개활지. 대규모 병력이 주둔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천혜의 조건을 갖추다 보니 놈들은 이곳에서 벼, 옥수수, 감자농사를 지어 자체 조달하면서 훈련소를 운영해 온 것이다. 이 지역의 벼농사는 3모작을 할 수 있으니 먹을거리에 모자람이 없이 이 천연의 요새에서 훈련을 받았을 터이다. 그리고는 후장산을 넘어 송콘강을 건너와 우리를 괴롭힌 것이다. 생각할수록 적개심이 끓어 시설들을 철저히 박살내고 싶었지만, 중대장은 수색에만 집중하라고 했다. 수색을 마친 후 개울을 건너 이곳에서 소대 별로 숙영하기로 했다.

이제 제1단계 작전은 끝났는가 보다. 날이 밝으면 재보급을 받아 전열을 정비하고 하루를 더 쉬고 제2단계 작전이 전개 된다고 한다. 또 하루가 밝았다. 오늘은 쉬는 날. 떠오르는 태양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우리는 홀랑 벗고 목욕을 했다. 땀에 찌던 전투복도 말끔하게 세탁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늘어지게 낮잠도 즐기며 휴식을 취했다. 때맞추어 맥주가 나왔다.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전쟁터. 그곳 작전지역에서 냇가에 발을 담그고 술 한 잔 즐기는 낭만을 어찌 상상할 수 있으랴!

모두들 사기가 만 충전이다.

26, 번개작전 - 2

이틀간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보급을 받아 재정비 했다.

지금까지는 주로 홈 베이스 작전으로 중대전술기지 내에서만 움직였지만, 철모를 베개 삼는 전사가 이 만큼 휴식을 하고 보급을 받아 재정비 했으니 더 이상 부족할 게 없다. 거침없이 출동이다.

우리 소대는 분대별로 UH1H 헬기에 몸을 실었다. 눈 아래 그동안 헤매던 골짜기가 보인다. 저 좁은 골짜기에서 며칠 동안 목숨을 걸고 다녔다고 생각하니 한편 가소롭게 느껴진다. 그것도 잠시, 기체는 벌써 후장산 마루를 넘고 있다. 멀리 중대OP가 보이고, 안캐페스의 꼬불꼬불한 도로가 한 눈에 들어온다. 19번 도로를 가로질러 똥태산 정상 부근의 억새 군락지에 랜딩 했다. 랜딩한 곳은 제초제도 뿌리고 불도 질러 억새들이 모두 타버려 시계가 훤하게 트였다.

헬기와 함께 공수된 맥주 한 캔으로 목을 축이며, 전 연대병력이 도착할 때까지 사주경계를 해야 한다. 뒤이어 치누크가 병력을 줄줄이 내려놓고 간다. 이렇게 많은 병력이 한 자리에 집결한 것은 처음 봤다.

전 병력이 집결한 뒤 점심식사를 했다.

제2단계 작전이 시작 되었다. 먼저 정상에서 내리 뻗은 능선의 사면으로 내려가면서 계곡까지 수색을 하고, 그곳에서 1박 한다. 그리고 다시 올라와 다음 작전명령을 받게 된다.

현 위치에서 계곡 쪽 사면으로 내려가면서 수색을 해야 한다. 미처 불에 타지 않은 억새들이 사람 키보다 훨씬 높이 자랐다. 헤쳐 나가기가 무척 힘이 든다. 억새의 무성한 잎사귀들은 칼날과 다름없다. 스치면 바로 상처가 나고 피가 배어 나온다. 억새 잎에 스친 얼굴과 팔뚝은 마치 밭을 갈아 놓은 것 같다. 땀이 흘러 들어가 쓰라리고 따갑다. 이 고통스런 억새 군락은 7부 능선까지 이어져 있다.

겨우 억새밭을 벗어나니 이번에는 가시나무와 덩굴로 덮인 정글이다.

무슨 놈의 나무들이 그렇게 가시가 많은지 ... , 질긴 군복도 걸리면 여지없이 찢어진다. 어렵사리 전진했다가 낭떠러지 끝에 몰리면 뒤돌아 다른 길을 만들면서 내려간다. 멀리서 총성이 요란하다. 어디서 한판 붙은 모양이다. 오직 정글만 헤쳐 나가는데 정신 팔렸다가 총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그런 가운데 얼마간을 뒹굴며, 미끄러지며 내려가는데 물소리가 들린다. 물소리에 힘이 솟는다.

바위들로 형성된 계곡, 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천연동굴이 있어 으스스한 기분에 미간이 뻣뻣해 진다. 정말 무지하게 깊은 골짜기다. 하늘은 한 귀퉁이만 보인다. 바위와 바위 사이로 옥수가 콸콸 흐르고 워낙 물이 맑아 바닥이 훤히 보인다. 흩어져 주위를 수색했다. 놈들은 이미 도망가 버리고 곳곳에 숙영한 흔적만 보인다. 여기서 1박하고 다시 정상으로 올라가야 한다. 철철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자리를 잡아 누웠다. 완전 피서 온 기분이다. 시원하다 못해 춥다. 그러나 그 기분도 잠시, 밤사이 비가 쏟아졌다. 아침에 눈을 뜨니 온몸이 흙투성이다. 시간이 없어 모두 옷을 입은 체 물로 뛰어들었다. 목욕과 세탁을 동시에 하는 '욕탁'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아침식사를 하고 왔던 길을 되짚어 올랐다. 내려오면서 길을 터놓아 한결 수월하다. 정상에 도착하여 물과 식량을 보급 받았다. 군장을 재정비하고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오늘은 똥태산 정상에서 비박이다.

날이 밝자 바로 출발이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 건너편 소도산 정상까지 가면서 수색작전을 펴는 것이다. 오늘 코스를 보니 고생께나 할 것 같다. 온 산이 가시덩굴로 뒤덮여 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모두 기진맥진이다. 전진 속도가 나지 않는다. 가시덩굴을 헤치느라 그런가?

땀은 비 오듯 흐르고 갈증도 심하다. 앞에 갑자기 적이 나타나 총을 들이댄다 하더라도 '그냥 쏴!' 라고 할 것 같다.

기진한 상태로 겨우 물이 있는 계곡으로 내려왔다. 계곡에서 수통 2개에 물을 채우고 잠시 휴식한 뒤 다시 출발했다. 이제부터는 우리분대가 후방경계를 맡았다. 뒤에서 따라가는 것이 이렇게 수월할 줄이야! 땀도 나지 않는다. 그런대도 뭔가 몸이 이상하다. 아직 소도산 정상까지는 절반도 못 왔는데 다리가 천근만근이다. 머리도 아프고 온몸에 기운이 쏙 빠지며 어지럽다. 물을 너무 마신 탓일까? 아니면 땀을 너무 흘린 탓일까? 혹시 말라리아가 아닌지 모르겠다. 정제소금과 말라리아 예방약은 빠지지 않고 복용 했는데 ... ,

소도산 정상에 도착 했을 땐 이미 내 정신이 아니다.

이곳에서 1박 한다. 주변에 크레모어와 조명지뢰를 설치하고 휴식에 들어갔다. 위생병에게 약을 받고 주사도 맞았다. 덕분에 잠을 충분히 잘 수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그제야 중대OP가 멀리 아스라이 보이고, 19번 도로와 누에고지도 보인다. 몸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오늘은 정상에서 월맹군 18연대 9대대 지역을 수색해야 한다. 이 산 역시 최악의 코스다. 온통 가시덩굴과 암벽뿐이다. 잡을 것 하나 없다. 줄기에 아래로 꼬부라진 가시가 달린 덩굴이 닿기만 하면 몸을 휘감는다. 손과 팔뚝, 얼굴이 가시에 긁혀 피와 땀으로 범벅이다. 옷은 찢어지고 정글화 끈도 끊어졌다. 이마에서 흐른 땀이 입안으로 흘러들지만 완전 맹물 맛이다. 이미 몸속 염분이 다 빠져버렸나 보다.

'내가 왜 이 타국의 열대 가시밭 속에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있기에, 신이 내린 시련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혹하다. 빨리 귀국하고 싶다.'

천신만고 끝에 겨우 개활지로 빠져 나왔다. 모두들 꼴이 말이 아니다. 상처투성이의 얼굴이 악귀의 형상 같다. 우선 물과 식량을 보급 받았다. 전투복과 정글화도 새것으로 공급 받았다. 중대와 랑데뷰 하기로 한 지점은 아직 까마득하다. 수시로 수타식과 연막을 올려 위치를 알리면서 정글을 헤쳐 나갔다. 이윽고 정글이 끝나고 앞에 얕은 개울이 나타났다. 그래도 물이라고 몸을 적시며 개울을 건넜다.

"탕!"

갑자기 들린 한 발의 총성. 모두 그 자리에 앉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서 영조 일병이 개울 바닥에 넘어진 채 안색이 하얗게 질려있다.

서 일병이 자갈을 밟아 미끄러지면서 오발을 한 것이다. 하마터면 앞에 가던 이 일준 병장이 나갈 뻔 했다. 다행히 총구가 아래로 향해 있었기에 망정이지 ... ,

'이놈의 새끼! 기지에 들어가서 함 보자!'

해 질 무렵에야 중대와 합류했다. 이제 '번개작전'의 마지막 밤이다.

이 밤이 지나면 '마이 홈'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래도 별다른 사항 없이 여기까지 온 것이 다행이다. 죽을 고생을 했지만 모두 무사함에 감사할 따름이다.

마지막 날이 밝고, 멀리 떠오르는 아침 태양을 다시 보게 되었음에 깊은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기지로 돌아가는 길, 정글 끝에는 넓은 바나나 밭이 있다. 우리가 좋아하는 몽키 바나나다. 지천에 널린 게 바나나인데 굳이 맛없는 바나나를 먹을 이유가 없다. 앞에 가는 첨병이 정글도로 툭툭 내리친다. 각자 짊어 질 수 있는 만큼 배낭 위에 걸친다.

드디어 19번 도로에 도착했다. 길고 긴 고생작전은 끝났다. 대기하고 있는 트럭에 모두 탑승했다. 뒤돌아보니 우리가 헤매고 다녔던 산과 계곡들이 아득히 보인다.

27, 독 전갈

번개작전을 마치고 돌아온 16교량 기지. 천국이 따로 없다.

군장을 풀고 먼저 서 영조 일병을 공용화기 벙커로 불러냈다. 총기오발사고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런 일을 우야무야 넘기게 되면 군기가 서지 않는다. 군기가 빠지면 언제 또 이런 사고가 날지 모른다. 여기는 전쟁터다. 그것도 이국전선이다. 안전사고 예방 차원에서 철저하게 잡도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네가 뭘 잘못 했는지 말 안 해도 알겠지? 너 임마! 오늘 전우 한 명을 죽였어. 알아?"

"예! 알고 있습니다!"

야전삽 자루를 들었다. 몇 대 맞을 것인지 물었다. 다섯 대 맞겠단다.

'엎드려뻗쳐'를 시켜놓고 힘껏 다섯 대를 내리쳤다. 서 일병은 깨문 이빨 사이로 된 신음을 토해냈다.

"일어 나!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라. 임마! 우리 모두 살아서 돌아가야 할 거 아니야. 정신 차려! 알았지?"

서 일병의 어깨를 툭툭 치며 벙커로 돌아왔다. 목욕을 하기 전에 먼저 바나나부터 묻어야 한다. 갓 따온 바나나는 완숙되지 않아 먹을 수 없다. 아직 푸른 바나나를 땅에 깊이 20cm 정도 파서 깔아놓고 그 위에 흙을 덮는다. 이틀 정도 지나면 먹기 좋도록 노랗게 익는다. 이틀 후면 맛있는 몽키 바나나를 간식으로 먹을 수 있다.

번개작전 후 16교량의 날들은 평온하게 흘러간다. 아침 도로정찰과 관망대 근무, 교량 경계근무 외에는 느긋한 시간을 갖는다.

긴장의 나날들 속에서도 주월 사령부 시계는 돌아가는가 보다. 멀리서 들리는 포 소리에도 움찔움찔 놀라던 월남 신병이 어느 듯 세월이 흘러 6개월이 넘은 중고참이 되었다. 정글을 헤매던 사이 계절도 바뀌어 건기에서 우기로 넘어가 하늘은 자주 비를 쏟아 붓는다.

오늘 밤은 교량경계 전반 근무다. 비록 적정은 조용하지만 이럴 때 놈들이 허점을 노려 공격해올 수 있다. 그 때문에 경계근무를 소흘히 할 수는 없다. 특히 교량근무는 혼자 서기 때문에 자칫하여 이곳이 뚫리게 되면 기지는 끝장이 나는 것이다.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휴식을 취하다 근무에 나섰다. 하늘은 곧 비를 쏟아 부을 태세로 낮게 내려앉았다. 낮 근무자는 교대를 하면서 특이사항이 없다고 했다. 촌놈의 새끼들, 번개작전에 겁을 집어먹고 모두 멀리 달아나버렸나? 요즘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괜히 불안하다.

근무선지 2시간 쯤 지났을까? 캄캄한 밤하늘에 거센 바람이 불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열대 우기의 비는 우리나라의 소나기와는 사뭇 다르다. 거의 양동이로 들이붓는 수준이다. 온 천지를 떠내려 보낼 기세다. 바람마저 거세게 불어 비가 초소 안으로 마구 들이친다. 비를 맞지 않으려고 바람이 불어오는 반대편 초소 벽에 바짝 붙어 사주경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엇이 오른쪽 허벅지를 콱 찔렀다. 뜨끔했다. 반사적으로 손바닥으로 탁 쳤다. 딱딱한 갑각류의 등껍질이라고 느껴졌다. 순간, 다시 그 아랫부분에 또 찌르는 통증이 오는 게 아닌가! 얼른 라이터를 꺼내 불을 켰다. 전갈이었다.

전갈을 정글화로 콱 문질러 버리고 얼른 정글화 끈을 풀어 허벅지 윗부분을 피가 통하지 않게 꽉 동여맸다. 그리고 철모에 항상 꽂혀있는 면도날을 빼내 전갈에 쏘인 두 곳을 옷 위에서 그대로 열십자로 그었다. 피가 줄줄 흐르도록 내버려둔 채 무전으로 전갈에 쏘였다고 알렸다. 곧 바로 분대장과 위생병이 달려왔다. 분대장은 오자마자 바지를 찢고 상처 난 부위에 입을 대고 피를 빨아냈다. 몇 차례 피를 빨아낸 후 부축하여 기지로 돌아왔다. 위생병은 해독제 주사를 놓고 상처 부위를 치료했다. 그리고는 하룻밤 지나보고 후송 결정을 짓자고 했다.

전갈 독 정말 대단하다. 금방 다리가 퉁퉁 부어오르고 마비가 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기는 더해 허벅지는 짚단처럼 부풀어 올랐다. 오른쪽 다리는 감각을 잃고 뻣뻣해졌다. 그나마 재빨리 응급조치를 했기에 후송 갈 정도가 아니라고 했다. 그만 하길 다행이다. 만약 허둥댔다면 자칫 황천길로 갈 뻔했다. 열흘이 지나고서야 부기와 마비가 풀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회복이 빠른 편이란다.

전갈한테 쏘인 곳도 회복되고 일상으로 복귀할 즈음. 우리소대는 16교량에서 중대OP로 올라갔다. 1소대와 교체한 것이다. 군장을 벙커로 옮기고 주변정리를 했다. 내무반 정리를 끝내자마자 고국에서 귀한 손님들이 왔다. 고국에서 대학생 대표들이 방문해 왔다. OP에서 하루를 지내고 내일은 백마부대를 방문한단다.

우리분대 벙커에는 부산 대학교 학생 3명이 배정되었다. C- 레이션 찌개를 끓여 저녁식사를 하고 맥주를 앞에 놓고 고국소식을 듣고, 우리 무용담도 들려주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밤이 깊은 줄 몰랐다.

중대장이 비상을 걸었다. 방문한 대학생들에게 전시상황을 연출해 보이려는 것이다. 중대 내 전 화력을 동원하여 저력을 과시하며 그들에게도 사격을 해보도록 했다. 그렇게 대학생 방문단은 하루를 함께 지내면서 이국전선의 실체를 느끼고 갔다. 가서 꼭 편지하겠단다.

그렇잖아도 아침에 꽤 많은 편지가 배달되었다. 완주군청의 순홍이, 전주의 은경이, 부산의 희영이, 경산의 옥희 그리고 친구들과 어머니.

그런데 영아의 편지는 보이지 않는다. 지난번 장문의 편지를 보낸 후 줄곧 기다렸지만 감감무소식이다. 편지가 도착하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 ... , 어쩌면 내 편지를 못 받는 상황일지도 몰라. 이번에는 나뭇잎 편지를 보내기로 했다. 나뭇잎에 하트를 그리고 '사랑한다. 영원히' 라고 새겨 넣었다.

이곳 열대지방 나무들의 잎은 대개 두텁고 가죽질이다. 나뭇잎을 따서 뾰족한 옷핀 끝으로 잎 앞면에 글씨를 쓴다. 얼마 후 글 쓴 자리는 엽록소가 말라 갈색으로 변한다. 이렇게 나뭇잎에 사랑의 편지를 써서 띄우면, 받아보는 사람은 낭만의 편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병사들은 이런 낭만의 편지를 연인이나 펜팔 여자 친구에게 즐겨 보낸다.

영아한테 쓴 편지는 영아 집으로 부치지 않고 친구 병제 집으로 부쳤다. 병제가 직접 편지를 전달해 주도록 했다. 다음은 어머니와 동생들, 친구들, 그리고 펜팔 아가씨와 위문편지로 알게 된 초등학교 꼬마 아가씨에게도 답장을 써서 멋진 그림과 함께 동봉했다. 그런데 부산의 희영이가 남자인줄은 꿈에도 몰랐다.

'김 병장님, 미안합니다. 여자가 아니어서 얼마나 실망을 할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꼭 속이겠다고 한건 아니고 군인들은 당연히 여자의 위문편지를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여자인척 하고 썼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김 병장님께서 부상을 당해 아픈 손으로 삐뚤삐뚤하지만 진지하게 보내주신 답장과 좋은 그림을 받고, 도저히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대신 저의 사촌 여동생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름도 그렇고 글씨도 완전히 여자 글씨였다. 당연히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남자라니 ... ,

'어이쿠! 창피해.'

그래도 사촌 여동생을 소개해준다니 나름대로 수지 맞춘 장사다.

28, 특공임무

오늘은 우리분대가 째째산 매복 나가는 날이다.

아침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전기가 시끌시끌하다. 송콘강 건너 매복나간 2소대가 기습공격을 받았다. 즉각 반격했지만 놈들은 눈 깜짝할 새 도망가 버렸단다. 놈들의 전형적인 게릴라 전법, '히트 앤드 런'에 또 당한 것이다. 2소대는 5명의 사상자만 내고 철수했다. 송콘강 건너에는 항상 그렇다. 놈들의 구역이니까.

점심식사 후 모두 군장을 꾸리는데, 느닷없이 매복이 취소되었다는 전갈이 왔다. 대기하라고 한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뭔가 불길한데 ...,"

"매복까지 취소되고 다른 작전이 있는 거야?"

저녁을 먹고 쉬고 있는데 대대작전 명령이 떨어졌다. 대대는 월맹군 18연대 9대대 지역인 소도산 일대에 기습 수색작전을 펼친다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작전인가 보다. 작전계획이 누설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보안을 지켰기 때문에 저녁식사 할 때까지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이번 수색작전은 대대 전체가 소도산과 똥태산의 중간지점에 랜딩 할 계획이다. 놈들이 낌새를 알아차리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대규모 병력을 최대한 놈들의 주둔지 가까이 헬기로 이동시키는 작전이다. 적어도 치누크 20대 정도 동원될 것이라고 한다. 대규모 헬기 출동은 놈들의 대공화기에 공격당할 우려가 크다. 그런 만큼 놈들의 대공화기를 무력화하기 위해 통상적으로 랜딩 지점에 포격이나 항공기로 무차별 폭격을 한다. 물론 이렇게 하면 헬기는 안전하게 랜딩 할 수 있으나, 놈들은 대규모 작전을 눈치 채고 그 사이 멀리 달아나 버리는 약점이 있다.

그래서 이번 작전은 놈들이 달아날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겠다는 전략에 따라 포격이나 폭격을 하지 않고, 특공대로 하여금 랜딩지점을 확보하여 단시간에 대병력을 투입시키겠다는 작전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랜딩지점에 투입되어 적을 소탕하고 병력이 무사하게 작전에 투입될 수 있도록 랜딩지점을 확보하는 임무를 우리분대에 주어진 것이다. 그곳은 언젠가는 작전할 것이라는 판단에 벌목만 하고 아직 한 번도 작전을 개시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야말로 이건 목숨을 내놓고 해야 하는 것이다.

"야! 이거 우리보고 완전히 죽으라는 거 아니야?"

"참말로 미치고 폴딱 뛰겠네. 우리가 희생타자야?"

"씨팔! 아무리 군대라지만 이런 무대뽀 작전이 어딨노!"

"그런 건 수색중대가 하는 것 아니야?"

분대원들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리며 욕을 해댄다. 지휘부는 우리분대의 희생을 각오하고 투입시키는 것이 분명하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분대원 절반은 나간다고 봐야한다. 그러나 피할 수는 없다. 어차피 군대는 명령에 죽고 사는 거니까. 며칠 후면 귀국열외가 되는 낙천적인 이 일준 병장도 무척 긴장이 되는 모양이다.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분홍빛 팬티 두건을 유난히 꼼꼼하게 매만진다.

여명이 트는 06:00. UH1H 헬기에 몸을 실었다. 모두 단독군장에 각각 휴대용 로켓포 2문을 둘러매고 예비실탄 탄포를 양어깨에 대각선으로 묶었다. 차 병장은 M79 유탄발사기도 챙겼다.

어쨌건 우리는 랜딩지점을 확보하여 대대병력들이 안전하게 투입될 수 있도록 목숨을 걸고 임무수행을 해야 한다. 모두 말이 없다.

'주님, 내일 아침에도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눈을 감고 기도를 드렸다. 우리가 탄 헬기는 1개 편대 무장헬기의 호위를 받으며 이륙했다.

'목숨은 하늘에 맡기고 가보는 거다. 가자!'

작전의 심각성을 아는지 또 만나게 된 마이클도 오늘은 조용하다. 언제나 틀어대던 'All Along The Watchtower'를 틀지도 않고 말없이 아래만 주시하고 있다. 20여분의 비행 끝에 목표지점 상공에 도달했다. 상공을 선회하던 무장헬기가 크게 좌회전하면서 랜딩지점에 로켓포와 건 쉽을 집어넣는다. 곧바로 놈들이 대공화기로 반격을 한다.

2번 기, 3번 기, 4번 기가 차례로 로켓포를 날리며 기총소사를 한다. 우리는 그 틈을 노려 랜딩 해야 한다. 그런데 랜딩하지 않고 정지했다.

"허리! 허리 업! 헤이, 허리 업!"

빨리 뛰어 내리란다. 언뜻 봐도 지상 2m는 넘겠다. 놈들의 부비트랩 관계로 기체착륙은 할 수 없단다. 놈들이 우리가 탄 헬기를 향해 공격을 한다. 로켓포가 헬기를 스치며 날아간다. 한방 맞으면 헬기뿐만 아니라 모두가 공중분해가 된다. 마이클이 건 쉽을 날리면서 빨리 뛰어내리라고 고함을 친다. 아래는 나무 등걸이 이리저리 넘어져 있다. 뛰어내리기가 쉽지 않다. 착지하다가 부비트랩에라도 걸리면 끝장이다.

분대원들은 모두 겁을 먹고 서로 얼굴만 쳐다본다. 시간이 없다. 우물쭈물 하다가는 한 방에 모두 날아간다.

'에라! 모르겠다.'

먼저 뛰어내렸다. 돌아보고 할 시간이 없다. 무조건 전방을 향해 뛰어가 나무 등걸 뒤에 엎드렸다. 그리고 숨 쉴 틈도 없이 놈들의 진지를 향해 로켓포를 집어넣었다. 무장헬기가 계속 공격하는 사이 분대원들도 차례로 착지했다. 마지막으로 차 병장이 뛰어내리고, 헬기는 바로 급상승하여 사라져 버렸다.

놈들의 공격이 한 풀 꺾인 듯하다. 그래도 전방의 적들은 여전히 사격을 하며 버티고 있다. 놈들의 조준사격은 실로 가공할 만큼 공포 그 자체다. 놈들이 정신을 수습하여 조준사격 하기 전에 총공세를 펼쳐야 한다. 조준하기 시작하면 늦다. 로켓포를 연발로 날리고, M79유탄도 집어넣었다. 일부는 소총을 연발로 마구 쏘아댔다.

어느 듯 놈들은 하나 둘 도망치기 시작했다. 우리는 공격의 고삐를 놓치지 않고 각자 소지한 로켓포를 남김없이 날렸다. 도망치는 한 놈을 보고도 로켓포를 날렸다. 포를 맞은 놈이 화염과 함께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성급하게 추격은 않고 연발사격을 하면서 천천히 밀고 나갔다.

앞쪽에선 이제 AK소총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놈들을 완전히 제압하고 랜딩지접을 확보한 것이다. 주변을 수색했다. 10여명이 쓰러져 있다. 분대원들은 손 끝 하나 다치지 않고 모두 무사하다. 어떻게 싸웠는지 모르겠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각자 고이 간직한 여자 팬티 부적 덕분인가?

사주경계를 하면서 랜딩지점 확보 성공보고를 했다.

얼마 후 거대한 치누크들이 상공에 나타났다. 녹색, 적색 연막을 터뜨려 랜딩지점을 알리고 사주경계를 하면서 착륙을 유도했다. 먼저 소대장과 중대장이 내렸다. 수고했다며 손을 굳게 잡아 주었다. 이어 소대원과 중대원들이 내려 하이파이브를 하며 곧바로 놈들의 기지 쪽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계속 치누크가 날아와 병력들이 내린다. 전 대대원들이 모두 무사하게 내렸다. 3중대 불알친구 필수를 만났다. 너무 반가웠다. 가끔은 무전으로 소식을 듣곤 하지만, 만날 수가 없었다. 같은 대대에 있어도 천만리 떨어져 있는 꼴이다. 우리는 힘껏 끌어안았다.

마지막 치누크에서 대대장이 내렸다. 대대장은 분대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수고했다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수고들 했어. 2중대 3소대 1분대! 오늘 이 시간부터 10일간 휴양을 명한다. 지금 당장 출발이다. 알았나? 실시!"

'이게 무슨 말이고?'

대대장은 우리에게 특별 휴양명령을 내렸다. 모두 귀를 의심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두 의아했다. 퀴논 앞 바다. 아름다운 섬에서 푹 쉬라는 것이다. 우리는 무장한 그대로 대대장이 타고 온 치누크에 몸을 실었다.

정말 꿈만 같았다. 오늘 아침만 하더라도 우리를 사지에 몰아넣는다고 악다구니를 썼는데 ... , 그 치열했던 격전 속에서 무사히 살아날 수 있을까 했는데 ... , 이렇게 모두 멀쩡한 몸으로 휴양소에 간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우하하하!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29, 전쟁 속의 파라다이스

들뜬 가슴을 안고 치누크에 오른 지 1시간. 창밖으로 퀴논 시가지가 보인다. 기체가 기수를 남동쪽으로 돌려 20여분을 더 날자 검푸른 남지나해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처음 월남에 도착하여 퀴논항구에서 보았던 그런 바다가 아니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에메랄드 빛 바닷물이 끝 간 데 없다. 물결이 밀려와 하얀 파도를 은빛 백사장에 부려놓고 밀려난다. 멀리 수평선에는 하얀 뭉게구름이 피어오르고, 해변에는 길게 늘어선 야자수가 남국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인간사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더니, 참! 불과 2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 지옥 같은 정글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었다.

'과연 이 정글의 무덤 속에서 살아 나갈 수 있을까?' 두려움에 떨면서, 그런데 이게 뭔가? 갑자기 180도 바뀐 풍경에 머릿속이 휘황하다.

쉼 없이 쏘아대던 총과 탄대와 방탄복과 수류탄, 그리고 모기약이 꽂힌 철모도 그대로다. 공간이동을 해도 더 이상 이렇게 극적으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찰랑대는 물결을 밟으며 해변에 내렸다. 확 풍기는 바다 내음! 시원한 바람. 해초의 비릿한 내음. 정글 속에 갇혀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린다. 목청껏 고함을 지르고 싶다. 날아 갈 것만 같다.

"야! 쥑인다. 쥑여!"

"자, 이제 마음 놓고 한번 즐겨 봐?"

세상일 모두 잊고 지금부터 10일간 맘껏 즐기는 거다. 휴양소장에게 신고하고 방 배정을 받았다. 해변에 하얗게 단층으로 지어진 방갈로.

무진장 먹고 마시고 놀 수 있는 시설들이 갖추어져 있다. 식당, PX, 공연장, 깨끗한 침실, 야자수 그늘 ... ,

무척 아름다운 이곳은 제법 큰 섬인가 보다.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 점점이 떠있는 섬들, 눅눅한 정글과는 사뭇 다른 풍경을 그려낸다.

군장을 풀고 목욕부터 했다. 정글 속에서 찌던 때를 말끔히 벗겨내고 싶었다. 목욕을 끝내고 PX로 달려가 수영복을 사고 맥주로 자축파티를 했다. 분대장이 쐈다. 처음 마셔보는 시원한 냉 맥주. 우리는 기갈 들린 듯 마셔댔다.

PX에는 우리 외에도 많은 병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콜라를 홀짝거리며 땀에 찌던 전투복에 무장을 하고, 검게 탄 얼굴과 핏발선 눈을 하고 맥주를 마구 마셔대는 우리를 힐끗거렸다. 아마도 말단 소총부대 촌놈들이라 생각하겠지.

'그래. 이놈들아! 같은 월남의 하늘 아래 있지만, 우린 죽을 고비를 수십 번 넘기며 사지를 헤매던 놈이란다. 너희들이야 비전투부대에서 A-레이션만 처먹고 있었으니, 베트콩 구경 한 번 못했을 거다. 그러니 콜라만 마셔도 취할 거다.'

아침부터 초긴장상태로 삶과 죽음의 틈바구니에서 거하게 한판 치른 데다, 한잔 걸치고 나니 몸도 나른하고 그냥 푹 쉬고 싶었다. 첫날은 모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어제 그토록 보고자했던 아침 태양을 오늘 이곳 남지나해 바닷가에서 본다. 눈을 뜨자마자 물에 들어갔다. 나는 몸으로 하는 일은 남들보다 빠지는 게 별로 없다. 단 한 하나, 물에 들어가면 완전 맥주병이다. 최 봉석 병장이 수영을 가르쳐주겠단다. 내가 한글 가르쳐준 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빚을 갚겠다는 생각인가보다. 최 병장은 해변에서 꽤 멀리 떨어진 깊은 곳으로 갔다. 가르쳐준 대로 몇 번 허우적거려 봤으나 뜨기는커녕 가라앉기는 매 마찬가지다. 아침부터 짠물만 실컷 들이켰다.

가르치는 최 병장도 배우는 나도 빨리 포기하는 게 낫다는 걸 몇 분 지나지 않아 알았다. 캑캑거리며 모래사장 쪽으로 나오다보니 그리 깊지 않은 물속에 꽤 큰 물고기들이 무리지어 헤엄치고 있었다.

'그래, 수영은 포기하고 지금부터 천렵이다.'

방에 가서 수류탄 몇 발을 가지고 나왔다. 보트를 저어가서 한발 까서 던졌더니 물고기가 허옇게 뜬다. 얼른 쪽대로 건져 그릇에 담았다.

두어 발 더 던졌는데 완전 물 반, 고기 반이다. 즉석에서 회를 뜨고, PX에 가서 고추장과 술을 사와 먹는 이 맛! 기가 막힌다. 둘이 먹다 둘 다 죽어도 모를 이 황홀한 맛! 소문을 듣고 분대원들이 다 모였다.

대낮부토 우리는 해변의 잔치를 벌였다. 종일 몽롱하게 취해 천국 체험을 하고 있었다.

저녁나절이 되자 치누크 한 대가 요란하게 해변에 내렸다. 웬 놈들인가 했더니 우리 소대원들이다. 작전을 마친 후, 대대장이 포상차원에서 우리 소대 모두를 휴양소로 보내준 것이다. 완전 신났다. 우리 분대만 와서 맘에 좀 걸렸는데 이제 함께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경계근무도 없고, C-레이션 깡통 딸 일도 없다.

낮에는 먹고 마시고 즐기고, 밤이면 영화 관람에 춤도 추고 노래하고, 정말 신나는 날들이다. 천국이 이보다 더 즐겁겠나.

나흘째 되는 날. 고국 위문단이 찾아왔다. 수영복만 걸친 아리따운 고국의 꽁까이들! 보기만 해도 숨이 콱 막힌다. 잘록한 허리, 풍만한 가슴, 뽀얀 살결, 하얀 이, 미끈한 다리 ... ,

완전 '뿅'이다. '뿅'! 기분 내라고 맥주까지 나왔다.

남국의 태양은 열기를 더해 가고, 파도소리와 함께 해변의 잔치는 무르익어 간다. 모두들 일어나 춤추고, 노래 부르고, 고함지르고, 휘파람 불고, 광란이 따로 없다. 공연이 끝난 후, 가수와 무희들과 기념 촬영도 했다. 수영복만 입은 채 고국의 아름다운 꽁까이를 안고 있으니 세상에 부러울 게 뭐가 있겠나! 완전 파라다이스!

'아! 이래서 세상은 아직 살만 하다고 했구나!'

휴양소에서 맞이하는 일요일이다. 앞에 보이는 마을에서 종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휴양소 근무자에게 물어보았더니 앞에 보이는 마을에 성당이 있다고 했다. 비록 이국의 전쟁터이지만 미사에 참례하고 싶었다. 휴양소장에게 부탁했더니 쾌히 외출 허락을 해주었다.

단독군장을 하고 혼자서 마을 성당에 갔다. 비록 월남 말은 알아들을 수 없지만, 전례는 세계 공통이고 라틴어로 하기에 별 어려움 없이 미사 참례를 할 수 있었다. 미사 중에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 내렸다.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미사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신부님과 신자들이 도열하여 박수를 치며 열렬히 환영해 주었다.

단 한 명의 '따이한' 신자를 이토록 따뜻하게 대해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채 명신 장군은 늘 월남에서는 중공 모택동의 게릴라 전략을 역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인민속의 게릴라, '물속에 노는 물고기' 들을 물과 고기로 분리시키는 전략을 펴야 한다고 했다. 월남인 가운데 베트콩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지휘관들은 그렇게 힘든 전투 가운데서도 월남인들을 우군으로 만들기 위해 대민지원활동을 하도록 다그친다. 영농, 의료지원, 태권도 보급은 기본이고 심지어 학교 건축 공사에까지 동원된다. 우리로서는 여간 고달픈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왜 이 정글에 와서 목숨을 바쳐 싸워야 하나 회의만 들었는데, 월남 신자들의 환대를 받고 보니 미안한 생각이 든다. 이것이 우리가 목숨을 바쳐 자유를 지키고, 대한민국의 명예를 드날린 결과구나 싶다.

뜻하지 않게 나 혼자 받은 축복이랄까, 기쁘다. 그리고 가슴 벅차다.

'주님, 저에게 이런 축복과 기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휴양소에서의 열흘은 왜 이리도 빨리 가는지. 모두 까만 얼굴이 더욱 검게 타버린 모습으로 중대OP로 돌아왔다. 만나는 다른 소대원들이 부러운 얼굴로 어떻더냐고 묻는다.

"말로는 다 못하지. 일단 가봐야 알아. 완전 끝내 주더라고! 모두 홍콩 갔다 왔어. 천국이냐, 천국!"

그런데 우리들의 들뜬 기분과는 달리 중대 OP는 침울했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노는 동안 2소대에서 또 당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매복조가 째째산 쪽 출입문을 나서다가 놈들이 설치한 부비트랩에 2명이 당했다는 것이다.

'때려죽일 촌놈의 새끼들, 감히 출입문에까지 부비트랩을 설치하다니, 잡아서 완전분해 시켜버릴 테다.'

언제나 전운이 감도는 OP. 성당에서 참회하던 기분은 온데간데없고 다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제 휴양소 기분일랑 싹 떨쳐버리고 전투모드로 바꿔야 한다.

30, 과부촌 수색

휴양소에서 돌아온 지 이틀 만에 매복 작전이다.

째째산이 송콘강으로 내리뻗은 하단부에 3박4일 매복이다. 며칠 전 2소대가 부비트랩에 당한 터라 모두 예민하다. 만약을 대비하여 낮에 매복지 진입하기로 했다.

이동구간의 정글은 덩굴로 뒤덮여 헤쳐 나가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다. 거기다 마음의 부담까지 더해졌다. 이번 작전부터는 귀국을 앞둔 고참 두 명이 열외로 빠진 것이다. 그들 대신 한 달 전에 충원된 신병 둘을 데리고 나가자니 어깨의 짐이 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쉬지 않고 걸어야 해지기전에 매복지점에 진입할 수 있는데 신병들이 자꾸 뒤처진다.

이들을 다독거리며 진입하자니 한없이 더디다. 해질녘에야 겨우 도착했다. 곧바로 경계병을 내보내고 크레모어 설치를 하고 있는데, 경계병이 나간 쪽에서 신음소리가 났다. 총을 잡고 최대한 몸을 낮춰 접근했다. 신병 유 성종 상병이 창백한 얼굴로 퍼질고 앉아 끙끙거리고 있다.

'짜식, 이 정도에 뻗다니 ... ,'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세 밤을 지새워야 할지 막막하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비가 쏟아진다. 판초에 비가 떨어지면 소리가 나기 때문에 걷어내고, 그대로 비를 맞으며 앉아 있어야 한다.

그때 소대장 조에서 폭음이 났다. 무전기에 귀를 기우렸다. 적들이 크레모어 사선 안에 미처 오기도 전에 격발기를 눌렀나 보다. 결국 놓쳤단다. 놈들이 혹시 이쪽으로 올지 모른다. 덜덜덜 떠는 신병들을 다독거리며 밤새도록 눈에 불을 켜고 지켰으나 끝내 놈들의 그림자도 못보고 날밤을 새웠다.

날이 밝았다. 이제는 내리쬐는 태양에 완전 탈진할 지경이다. 잠을 좀 자둬야 하지만 목동들이 소떼를 몰고 주변을 맴돌고 있다. 꼼짝할 수가 없다. 목동들 중에는 놈들의 첩자도 적지 않다. 자칫 이들의 눈에 띄면 기습당할 수가 있다. 들키지 않으려고 취침호에 고인 물도 퍼내지 못하고 그냥 물속에 앉아 다시 밤을 맞이했다.

밤이 깊어지자 또 비가 내린다. 바닥에 나뭇잎을 깔았지만 내리는 비에 온몸이 흠뻑 젖어 한기마저 든다. 이렇게 사흘 밤낮을 꼬박 물속에 잠겨 눈 한번 못 붙이고 녹초가 된 몸으로 크레모어를 걷고 철수준비를 했다. 빨리 기지에 가서 젖은 옷과 정글화를 벗고 드러눕고 싶다.

그때 중대장의 무전이 날아왔다. 3중대가 송콘강 주변을 수색하는데 협조하라는 것이다.

'씨부랄!'

욕이 절로 나온다. 별 수 없이 한 나절 수색에 동참했다. 빈 가옥에서 용의자 한 명 외에는 별다른 사항은 없었다. 똥포마을을 가로질러 과부촌으로 해서 OP로 돌아왔다. 이번 매복도 무경험으로 적을 놓치고 말았다. 이제 잠 좀 실컷 자야겠다고 벙커로 갔더니, 벙커 입구가 폭우로 무너져 있는 게 아닌가! 잠은 고사하고 오후 내내 보수작업을 했다.

'참! 환장할 노릇이다.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쇳덩이처럼 무겁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16교량까지 3A도로 정찰을 나섰다. 과부촌 앞 도로에 흙무더기를 쌓아놓고 그 위 에 월맹기를 꽂아둔 것이 보였다. 부비트랩이 틀림없는 것 같다. 깃대에 줄을 매달아 놓았는데 아마 그 줄을 당기면 바로 터지도록 만든 것 같다.

"은하수! 은하수! 여기는 은하수 하나!"

"송신!"

"과부촌 입구 이상 물체 발견. 이상!"

즉각 정찰을 중지하고 보고했다. 중대장과 소대장이 달려왔다. 중대장은 흙무더기 주위를 둘러보더니 폭파명령을 내렸다. 흙무더기 위에 크레모어 2개를 엎어놓고 격발기를 눌렀다. 폭음과 함께 엄청난 구덩이가 패였다.

늦은 오후 역시 과부촌 앞 도로에서 미군 차량이 놈들이 매설한 부비트랩에 차량이 반파되는 피해를 입었다. 지방 게릴라의 소행인 것 같다. 요 촌놈들이 이제는 코 밑에까지 와서 지랄 발광을 하고 있다.

중대는 불시에 과부촌을 뒤지기로 했다. 중대 OP앞에 형성된 부락. 팅손 마을. 50여 가구가 사는 이 마을은 베트콩 산동 중대가 주둔해 있다가 우리 2중대에 전멸 당하고, 남은 사람이래야 노인과 아이들, 그리고 젊은 과부들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마을을 과부촌이라 부른다. 적성마을인 만큼 이곳도 게릴라들이 숨어들 가능성이 크다.

이 마을은 주로 소규모의 소를 기르고 벼농사를 짓지만, 일손이 모자라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다. 3모작 벼농사를 할 수 있지만 한 번 모를 심고나면 제 때 수확하지 못하고, 벼이삭을 조금씩 베어와 그저 낟알을 털어 밥을 해먹는 게 고작이다.

중대에서는 작전이 없고 조용할 때면 가끔 이곳으로 대민지원을 나가 추수를 거들어 준다. 한나절만 거들어 주어도 한해 양식을 거뜬히 마련할 수 있어 주민들은 무척 고마워한다. 그런 과부촌의 대민지원은 우리 병사들이 가장 반기는 일 중 하나다. 젊은 과부들이 많은데다 가난하니까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지휘관이 기지를 비우기라도 하면 참을성이 없는 병사들이 과부촌을 기웃거린다. C-레이션 한 박스를 메고 가서 잠시 머물다 오는 것이다.

워낙 가난하다보니 여기서는 이렇게라도 연명하는 것이 전혀 부끄러운 일이 못된다. 아이라도 여럿 딸린 과부들은 오히려 간택(?)되지 못해 안달이다.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칠 수 없지 않겠나.

D-day. 06시를 기해 과부촌을 빈 틈 없이 포위했다. 그리고는 모든 주민들을 학교에 집결하도록 했다. 외부로 한 명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경계하면서 가택수색을 했다. 중대장은 집안에 남아 있는 사람은 무조건 잡아 오라고 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의심나는 물건도 모두 수거하라고 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마을이다. 살림살이라고는 취사도구 몇 개와 대나무 침대, 농기구뿐이다. 명색뿐인 부엌에는 월남 특유의 냄새가 역겹다. 우리의 젓갈과 비슷한 반찬에서 나는 냄새다. 창고와 외양간까지 모두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이렇다 할 단서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 최종적으로 집결해 있는 주민들의 몸수색을 하기로 했다.

몸수색을 하지만 몸에 그다지 감출만한 것도 숨길 곳도 없다. 옷이래야 헐렁한 검은 농민복이 전부다.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검색을 했다. 마을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아무 말 없이 명령에 따라 조용히 움직여준다. 남자와 여자를 분리했다.

남자는 상의와 바지를 모두 벗게 하고, 여자는 상의를 목까지 올리고 바지는 무릎까지 내리도록 했다. 물론 알몸이다. 브레지어나 팬티는 이들에게는 사치다. 월남 신병이자 막내인 천 기성 일병이 슬그머니 자리를 옮겨 여자들 몸수색하는 정면으로 와서 경계를 서는 것이다.

'짜아식, 이 와중에 밝히기는, 하긴 보고 싶겠지. 저 녀석 머잖아 C-레이션 메고 올 놈이네.'

과부촌 수색은 아무런 성과도 없이 끝났다. 불안한 얼굴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주민들을 안심시켜 집으로 돌려보냈다. 주민들을 속에서 적성분자를 잡아내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지방 VC들의 준동을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주민들이 의심이 가더라도 절대 적대시해서는 안 된다. 월남은 지역에 따라 좌우로 선을 긋듯 전선이 형성된 곳이 아니다. 군복 입은 군인과 싸우는 전선이 아니라 주민 속의 적들과 싸우고 있다. 주민들 가운데는 피아가 없고 뒤죽박죽이다. 베트남 사람 90%는 월맹정권 지도자 호치민을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로 꼽는다. 밤과 낮. 형편에 따라 이념을 달리한다. 형제, 자매간에도 월남정부 지지와 월맹정권 지지자로 노선을 달리 한다. 그들 가운데 민족해방전선, 즉 월남의 베트콩이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주민들의 사상성향에 따라 작전전개에 큰 영향을 받는다. 문제는 자기들끼리 싸우는 가운데서도 외국인한테는 다 같이 극도의 반감을 드러낸다는 사실이다. 워낙 오랜 세월 동안 외세의 침략을 받다보니 민족주의가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입지는 매우 좁을 수밖에 없다. 적은 적의 친구라고 했다. 이런 복잡한 전쟁터에서 애써 적을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양민보호' 지휘관들이 침을 튀기며 말하는 것도 모두 그런 이유 때문이다. 모두 풀린 다리를 이끌고 맥없이 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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